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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글이고, 글이 삶이다.” - 드라마 작가 노희경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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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그가 쓴 드라마들을 닮았다. 그가 쓴 드라마에서 말하고 있는 가족, 사랑과 이별, 삶에서 얻는 위로에 대한 이야기들이 글 속에 잔잔히 펼쳐진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에세이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를 쓰게 된 데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된 NGO 단체 JTS(www.jts.or.kr)의 회원인 작가가 김영사로 기부금을 부탁하러 갔다가 책을 내게 됐다. “작년에 북한에 큰 홍수가 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일면식도 없는 김영사 사장님께 기부금을 부탁 드리러 갔는데 선뜻 기부를 해 주셨어요. 그러다 옆에 있던 팀장님이 ‘이것도 인연인데, 책 한 권 내시죠.’ 너무 기분이 좋아서 ‘네!’ 그랬어요. 기부금에 눈이 어두워 책을 내게 됐습니다.(웃음)” 저자 인세와 출판사 수익의 일부도 JTS에 기부된다.

그런 사연으로 나오게 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는 그가 쓴 드라마들을 닮았다.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꽃보다 아름다워>. 그가 쓴 드라마에서 말하고 있는 가족, 사랑과 이별, 삶에서 얻는 위로에 대한 이야기들이 글 속에 잔잔히 펼쳐진다. 글을 읽노라면 노희경이 어째서 그런 드라마를 썼는지, 그 드라마가 우리를 감동시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노희경 드라마의 원천은 가족이며, 그의 삶이다.

자원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시는 편이신가요?

아니요. 주로 회원 가입을 해서 후원금 보내는 정도예요. JTS의 경우는 돈 받는 분이 한 분도 없이 자원 봉사를 하시는 분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요. 그분들이 남들보다 많이 가져서 봉사 활동을 하시는 게 아니에요. 다들 어렵고 힘들어도 나와서 활동을 하시죠. 그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좋은 일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 새로 쓰신 글이 어느 정도 되나요?

30% 정도요. 나머지는 잡지에서 청탁 받아 쓴 글들과 기록 목적으로 써 둔 글들이에요.

드라마 집필이 끝나서 잠시 쉬고 계시다고 하시는데요. 평소에는 어떻게 작업하세요?

굉장히 규칙적이에요.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일어나서 1시간 정도 할 일 하다가, 12시에 작업실로 가요. 그리고 밤 12시까지 글을 씁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12시는 넘기지 않으려고 해요. 다음 날 작업에 지장이 있으니까. 그리고 2시쯤 잡니다. 거의 매일이 이렇죠. <그들이 사는 세상> 끝난 후에 잠시 쉬면서 책을 많이 읽고 있어요. 다음 작품 시놉시스도 쓰고 있고요.

굉장히 규칙적으로 사시네요.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고 1년은 안 그랬어요. 불규칙하고 제멋대로 살았는데, ‘이렇게 살다 보면 제대로 된 대본을 쓸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대본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기다리고 있는 감독, 배우, 스태프를 생각하면 나태해질 수 없어요. 드라마 제작비를 생각하면 더욱 그래요. 제대로 하려면 나를 잘 관리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나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어요.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람은 정말 절박하지 않으면 안 변하거든요. 지금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 6~7년 동안은 수면제를 먹고 잔 적도 있었어요. 습관 고치는 게 어마어마하게 힘들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주변에서는 “노희경 씨 자기 관리 잘하네.”라고 가볍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죽기살기로 해서 겨우 이만큼 한 거예요.


20대 때는 어떠셨어요? 드라마 작가가 되기 전에는.

그때는 더 심했죠. 지금 생각하면 내 몸을 함부로 취급했던 것 같아요. 밤도 많이 새고, 담배도 하루 네 갑씩 피우고, 밥도 잘 안 먹고. 체력이 한도 끝도 없이 떨어졌죠. 그런데 그땐, 그렇게 자기 몸을 학대하는 게 문학에 대한 내 열정인 줄 알았어요. 어마어마한 착각이죠. 건강한 삶이 건강한 정신을 만들고, 건강한 정신에서 좋은 글이 나와요. 지금은 경험적으로 그걸 알죠.

글쓰기가 20대 때는 내 전부였는데, 지금은 두 번째예요. 첫 번째는 행복하게 살기예요. 이렇게 말하면 많은 문학 지망생들이 “노희경이 변절했다.”고 말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글에 투자해요. 20대 때는 고뇌하느라, 한 달에 한 줄도 못 쓴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하루에 10시간 동안 글을 써요.

그때를 돌아보면 그렇게 문학을 하고 싶다는 열망, 글을 쓰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음에도 정작 글은 안 썼고, 요즘은 글쓰기가 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정작 내 인생의 대부분을 글쓰기로 보내고 있어요. 그때는 문학이 뭔지 토론하고, 핏대를 세우고, 밤새도록 싸우고 그랬는데 요즘 내 관심사는 인간이고, 삶이에요. 그런데 그 삶이 글이 되니까, 참 묘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이제는 글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는 것 같아요. 혼융되어 있죠. 20대 때에는 여기까지가 글쓰기, 여기서부터는 삶,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은 글쓰기가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어요. 글을 열심히 쓰면 삶도 성실히 사는 셈이죠.


시와 소설을 쓰다가 드라마를 쓰게 되었는데요.

시도 안 되고, 소설도 안 되고.(웃음) 재능이 없었나 봐요. 스물한 살 땐가, 신춘문예에서 떨어졌어요. 엄마랑 밥을 같이 먹는데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엄마가 “뭐 그깟 일로 울어. 넌 대학도 떨어졌잖아.” 그러셨어요.(웃음) 그러다가 드라마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교육원에 등록했어요. 첫 수업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칠판에 이렇게 쓰셨어요.

‘드라마는 인간이다.’

그때, 저는 하늘이 열리는 기분이었어요. 드라마는 인간인데, 인간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내가 인간이니까 나를 연구하면 되잖아요. 그 한 줄의 글로, 드라마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목숨이라도 걸겠다는 각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 생겼죠. 초발심이 제대로 섰어요. 그 뒤로 저는 심하게 성실한 학생이 되었지요. 앞자리에서 선생님을 얼마나 열심히 쳐다 봤는지 “네 눈이 너무 뜨거워서 수업을 못하겠다. 다음 시간엔 뒷자리에 앉아라.”는 말까지 들었으니까요. 습작도 열심히 했어요. 선생님이 작품 그만 가져오라고 할 만큼 썼으니까. 그때 느꼈던 드라마에 대한 열정을 지금껏 잊어본 적이 없어요. 그 덕에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13년 동안 글을 쓰면서, 힘들다, 지겹다는 말 나에게 10번 이상 들은 사람이 없을 거예요. 이렇게 행복한 직업을 그런 말로 깎아먹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드라마를 쓰면서 저는 가족과 화해했고, 자학하는 것도 그만뒀어요.


드라마 작가로 어떤 소재에 끌리나요?

아는 걸 드라마로 쓰지 않아요. 그러면 재미없어서 드라마를 못 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풀고 싶은 숙제들을 드라마에 풀어 놓고, 드라마를 쓰면서 그 문제들을 고민하는 거죠. ‘내가 이만큼 알고 있는데, 그걸 너에게 알려줄게.’ 이런 마음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시점에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분명 있고, 그것을 계속 고민하다 보면 다음 작품이 나와요. 질문이 드라마를 쓰게 하는 것 같아요. 저에겐 질문이 굉장히 중요해요. 소크라테스도 좋은 질문 속에 답이 있다고 말했어요. 작품을 쓸 때 『금강경』을 많이 읽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전부 질문으로 되어 있어요. 부처님은 절대 답을 주지 않아요. 오직 질문을 할 뿐이죠. 그런데 그 질문 속에는 어마어마한 지혜가 숨어 있어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하는 건 꽤 고통스러운 일이죠.


그렇게 해서 얻은 해답들은 만족스러웠나요?

해답은 아니죠. ‘그런 거였나? 아닐 수도 있고.’ 이런 느낌의 답이죠. 삶의 문제들이 쉽게 마침표를 찍거나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드라마의 시청률이 낮으면 신경이 쓰이나요?

좀더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 쓰였어요. ‘요즘은 시청률暫 안 나와 속상해,’ 이런 식이 아니라, ‘나는 열심히 썼는데 왜 보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을까?’를 고민하고, 그걸 다음 작품에 쓸 때 꼭 참고하려고 노력해요.

드라마는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지는데, 그런 과정이 힘들진 않으세요?

의견을 나누고, 화합하는 그 과정이 제겐 너무 아름답게 느껴져요. 내가 가진 것만으로 쓰는 것보다 소통하면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참 좋아요. 사람들은 작가 한 사람이 드라마를 좌지우지하는 거라고 오해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작가가 뭐 대단한 권력이라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작가는 그냥 글 쓰는 사람이에요. 수많은 파트 중에서 글을 맡은 사람. 드라마는 공동 작업이고, 누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가 없어요. 모두가 있어야 만들 수 있고, 드라마 작가의 기본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공동 작업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작업이 참 재미있어요.

글이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글은 안 풀리는 게 당연해요. 술술 써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잖아요. 예전에는 글이 안 풀리면 안절부절 못하고,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 괴롭히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냥 울어요. 그러다가 작업실 청소를 하고 빨래도 하고, 그러다 한 3~4일 기다리다 보면 글이 풀려요.

안 풀리면 정말 힘들죠. 이 작품을 영원히 완성시키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고, 온갖 절망과 비관적인 생각들이 떠올라요. 그런데, 한 10년 정도 글을 쓰다 보니까 여유 비슷한 게 생겨요. 이번에도(<그들이 사는 세상>) 글이 안 써져서 울고 있는데 또 다른 내가 말해요. ‘지난 번에도 못한다고 그랬지만 결국 다 썼잖아. 너 이러는 거 버릇이야.’ 그러면 마음을 추스르고 몸을 좀 움직이고, 샤워하고, 뭐가 잘못됐는지 살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어쨌든 방법을 찾아요.

예전에는 글 쓸 때 예민해져서 엄마가 설거지 하는 소리도 거슬려서 화를 냈죠. 짜증을 내니까 엄마가 정말 마음 아픈 얼굴로 “내가 시켜서 글을 쓰는 거라면 너는 날 죽였겠다. 너 좋아서 하는 일도 그렇게 생색이 나고 원망스럽냐.”고 말씀하셨어요. 글이 안 써져서 짜증이 나더라도 이 말이 생각나면 마음이 가라앉아요. 요즘은 글 쓰는 것으로 주변 사람에게 스트레스는 안 줘요.


책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랑은 어떤 걸까요?

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랑을 해야 해요. 그러려면 가장 먼저 자기를 사랑해야 하는데, 이게 제일 힘들어요. 그 방법을 아는 데 평생 걸릴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죠.

『향연』에 보면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수많은 정의를 내리죠.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질문해요. “도대체 사랑을 왜 하는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죠.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행복하려고 사랑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저는 이 말이 참 좋아요. 이 뒤에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말도 참 멋진데, 그건 직접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향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저도 젊었을 때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랑을 어떻게 내 삶에서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하죠. 관념적인 측면에서 실천적인 측면으로 변했어요. 나를 사랑하는 것도 그래요.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나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를 고민하죠. ‘행복해지려고 나를 사랑하는 건데,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해질까? 글을 잘 쓰고 싶어. 그럼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자기 관리를 잘 해야 되고, 내 글을 분석해야 하고, 인간을 관찰해야 할 것 같아. 그럼 그렇게 해 보자.’ 그러다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생각하고.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짚고, 더 괜찮은 방법을 찾아가죠.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어리석을 수 있고, 사람이니까 자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시에 사람이니까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를 돌아보고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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