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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가장 ‘색채로운’ 피해자가 될게요 (G. 김진주 작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89회)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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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이유는 범죄 피해자분들을 위해서였어요.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있는 문제이다 보니까 결국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2024.04.18)


어떤 사건은 떠도는 공기처럼 세계에 남아 반복적으로 회자된다. 2022년 5월 22일, 30대 남성이 오피스텔 복도에서 20대 여성을 돌려차기로 쓰러트리고 폭행했다. 범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부산 돌려차기 사건’으로 기억했다. 이후 2023년 9월 21일, 대법원은 가해자에게 징역 20년형을 확정했다.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사건 발생 이후, 약 500일이 흐르는 동안 여성들은 집에서, 길거리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목숨을 잃거나 잃을 뻔했다.

(중략) 그때마다 우리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다시 만났다. 미디어와 정치권은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이 사건을 재차 화두에 올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피해자였다. 방송국과 국회, 정부 부처, 유튜브를 오가며 모든 창구를 활용해 이 사건을 반복해서 알렸다. 2023년 11월, 나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를 만났다.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의 조력자이자 작가가 된 김진주를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재차 꺼내야만 하는 이유를 물었다.


김진주 작가의 책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김진주 작가 편>

오늘은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라는 제목으로 책을 쓴 저자를 모셨습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 그리고 범죄피해자 연대 활동가 김진주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어서오세요.

김진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황정은: 일단은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김진주: 저는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라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쓴 김진주 작가라고 합니다. 지금 사건이 지난 지 거의 2년이 다 됐고요. 그 사이에 범죄피해자들에게 어떤 게 필요할까 생각했을 때 뉴스의 공론화보다는 범죄피해자가 어떤 불편한 경험을 하는지 서술하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됐습니다.

황정은: 책이 나오고 나서 한 달 정도 지났잖아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김진주: 정말 바빴는데요. 범죄피해자라고 하면 갈수록 잊히거나 사건과 멀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어떤 분들은 그 말에 대해서 조금 안 좋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많은 분들에게 잊히지 않는다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더 좋은 신호라고 생각을 하고. 어제 북토크 일정을 갔다 와서, 사실 북토크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들이 범죄피해자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너무 알고 싶어서 북토크를 진행하게 됐고, 그렇게 오프라인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황정은: 북토크는 어제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고, 이제 안 하시는 건가요?

김진주: 그렇죠.

황정은: 그동안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을 계속 만나오지 않으셨습니까? 낯선 이들과 계속 대화를 해 오신 거잖아요. 그리고 어제는 북토크 자리에 가셨단 말이죠. (김진주 작가님은) 얼굴을 공개를 안 하시잖아요. 그런데 어제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김진주: 가면을 쓰고.

황정은: 가면을 쓰셨군요.

김진주: 가면을 쓰면 조금 가린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숨긴다는 의미가 들 것 같아서, 그런 분들이 있어요. ‘왜 피해자가 숨어요?’라고 하는데, 사실 그거에 대한 이유는 있지만, 좀 화려하게 꾸몄다는 느낌을 주자고 생각해서 가면도 정말 화려한 가면을 쓰고 화이트 드레스와 화이트 망토와 면사포를 쓰고 (웃음) 한 명의 신부인 것처럼 가서, 많은 분들이 처음에 등장했을 때 굉장히 많이 웃으시더라고요.

황정은: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웃음)

김진주: 그런 반응을 더 원했던 것 같아요. 제가 위축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런 표현을 하는데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있다’ 하면서 어떤 한 사람의 유형을 또 보여준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되게 좋았던 경험인 것 같아요.

황정은: 네, 공감해요. 공감하는데, 그렇게까지 화려할 필요가… (웃음)

김진주: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 된다, 저는 이런 가치관이 있어가지고. 사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약간 주춤하시거나, 출판사 담당자 분들도 많이 당황을 하셨는데,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그리고 책 표지를 만드신 디자이너 분도 표지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신 문구가 ‘나는 법정에서 가장 색채로운 사람이었다’라고 하셨거든요. 그 표현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이런 표지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런 걸 표현하려면 이만큼 정도가 돼야겠다’ 생각했고, 정말 오랫동안 한 달 정도를 쇼핑을 하고 직구를 해서 준비한 건데 많은 분들이 웃어주셔서 되게 좋았습니다.


황정은: 책을 만든 과정을 듣고 싶은데요. 얼룩소의 에디터이자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인 원은지 에디터가 추천사를 쓰기도 하셨더라고요. ‘(김진주 작가님이) 출간 제안을 받고 금방 1초 만에 수락을 하셨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원은지 에디터가 출간 제안을 했나요?

김진주: 얼룩소라는 굉장히 질이 좋은 콘텐츠가 있는 플랫폼이 있는데요. 처음에 그 플랫폼에서 제안이 왔어요. 독자들이 어떤 질문을 하면 무조건 답해주는 콘텐츠가 있다, 한번 참여해 보시겠냐. 그런데 이것조차도 범죄피해자 분이 원은지 에디터님의 지인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범죄피해자 분이 매칭을 해주신 거죠. 그래서 그 콘텐츠를 하고 나니까 얼룩소 플랫폼에서 출간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얼룩소에서 출판 프로젝트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제가 첫 타자인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부담감도 심했는데, 얼룩소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담는 플랫폼이라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고. 제가 딱 그 시점에 ‘피해자들한테 정말 불합리한 상황들이 많은데 이건 뉴스에 거의 안 담기지 않았나?’라고 생각이 드는 시점이었는데 그런 제안을 해주셔서 ‘좋습니다’ 하고 바로 수락을 하고, 뭔가 운명처럼 되게 빨리 진행이 됐어요.

황정은: (작가님은) 미디어를 공부하셨잖아요. 최근 영상이나 음성 미디어보다 (책은) 속도나 영향력이 느린 미디어 아닙니까? 출간 제안을 받고 어떤 점이 좋으셨어요?

김진주: ‘피해자다움’이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제가 밝은 모습을 보여도 편집되거나 아니면 ‘이런 게 불합리해요’라고 해도 온전히 잘 잡히지가 않더라고요. 기자님들이 원하는 방향이 있고 그런 소스들이 있다 보니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게 어쩔 수 없이 빠지는 상황들이 있는데, 진짜 기필코 담고 싶은 것은 책으로밖에 못 전하겠다는 결론이 났던 거죠. 그래서 책을 선택하게 됐던 거죠.


황정은: 제가 읽기에 대단히 솔직한 생각을 담은 책이거든요. 일부러 그러신 것 같아요.

김진주: 네, 일부러 담았어요.

황정은: 그럼에도 힘들다거나 우울하다거나 이런 감정을 말하는 부분은 여전히 많지가 않거든요. 그보다는 가해자와 제도를 향한 분노가 담겨 있고, 문제들을 짚는 시선이 담겼고, 그리고 3심에 이르는 과정에서 힘이 됐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인 것 같아요. 책의 서두와 말미에 이 책의 목적지를 짚으셨더라고요. 물론 다양한 목적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목적지라고 할까요, 가해자를 짚으셨어요. 저는 책의 마지막에 실린 ‘회복 편지’를 읽고 나서야 ‘김진주 저자가 이 책을 쓰는 내내 그 사람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됐거든요. 이 작업이 세상에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쓰는 과정에서도 김진주 작가님에게는 외롭고 무서운 일이기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떠셨나요?

김진주: 처음부터 끝까지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던 건 ‘도대체 이 피해자가 왜 나한테 이랬을까를 조금이라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반성을 하지 않아도 되고 교화가 되지 않아도 되는데 조금이라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은 (사건을) 공론화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내가 이런 범죄를 당했다는 걸 남한테 알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게 피해자인데 제삼자에게 이걸 알린다고 해서 뭘 얻을 수 있을까요? 그 사람(가해자)이 형량을 받는다고 해서 그 이후에 제가 안전할 거란 보장은 어디 있는 걸까요? 그래서 ‘내가 이런 표현을 하고 이렇게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가해자가) 이해는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라는 그런 메시지를 담았는데. 사실 지금도 보복 (범죄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고, 그렇다 보니까 원래는 제일 처음에 주고 싶었는데 증언에 영향을 줄 수가 있어서 보복 재판 이후에 줄 예정입니다.

황정은: ‘면회를 가려고 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말려서 이 책을 대신 보낸다’는 이야기를 쓰셨잖아요. (책을) 아직 안 보내셨군요.

김진주: 저는 면회를 너무 가고 싶었던 게, 당연히 이 사건은 저한테 너무 슬프고 너무 힘들죠. 그렇다 보니까 재판장에서는 조금 위축돼 있거나 우울한 모습들이 보이는데, 마치 그런 모습이 가해자를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는 느낌으로 자신이(가해자가) 생각하고 있을까 봐, 저는 가해자가 무서운 게 아니라 제 죽음이 무서운 건데 그거에 대해서 오해할까 봐, 더 당당하게 면회 가서 ‘난 네가 무서운 게 아니야. 내 죽음이 무서운 거야’ 이런 표현을 하고 싶었는데 다들 말리셔서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했을 때 출간 제안을 받고 ‘이것도 되게 좋은 메시지가 되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아무래도 계속 제가 안전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거죠.

황정은: ‘뉴스에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피해자로서의 이야기를 낱낱이 적었다’라고 쓰셨잖아요. 그 말 그대로 사건이 일어난 2022년 5월 22일 새벽 이후에 500여 일의 시간을 글로 기록하셨어요. 어려운 작업이었겠지만 또 개운한 면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말씀하셨다시피 방송은 편집의 권한이 전적으로 남에게 있잖아요. 그래서 아쉬운 면도 있고 부족한 면도 있겠지만 지면은 그보다 좀 덜합니다. 아무래도 내가 주도권을 가진 미디어라서. 그래서 ‘내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좀 위안이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어땠습니까?

김진주: 진짜 그렇게 위안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 그냥 어떤 뉴스만 보고 그 가해자의 형량을 보면 ‘왜 저렇게 피해자가 유난을 떨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그런 댓글을 실제로 보기도 했는데요. 사실 이 책을 보다 보면 다들 약간 벅차 하실 정도로 ‘뭐 이렇게 많은 고난을 겪으셨지? 이런 시련을 겪으셨지?’ 할 정도로 많은 사건이나 한계점에 부딪혔는데, 그런 것들을 보실 수 있는 매개체가 되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사실 피해자라는 위치 자체가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경찰에게 대놓고 어떤 얘기를 하지 못해요. 내가 재판을 받는데 미움까지 받으면 이거에 대해서 좀 안 좋게 생각하고 더 안 봐줄까 봐, 그래서 어떻게 보면 애걸복걸하다시피 그 사람한테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는데, (책을 쓰면서) 그런 걸 탈피하는 순간이었지 않나 싶어서 되게 개운하더라고요.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사실 판사에 대해서 국가 배상을 하는 분들 많이 못 봤잖아요. 그런 거에 대한 가려움을 많이 긁은 책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많은 피해자 분들이 대리 사이다를 느끼시고 조금 개운해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황정은: 맞아요. 그리고 약간의 유머도 구사를 하시고… 이게 웃음이 나올 상황은 아닌데… (웃음)

김진주: 제가 ‘되게 재밌는 책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다들 조금 난해한 표정을 지으세요. 한 사람의 피해 경험이 담겼다 보니까. 그런데 사실 제가 이렇게 유머러스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을 이렇게까지 오래 끌고 올 수 있었을까 싶어요. 감정 전환이 빠르고 이렇게 빨리 버릴 줄 알아야 회복이 조금 빠르고 이런 시련도 빨리빨리 넘길 수 있는데, 이것조차도 저를 표현하는 거고 그런 걸 너무 담고 싶었어요. 심각한 이야기를 담다가도 갑자기 피식 웃게 되는 그런 표현을 넣고 싶었어요. 그게 딱 저인 것 같아서.


황정은: 이 책에 실린 글을 쓰는 동안에 어떤 믿음이 있었는지도 듣고 싶은데요. 1심 2심 3심 과정에서 작가님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세세하게 책에 기록해 두셨잖아요.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확신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듣고 싶어요.

김진주: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범죄피해자 분들을 위해서고, 그리고 어떻게 보면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있는 문제이다 보니까 이게 결국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정말 범죄피해자만을 위해서 썼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가장 위로를 많이 받았고. 지금도 다른 독자 분들이 ‘살아주셔서 감사하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데 모든 과정에서 ‘정말 나는 복이 넘치는 사람이다, 운이 너무 좋은 사람이다’라고 느끼는 시간들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 ‘진짜 살아있길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요새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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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김진주 저
얼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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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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