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서 바다가 되는 힘, 『해녀들 : seaseters』

『해녀들 : seasters』 채헌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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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 : seasters』는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이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핍박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당장 먹고 사는 일에만 골몰하던 해녀들이, 당장의 어려움을 헤치고 다 함께 잘 사는 삶을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2023.08.04)


제10회 네오픽션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채헌 작가의 『해녀들 : seasters』가 예스 오리지널에서 매주 연재하는 것을 시작으로 곧 종이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해녀들 : seasters』는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이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핍박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당장 먹고 사는 일에만 골몰하던 해녀들이, 당장의 어려움을 헤치고 다 함께 잘 사는 삶을 고민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놀랍도록 생생한 제주어와 심사위원들이 극찬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해녀들 : seasters』로 자음과모음의 장르 문학 브랜드 네오픽션의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첫 책을 내시게 된 소감은 어떠신가요?

당연히도, 정말 기쁩니다. 발표 당시 여행 중이라 수상 소식을 며칠 후에야 접했는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고요한 환희와 행복감이 따뜻한 물처럼, 천천히 차올랐던 기억이 납니다. 평화롭고 충만한 감각이 너무 좋아서 오롯이 혼자서, 충분히 만끽한 후에야 가족,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했어요. 뛸듯이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이들을 보며 제가 이렇게 담담해지기까지 그간의 시간이 필요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온 마음을 쏟아 글을 쓰는 것이고 나머지는 글이 알아 흘러갈 일임을, 그리하여 한 편의 글을 마친 후 제가 해야 할 일은 다음의 글을 쓰는 것뿐임을 깨닫는 데 그렇게나 시간이 걸린 거예요.

생생한 제주어가 인상적입니다. 제주도와 관련된 소설이니 제주어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쓰시는 것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제주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다행히도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한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제주어 사전이나 자료 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단어와 관용 표현, 어미 등을 정리해 저만의 사전을 만들고, 제주어로 제작된 유튜브를 틈틈이 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래도 제주어 네이티브(!)는 아니다 보니 턱없이 부족했죠. 그래서 퇴고 단계에서 사단법인 제주어연구소에 도움을 청했어요. 무작정 전화를 걸어 구구절절 설명하며 제주어 대사를 봐주십사 간청했어요. 그런데 잠시 고민하시더니 흔쾌히 수락을 해주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전화를 받은 분이 제주어연구소의 강영봉 소장님이셨어요. 의미 있는 작업 같으니 도와주겠다고, 원고 분량이 많아 연구원들에게 맡기기는 미안하고 대신 본인이 직접 매일 일정 분량씩 작업을 해주시겠다고요. 부탁을 드려놓고도 감사하고 또 죄송해서 고맙다는 인사만 몇 번을 드렸는지 몰라요.

제주도 하면 사실 4·3 사건을 제일 많이 떠올릴 텐데요. 그래서인지 '제주 해녀 항일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생소하면서도 인상 깊습니다. 제주 해녀 항일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몇 해 전 우연히 제주해녀박물관에 들렀어요. 입구에 해녀들의 쉼터인 불턱과 해녀들을 재현한 대형 디오라마가 있었는데 뭐랄까, 생의 결정적 장면과 맞닥뜨린 기분이었달까요. 이들이 크게 웃고 말하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앞에서 그려지는 듯했어요. 해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지도 모르면서,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써야 한다, 써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였어요. 이어지는 전시를 보며 제주 해녀 항일 운동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전국 최초, 최대 규모의 여성 항일 운동이라는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 부끄러움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꼈죠. 자연스레 제주 해녀 항일 운동을 주요 사건으로 삼게 되었고, 항일 운동을 이끈 해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답니다.

'서복'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마치 실제 인물처럼 입체적이고 성격도 개성 있어서 재밌더라고요. 이렇게 다양한 인물을 소설 속에서 다루기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인물을 구상할 때 최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그려요. 인물들의 연표를 만들고 그의 성격과 취향, 취미, 장점과 단점, 인생의 주요 사건 등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 면들까지 상상해 보는 걸 좋아해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그려보는 동안 인물들은 자신만의 색과 양감을 가지게 되고 분명 허구지만 제 세계 안에서만큼은 또렷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자리 잡아요. 저는 이 과정을 인물들과 친해지는 시간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에요.

『해녀들 : seasters』의 인물들 역시 그랬어요. 실제 친구를 사귈 때처럼 가만가만 다가가며 느리게 친해지다 보면 끝내는 그들을(악인이든 비중이 적은 인물이든 무관하게요) 모두 사랑하게 되는데 그 사랑이 지나쳐 어려울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요. 그렇다고 인물들의 일대기를 줄줄 읊을 수는 없으니, 이 사람에 대해선 어디에서 어느 만큼을 어떻게 보여줄까를 많이 고민해요.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인물들이 마음껏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사랑이 과하면 독이 된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합니다.



소설 속 인물 중에서 작가님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시는 인물이 있을까요? 반대로 '나는 절대 이렇게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은 대답하기 어려운데요. 이야기 속 인물들은(역시 악인이든 비중이 적은 인물이든요) 모두 저에게서 비롯된, 저의 부분들이라서요. 다만 닮고 싶은('되고 싶은'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려나요) 인물은 있어요. 바로 '대상군 두실'이요. 언제나 꿋꿋한 심지를 가지고 책임은 제 몫으로 돌리고, 해녀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잖아요. 저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은데, 같은 이유에서 두실처럼은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겁이 많은 데다 서툴고 어리석은 사람이거든요. 저는 저 자신을 그만큼은 알고요. 그래도 두실이라는 인물을 계속 마음에 두고 그리며 노력하다 보면 생의 끝 무렵에선 조금쯤 닮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해녀들 : seasters』를 통해 독자들이 꼭 느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은' 사람들의 힘. 그게 모이면 파도가 되고 바다가 된다는 것이요. 사람은 태어난 이상 누구도 작을 수 없거든요. 작다고 '여겨질' 뿐이죠. 세상의 편견과 아집 따위 알 바 없이 더 많은 '작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대고 말하고 생각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온전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러고 싶고요. 『해녀들 : seasters』가 저 자신을 비롯해 오늘도 분투하고 있는 '작은' 분들께 보내는 응원이자 격려가 된다면 작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겠습니다.

공모전 수상을 시작으로, 앞으로 작가님께서 어떤 글을 쓰시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으신가요?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가능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써보는 게 제 꿈이자 목표예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지, 장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서 습작기 동안 쓴 작품들만 보아도 중구난방 각양각색이에요. 이런 제가 언제 무슨 이야기와 어떻게 마주치게 될지, 그래서 어떻게 뻗어나가 어디에 가닿을지 저도 사뭇 궁금하고 기대가 됩니다.

질문과는 조금 동떨어질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드리고 싶은데요. 앞서 질문에서 언급하셨던 4·3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쓸 생각이에요. 너무 큰 사건이고 엄청난 공부와 내공이 필요할 작업이라 당장은 엄두도 안 나지만 언젠가 꼭 쓰려고 해요. 그게 언제가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그때까지 즐겁게, 느리지만 꾸준하게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채헌 

왜 나무늘보나 팬더로 태어나지 않았는지 의아한. 이왕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최대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려 한다. 주로 먹고 자고 읽고 쓴다. 8년간의 습작기를 지나는 동안 여섯 편의 장편과 네 편의 단편을 완성했다. 그중 네 번째 장편인 『해녀들: seasters』로 2022 자음과모음 네오픽션 공모전 우수상을 받았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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