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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을 아십니까? (G. 이기병 의료인류학자)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34회) 『연결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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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록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고통의 일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거나 적으나마 해석의 여지를 늘려주기를 소망한다"고 말하는, 책 『연결된 고통』을 출간하신 이기병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3.03.30)


진단 및 치료의 알고리즘은 의학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다. 물론 알고리즘이 정교할수록 진단 및 치료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도나 속도, 효과와 효율이 강조될수록 인간의 삶이 '질병 코드'로 암호화되면서 고통이나 증상을 통해 아픈 몸이 말하고자 했던 목소리가 검열, 절삭되어 결국 일개 디지털 부호로 납작해진다는 사실은 은폐된다. 이렇게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다 담기지 않는 아픈 몸의 이야기, 즉 질환 서사 속에는 가난, 노동, 성차별, 구조적 폭력이나 사회적 고통 등의 문제가 거의 언제나 상존한다. 의학이 환자의 질환 서사를 제외한 채 깔끔하게 통제되고 압축된 정보로 재단된 몸만을 다룬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서 상당한 부분을 스스로 소외시키는 것 아닐까. 그것은 의학의 무능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내과 전문의의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 작가님의 책 『연결된 고통』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2011년부터 3년간, 이기병 작가님은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진료를 봅니다. 지금은 사라진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라는 곳에서 작가님은 몇 개의 '질병 코드'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개인의 서사와 그를 둘러싼 문화가 만들어 낸 고유한 질병들을 마주하는데요. '풀리지 않는 숙제' 같았던 그곳의 이야기는 작가님을 인류학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 작가님을 모시고 경계에 서서 경계에 선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이기병 편>

오은 : 제목처럼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결되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결된 고통』은 작가님의 공중보건의 시절을 다루고 있죠. 그때가 2011년이잖아요. 올해가 2023년이니까 12년의 시간 차이가 있는데요. 그때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필요했을 테고요. 그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톺아보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 같아요. 책을 출간하면서 어떤 고민이나 망설임 그리고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기병 : 책을 소개할 때 '긴 후회의 기록'이라고 말하거든요. 처음에는 엄두가 잘 나지 않더라고요. 말씀하셨듯이 언어화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후에 제가 인류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해석 같은 게 모두 필요했고요. 그러던 중에 아는 후배가 한 잡지에 글을 기고해달라고 부탁을 해왔어요. 그 글을 편집자님께서 보시고 연락을 주셨죠. 편집자님이 글을 써보자는 얘기를 안 하셨다면 아마 시작을 안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용기와 어떤 대답이 좀 필요했어요. 질문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게 맞을까, 제게 다녀갔던 환자 분들이 이걸 원할까, 그들을 또 한 번 대상화 하는 건 아닐까, 같은 질문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 질문이 낡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형철 작가의 말 대로 '낡았다는 것은 극복되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이것을 극복되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했고요. 누구에게나 마이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할 때가 필요할 것 같다는 자각으로 바꿔서 이 질문들을 넘어가게 됐습니다.

오은 : 어쩌면 이 시기가 의사로서의 작가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 시기를 거치면서 내면에 격심한 변화를 겪게 되고, 인류학 공부를 시작하시기도 했잖아요. 

이기병 : 네, 군대 대신 공중보건의로 우연히 도착한 근무처가 저한테는 인지의 충격을 유발하는 장소, 다른 세상이었던 거죠. 의대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을 마치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생각했고, 주어진 길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앞으로 그냥 쭉 가기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저한테 하나의 질문이 주어졌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것도 센 질문 말이에요.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기술이나 능력, 그리고 세계관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질문이었고, 이 질문에 출구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어느 순간 그래도 답을 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외노의원의 위치가 가리봉동이었어요. 환자 분들은 약 10개국에서 모인 분들이지만 60% 이상은 조선족 환자 분들이 많았어요. 처음에 그 의원에 가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조선족 환자 분들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는지 일반적으로 물으면 여러 군데가 아프다고 말씀을 한다는 거였어요. 중간에 끊어야 될 정도로 말씀을 계속하셨죠. 명확하게 어느 한 군데를 얘기하지 않으면서 두루뭉술하게 여러 군데가 아프다고 하니까 이상하더라요. 어느 한 분만 그런 게 아니고 오시는 분들이 하나같이 그랬으니까요. 

그때 우연치 않게 저한테 인류학의 세계를 처음 열어주었던 친구가 인류학 연구를 하고자 저희 병원에 찾아왔고요. 저는 뭣도 모르고 그 친구랑 밥 먹고 얘기하다가 제가 이런 고민이 있다고 얘기하니까, 그 친구가 건네줬던 게 '아서 클라인만'이라고 하는 인류학자이면서 정신과 의사의 논문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이분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제가 무지했다는 걸 느꼈고요. 그러고 나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류학을 공부하게 됐어요. 

오은 : 이기병 작가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교수.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졸업 후 세브란스에서 내과 수련을 받고 늦깎이로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의학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감염내과 전임의를 수료했다. '고통받는 것만 실재'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편이다. 또한 인간과 비인간,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등 분리될 수 없으나 분리된 것들의 경계, 의학과 사회과학 등 기반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것들의 경계를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이 있다." 앞서 인류학을 어떻게 공부하게 됐는지까지는 들었는데요. 박사 과정은 또 다른 분야네요. 의학교육학을 선택하신 이유는 뭔가요?

이기병 : 의학은 총체적으로 교육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의학교육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인류학을 공부하고 나서 임상 의사로 다시 돌아간 상황인데요. 대학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어요. 근데 아직 우리나라의 의대생들한테는 다양한 분야가 충분히 소개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어요. 더 많은 지점에서 의사들이 해야 할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꼈고요. 그들이 여러 감수성을 가지는 만큼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제 경험이나 이력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어쩌면 의사를 교육하는 일에 제 경험을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대학원에 박사 과정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오은 : 책 『연결된 고통』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이기병 :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제가 근무했던 외노의원에서 어떻게 울고 웃으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그러는 와중에도 감사했는지, 제 환자들이 저라는 부족한 의사를 만나서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복기하면서 그동안은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던 영역에 대해 인류학의 언어와 그간 쌓였던 의학적 경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복원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이나 국적 등을 얼마간 각색했지만, 실제 환자 분들이 했던 이야기들이기에 현장 증언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재현이라고 하죠. 당시의 상황을 재현을 통해 반성적 사고를 해보고자 했어요. 또, 임박한 다문화 시대에 고통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또 고통 곁에서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사소한 위로와 힌트가 되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이기병 : 고통의 곁에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케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돌봄'이라는 뜻인데요. 의사인 저자가 자신의 아내가 치매 환자가 되면서 느꼈던 돌봄의 여러 차원을 명확하고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돌봄'이라는 구조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입니다. 한 권 더 말씀을 드리면 『아프면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인데요. 이 책은 고통이라고 하는 차원의 층위가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아프게 되면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지,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봐야만 알 수 있는 세계가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함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기병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교수.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졸업 후 세브란스에서 내과 수련을 받고 늦깎이로 서울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의학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는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감염내과 전임의를 수료했으며, AI 패혈증 예측 스타트업 기업 AITRICS에서 의료 자문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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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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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병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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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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