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봄이 좋아서, 봄이 싫어서 고른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32회) 『팟캐스트를 듣다가』, 『고마운 마음』, 『슬픔의 방문』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3.03.16)
불현듯(오은) : 이번 주제는 '봄이 좋아서, 봄이 싫어서 고른 책'입니다.
캘리 : 저는 동지부터 봄을 기다린 사람이라 봄이 오는 것이 점점 좋은데요. 마냥 봄을 즐거워하기에는 그럴 수 없는 소식들이 너무 많아서 이 주제를 생각해 봤습니다.
서한볕 저 | 포동프레스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 분들은 한 번쯤 이 책의 제목이나 표지를 어디선가 보셨을 것 같은데요. 서한볕 작가님께서 이 책에 <책읽아웃> 이야기가 나온다고 저희에게 책을 보내주셨습니다. 부담 없이 그냥 읽어달라고 메일을 주셨는데요. 그래서 감사히 받았고, 책이 정말 좋아서 소개를 하고 싶었어요. 모든 에세이가 진심을 담은 것이지만, 이 책은 정말 깊은 진심이 드러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작가님은 '팟캐스트'라는 매체를 워낙 좋아하셔서 하루의 오랜 시간 팟캐스트를 듣는 분이세요. 팬심도 되게 많은 분인데요. 댓글을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는 약간 샤이한 팬이시죠. 좋아하는 작가의 강연에 꽃다발을 들고 가지만, 그걸 직접 전해주기는 쑥스러워서 행사 관계자에게 전달해 달라고 말하는 캐릭터거든요.
제가 예전부터 갖고 있는 확신이 있는데요. 책을 팔든 소개하든 쓰든, 사람에 대한 원초적인 애정이나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 좋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소비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이 결국 성공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 '성공'이라는 게 세상이 얘기하는 물질적인 성공은 아닌데요. 정말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막 다정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시니컬해 보이지만 작품 속을 읽어보면 사람에 대한 연민이나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들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이 쓰는 콘텐츠를 좋아해요. 그리고 이 책을 읽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작가님의 프로그램을 향한 애정도 그렇고, 진행자에 대한 애정이 어쩜 이렇게 각별할 수 있을까 싶어 부럽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은 <책읽아웃>에 대해 짧고 굵게 "<책읽아웃> 같은 도서 팟캐스트에 출연한 작가들은 1대 1 북토크에 버금가는 작품 해제를 내놓는데 꼭 정갈한 강연집을 읽는 기분이다"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사실 편집자 분들이 저희 방송을 들으면서 새로운 저자를 물색하기도 하고, 청탁서를 보내기도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거든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저희 <책읽아웃>이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아마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은 한두 개 팟캐스트에는 분명히 영업 당하지 않을까 싶고요.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팟캐스트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연결이 되거든요. 진짜 작가님이 무척 궁금해졌고요. 만약 옆자리에 있었으면 진짜 손 한 번 잡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델핀 드 비강 저 / 윤석헌 역 | 레모출판사
지난 시간에 소개한 책이 이주혜 작가님의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잖아요. 그때 말씀드렸듯이 책의 2부에 작가님께서 소개한 책에 아주 많은 영업을 당했는데요. 그 중 하나가 이 책이었어요.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이주혜 작가님의 이 문장이 있었습니다.
소설 속 언어 치료사 제롬의 말처럼 어린 시절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무조건 현재의 나를 집어삼키고 심연으로 가라앉지만도 않는다. 행운처럼 이 상처를 향해 손 내미는 사람이 존재한다.
나아지지 않는 상처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동시에 그 상처가 언제나 나를 지배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부분을 짚어주는 문장이었고요. 작가님이 그런 문장을 쓰게 한 소설이라 바로 읽었습니다.
이 책은 두 분도 굉장히 좋아할 것 같아요. 불현듯 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은 포인트는 언어 부분이에요. 이 책에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미쉬카, 마리, 그리고 제롬 중 중심에 있는 사람은 미쉬카예요. 그는 혼자 생활하기가 불가능해져서 요양병원에서 살게 된 여성인데요. 아주 지적인 여성인데 안타깝게도 언어를 잃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은 미쉬카가 언어를 잘못 말하거나 어눌하게 발음하는 부분을 그냥 아무 설명 없이 그대로 적거든요. 예를 들면 "얘, 그런 말 꺼내지도 마라"를 "그런 말 꺼리지도 마라"로 번역을 하는 거죠. 독자가 이 인물의 상황을 되게 적극적으로 읽어내야 되는 거예요. 문맥도 읽어야 하고요. 그것도 애정을 가지고 읽어야 되는데 거기에서 발견되는 빛남이 있더라고요.
프랑소와 엄 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은 부분은 마리와 제롬이라는 인물의 모습입니다. 마리는 어린 시절에 옆집에 사는 미쉬카 아줌마의 도움을 받아서 위기에 놓인 어린 시절을 무사히 통과해 온 미쉬카의 이웃이자 친구예요. 보호자의 보호를 못 받고 거의 혼자 살던 어린 마리에게 그때 옆집의 미쉬카가 "무슨 일 있으면 우리 집 와도 돼"라고 하면서 기꺼이 돌봄을 감당한 거죠. 한편으로 제롬은 언어 치료사인데요. 주말마다 미쉬카의 언어 치료를 돕는 사람이에요. 이 두 인물이 미쉬카를 향해 보여주는 깊은 진심의 마음과 미쉬카가 보여주는 지혜로움 이런 것들이 이주혜 작가님 표현으로 돌아가자면 '순환하는 돌봄'인 거예요.
어떤 독자라도 사로잡을 만한 멋진 대화들이 많이 등장해요. 다시 떠올려도 뭉클한 대화들이라 말에 상처 입은 분들이나 말에 위로 받고 싶은 분들에게도 정말 좋을 소설일 것 같습니다. 200쪽이 안 되는 분량이니까요. 봄날에 편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읽으시기 좋을 것 같아요.
장일호 저 | 낮은산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최근 근황을 소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열흘 전부터 <시사인> 정기 구독을 다시 시작했어요. 지금 소개할 작가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요. 이 책을 쓰신 장일호 작가님은 시사인 기자시거든요. 작가님 소개글부터 읽어드릴게요.
시사인 기자. 야망은 크지만 천성이 게을러 스스로를 자주 미워한다. 망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망해버리고 싶지는 않다. 묻어가는 일에 능하고 드러나는 일에 수줍은 사람. 이토록 귀찮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책 읽고 산다.
작년에 제가 비비언 고닉의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라는 에세이를 소개한 적이 있잖아요. 그 책을 읽었을 때만큼 좋았던 기억이에요. 물론 비비언 고익이 연출하는 상황은 한국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낯섦'에서 오는 '기분 좋음'도 있었지만요. 장일호 작가님이 묘사하는 한국의 상황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많아서 좋았던 것 같고요. 두 책의 공통점은 두 작가님 모두 할 말을 끝까지 하고,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 용감함이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가까운 문장 기호는 마침표일 거예요. 기사 마지막에 마침표를 딱 찍고 '이렇게 되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잖아요.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침표가 아니라 느낌표나 물음표가 생겨나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요. 뭔가 하나의 눈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만이 감각할 수 있는 대목들이 참으로 많았어요. 어쩌면 그런 시선 덕분에 거침없고 솔직하지만 사려 깊음을 잃지 않는 글들을 쓰시는 게 아닌가 싶고요.
작가님에게 생을 흔들거나 포기할 만한 상황들이 쭉 있어왔는데요. 그것 때문에 울부짖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작가님을 붙들어준 것이 다름 아닌 책이었습니다. 책이 장일호 작가님의 장래 희망을 결정해 주기도 해요. 개브리얼 제빈이 쓴 『비바, 제인』을 읽고 장일호 작가님은 이렇게 쓰십니다.
장래 희망도 생겼다. 모건 부인처럼 같이 망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실패하고 실수해야 잘하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된다고, 두렵다면 함께 망해주겠다고, 그러니 우리 더는 조심하지 말자고 손 내밀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나이 먹는다면 뒤에 오는 여성들에게 지금보다는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옛날 일들을 써왔지만 미래 지향적인 책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힘들 때마다, 그리고 희망이 사라질 때마다 이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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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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