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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최진석 교수 인터뷰

행동하는 철학자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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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요. 주문은 분명히 효험이 있죠.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어디에나 자신을 위해 마련된 높은 자리가 있답니다. (2023.01.27)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신간이 나왔어요! 축하드립니다. 이번 책은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교수님 개인의 내밀한 경험들이 담겨 있어서 무척 재밌게 읽었는데요. 새로운 결의 책을 집필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평소에 개인적인 삶의 기억들이나 자극들이랄지 충격들을 부분 부분 써놓았었어요. 철학은 추상적으로 높은 사유잖아요? 대개는 철학을 '높은 사유'라고 하지만, '두꺼운 사유'라고도 표현할 수 있죠. 왜냐하면 아주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특수한 경험들이나 문제들이 보편적으로 승화되는 게 철학이거든요. 승화된 사유의 결과가 철학이 아니라, 그 저층의 출발선에서 승화의 결과까지 이르는 두꺼운 활동성이 철학이에요. 이렇게 보면, 자신만의 특수한 문제와 그것이 승화된 보편적 사유 사이의 두께가 철학입니다. 어렸을 때 내가 받은 어떤 충격, 진동, 문제, 이런 것들이 저층에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죠.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동네(나라)가 가난하다는 사실, 그다음 하나는 나도 죽는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나한테는 지금까지 나를 만들어낸 두 개의 부싯돌이었어요. 그것들과 지금의 내가 하는 철학적 사유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높은 수준으로 생각하고 싶다면, 높은 수준의 삶을 살고 싶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구체적이고 특수한 생각들이 보편화되는 것이 사유의 성숙이지, 누군가 해 놓은 보편화한 사유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사유는 아니거든요. 나는 완전 시골 촌놈이잖아요?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캠퍼스가 온통 데모하는 분위기였어요. 근데 가끔 그 분위기에서 빠져나와 남몰래 명동에 있는 클래식 음악 감상실로 숨어들곤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고, 잘 들리지도 않은 음악을 들으러 다니면서 내내 내가 허위의식에 싸인 것은 아닌지, 도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대학 오기 전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는 촌놈이 괜히 겉멋 부리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러면서도 음악 감상실을 계속 다니는 내가 나한테도 낯설고 이상했죠. 혼란한 시국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 나를 내가 나한테 분명히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군대를 갔다 와서는 음악을 열심히 듣는 일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가 40대 후반 정도에 와서야 음악이라는 것이 인간으로 성숙해가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어요. 음악적 감동이 없는 철학적 사유는 뼈다귀로만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안 거지요. 그래서 나는 일삼아서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했죠. 결국은 <노자와 베토벤>이라는 음악회도 하게 되고요.

그러면 대학교 때 클래식 음악을 듣는 내가 설명은 되지 않지만, 이상하게 끌려서 갔던 음악 감상실의 경험이 연결되어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구체적인 무언가로 나타났네요? 구슬을 꿰어 목걸이로 만들듯이요.

내 인생 전체로 보면 하나로 꿰어진 건데, 이렇게 꿰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허위의식 아닌가, 도피 아닌가 하는 불편한 마음들을 견디면서도 거기에 갔던 기억들, 그게 사실은 '나'라는 거죠. 어렸을 때의 어떤 기억들, 어떤 씨앗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하찮더라도 자기가 했던 것들이 결국은 자기일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나는 우리 동네(나라)가 너무 가난한 걸 보고 우리 동네(나라)를 부자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도 어린 나이에 내가 허풍쟁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내 생각의 기초가 되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책에서 큰누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인 척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던 게 떠올라요. 나는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한, 인위적인 행동을 하신 거네요.

그렇죠. 이번 책에는 내 속살이 일부 드러나 있어요. 굉장히 내밀한 이야기까지도 쓴 이유는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 오래 기억되는 그런 경험들이 주는 어떤 자극들로 인간은 성숙해지는 것 같아서예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무 모양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내가 가졌던 문제들을 놓지 않고 붙들고 있으면서 사유나 삶이 더 넓어지고 더 높아진다는 것을 나한테 말해놓고 싶었던 거죠. 글을 통해서.

그러면 독자들이 교수님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읽음으로써 어땠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으세요?

그런 기대보다는 나한테 얘기하는 느낌이 더 강해요. 『탁월한 사유의 시선』부터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은 기대하는 기분이 조금씩 들기 시작해요.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생각을 읽으신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시겠습니까?" 질문하는 거죠. 나는 이제 우리가 좀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주도권을 가진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삶을 다 함께 한번 살아봅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시다', 그런 의도가 있어요. 누구든지 다 꿈이 있었을 텐데, 그 꿈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지 묻고 싶어요. 어렸을 때 해결하고 싶은 문제도 있었잖아요? 그 문제, 그 꿈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나한테도, 독자에게도 질문을 해보는 거죠.



이 책은 '내가 다시 나를 찾은 날'로 이야기가 시작돼요. 열여섯 살 무렵부터 외우기 시작해서 삶의 여러 순간에 읊조리던 유치환의 「생명의 서」가 교수님께 말을 건네죠. '또다시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기 시작하라.' 교수님은 당신의 회갑 날, 그 일을 감행하셨고 신비한 일이 일어나요. 그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내가 태어난 장병도를 방문할 때가 내가 교수를 그만두고 4년이 지났을 때예요. 교수직을 그만두는 것을 결정할 때도 저는 알았죠. 잘 산다는 것은 나 개인만 행복해지는 것도 있지만, 나의 행복이 공동체의 행복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걸 말이죠. 그래서 나는 내가 철학적인 높이의 사유를 할 수 있는 것도 가치가 있지만,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어떤 모습이 되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 돼야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뭔가 좀 더 넓고 좀 더 힘찬 움직임이 있어야 하겠죠. 

그렇다면 이건 큰 변화란 말이죠. 변화에 대한 자기 확신, 정당성 이런 걸 자기한테 설명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 계기를 회갑 날로 정했던 거죠. 회갑이라는 게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새로운 바퀴를 다시 돌기 시작하는 날이잖아요? 새로 다시 돌 때는 내가 어떤 변화된 상태에서 돌아야 한다, 그 변화된 상태라는 것은 자기에게 좀 더 진중한 확신이 서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그런 계기를 마련한 거예요. 어떤 분들은 그런 확신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도 잘하지만, 나는 나한테 확약하는 의식을 치르고 싶었어요. 나를 신으로 모시고 나한테 확약하는 것이 가장 진실하겠다 싶어서 '태' 자리를 찾아가 거기다가 절을 세 번 하고 온 거예요. 매우 인위적이지만, 나한테 하는 나만의 의식이었어요.

그러면 혼자 가실 수도 있는데 왜 제자 둘을 데리고 가셨어요?

내가 나하고 약속을 하는데, 나 혼자만 하면 내가 안 지킬 수도 있잖아요.(웃음) 그래서 증인으로 함께 갔죠. 그 제자들은 또 나와 끝까지 함께해줄 것 같았고요... 이런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고도 잘하는 것이 최고겠죠. 근데 나는 그 정도가 아니에요. 이렇게 해야만 잘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이런 인위적인 일을 한 거죠.

인간은 인간이라서 인위적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나에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일 자체가 인위적인 일이잖아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그렇죠. 저도 저 스스로 부여한 의미를 더 견고하게 하려고 인위적인 의식을 행한 거죠. 

그렇죠. 그 의식을 통해서 이제 난 이렇게 살 거다, 내가 나에게 선포하고 남은 인생에서 행하는 것만 남은 거죠. 무척 특별하고 신비한 경험이에요! 할머니가 교수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진절이 아닌가?" 묻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았어요. 마치 교수님이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서요.

그때는 저도 많이 신기하더라고요. 우리 아버지가 나를 인도하시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거기다 태를 묻으신 것도 특별한데, 그 사실을 알고 계시는 분이 거기 계시기도 하고 말이죠. 다시 한 번 더 가고 싶어요.

그때 저도 데려가 주세요!(웃음)



교수님 활동량이 무척 많으시잖아요. 2022년만 해도 책이 2권이나 나왔고, 전국을 오가며 강연도 하시고, 함평 나비꿈집(호접몽가)에서 기본학교 운영도 하시고, <노자와 베토벤>이라는 세상에 없던 음악회도 꾸준히 하고 계시고요. 이 모든 걸 할 수 있도록 교수님을 추동하는 힘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소명 혹은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것 같아요.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강하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명감이 있거든요. 내가 일하는 양이 다른 사람 눈에는 좀 많아 보이기 때문에 지치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시는데, 사명감이 있고 소명이 있으면 쉽게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하신 말씀이 책에 나오는 '내가 별이 되어 나로 빛나라'는 구절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자기한테 분명하면 돼요. 그것이 자기한테 아주 분명히 설명되기만 하면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기의 삶을 밀고 나갈 수 있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면 안 할 수가 없거든요. 계속 생각하다 보면 거기에 맞는 방법이 찾아지니까 창의적인 일을 하게 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한테 설명하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다가 자기한테 스스로 감동하는 일, 이것이 자기가 별처럼 사는 일이죠.

교수님, 제가 강력하게 원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자기 삶을 수용하고 자기를 사랑하도록 돕길 원해요. 그러려면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 힘을 기를 수 있는 도구로 독서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해서 '꿈퍼즐쇼'를 만들었어요.

저는 특히 '자립 준비 청년'에게 마음이 가요. 24살 한 청년이 목숨을 끊었어요. 그가 남긴 글에 '내 삶은 왜 이런지 이해가 되지 않아 살고 싶지 않다'고 씌어 있었어요. 그러니까 자기 세계가 자기 언어로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죽고 싶은 거예요. 저는 이 절박한 마음을 알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교수님 말씀대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한테 분명히 설명하려면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려면 지적인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야 한다, 그 훈련은 읽기와 쓰기로 가능하다고 여기는 거예요.

그렇죠. 읽고 쓰는 일 자체가 표현이잖아요.

맞아요. 읽기만 하면 저자의 생각을 습득하는 것에서 끝나지만, 아까 교수님 말씀처럼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래?'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을 쓰는 일까지가 독서의 완성이라고 봐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독서량은 상당히 적고, 이 실태는 시민의식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캐나다에 처음 갔을 때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어요. 저는 횡단보도에 있었고 차가 저 멀리서 오고 있었어요. 그래서 차가 먼저 가겠지 싶어 저는 기다렸죠. 그런데 차가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와서 딱 서는 거예요. 제가 횡단보도를 다 건널 때까지 정지해 있더라고요. 너무 놀랐었어요. 우리나라는 지금도 차가 먼저 가는데 말이죠. 왜 이게 잘 안될까요? 

제도적인 규정이나 강제력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생각하는 능력, 의식의 단련 정도와 더 깊이 관계된다고 봐요.

네. 책에 보면 '시민의 핵심은 역사에 대한 책임성'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매우 공감해요. 우리가 얼마 전에 기본학교 동지들과 설산에 올랐잖아요. 그때 제가 선발대로 있었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길에 발자국을 내면서 「답설」이란 시가 떠올랐어요.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된다는 생각에 '함부로 걷지 않는 게 이렇게나 힘든 거구나, 힘들어도 애쓰는 노력이 바로 역사적 책임성이구나'를 몸으로 배웠어요.

눈 덮인 길을 함부로 밟던 사람으로부터 눈 덮인 길을 함부로 밟지 않는 사람으로의 변화, 이게 바로 백성에서 시민으로 바뀌는 거거든요. 생각하는 백성이 시민이고, 생각 없는 시민은 백성이죠. 생각이 없으면 함부로 밟고, 생각이 있으면 함부로 밟지 않죠. 그런데 생각하는 일에는 반드시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에요. 수고가 들어가는 일은 단련하지 않으면 하기가 쉽지 않죠.

나는 백성과 시민의 차이를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로 봐요. 진영에 갇히면 사람이 생각하지 않게 되죠. 진영이 지배하는 지금 정치는 시민 정치가 아니거든요. 생각하지 않는 정치란 말이죠. 진영에 갇힌 정치를 하면, 비효율이 쌓이고,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죠. 생각하지 않으면 나 편한 것만 쫓게 됩니다.

저는 이 문장이 좋았어요. '그것을 우리는 시민의식이라 하지만, 사실은 인간으로서의 성스러움을 지키려는 태도다'(73쪽) 교수님이 <노자와 베토벤> 음악회에서 말씀하신 '매너'와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매너란 내 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른 사람까지 편하게 해주게 된 것이라 하셨잖아요. 이게 왜 잘 안되는 걸까요? 

왜 잘 안 되냐면 그것이 힘들기 때문이죠. 힘든 일이에요. 생각하지 않는 것은 수고가 안 들어가요. 그러면 힘들지 않죠. 그냥 정해진 대로 습관대로 자기 편의에만 따라서 하는 것은 생각하는 수고가 들어갈 필요도 없어요. 눈길을 함부로 밟기는 쉽죠. 함부로 밟지 않으려면 자기를 절제해야 하고 방향을 바꿔야 하는 등의 생각하는 수고가 많이 들어가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잘 안되죠. 제대로 사는 일은 이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에요. 생각하는 일은 인간으로서 부여받은 성스러운 능력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잘 안되는군요. 근데 교육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요?

당연히 그렇죠. 교육을 통해서 많은 수고를 줄여주는 거죠.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내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내가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는 거죠. 그러면 힘들어도 의미를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 힘든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교육되지 않으면, 힘든 것 그대로 다가오기니까 힘들어서 안 하게 되는 거죠.

저는 아까 얘기한 차가 사람을 보고 정지하는 게 캐나다 사람들이 생각을 수고롭게 해서 행동하는 것처럼 안 보였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이 보이면 일단정지'를 교육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이미 문화가 된 거죠. 생각을 해야만 내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걸 넘어서 버린 거예요. 문화는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연대가 있어야 가능하잖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새로운 세력'도 각성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기본학교를 세워 교육에 헌신하시는 거 아니세요?

헌신이라기보다는 이게 내가 나로 사는 한 방식이에요. 시민의식의 성장이랄지,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모든 일에서 교육이 가장 중요하죠. 교육은 효과가 크니까. 동물을 사랑하는 거나, 자연을 보호하는 거나 하는 것이 모두 타고난 본능에 따라서 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알게 되어야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교육을 통해서 연대의 끈이 마련되는 것이죠.



저는 책에서 '고요의 간이역'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렀어요. 뭔가 여운이 계속 남더라고요. 제가 고요의 힘을 믿기 때문인 것 같아요. 고요는 정적과는 다르게 운동성을 가지잖아요. '고요는 구체적인 동작들이 교차하는 지점'이라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요. 최근 교수님이 경험한 고요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얼마 전에 기본학교 동지 두 명과 등산을 했어요. 5시 50분에 출발해서 같이 갔는데 산을 오르고 내린 3시간 동안 서로 한마디가 없었죠. 근데 그게 하나도 안 불편했어요. 우리 셋 사이에 있는 신뢰나 이해가 소리 없는 말로도 충분했던 것 같아요. 한마디 말이 없이도 교감으로 충만했던 그날이 생각나네요. 하산해서야 모두 아무 말이 없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죠.

새로운 차원의 공감처럼 들려요. 이런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학교에서 '등산이 꽃이다' 할 정도로 체력을 강조하시는 걸까요?

나는 교육을 통해 변화를 기대해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지식보다는 오히려 몸, 공감, 연대 의식, 감동, 이런 데서 더 잘 오는 것 같아요. 지-덕-체가 아니라, 체-덕-지예요.

맞아요. 그리고 힘든 걸 같이 하면서 생기는 동지애요.

그래요. 그 동지애를 경험한 영혼하고 동지애를 경험하지 못한 영혼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도 차이가 나죠. 지식을 소화하는 게 매우 달라져요.



교수님은 '행동하는 철학자'라는 애칭이 있으신데요. 철학이 현실 세계, 즉 구체적인 세계와 접촉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에 영향을 준 분이 있으세요?

초등학교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선생님들과 자연과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어요. 철학사에 나오는 모든 철학자들이 다 구체적인 세계와 접촉하여 철학적 사유를 길러낸 사람들이죠. 구체적인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출발하지 않은 철학자는 없어요. 철학자는 원래 아는 것과 실천을 일치시키는 사람이죠. '행동하는 철학자'라는 애칭이 사실은 없어져야죠. 행동하지 않은 철학자라면, 철학자는 고사하고, 넓은 의미에서 지식인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교수님께서는 정년을 7년 앞두고 자발적으로 교수직을 내려놓았고, 이후 건명원을 세워 초대 원장을 맡으셨고, 지금은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으로 계시는데요. 기본학교 다음은 무엇인가요?

제가 저의 사명이나 소명으로 받들고 있는 문제 하나는 우리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에요. 아 두 가지가 사실은 하나의 문제죠. 그래서 함평의 호접몽가를 중심으로 하여, 일대를 우리나라 최초로 '생각이 시작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 '황당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요.

황당도서관! 무척 기대돼요. 저는 공간이 주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다 여겨요. 그래서 교회나 절에 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기본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가장 행복했던 게 영적 고향이 생겼다는 거예요. 교수님께도 그런 곳이 있으세요?

나는 그것이 나 같아요. 나 자신이 공간이고, 시간이죠. 궁극의 단계로 내려가서 말한다면, 나의 영적 공간은 나 자신이에요. 좀 재수 없게 들리죠?(웃음)

아! 그래서 교수님이 체력을 중요하게 여기시는구나. '내 몸이 거룩한 성전'이라는 성경 말씀도 떠오르네요. 내 몸을 영적 고향이자 영적 자양분을 쌓는 에너지체로 보니까 체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으시고요.



끝으로,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경제 불황을 겪으며 혹독한 계절을 지나고 있는 이웃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나는 혹독하지 않고 어렵지 않던 시절이 언제 있었나 싶어요. 신문만 봐도, 세상은 항상 곧 종말을 맞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인간은 패배하도록 태어나지 않았어요. 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를 패배자로 남기지 않을 수 있는가를 궁리하면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반응하는 것이 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죠.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한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내일은 멋진 날이 되겠구나."

인생을 아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요. 주문은 분명히 효험이 있죠.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어디에나 자신을 위해 마련된 높은 자리가 있답니다.


<마치면서...>

돌아오는 길 내내 한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래?"

책으로 기부 문화를 만들어 시민의식을 끌어올리자고 행동한 지 4년 차다. 수익을 창출하지 못해 존폐의 위험에 시달리는 시기다. 그간 고생했으니 2023년은 쉼표로 삼자던 내 생각을 들킨 것 같았다. 부끄러움을 찬 공기에 씻고자 장장 3시간을 걸어 집에 왔다. 이후 나는 새해 열쇳말을 '파괴'로 정했다. 첫걸음으로 평소라면 하지 않을 과격한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괴성을 지르며 뛰다 네발로 기어 온다. 이 얼마나 인위적인 일인가. 나의 몸부림은 더 인간답게 살고자 수고를 마다 않는 사람들과의 약속이다. 교수님이 비춰준 내 펄떡이는 심장이 원하는 일이다.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 교수, 사단 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이다. 건명원(建明苑) 초대 원장을 지냈다. 1959년,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곁의 작은 섬 장병도에서 태어나 함평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儒家)보다는 도가(道家) 책을 읽을 때 더 영감이 떠오르고 짜릿하다.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최진석 저
북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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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꿈퍼즐쇼 대표 박상희(인터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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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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