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리 "중독은 자기 파괴적이지만 자기 위로적이기도"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도우리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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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는 '프로 중독러'인 도우리가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여 써낸 생생한 중독기이자 참신한 사회 비평서이다. (2022.12.20)

도우리 저자

만성 번아웃의 시대. 오늘은 정말 책상에 앉으려 했는데, 오늘도 퇴근 후 씻지도 않은 채 방바닥에 앉아있다. 밀린 카톡에 답장을 하거나 무언가에 감명받을 기력은 없지만, 인스타그램이나 오늘의집, 월간사주 앱를 들여다보는 핸드폰 위 손가락은 바쁘다. 제대로 된 문화 생활은 언제 할지 한탄하던 우리는 문득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가만, 무언가에 중독된 이 삶 자체가 우리의 문화인 것은 아닐까?'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는 '프로 중독러'인 도우리가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여 써낸 생생한 중독기이자 참신한 사회 비평서이다. 21세기 필수템이 되어버린 9가지 문화 트렌드 — 갓생, 배민맛, 방꾸미기, 랜선 사수, 중고 거래, 안읽씹, 사주 풀이, 데이트 앱, #좋아요 — 를 각각 분석한다. 저자는 환상적 욕망을 좇는 가난한 도시의 청년들에게 달콤한 선택지가 되어주는 중독 문화를 입체적으로 논하며, 오늘날 청년이 중독에 기대어 성실하게 엉망인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혼란한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첫 단독 저서를 펴내신 소감이 어떤지, 또 책 출간 전후로 달라진 부분이 있을지 여쭤봅니다.

출간 후에 "이제 작가가 되었네"라는 말을 꽤 들었어요. 그 중엔 제가 오래 글을 써 온걸 아는 사람도 있었고요. 저는 제가 온라인에 글을 싣게 된 때부터 줄곧 작가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다만, 크게 체감하는 건 글에 대한 의미 있는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주로 온라인 공간에 글을 싣다 보니 받을 수 있는 피드백은 대체로 댓글뿐이었거든요. 아시다시피 온라인상의 댓글 반응이란... 그런데 책의 독자들은 제 글을 공들여 읽고, 장점이나 비판점 그리고 책의 의의까지 두루 봐 주시더라고요. 그게 오히려 낯설었어요. 동시에 제가 이런 독자들의 반응을 오래 기다려왔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런 반응을 더 구체적으로, 더 많이 알고 싶어요.

통상적으로 '중독'은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히는데, 작가님께서 '중독'이라는 렌즈로 문화를 바라보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어떻게 문화 속에서 '중독'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셨나요?

'중독'에 얽힌 그 부정적인 힘을 적극적으로 써 보고 싶었어요. 보통 이야기되는 문화는 미술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패션이든, 고상하거나 새롭고 멋진 것들이잖아요. 물론, 그런 것들을 알아가고 향유하는 안목을 키우는 건 중요해요. 하지만 그것도 돈이든 시간이든 집안 환경이든 다 자원이 받쳐줘야 하잖아요. 저처럼 그런 자원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식의 문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중독'이 그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적합한, 다층적인 면을 품고 있더라고요. 중독은 자기 파괴적이지만 자기 위로적이기도 하니까요. 또, 끊을 결심을 한다고 해서 끊어지는 게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잠깐 즐길 거리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심각한 문제이고, 같이 중독되었더라도 잣대가 달라지고... 비슷하게 이 의미들을 담을 언어로 처음에는 '도취'를 구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중독이 더 낫지 않나요? 훨씬 정치적이니까요.

책에는 작가님께서 직접 경험하신 9가지 '중독 문화'가 분석되는데요. 어떤 기준으로 문화 요소를 추리셨나요?

책의 프롤로그에도 언급했지만, 주제를 처음부터 정하기보다 저 그리고 저와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이 연루된 것들을 우선 발견해내고 나중에 9가지로 추려낸 건데요. 그래서 이 책의 토대인 <한겨레21>의 문화 중독기 칼럼으로는 썼지만 책에는 담지 않은 주제들이 있어요. 백수 브이로그, 카카오 캐릭터, 치명 플레이리스트 등인데요. 책의 단위로 엮을 '우리' 이야기로는 확장성이 떨어진다고 봤어요.

특히, 저는 이 문화들이 청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문화 트렌드'라고 하면 보통 젊은 세대의 현상이고, 그래서 신기하다거나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을 주잖아요. 그게 그 트렌드에 속하지 않은 청년에게도, 그리고 그 세대에 속하지 않은 다른 세대에게도 단절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트렌드 역시 우리 사회 전체가 크든 작든 촘촘히 연루된 문제라는 걸, 이 9가지 중독 문화라면 이야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서평에 청년 세대 독자가 아닌데도 공감이 간다거나, 공감이 가지 않아도 즐거이 읽으셨다는 분들이 꽤 보여서 반가웠어요.

그럼 혹시 그 9가지 문화를 다루실 때 특히 쓰기 어려웠던 부분이나, 혹은 반대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쓰신 부분이 있었을까요?

단연 '자기 검열'이요. 이제 저는 사람들이 글에서 무엇을 불편해할지 웬만큼 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단어와 문장들이 자꾸 안전한 자리에 쓰이더라고요. 그러면 재미없죠. 이 재미가 흥미 차원도 있지만, 고민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래요. 정치적인 글은 반드시 (혐오가 아닌) 상처를 주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글쓴이부터 취약해질 줄 알아야 하고요. 여기서 취약해진다는 건 솔직한 것과 달라요. 나를 배설하는 게 앞서는 욕망이나, 저와 누군가를 불필요한 위험에 처하는 무모함은 아닌 거죠. 이런 면에서는 욕망을 다룬 세 파트, '사주 풀이·데이트 앱·#좋아요'가 가장 쓰기 어려웠어요. 그 중 특히 쓰기 어려웠던 건 섹슈얼리티를 다룬 '데이트 앱', 반대로 가장 홀가분한 건 위로의 방식을 찾은 '#좋아요'였고요.

책의 에필로그에 '2019년에 한겨레 르포 작가상 수상 이후, 2년간 책을 집필하며 글쓰기 방식을 바꿨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떻게 글쓰기가 변화했는지 궁금합니다.

더 불순해지려 했어요. 『에바 일루즈』에 소개된 미국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의 '불순한 비평(impure critique)' 개념이 큰 길잡이가 되어 주었는데, 일루즈는 전통적인 비평을 순수한 비평(pure critique)이라고 명명하면서, 문제의 제 3자로서 거리두는 입장의 한계에 대해 지적해요. 그 문제의 당사자로서, 그 구조와 부대끼며 쓸 때 오히려 더 첨예한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제 팔에 낀 팔짱을 풀어내고, 중독 문화의 더 적극적인 내부자가 되어봤어요.

그러면서 제도 등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도 내려놓았어요. 물론,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제가 쓰는 글의 주된 역할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주목하게 하고, 사람과 사회가 말하게 하는 것. 그러려면 글이 살아 있어야 하죠. 아무리 뜻이 좋더라도 어렵거나 재미가 없으면 안 읽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처럼 칼럼인데 에세이 같기도 하고, 카톡 대화말이나 커뮤니티 댓글처럼 가벼우면서 학술적이기도 한, 혼종적인 쓰기를 지향하게 됐어요.

무언가에 스스로를 맡기지 않고는 살 수 없어진 오늘날의 '중독 세대'에게, 혹은 중독이 낯선 이들에게 이 책을 통해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중독은 대체로 고립의 경험이잖아요. 숨어서, 혼자 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리뷰에는 "사찰비 내놓으세요"라고 하는 분도 있을 정도로 열렬한 공감을 표현하시더라고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있죠. 이 건조한 문장을 털의 결처럼 구체적인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으로, 체온처럼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으로 되살려 전하고 싶었어요. 중독 문화를 다같이 꺼내놓고 떠들어보면, 무언가 달라질 계기가 생기리라 믿어요.

그리고 출간 후에 중독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문화적 차원에서 이야기했지만, 정신 질환 차원에서도 요즘 주식이나 마약 중독 문제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잖아요. 내가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연루자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관심을 맞대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요목조목 뜯어 보고 싶은 사회의 면면이 있을지 여쭤봅니다.

책의 형태로는 두 가지를 구상 중이에요. 청년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그리고 데이터 라벨링 노동이에요. 역시 제가 당사자로서,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는 기획이에요. 첫 번째 기획에서는 청년들이 호소하는 ADHD라는 질환의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짚고, 다음 기획에서는 '무기력한 노동자'로만 라벨링되는 노동의 현장과 그 의미를 짚어보려 해요. 모두 이 사회가 떠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책이 되도록 쓸 거고요.



*도우리

칼럼니스트. 왼손잡이였다가 오른손잡이로, 도복순으로 불릴 뻔했다가 도우리라는 이름으로, 화학공학과였다가 철학과 전공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계속 쓰는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은 잃어본 적이 없다. 건축물의 기둥을 뜻하는 라틴어 'columna'에서 유래한 칼럼(column)은 장소가 장르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쓰는 이들이 거주하기보다 머물다 갈 뿐인 텍스트-자리에 매료되어 프리랜서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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