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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2022년 바르셀로나 도서전을 가다 (4)

김정하의 스페인 문학 여행 (4) - 스페인에서의 한국 문학과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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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일이 참 많다. 국가의 일이나 개인의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022.12.20)


<채널예스>에서 '김정하 번역가의 스페인 문학 여행'을 연재합니다.


바르셀로나의 Alibri 서점의 동양 문학 코너에 있는 한국 소설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고 외국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알지 못하는 먼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 같다.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공간과는 다른 공간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스페인 작품을 오랫동안 읽고 번역하면서 이런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음을 자주 발견한다. 스페인 작가의 작품이지만, 스페인이 아닌 다른 나라를 무대로 한 작품들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유럽의 나라들로부터 아프리카나 먼 아시아의 나라들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까지 볼 수 있다. 몇 년 전 서울을 무대로 한 청소년 소설을 본 적이 있다. 스페인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주인공이 서울 한복판 고층 빌딩을 보고 놀라는 장면이 기억난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작가의 말을 보면, 많은 경우 여행에서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문학 작품에 대한 관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페인에서도 오랜 시간 많이 소개되어 온 영미권 문학이나 다른 유럽 국가의 문학,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뿐만 아니라 동양의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제 스페인의 서점에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작품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은 130여종에 이른다. 

최근 들어 한국 문학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스페인의 권위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고 출간하고 있다. 

스페인은 같은 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이 풍성하여, 자국어 문학 작품들이 넘쳐나도록 풍부한데, 그런 중에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Si no podemos viajar a la velocidad de la luz』이 2022년 10월에 Planeta 출판 그룹의 가장 대표적인 임프린트인 Temas de hoy 에서 출간되었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Tengo derecho a destruirme』, 김애란의 소설 『달려라, 아비 ¡Corre, papá, corre!』 등 최근의 작품들이 번역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문학 작품의 장르와 성격도 디양해지고 있다.

스페인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권위 있는 출판사라고 할 수 있는 Alianza Editorial에서 황석영의 『심청 Sim Chong, la niña vendida』『바리데기 Bari, la princesa abandonada』『해질 무렵 Todas las cosas de nuestra vida』 등이 출간되었다. Alianza Editorial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황석영의 소설이 세계 고전 문학의  반열에 들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Hiperion 출판사는 한국의 고전 『구운몽 Sueño de nueve nubes』『사씨남정기 La historia de la Señora Sa』와 박지원의 한문 소설, 한국의 고전 시 등을 출간했다.


Pio Serrano와 함께. 마드리드의 쿠바 식당에서

요즘에는 이렇듯 앞 다투어 한국 문학을 출간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 문학이 스페인에 제대로 알려지기 전인 2000년대 초반 스페인의 Verbum 출판사가 한국 문학의 가치와 가능성을 인식하고 한국 문학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Verbum 출판사는 중남미 문학 전문 출판사로 시인이며, 평론가인 Pio E. Serrano 출판인이 1990년 마드리드에 설립한 출판사다. 쿠바의 아바나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교수 생활을 했던 피오 세라노는 쿠바 혁명에 참여했지만, 쿠바에서 나와 1974년부터 스페인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과 출판 활동을 하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과 역사에 관한 강연을 해왔다. 쿠바 혁명에 참여를 했지만, 쿠바에서 나와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어려움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스페인에 정착하게 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과 영화를 통해서만 알았던 역사가 바로 옆에 있는 한 사람의 삶이었다는 사실에 온몸이 떨려왔다.


Pio E. Serrano. 2019 한국문학번역상 공로상 수상

수많은 시집과 수필집을 내고 여러 한국 문학 작품의 공역자이기도 한 피오 세라노는 최근 『간략한 한국 문학사 Breve historia de la literatura coreana』라는 책을 출간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베르붐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문학 작품의 수가 50여종에 이른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피오 세라노는 2012년에 출판사의 일선 경영에서는 물러났지만, 한국 문학 작품의 출간에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2012년부터 베르붐 출판사를 맡아 운영하는 루이스 라파엘 Luis Rafael 역시 쿠바 출신의 시인이며 문학 연구자로 새로운 젊은 감각으로 한국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의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그래픽 노블에도 관심을 가지고 출간을 하고 싶어 한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최근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는 작품 중 손원평의 소설 『아몬드 Almendra』는 출간 즉시 스페인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여러 달 올라 있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스페인 최고의 일간지인 엘 빠이스 El País가 자신들이 지니지 못한 인간에 대한 시선을 가진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스페인어로 『아몬드 Almendra』라는 제목을 치면, 『아몬드 Almendra』는 몇 장으로 구성된 소설인가부터 시작해서 이 소설에 대하 다양한 설명들이 나와 있다.

20여 년 전 한국 문학이 처음 소개되기 시작하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제는 어느 서점에서나 한국 작품을 찾을 수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La vegetariana』는 모든 교양 독자가 읽어야 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은 듯한 느낌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대학 제도내로 편입되어 한국학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다.

마드리드의 콤플루텐세 대학교와 마드리드 자치 대학교, 바르셀로나 자치 대학교, 살라망카 대학교, 말라가 대학교에 한국학과, 혹은 한국어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말라가 대학

말라가 대학의 경우 한국의 서강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말라가 대학교에서 한국학 관련 박사 학위를 받은 Antonio J. Domenech del Rio 교수를 영입하면서 2011년 한국학과의 문을 열었다. 

매년 50여명의 학생이 입학하고 있으며, 현재 200여명의 학부생과 5명의 박사 과정생, 8인의 교수진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의 언어와 문학을 비롯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 등 한국에 관한 다양한 학문을 다루고 있다.

한국학과의 입학 성적이 점점 상향되어 최근에는 세비야 대학의 일본학과나 그라나다 대학의 중국학과보다 높은 성적의 학생들이 들어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주요 세 도시인 세비야, 그라나다, 말라가 대학에서 일본학과, 중국학과, 한국학과를 나누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말라가 대학 도서관 한국학 자료관

말라가 대학교의 한국학과 수업은 번역된 도서를 통해 한국 문학을 이해하며, 매주 4시간으로 이루어진 수업에서 한 작품을 읽고 분석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문학 작품의 심도 있는 이해를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여성 작가 문학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최근 코로나로 교환 학생 프로그램 운영이 중단되어서 내년에 한국에 가려는 학생들 또한 많다고 한다. 

문학 작품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을 직접 경험해보려는 소망이 강한 이곳의 한국학과 학생들은 최근 이태원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통해 직접 접하고 함께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일만큼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다. 실제로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 한국학과 학생들이 모여서 태극기를 놓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국이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고 있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한국을 이해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학생의 열기가 가득하다.


말라가 대학 한국학과 Antonio J. Domenech 교수, Aurelia Martin Casares 교수 등

또한, 말라가 대학교에는 한국에서 교환 학생으로 온 한국의 학생들도 250여명 정도 있다. 이 한국 학생들도 함께 수업에 참여하고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어 양국 학생들 간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아직까지는 스패인을 전공한 한국 전문가가 한국을 전공한 스페인 연구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지만, 여기 말라가 대학교 한국학과를 보면 머지않아 두 나라의 전공자, 연구자의 규모와 질이 균형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이번에 스페인에 와서 몇 달을 지내면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생각이 정말로 많이 달라졌고, 한국의 국격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말라가 등에 있는 한국 식당은 예전처럼 한국인들만 찾는 곳이 아니고 수많은 현지인들이 가족과 함께 찾는 특별한 식당이 되었다. 김치와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를 보고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라고 바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놀란다.

세상은 놀라운 일로 가득하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일이 참 많다. 국가의 일이나 개인의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현실은 어렵고 불확실하지만, 온갖 모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화 속의 주인공이 떠날 때와는 다른 단단함을 지닌 인물로 변화되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초록색의 따뜻한 봄이 온다는 단순한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축복이기에 우리의 삶이 놀랍고 경이롭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싶다. 아름다운 성장을 위한 방향성과 기다림이 있다면 모든 것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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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정하(번역가)

번역가. 어렸을 때부터 동화 속 인물들과 세계를 좋아했다.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고 스페인어로 된 어린이책을 읽고 감상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틈이 나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오르간 연주를 한다. 옮긴 책으로 『도서관을 훔친 아이』, 『난민 소년과 수상한 이웃』, 『유령 요리사』, 『빵을 굽고 싶었던 토끼』,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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