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폭염에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책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71회)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2』, 『휘파람 부는 사람』,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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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2.07.07)


불현듯(오은) : 장마철과 여름을 맞아 정해본 오늘 주제, ‘‘폭염에 마시는 ‘아아’ 같은 책”입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2』 

보니 가머스 저 / 심연희 역 | 다산책방 



이 소설은 전도유망한 화학자의 삶을 그린 작품이에요. 화학자라고 하면 거리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첫 장을 읽자마자 그 거리감이 30cm 이내로 들어옵니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남자 동료 과학자와 결혼이 아닌 동거를 선택해요. 그런데 이 반려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다니던 연구실에서 해고를 당하죠. 해고의 이유가 비혼모라는 이유였어요. 

결국, 엘리자베스는 홀로 딸을 키우게 되는데요. 우연한 기회로 <6시 저녁 식사>라는 TV쇼의 진행자가 됩니다. 화학자가 요리 음식을 다루는 독특한 프로그램이었어요. 여기서 인기를 얻으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슈퍼스타가 되는 이야기예요. 읽으며 장류진 작가님 책도 조금 생각이 났거든요. 장류진 작가님 소설이 완전히 깊숙하게 빠져들어서 한 번에 쭉 읽게 되잖아요. 이 책도 그랬어요. 

작가 소개도 꼭 하고 싶어요. 보니 가머스는 올해로 65살이 된 노장이고요. 이 책은 그의 첫 작품이에요. 이 작품이 소설로 출간되기 전에 2020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고 하고요. 원고가 공개된 지 2주 만에 22개국에 번역 판권이 수출됐고, 영국에서는 16개 출판사가 경쟁한 뒤에 데뷔작으로는 사상 최고액인 200만 달러, 한화로 약 25억 원의 계약금을 받고 팔렸다고 합니다. 지금 애플TV에서는 동명의 8부작 드라마로 촬영 중이라고 하고요. 대단하죠. 

읽고 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써봤어요. 

‘잠이 확 달아난다. 소설을 왜 읽어야 하지 질문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 책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작품. 산미가 좋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신 기분.’ 

이 책은 정말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푹 빠져들게 되고요. 개성이 엄청나게 강하고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좋았던, 전개가 아주 빠른 작품이에요. 구구절절 설명을 하지 않고요. 특히, 어떤 장면이 끝날 때 한 문장을 카피라이터처럼 확 정리를 해버리는데요. 그 한 문장 속에 내포되는 결론과 감정들이 굉장히 특별한 작품이었어요.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TV쇼에서 진행을 마치면 꼭 하는 멘트를 소개하겠습니다.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휘파람 부는 사람』 

메리 올리버 저 / 민승남 역 | 마음산책



강아지랑 살면서 메리 올리버의 시집 『개를 위한 노래』를 사랑하게 됐는데요. 그 책은 내 곁에 있는 존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책이에요. 또 다른 시집 『천 개의 아침』은 예전에 <삼천포책방>에서 김하나 작가님이 ‘크리스마스에 선물하면 좋을 책’으로 소개해 주시기도 했고요. 2021년 <월간 채널예스> 10월 호 ‘아이돌 특집’ 때 제가 애정을 최대한 끌어모아 디오 님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꼽기도 했었어요. 그때 쓴 문장이 “메리 올리버라는 세계를 선물하는 것은 선물 받는 사람을 향한 진정한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였거든요. 오늘 다시 그 진정한 사랑 고백을 하는 마음으로 메리 올리버의 또 다른 책 『휘파람 부는 사람』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99년에 출간이 되었어요. 그리고 한국에는 2015년에 출간이 되었는데요. 원제가 ‘Winter Hours’입니다. 주제랑 딱이죠? 이 폭염에 겨울을 잠깐 생각하게 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책인 거죠.(웃음) 이 책에는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이 정말 많아서요. 거의 모든 쪽을 접겠다 싶은 상태로 읽었는데요. 

만약 한 문장만 남긴다고 하면, 물론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137쪽의 문장을 고르고 싶어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희망은 투사이며 소리 지르는 존재다.” 메리 올리버한테 희망은 그냥 막연하게 꿈꾸는 것이나 현실을 회피하는 종류의 수동적인 것이 아니고 고투하고 싸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는 것인 거죠. 이어서 “나는 영혼이 개선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 진정 그렇게 믿는다. 오, 달콤하고 도전적인 희망이여.”라고 썼거든요. 이걸 읽는데 이상하게 눈물을 닦는 느낌이었어요. 

책에는 메리 올리버의 산문이나 평론도 있고요. 시도 같이 구성이 되어 있어서 다양한 리듬감으로 읽을 수 있어요. 중간에 수록된 시들이 그 자체로 환기가 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요. 더운 날, 지치고 무기력하고 우울한 날에 이 책을 꺼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이 숲을 수천 번은 걸었다. 숲 속이 다른 어느 곳보다 심지어 우리 집보다 더 편안했다. 숲의 세 개로 풀과 오솔길로 발을 들이면 늘 안도감 같은 게 밀려들었다.(중략) 나무들은 나의 존재를 그리고 나의 기분을 알아보고 반응했다. 나무들은 조용한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건 갑작스러운 기온의 변화, 따스하고 편안한 감정의 고조 같은 것으로 희미하긴 하지만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나무들을 향해 걷고 나무들에서 뻗어 나온 가지 아래를 지나며 그걸 느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 

김효은 글·그림 | 문학동네



주제를 정하고, 이번에는 그림책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실제로 뭔가 잘 안 풀리고, 삶의 흥미가 떨어지고, 글쓰기에 도무지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 그림책을 보거든요. 그러면 다시 쓰고 싶고, 표현하고 싶고,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더라고요. 폭염에 아아도 그런 역할이잖아요. 때문에 최근 읽은 그림책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고 그 중 한 권을 가지고 왔어요. 사실 처음에 가지고 오려던 책은 이명애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고 황인찬 시인님이 글을 쓰신 『내가 예쁘다고?』라는 책이었어요. 그런데 약간 따뜻한 아메리카노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굉장히 좋으니까 꼭 읽어보셨으면 해요. 

이 책은 김효은 작가님의 새 그림책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귀여웠어요. 소다수를 마시는 느낌이도 있었는데요. 다 읽고 나면 뭔가 묵직한 것이 잡히는 게 느껴져요. 두 번째 읽으니까 시원한 것이 들어온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그림책에는 다섯 명의 아이가 등장하는데요. 5라는 숫자가 음식이든 물건이든 나누기 참 어려운 숫자더라고요. 실제로 김효은 작가님이 오 남매의 둘째였다고 하고요. 둘째는 막내로서 사랑을 받은 기간도 있었겠죠. 또, 동생들이 생긴 뒤에는 그들에게 사랑을 주기도 하면서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한 위치가 둘째가 아닐까 싶은데요. 작가님이 어릴 때 기억들을 반추해가면서 우리가 어떤 음식을 앞에 두었을 때나 어떤 물건을 선물 받았을 때 어떻게 나누었는지를 생각하며 그림책을 집필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첫 번째로 김효은 작가님을 접한 게 『나는 지하철입니다』라는 엄청난 그림책이었어요. 그 작품은 번역되어서 외국에서 상도 많이 받으시고 언급도 많이 됐던 그림책이잖아요. 이후 7년 만에 책이 나왔는데 ‘나’에서 ‘우리’로 간 거예요. 그것도 아주 인상적인 부분이었어요. 책 뒷부분에 작가의 말이 등장하는데요.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사람 수로 음식을 나눠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뭐든지 나눠야 했던 어린 시절에 생긴 오래된 습관입니다.(중략) 오늘도 나누지 못하고 흘려보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모양도 맛도 제각각인 이야기들을 책에 담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다 못하겠지만, 책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이나 관심, 그리고 온기 같은 것들은 나누어도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감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요. 네 번쯤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집중해서 바라보는 부분이 달랐던 것도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는 게 뭐였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그림책이 모종의 실마리를 가져다줄 거라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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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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