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글 속에서 자기 길을 내야 한다”
『나를 가장 나답게』 김유진 저자 인터뷰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그 이야기 속의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에요. 자기 나름대로요.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일이죠. 그래서 한 편, 한 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022.05.04)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 복잡해거나, 정리가 필요할 때 일기를 쓰거나 자신의 마음을 기록해둘 장소를 찾지만, 정작 노트를 피고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많다.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내 마음을 적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나답게 내 마음을 적는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마음을 적어내는 글쓰기를 통해 내면에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 마음을 돌봐주는 법까지 알려준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로 '말'로 상처받는 독자들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준 김유진 작가의 신작 『나를 가장 나답게』가 출간됐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를 쓰신 후에 수백 번의 강연을 하시면서 느낀 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특별히 강의를 하시면서 작가님이 『나를 가장 나답게』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다른 강의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글쓰기 강의는 강사 혼자 이끌지 못해요. 반 이상은 강의에 참여한 부분들이 채워주시지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 강의가 다른 강의보다 덜 긴장돼요. “이분들이 채워주시겠지.” 하고 믿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강의에 임하다 보니 수강생 분들의 이야기 듣는 것에 비중을 더 두고, 거기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글쓰기의 진짜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출판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책’이라는 물성에 갇혀 생각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삶의 글쓰기 현장에서 그런 생각이 많이 깨지죠. 그래서 그분들 이야기를 담아보자 생각하게 된 거예요. 사실 저는 『나를 가장 나답게』에서 전달자 역할이에요. 그동안 제가 만난 작가들과 수강생 분들이 다 채워준 책입니다. 너무 감사하죠.
글쓰기는 세상에서 만들어놓은 정의를 넘어 나만의 정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요?
이 질문에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은 글쓰기를 ‘잘’ 하고 싶어해요. 그럴 때 “글 속에서 자기 길을 내야 한다.”고 말씀드려요. 예를 들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생각은 쉽잖아요. 그런데 이게 진짜 자기 생각이 되려면 저 문장 외에 수많은 문장(생각)이 뒷받침되어야 하거든요.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요. 그걸 해보는 게 글쓰기입니다.
물론 글쓰기가 만능은 아닙니다. 다만 글쓰기를 하면 적어도, 컴컴한 자기 미로 속을 헤매 보는 시간은 확보할 수 있어요. 저 끝에 보일락 말락 하는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 보는 거예요. 길이 순탄하진 않아요. 구불구불 험하고요, 언덕과 비탈길도 번갈아 나와요. 그러나 그 길을 따라가다가 희미한 불빛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뒤를 딱 돌아보면 조그맣게 자기 길이 나 있어요. 이런 자기만의 오솔길을 내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마음을 울린 글은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강연을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을텐데, 그 중에서 작가님의 마음을 울렸던 수강생과 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너무 많은데요. 강의 때 울었던 일이 생각나요. 한 여성 분이었어요. 10주 강의였는데 6주까지 글을 한 번도 못 쓰시는 거예요. 강의는 안 빠지고 열심히 들으시는데 글쓰기를 못하고 있어서 저도 마음을 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분이 병든 남편을 보살피고 계셨어요. 그 힘든 상황에서 글쓰기 강의를 들으며 한 줄이라도 쓰려고 한 거예요. 기회가 되어 그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 이후에 글을 한 편 써오셨어요. 생명에 관한 시였는데, 너무 처연하고 아름다워서 제가 그 자리에서 울었어요. 책에 시를 싣지 못했지만 그분과 나눈 대화가 『나를 가장 나답게』에 들어 있어요.
전작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에서는 말, 신간 『나를 가장 나답게』에서는 글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누구에게나 할 말이 많은 주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의 주제는 ‘언어로 하는 자기표현’인 것 같아요. 혹시 말과 글 말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7-8년 전부터 '음식', '식재료', '먹기'에 대한 에피소드를 모아놓은 게 있어요. 도시에 살던 제가 시골로 시집 가서 보니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좀 많았어요. 배운 것도 많고요. 그 속에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공동체나 연대 이야기도 좀 있고요. 음식과 공동체는 결국 같은 이야기더라고요. 그때마다 메모를 해놓았는데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음, 그리고 나중에 ‘우정(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깊이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와 『나를 가장 나답게』 모두 저의 부족함이나 열등감에서 시작된 글이 많았는데요, 음식이나 우정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잘 몰라서, 어려워서, 알고 싶어서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작은 성취감을 계속 쌓으면서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님만의 루틴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또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저는 글을 매일 꾸준히 쓰지는 못해요. 직업이 책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남의 글을 읽고 다듬는 일에 더 시간을 쓸 수밖에 없어요. 대신 매일 메모를 하고, 사진이나 캡쳐, 링크를 저장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쓰고 싶은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쓰고 싶은 주제라고 하면 좀 무거우니까 ‘꽂혀 있는 주제’라고 할게요. 자기 주제가 있으면 루틴은 자연히 생깁니다. 루틴대신 자기 주제를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찾으면 글을 지속적으로 쓸 확률이 올라가요. 다른 사람의 루틴을 따라가지 말고 자기만의 루틴을 창조하는 것이 지속적인 글쓰기의 원동력입니다.
불안이나 억울함, 예민함 등 나쁜 감정이 쌓여있을 때 글쓰기를 하면서 치유를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작가님께서 가장 쏟아내고 싶었을 때와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던 때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나쁜 감정을 글로 표현해보는 방법이 있을까요?
『나를 가장 나답게』에도 정리해 놓았는데요. 나쁜 감정을 쓰는 방법은 세 가지예요. “쏟아내기 → 논리적으로 옹호하기 → 거리 두기.” 예전에 저를 너무 힘들게 하는 상사가 있었는데 출근해서 아침마다 쏟아내는 글쓰기를 했어요. 한마디로 저의 감정 쓰레기통이었죠. 쏟아내기를 장기적으로 하다 보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올라와요. 논리적으로 쓰다 보면 쏟아내기 할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제가 진짜 속상하고 힘들어하는 원인이 보여요. 그러면 이 본질적인 진짜 문제를 가리고 있던 가짜 상처들도 드러나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옹호해보고 돌봐주고 나면 ‘거리 두기’가 조금씩 됩니다. 자기 이야기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글이 장황하지 않고 구체적이며 진정성과 알맹이가 있어요.
자기만의 이야기는 본인만 쓸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 막 내 이야기를 써보려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글쓰기는 완성체가 아닙니다. 나의 글쓰기가 나처럼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내 주제가 00이라고 하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거기부터 생각의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거예요. 글쓰기는 한 계단에서 다음 계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코(각 층계의 끝) 역할을 해요. 그러니 그 계단은 남들과 비교하려야 할 수가 없죠. 각자가 만들 수밖에 없는 계단이에요. 높은 계단도 있고 낮은 계단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 계단의 방향이에요. 꾸준히 길을 내면 그 계단이 그것 하나로만 끝나지 않고 다른 계단으로 연결되거나 또다른 계단이 생기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계단과 만나기도 하고요.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그 이야기 속의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에요. 자기 나름대로요.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일이죠. 그래서 한 편, 한 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김유진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책 만드는 일을 한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여러 형태의 독서 모임을 열면서 독서상담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도서관, 학교, 기관 등에서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만의 이야기와 ‘할 말’을 찾아주는 글쓰기 강의도 하고 있다. 『매일 너에게 반해 ‘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등을 썼다. 남들을 향해 글을 쓰고 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존경과 애정으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며 깨달은 한 문장은 “모두 좋아하는 것을 쓰고 있더라.” 지식을 드러내거나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말과 글을 찾을 때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언어가 태어난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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