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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 영광스러워요 (G. 백희나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27회) 『연이와 버들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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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옆에 겨울에 태어난, 그래서인지 겨울을 좋아하는,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을 출간하신 백희나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2.02.03)


좁은 굴은 좁은 길로 이어지고, 좁은 길 끝에는 작은 돌문이 있었어. 돌문은 너무나 무거웠지.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얼어 죽겠거든. 연이는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그러모아 돌문을 밀었어. 그러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지. 세상에,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분명 바깥은 한겨울인데, 동굴 안은 따스한 봄날이었어.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백희나 작가님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한겨울에 상추를 구해오라는 나이 든 여인의 말에 눈밭을 헤매는 연이는 우연히 찾아간 산 속 깊은 동굴 안에 환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버들도령을 만나죠. 『나는 개다』 이후 3년 만에 백희나 작가님이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연이와 버들도령』은 한겨울에 만난 봄처럼, 외로운 순간에 만난 친구처럼, 어두운 동굴 속으로 쏟아지는 햇살처럼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백희나 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백희나 작가님만의 환상적인 작품 세계를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께 선물 같은 방송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 백희나 편>

오은 : 새 책이 나오면 리뷰를 샅샅이 찾아본다고 들었어요. 출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동안 본 『연이와 버들도령』 리뷰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게 있었나요? 

백희나 : 사실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어요. 창작이 아닌 옛 이야기이기도 해서 기대를 안 했는데 좋아해 주셔서 무척 기뻤어요. 모든 반응이 다 좋았어요. 

오은 : 창작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전해오는 이야기에서 백희나 작가님의 각색이 많이 들어갔다고 저는 느꼈어요. 

백희나 : 이 이야기가 구전동화잖아요. 전해질 때마다 화자에 의해서 첨삭이 분명히 됐을 거예요. 화자가 공감하는 포인트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반영되었겠죠. 저 역시 마찬가지로 화자의 한 명으로서 아무래도 각색이 됐을 텐데요. 그렇지만 저는 원전이 중요했고, 이야기의 뼈대를 흔들고 싶진 않았어요. 안 담고 싶었는데 담길 수밖에 없는 것도 같고요. 

오은 : 2020년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굉장히 큰 상이잖아요. 수상 사실이 작가님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어떤가요?

백희나 : 리뷰를 많이 읽어보는 이유가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에요. 독자의 인정이 사실은 가장 큰 상이죠. 작가들이 양지에 나갈 일이 많지 않잖아요. 어둠 속에서 혼자 작업하고, 끊임없이 거기에 빠져요.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때 독자 분들의 리뷰를 보면 내가 세상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실감을 하는데요. 상을 받았을 때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연이와 버들도령』의 ‘연이’처럼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이 있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훈련이 좀 있었나 봐요. 저는 작가로 데뷔한 뒤에도 그 길이 평탄치 않다 보니 그런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 훈련이 좀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러다 차츰 실감하게 된 게 상금이었어요.(웃음) 작업실을 좀 넓은 데로 옮겼고요. 그동안 못 샀던 장비를 마련하니까 작업이 너무 수월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행복하게 작업을 했죠. 

오은 :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책상 앞에 '계속 똑같이 만들 거라면 아예 할 필요가 없다!'는 문장을 붙여 둔, 그림책 작가.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조용한 어린이였다. 그림과 인형을 유별나게 좋아했고, 어머니가 달력 한 장을 북 뜯어주면 종일 달력 한 가득 빽빽하게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 놀았다. 피아노를 치는데도 악보 위 음표들이 뭐라뭐라 말하며 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집중을 못했던 백희나는 중학교 때까지도 인형놀이를 하며 이런저런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교육공학과에 진학해 여러 동아리활동을 하고, 광고 공부도 해보고, 시청각교육 자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하기도 했지만, 잘 맞지 않았다. 혼자서, 진득하게,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백희나. 그는 그렇게 회사를 관두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마침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래빗』 시리즈에 반했고, 자신이 늘 좋아해 마지않던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유학하던 그 시절에는 상점까지 한참을 걸어가 바비 인형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게 낙이었다. 

2004년 『구름빵』을 발표했고, 이후 7년간 창작하지 못했다. 그래도 작업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서, 부엌 식탁에서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2020년,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아찔한 경이의 세계로 가는 출입문이다."라는 평을 받으며 세계적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다. 작업 시작할 때가 제일 재미있다. 피곤하고 짜증이 나 있다가도 작업을 시작하면 마음이 진정된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마법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이야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미라고 믿는다. 강아지 인형 ‘조나단’은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휴식 메이트. 예민하고 외골수에 고집도 세다.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에 늘 감사한다. 죽는 순간까지 일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마법 같은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소개해드렸는데요. 왠지 백희나 작가님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사람만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 것 같거든요. 

백희나 : 실제로 낙관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언젠가는 멸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인데요. 그래서 더 빛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빛이 귀해서 빛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은 : 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기에 앞서서 『연이와 버들도령』이 어떤 책인지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어떤 책이죠? 

백희나 : 『연이와 버들도령』은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 그림책입니다.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은 : 『나는 개다』 이후 3년 만에 출간된 그림책이에요. 책 뒤편에 참고 문헌이 여럿 적혀 있더라고요. 구비문학 관련된 책들이 꽤 있었는데요. 어떻게 구비문학 가운데 『연이와 버들도령』을 가지고 책을 만들자고 생각을 하셨을까요?  

백희나 : 어렸을 때 읽었던, 추억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그런 옛날 이야기 시리즈를 만들고 싶었어요. 요즘 어린이들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옛날 이야기 시리즈가 있으면 좋겠다, 그걸 내가 만들면 더 좋겠다, 생각했는데요. 그러려면 당연히 우리나라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우리 옛 이야기를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먹고 사는 게 바빠서 그랬는지 화려한 파티 장면이 너무 귀하더라고요. 뭘 마음껏 먹거나 드레스를 몇 벌 구해주거나 하는 장면도 없고요. 그림책의 하이라이트는 파티인데(웃음) 기본적으로 잔치도 많이 없는 거예요. 여자 중심의 이야기가 하고 싶고, 먹는 얘기도 있으면 좋겠고, 화려한 하이라이트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찾아 헤맸고요. 마음 속에 몇 가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연이와 버들도령』이었어요. 

오은 : 연이와 버들도령이 만나는 장면 있잖아요.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인데요. 약간 데칼코마니 같은 느낌이 들어요. 게다가 버들도령이 연이에게 요리도 해주잖아요. 성 역할을 전복시키기도 하면서, 일부러 인물을 닮게 그리신 부분도 있는 것 같았어요. 

백희나 : 해석은 독자의 것이라 제 의도를 정답처럼 알리는 게 조심스럽긴 한데요. 연이가 찾아갔을 때 버들도령이 첫 만남에 밥부터 해주잖아요. 걱정 말고 일단 앉으라고 하고 안에 들어가서 손수 지은 밥을 차려서 줘요. 저한테는 그 장면이 되게 중요하고, 조심스러웠어요. 연이는 어떻게 보면 아랫사람이에요. 나이 든 여인과 살 때도 아랫사람 같고, 버들도령을 만났을 때도 도움을 청하는 입장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또 아랫사람이 되죠. 그래서 연이가 당당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때문에 버들도령이 밥을 차려주는 게 되게 좋았어요. 그런 섬세한 배려, 연이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동시에 연이가 당당해질 수도 있게 하는 상황을 신중하게 작업했어요. 

오은 :  책에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라는 단어가 등장해요. 중요한 요소로 기능을 하는데요. 이것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사람을 구성하는 것이면서 우리 삶을 지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희나 작가님에게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백희나 : 글쎄요, 일단은 취미 생활이겠죠. 반려 인형들과(웃음) 우리집 강아지요. 걔 없이는 못 살겠어요.(웃음)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할게요. 청취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인가요? 

백희나 : 『중쇄를 찍자!』를 추천하고 싶어요. 만화책인데요. 드라마도 있어요. 만화책은 만화책대로, 드라마라는 드라마대로 장르를 잘 살려서 잘 만들었어요. 만화가와 편집자의 고민을 담은 작품이라서 지망생 분들이 봐도 공부가 많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요.




*백희나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육공학을,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그림책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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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와 버들도령
연이와 버들도령
백희나 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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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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