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비거니즘,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해볼까
책읽아웃 - 이혜민의 요즘산책 (224회) / 『고양이와 채소 수프』
이 책은 완벽한 채식, 완벽한 윤리를 요구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실천해가는 의지와 선택의 과정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2022.01.26)
“‘마이크로 비거니즘'이라는 용어가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가능한 범주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집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 고기 국물은 먹고, 집에서는 생선을 먹지 않지만 밖에서는 생선을 먹는 게 무슨 비건이냐고 누군가는 나의 식생활을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나의 마이크로 비거니즘. 세상에 스트레스 받을 거리는 넘치니까 식생활로 너무 자신을 옭아매지 않기로 했다. 비웃어라.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살테니.”
이보람 작가의 『고양이와 채소수프』의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오늘은 올해 여러분의 작심삼일 리스트에 넣어봐도 좋을 단어 하나를 더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슨하게 시도해볼 만한 일, ‘비거니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게요.
안녕하세요? 책읽아웃에서 처음 인사드리는 혜민이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요즘산책'이라는 코너로 만나 뵙게 되었는데요. 저는 밀레니얼 인터뷰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고 동명의 인터뷰집 시리즈를 펴내고 있어요. 그 일을 통해서 올해로 5년째 정답처럼 정해진 길을 벗어나 각자의 나다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가고 있는 저의 동년배들, 일명 ‘요즘 것들’을 만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위대한 위인의 잠언보다는, 우리 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을 조명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들이 결국 아주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서 각자가 또다른 자신만의 삶의 방향을 찾아나가는 데 좋은 힌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요즘산책'이라는 코너명은 ‘요즘 것들의 사생활’의 ‘요즘’을 따와서 MZ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요즘 것들의 삶을 책으로 산책해 본다는 뜻도 되고, 또 제가 요즘 사서 보는 책이라는 뜻으로 ‘요즘 산, 책’으로 읽히기도 해요. 앞으로 요즘산책 코너에서는 변화하는 요즘 시대의 일과 삶에 관해서 수요일마다 함께 산책하면서 대화하듯이 새로운 책과 주제로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고양이와 채소수프』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헬로인디북스’라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기도 한 이보람 님이 쓴 비거니즘 에세이입니다. 비거니즘이라고 하면 조금 부담스러웠던 분들도 아마 계실텐데요. 일단 책 표지가 너무 귀여워요. 고양이가 그려진 초록책 표지인데요. 그리고 부제가 한번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어느 고기 애호가의 비거니즘에 대하여”. 말그대로 고기 반찬 없으면 밥을 못먹는 사람이었던 보람님이 어느날, 어떤 이유로 평생동안 열렬히 사랑해왔던 고기와 멀어지며 일상의 다짐을 통해 한 걸음씩 비거니즘을 실천해나가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저도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2년 전부터 비건 지향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느꼈던 어려움, 고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공감도 많이 됐어요. 특유의 심드렁하면서도 유쾌한 어투로 담겨있는 비거니즘을 향한 고군분투의 과정이 웃기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비거니즘에 대한 책이 요즘 참 많이 나오고 있고, 실제로 요즘산책의 첫 책으로 다양한 후보군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이 책을 소개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어요. 이 책은 완벽한 채식, 완벽한 윤리를 요구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실천해가는 의지와 선택의 과정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그래서 비건을 느슨하게나마 실천해보려고 하는 분들에게 참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보람님은 책방 앞으로 찾아온 고양이를 우연히 만나 가족이 되었고, 동물권에 대해 관심이 넓어지면서 채식을 시작했다고 해요. 저도 2020년 1월부터 비건 지향으로 살아오고 있으니까 이제 딱 2년이 되었는데요. 어떤 계기로 시작했는지 주변에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의 시작은 거창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아요. 심지어 먹는 걸 정말 좋아하고, 채식보다 소식이 어려운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선택을 할 거라곤 저도 정말 생각지 못했는데요. 2019년 가을쯤 우연히 다양한 경로에서 비슷한 메시지들을 접하게 됐어요. 이 책에도 언급되는 ‘고기 없는 월요일'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된 게 아마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비틀즈 멤버 폴 매카트니 아저씨가 2009년에 시작한 캠페인인데요. 한 사람이 일주일에 하루 채식을 하면 1년에 나무 15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매일 채식은 힘들지만 그건 가능할 것 같아서, 저도 그때부터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서 동물성이 없는 비건으로 식사하는 걸 시도해봤어요.
그때부터 신기하게도 기후변화와 육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여행에 초대되거나, 여행 중에 작고 가벼워서 들고 간 책이 마침 『아무튼, 비건』이라거나, 외주 일로 맡게 된 인터뷰 대상이 비건 유튜버라거나 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이런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누가 막 흔들어 깨우는 것처럼 비슷한 메시지를 동시에 보게 된 거죠.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게 되고, 맛있는 채식 요리를 먹고 싶어서 비건 카페나 비건 식당도 찾아보게 됐던 것 같아요.
책의 ‘내 육식의 역사'라는 챕터에는 우리 일상의 너무나 자연스럽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고기와 관련된 추억들이 고스란히 적혀있어요. 예를 들어서 어릴 적 시장에서 엄마와 같이 고기를 사와서 오손도손 먹었던 기억, 도시락에 늘 있었던 소시지 반찬, 스팸 깡통을 따는 일을 좋아했다는 이야기, 엄마 몰래 긴 소시지를 쇠 젓가락에 끼워 가스레인지에 구워 먹었다는 일화, 아빠가 퇴근길에 사온 통닭 이야기, 성인이 되어서도 마블링과 육질을 평하면서 고기 맛집 투어를 찾아다닌 이야기까지. 식탁 위의 자연스러운 고기 행렬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사실 비거니즘을 말하는 책에 이렇게까지 고기 찬양이 쓰여있는 건 처음 봤는데, 저는 그래서 더 재미있고 솔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실제로 그것도 우리의 일상이 맞잖아요.
그렇다면 육류 생산의 어두운 면은 무엇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 이 책에 나온 데이터만 참고해서 잠깐 얘길 해보고 싶은데요. 일단 우리가 소비하는 고기의 양은 매해 증가하고 있어요. 2019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밥상에 올라간 소, 돼지가 무려 730억 마리가 넘는다고 해요. 그리고 세계 곡물 수확량의 3분의 1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는데 이건 30억 명의 사람을 먹일 수 있는 양이라고 해요. 그 곡물을 가져다가 사람이 먹으면 30억 명이 살 수 있는데, 고기를 생산하는데 쓰면 그걸로 얻을 수 있는 칼로리가 곡물로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에 18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대요. 또 물부족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인데, 세계 물 사용의 50%가 축산 용수로 사용된다고 해요.
그것보다 더 우리가 인정하기 힘들고 보기 힘들어하는 것은 바로 잔인한 공장식 축산의 사육 환경이에요. A4 용지 2/3 크기의 공간에서 닭 한 마리가 평생 살다가 죽는다는 것. 더 많은 개체를, 더 짧은 시간에 생산해야하기 때문에 점점 더 좁은 공간에서 밀집 사육이 이루어지고, 당연히 비위생적일텐데 병들어 죽으면 안되니까 항생제와 약품들이 일상적으로 투여되고. 이게 우리 몸에 들어가는 음식으로서도 문제가 있는 건 당연하죠. 사실은 이 동물들도 처음부터 고기로 태어난 존재는 아니잖아요. 우리와 똑같이 살아있고, 심지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는 걸 인지하게 되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공장식 축산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충격적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사실 채식을 처음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고기보다 우유였어요. 실제로 저는 우유를 만드는 과정을 알고 가장 충격을 받았거든요. 사실 그 전까지 젖소는 그냥 자동으로 우유가 평생 나오는 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소도 사람처럼 포유류니까 임신을 해야만 젖이 나오잖아요. 인간이 365일 우유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할까요? 강제로 사람이 소의 몸 속에 손을 넣어서 임신을 시켜요. 그렇게 임신을 하고 새끼를 낳으면 새끼를 어미한테서 격리시키고, 새끼가 먹을 젖을 사람이 빼앗아 먹는 거예요. 그 잔인한 일을 평생 당하는 거죠.
지금 말씀드리는 이야기들이 좀 불편하실 수 있겠지만 정말 빙산의 일각이거든요. 그냥 모르고 편하게 살 수도 있겠지만, 버젓이 존재하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전처럼 살진 못하겠더라고요. 모른 척 하고 편리하게 소비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게다가 환경도 파괴되고, 오히려 육식이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데 ‘그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일주일에 하루만 고기 없는 날을 하다가, 점점 평상시에도 고기 없이 먹어 보다가, 2020년 1월 1일부터 딱 한 달만 완전 비거니즘을 실천해 보면서 이게 나에게 맞을지 한 번 찾아보자 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여기까지 들으신 분들은 ‘그래서 뭐부터 시작해야하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될 텐데요. ‘비거뉴어리’라는 영국에서 시작된 챌린지 프로그램이 있어요. 비건과 January의 합성어죠. 새해에 많은 사람들이 신년 다짐과 계획을 하잖아요. 그 중 하나로 한 달간 비건 식단을 제안하는 거예요. 저도 이 프로그램으로 시작을 했는데, 찾아보니까 이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이 2020년에 40만명을 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비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
물론 한 달만 하고 그 다음 달은 안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럴 거면 아예 시작하지 말자' 보다는 시도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완벽한 비건 한 명보다 완벽하지 않은 비건 지향인 10명이 더 낫다'는 말이 있거든요. 그렇게 일단 시작해 보면 각자만의 방식을 찾게 될 수 있어요. 채식의 분류도 레벨이나 단계라기보다는 ‘유형'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상황에 따라서 한가지 유형만 고수할 수 없을 수도 있고, 하면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채식도 다른 문화들처럼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문이 더 활짝 열려 있다면 좋겠어요. 그래야 접근도 쉬워지고 시도해보려는 사람도 더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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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