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성실하고도 성실한, 소설가 임경선

<월간 채널예스> 2021년 3월호 / 『평범한 결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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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끝내는 거예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맺음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쉬운 부분은 다음 번에 하면 되는 거죠. (2021.03.02)


얼마 전, 소설가이자 산문가 임경선은 책을 여러 권 함께 작업한 편집자에게 “선생님, 정말 롱런하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현타’가 왔다고 한다. 2002년 20대 후반에 첫 책을 냈으니 올해로 작가 생활 19년째. “내년에는 이 책 내야지” 하면서 1년 단위로 책을 내다보니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 것을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캣우먼이라는 닉네임으로 연애와 회사 생활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똑똑하고 깐깐한 언니 캐릭터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들을 서정적이면서도 정확한 표현으로 잡아내는 소설가이자 산문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총 5권의 소설, 18권의 산문집(개정판 포함), 1권의 번역서가 19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좋게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평범한 결혼생활』이라는 제목의 25번째 책을 자신의 1인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원고 작업부터 책 제작, 유통까지 책 출간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그를 창덕궁 근처에서 만났다. 



독립출판을 한 이유 

25번째 책을 결혼 생활이라는 주제로 독립출판으로 내셨어요. 

지난해 장편소설 끝내고 다음 책 뭐 할까, 네다섯 가지 주제로 계속 고민하다 불현듯 올해가 결혼 20주년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는 무슨 선물을 스스로에게 하지 하다가 ‘결혼에 대해서 정리하고 넘어가자’라는 마음이 확 들었어요. 무엇을 책으로 쓰자고 정할 때에는 기세가 필요하거든요. 그 기세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납득되어야 해요. 내가 느끼는 그대로의 진실을 정리해서 쓰는 것이 20주년을 기념하는 온전한 방법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걸 독립출판으로 내려고 생각한 이유는 너무나 사적인 얘기가 많아서 제가 완전하게 오너십을 가지고 싶었어요. 원고에 대한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듣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예전에 마틸다라는 출판사로 책을 내신 적이 있는데, 토스트라는 출판사를 새로 냈어요. 

5년 전에 마틸다라는 출판사로 『임경선의 도쿄』를 냈었죠. ‘마틸다’라는 이름이 살아 있어서 이번 책을 내도 되긴 했어요. 그런데 제가 출판사 이름을 정할 때 책벌레 소녀 마틸다로 생각하고 지었는데, 점점 영화의 마틸다로 인식되는 거예요. 그게 싫어서 새로 짓기로 했어요. 당시 보고 있던 책 표지에 바싹 잘 구운 토스트 그림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토스트가 어떨까’ 생각했어요. 토스트가 축배라는 뜻도 되고 발음도 예뻐서 검색해봤는데 쓸 수 있어서 바로 결정했어요. 길게 생각 안 했어요. 이 책 자체도 정말 충동적으로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 동안 쓴 거여서요.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4~5년에 한 번은 독립출판을 하는 의미가 업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예요. 특히 유통이나 물류같이 저자들이 못 보는 백스테이지의 일들이 항상 궁금했거든요. 그걸 알려면 할 수밖에 없어요. 업데이트된 시장 상황도 알고 싶었어요. 거기에 맞춰 제가 글을 쓴다는 건 아니지만 호기심이 굉장히 있어요. 실제로 5년 동안 큰 변화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번에 알게 되신 5년 동안의 변화가 궁금합니다

일단 책을 직접 내는 사람들이 ISBN을 따든, 없이 하든 굉장히 많아졌고, 그분들을 서포트하는 인프라가 많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특히 제가 5년 전에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물류와 배본이었어요. 당시 한정판 2,000권을 집에 쌓아놓고 팔았거든요. 그런 어려움이 다 해결됐어요. 또 인터넷 서점 이외 다른 형태의 온라인 커머스도 많아졌고요.

저술업자 마인드로 봤을 때 출판계는 어떤 거 같아요?

이 바닥 어떻게 될 것인가, 작가들과 그런 얘기 하고 있어요.(웃음) 문학 쪽만 얘기하면 판매가 점점 줄어드는 게 피부로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누구의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를 오래 했는데, 실제로 판매 부수를 들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숫자라는 걸 지표로 알 수 있잖아요. 그런 파이가 적어지면서 생기는 부작용들이 걱정돼요. 개별 책이 많이 팔리지 않으니까 출판사들이 제작 종수를 늘리고, 책이 가짓수가 많아져요. 점점 옥석 가리기가 힘들어지고, 때로는 뭔가 아수라장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회전율이 너무 빠르다 보니 진득하게 책의 가치를 음미하거나 얘기하는 게 어려워져요. 어떻게 하지? 이런 마음 있잖아요. 앞으로 이렇게 가는 건가, 이게 다인가? 그런 고민들을 해요. 

저는 항상 생각하는 게 기존에 책 읽는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안 읽던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은 파이에 내 것을 욱여넣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 저는 소설을 낼 때 기존 에세이 독자가 소설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소설을 읽어보고 괜찮네 하면서 다른 책도 읽는 것. 넷플릭스를 보다가 책도 볼 수 있는 거고요. 어차피 출판이 사양 산업이다,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를 기정 사실화하면서 패배주의적으로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임경선의 결혼 생활

결혼 생활을 쓴다고 했을 때 남편의 반응이 궁금해요. 

쓰기 전에 얘기를 살짝 했던 거 같아요. 나 이거 쓸 거니까 다 쓴 다음에 읽어보라고요. 처음에는 알아서 하면 되지 뭘 읽냐 하더라고요. 그래도 당신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니까 읽어보라고 했어요. 원고 읽고 빼라고 얘기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내가 그 사람 입장이라면 좀 그렇지 않을까 하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빼라고 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결혼 생활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다른 글을 쓸 때와 비교하면 어땠나요? 

제일 가까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 때문에 알게 모르게 무게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편하고 자연스럽게 쓰긴 했지만 은연중에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요. 혹시나 내가 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같은 것. 그것은 즉시 부부싸움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런 가능성에 긴장하면서 썼어요. 남편에게 상처 줘서 부부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 심지어 이혼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진짜로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요.

뻔한 글이 될까 봐 자가 검열을 한다는 내용이 책에 있습니다. 

제가 결혼 생활에 관한 글을 쓰면서 우려했던 점이 진부해질까 봐예요. 방송이나 대중매체에 나오는 잉꼬부부에 관한 흔한 레토릭이 있잖아요. 두 가지 부부 유형이 있는데 알콩달콩 잉꼬부부 혹은 아웅다웅하지만 우리는 사이가 좋아, 이런 건 너무 납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부부는 어디까지나 남자와 여자이고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거고, 계속 둘 사이의 관계가 변하는 거죠. 어떤 순간 남남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서로 벽을 느끼고 차가워질 수도 있는 거고요. 두 사람이 계속 좋은 의미로 변해가지 않으면 서로 호흡을 맞출 수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인간관계인 거죠. 서로 적당히 긴장하고 낯설었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네 하고 신선한 발견을 하거나 계속 좋은 의미로 낯설었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가끔 얻어걸리듯이 설레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괜찮은데 그건 사실 어려운 이야기고, 무엇보다 좋은 의미로 낯설면서 서로에 대해 진심으로 호기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면서 동지 같은 느낌은 분명히 있는 거 같아요. 전 양가 부모님 네 분을 다 보냈어요. 3년 사이에 상을 연달아 치렀거든요. 그때 고생을 많이 해서 동지애가 더 생긴 거 같아요, 슬픔으로 더 깊어지는 관계.

슬픔으로 더 깊어지는 관계, 굉장히 공감 가는 말이에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갑상선암이 재발했거든요. 그때 아프지 않았으면 이혼했을지도 몰라요.(웃음) 제가 아플 때 보살펴주고 그러면서, 오히려 슬픔이 우리에게는 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 거 같아요.

이번 산문에도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이 독창적으로 표현된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이 농담처럼 얘기하는 “가족이랑 뭘 해?”처럼 부부간의 관계가 단순하게 표현되는 것이 저는 너무 별로예요. 일단 멋이 없어요. 요즘과 같은 장수 시대에 부부가 되면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 거예요. 그사이 정말 많은 일이 있을 텐데요. 또 부부는 연애와 다르게 문 안에 닫혀 있는 영역이잖아요. 사람들이 다른 사람 이야기를 엿보지도 못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도 뭐하고, 그래서 표면적으로만 좋게 표현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안으로 곪는 것도 있고 불만도 있고 답답함도 있지만 겉으로는 함부로 얘기 못 하는 것들. 저는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도 세세하게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부분이 짧은 텍스트이긴 하지만 잘 전달된다면 좋겠고 독자들이 ‘아, 나도 그런 느낌 있는데’ 하면서 즐거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삶의 큰 배경화면을 이루는 거시적인 문제들, ‘가치의 우선순위’, ‘속물 정도’, ‘좋은 인간의 정의’, ‘정치 성향’”이라는 표현이 책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결혼 전에 아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 같아요. 

서로의 조건을 견주어보면서 ‘이 정도면 결혼해도 되겠다’라고 매칭하는 결혼이 되어버리면 가치관 같은 것들이 많이 가려지기 쉬운 거 같아요. 그 사람이 아니라 주변 환경이나 조건에 눈이 가 다 보면 본질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이 거론이 안 된 채로 결혼을 하 게 되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언젠가 표면에 올라올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세속적으로 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사람이 분명 있거든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꼭 서로를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혼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조언이 있다면요? 

제가 글에 쓰기도 했는데 침대는 각각 쓰는 것이 안 좋은 거 같아요. 저는 싱글 침대 두 개를 붙여놨는데 편한 대신 조금 외로워요. 몸이 부딪치질 않잖아요. 편하게 잘 쓰긴 하지만 ‘부부는 한 침대에서 부대끼며 자는 게 맞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둘이 같이 외출할 때엔 무조건 손잡고 다니기. 저희 부부는 어딜 가서도 손잡고 있는데, 그게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또 서로의 몸을 만질 거리가 있는 것이 좋아요. 예를 들어 손톱을 깎아주거나 귀 청소를 해주거나 상대의 흰머리를 뽑아주거나 어깨를 주물러주는 것 같은 돌봄 있잖아요. 저는 그게 굉장한 애정인 거 같아요. 친구든, 제 아이든, 배우자든 몸 만져주는 것이 중요한 거 같아요.



산문가 임경선 그리고 소설가 임경선 

19년 동안 작가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위기나 슬럼프는 없었나요? 

전혀 없었어요. 지나고 나면 잊어버리는 걸 수도 있고요. 저는 요즘 사람들이 자의식 과잉인 거 같아요. 자기 자신을 너무 의식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많아요. 

왜 자의식 과잉인 거 같아요?

자의식 과잉은 말 그대로 ‘내가 나를 너무 많이 의식한다’잖아요. 사유가 깊어지는 건 좋은 일이겠지만, 생각이 얕은 지점에서 도돌이표처럼 오래 머물러 있으면 울적함이나 자기 연민으로 흐르 기 쉽고 그렇게 되면 손쉬운 ‘위로’를 찾아 헤매게 되죠. 경제나 환경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처나 실패나 인간관계나 갈등을 직면하기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기보다 ‘약한 나를 보호 하고 싶은’ 마음이겠죠. 스스로를 약하다고 단정 지으면 불행히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요. 자의식의 꼬리를 단호하게 끊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걸 시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연대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이전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도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그동안 다섯 권의 소설을 내셨어요. 소설을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 혹은 결심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고 한국 기성 출판사에서 소설을 내기는 무척 힘들어요.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첫 소설집 『어떤 날 그녀들이』를 낼 수 있었어요. 실용서에 가까운 에세이를 다섯 권이나 낸 다음이니 저로서는 큰 변화와 도전이었죠. 다행히 첫 소설집이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서 다음 소설을 낼 기회가 어떻게든 생기겠다 생각했고, 또 한편으로는 첫 소설을 낸 다음에 『엄마와 연애할 때』를 쓰면서 제가 기존에 쓴 에세이들과 다른 결의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는 확실한 감촉을 느꼈어요. 저는 그것이 소설을 써본 경험 때문이라는 걸 체감했는데 새로운 방식으로 글을 쓰면 감각이 새로 확 열리는 것 같아요. 그 이후로 가급적이면 다양한 글 근육을 키우는 것이 두루 좋겠구나 싶어 힘닿는 데까지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설도 계속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어요. 이제는 에세이를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소설이 쓰고 싶어지고, 소설을 쓰고 나면 자연스럽게 에세이가 쓰고 싶어지는 나름의 정반합 회로가 몸에 장착된 것 같아요. 『평범한 결혼생활』 다음에도 단편소설집을 준비하려고 해요.

첫 소설 『어떤 날 그녀들이』를 쓰게 된 계기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에서 유희열 씨가 새해 계획을 물었을 때, “소설에 도전해볼까”라고 대답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웃음) 

맞아요. 계획적으로 쓴 건 아니었어요.(웃음)

내뱉은 말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첫 소설을 냈다는 것이 대단한 거 같아요. 

네, 저는 시작을 하면 어쨌든 매듭을 지으니까요. 글을 쓰고 발표하지 않거나 세이브 원고, 이런 게 없어요. 그냥 하는 거예요. 이건 직장 생활 12년 하면서 훈련이 됐어요. 내가 책임지고 시작한 일은 결과를 본다. 그건 성실한 직장인의 자세에서 온 거예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여지를 주거나 여유를 주었으면 오히려 망했을 거 같아요. 중요한 것은 끝내는 거예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맺음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쉬운 부분은 다음번에 하면 되는 거죠. 

에세이를 쓰는 임경선과 소설을 쓰는 임경선. 어떻게 다른가요? 

에세이를 쓰는 저는 주로 분명하고 유쾌하고 꼬장꼬장한 사람이고요, 소설을 쓰는 저는 속수무책으로 감정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마치 한창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심장이 부들부들 시큰시큰 한 상태로 변해요. 그런 마음을 다독이면서 쓰려고 하니까 정작 문체는 담담하고 서늘하게 되지만요. 다만 ‘가족’과 관련된 에세이를 쓸 때는 평균치보다 훨씬 더 감상적이 되는 것 같아요. 『다정한 구원』, 『엄마와 연애할 때』 그리고 『평범한 결혼생활』이 그랬죠.

아무래도 임경선을 소설가보다는 산문가로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에세이가 소설보다 더 많이 읽혀서일까요? 

판매 부분에서 에세이가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힌 것처럼 보이는 건 『태도에 관하여』가 오랜 기간 스테디셀러여서 그렇게 보이는 착시효과가 큰 것 같아요. 다섯 권의 소설도 다른 에세이들과 비슷하거나 더 많이 판매된 것도 있어요. 공교롭게 에세이는 그러지 못했지만 소설은 다섯 권 모두 베스트셀러 매대에 올랐고요.(웃음) 참 아이러니하죠. 첫 단추나 선입견이라는 게 그만큼 무섭습니다.



그동안 쓰신 소설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소설은 무엇인가요? 

마음이 가기보다 마음이 쓰이는 소설은 아무래도 막내 격인 장편 소설 『가만히 부르는 이름』일 거예요.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특히 남자 주인공 ‘한솔’이 온 마음을 다해 애쓰는 마음이 안쓰럽고 아름다워서 오래 품어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엔 소설집 『곁에 남아 있는 사람』에 수록된 단편소설 「치앙마이」의 여자 주인공 ‘희진’에게 마음이 많이 갑니다.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끝까지 가버리는 사람들의 무모한 용기를 동경해서 인가 봐요. 저는 작품 자체보다 특정 등장인물에 마음이 더 가고, 그러면 그 소설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문학상 등을 받으며 문학계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 적이 있어요. 지금은 그 마음에서 자유로워지셨나요? 

이제는 ‘문학계’라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인정받는’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말을 과거에 했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다음 소설을 낼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기존의 권위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은 관행이나 시스템상 제가 문학상을 받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그래서 지금의 저에게 중요한 건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제가 쓰고 싶은 소설을 잘 써낼 수 있을 것. 둘째, 제가 이해받고 싶은 방식으로 제 소설이 독자에게 이해받는 것. 셋째,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던 독자들에게 가닿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욕심을 부리자면 제가 흠모하는 작가들이 제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것. 보편적인 명예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사랑받고 응원받는 편이 더 장기적인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명예니 인정이니 인기니 다 떠나서, 작가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든 누구나 결국 외톨이로 남게 되겠죠. 그래야 글을 쓸 수 있는 거니까. 그것만큼은 참 공평한 것 같아요. 

자기가 원하는 걸 편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원하는 걸 편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것은, 그렇게 하면 자신이 뭔가를 잃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건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하 나를 잃는 법입니다. 다만 잃게 될 그것보다 내가 지금 원하는 그것이 더 간절하다면, 우리는 기꺼이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예요. 모든 열쇠는 결국 자신이 쥐고 있어요. 마음의 소리에 정직하게 귀 기울인다는 것은 바로 그런 뜻이겠지요. 인생은 유한하고 젊음은 매우 짧습니다. 원하는 것을 밖으로 말하고, 그것을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임경선

글쓰는 여자. 12년간의 직장 생활을 거쳐 13년째 전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일과 사랑, 인간관계와 삶의 태도에 대해 쓰는 것을 좋아한다. 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인생 상담을 하기도 했다. 

소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나의 남자』, 『기억해줘』, 『어떤 날 그녀들이』, 산문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공저), 『다정한 구원』, 『태도에 관하여』, 『자유로울 것』, 『나라는 여자』, 『엄마와 연애할 때』,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하는 여성에게 들려주는 『월요일의 그녀에게』, 그리고 여행서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독립출판물 『임경선의 도쿄』를 비롯해서 다수의 책을 냈다. 『가만히 부르는 이름』은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네이버 오디오클립 ‘임경선의 개인주의 인생상담’ 시즌2를 진행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kyoungsun_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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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희

독서교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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