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으로 21세기 경제를 해설하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한지원 저자
“세계는 코로나19 이후 자산시장 거품과 시민의 비참함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본론』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021.02.04)
최근 코로나19, 소득주도성장 등 우리 삶과 가까운 경제이슈들을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풀어낸 책이 화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차세대 경제학자로 주목받는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연구원.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인물이지만,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젊은 마르크스 이론가로 주목받으며 인터뷰와 칼럼 등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되어왔다. 최근에 나온 그의 첫 책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는 『자본론』을 의 경제 이론으로 오늘날의 경제 문제들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는 동시에, 어렵게만 느껴지던 『자본론』 의 장벽을 낮췄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시중에 있는 『자본론』을 의 대중적 해설서들이 용어나 사례들을 150년 전 그대로 사용하면서, 경제학 비판과 무관한 사례들을 늘어놓는 것과 달리, 그의 책은 21세기 경제를 분석하고 현대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자본론』을 의 생명력을 살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화제의 인물인 그를 서면으로 만났다.
경제위기 때마다 『자본론』 다시 읽기 열풍이 부는 것 같습니다. 왜 사람들이 애덤 스미스나 케인스 같은 주류경제학이 아니라 『자본론』 을 찾아 읽을까요?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경제학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드러나기 때문일 겁니다.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시장이 균형을 회복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습니다. 신고전파, 케인스주의 같은 경제학의 여러 학파는 회복의 속도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1970년대 세계적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고, 신고전파 경제학은 2008~2009년 세계금융위기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2010년대의 장기 저성장과 극단적인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경제학은 별다른 처방을 내리고 있지 못하죠. 실물 경제가 죽어가는 데도 주식시장이 미쳐 날뛰는 상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코로나19로 자본주의 경제의 기저질환이 드러났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사람들이 『자본론』 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이 경제학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본론』 은 자본주의 성장의 원동력인 이윤율 경제가 왜 성장의 상한선을 가지는지, 왜 자본주의는 풍요를 만들면서 동시에 시민 다수를 비참하게 만드는지 설명합니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는 현대 경제학의 최신 논의를 소개하면서 그것들이 어떤 점에서 결함이 있고, 『자본론』 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소개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을 근본적 수준에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자본론』을 ‘현재화’하려 했다는 점이 기존의 『자본론』개설서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요?
‘현재화’는 속류화를 피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훈고학적 편향을 지양하면서 현대 경제학과 쟁점을 형성해보기 위해서 제가 선택한 전략입니다.
많은 『자본론』개설서들이 빠지는 함정은 속류화였습니다. 예를 들면, 노동가치론을 쉽게 설명한다는 명목으로 빵을 만드는 데 노동시간 1시간이 걸리고, 책상을 만드는 데 5시간이 걸리면, 양쪽이 5:1로 교환된다고 설명하는 식이죠. 그런데 이런 설명은 18세기 고전파 경제학 초기에나 하던 이야기고, 경제학에서도 상대가격이론으로 쉽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은 『자본론』 을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색 없는 원시적 경제이론으로 퇴보시킵니다.
마르크스 노동가치론의 핵심은 자본주의적 기술진보의 결함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노동을 절약(노동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해 자본투자를 늘릴 때 발생하는 문제가 노동가치론의 분석 대상입니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는 장기간의 저성장, 노동생산성 상승 둔화, 자본투자의 급감 같은 현상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도구가 바로 노동가치론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오늘날 사용하는 개념과 사례를 통해 『자본론』의 정수를 속류화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훈고학적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상당히 신경을 썼는데요. 『자본론』은 150여 년 전 작품입니다. 영국 산업혁명 초기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고, 고전파 경제학과 대결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까지 논의되는 현재와 분석 대상이 같을 수 없고, 경제학의 결함을 드러내려면 신고전파, 케인스주의 같은 현대 경제학과 대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론』 해설서 상당수는 『자본론』 을 문구 그대로 설명하는 데 주력합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이론적 합의 수준이 낮다 보니 원전의 문구를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권위로 사용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가능한 한 『자본론』이 분석한 자본주의 경제의 결함을 현재의 경제 현상과 경제학 속에서 설명해보려 노력했습니다. 『자본론』의 화폐론, 착취론, 축적론을 최근의 금융, 생산, 노동과정 현상과 이론 속에서 설명했습니다. 독자들은 시중의 ‘경제학 개론’을 다른 관점에서 읽는다고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1년 한국은 ‘주식 빚투’와 ‘부동산 영끌’ 광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본론』 의 이론으로 이런 현상을 분석하고 전망해 보신다면?
자산시장이 거품과 함께 팽창하는 현상을 경제학은 과잉 유동성과 심리적 문제로 설명합니다. 저금리 조건에서 시중 부동자금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쏠리다 보니 가격이 폭등하고, 이런 시장을 보면서 사람들이 ‘비이성적 열광’에 빠져 합리적 판단 없이 묻지마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식인데요. 이런 설명은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왜” 저금리-부동자금 팽창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지는가, 왜 시민들이 한꺼번에 ‘비이성적 열광’에 빠지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자본론』은 이를 과잉자본과 과잉인구의 증가로 설명합니다. 실물 경제의 이윤율이 장기간 하락하면,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과잉자본)이 증가하고, 또한 자본에 고용되지 못하는 인구(과잉인구)도 증가한다는 것인데요. 과잉자본은 금융시장에서 미래 소득에 대한 청구권 형태, 즉 증권(주식, 국채, 사채, 모기지증권 등)으로 주로 존재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이라고 부르는데요. 미래의 수입에 대한 청구권 가격이 실현된 실제가 아니라 실현되지 않은 기대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가공자본은 기대이기 때문에 또한 제한 없이 팽창할 수 있습니다. 거품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동가치론의 논리적 귀결인 편향적 기술진보의 모순이 이윤율 하락을 이끌고, 이윤율 하락이 과잉자본을 만들며, 과잉자본은 가공자본으로 무제한 팽창하다가 경제를 혼돈으로 이끈다는 것이 『자본론』의 결론입니다. 21세기의 저성장과 금융시장 팽창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죠. 코로나19 이후 금융시장 사정은 이런 모순을 극단적으로 표현합니다.
과잉자본의 대응물인 과잉인구는 시민의 비참한 상태를 심화합니다. 우선 실업과 반실업(비정규직, 영세자영업)을 양산하며 시민 다수를 상대적 빈곤 상태로 만듭니다. 상대적 빈곤은 생산력 발전으로 기아와 같은 절대적 빈곤은 해결하지만, 빈부격차 확대로 당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풍요의 수준을 다수 시민이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게 더 중요한데, 과잉인구의 또다른 효과는 시민의 도덕적 타락입니다. 좋을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상대방을 배척하는 적자생존 식 경쟁(인국공 사태가 대표적입니다.)이 격화되고, 시민 모두가 한탕을 노리면서 투기에 동참하는 게 바로 도덕적 타락인데요.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여기서 얻는 소득은 다른 시민의 소득을 이전받는 것에 불과합니다. 지대추구가 시대정신이 되는 셈이죠. 내가 차지한 좋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시민의 자격과 노동을 폄하하고, 심지어 일자리 세습까지 시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윤리의 파탄이라 하겠습니다.
『자본론』 은 이윤율 경제를 변혁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윤 추구를 위해 경쟁하는 체계, 자본이 노동을 임금을 주고 고용하는 체계 자체가 과잉자본과 과잉인구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변혁이 당장은 불가능하죠. 아마도 세계는 코로나19 이후 자산시장 거품과 시민의 비참화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겠지만,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본론』 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를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분석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역이 종료되어도 시스템 자체가 망가졌다면 V자 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선진국이 백신을 통해 집단면역에 어느 정도 성공하는 2021년 가을 정도에는 꽤 강한 경기 상승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막힌 보일러 관이 뚫리면 당연히 한동안 온기가 돕니다. 하지만 문제는 보일러 자체가 손상됐다는 점인데요.
시스템의 핵심(보일러)이 망가졌다는 방증은 바로 저인플레이션 하에서만 현재 경제가 작동 가능하다는 현실입니다. 저인플레이션을 배경으로 한 저금리 덕에 정부가 막대한 적자재정으로 경제를 부양할 수 있었고, 또 기업과 가계가 저금리 덕에 빚으로 생존할 수 있었는데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저금리가 지속 불가능하면, 이 빚의 롤오버(다른 빚으로 기존 빚을 갚는 것)가 작동하지 못합니다.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경제학자들은 필사적으로 저인플레이션이 계속될 수 있다는 근거를 만들고 있고, 금융기관의 보고서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낙관주의를 선동하는 데 힘을 쏟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화폐론으로 보면 이런 저인플레이션-저금리 상황은 지속할 수 없습니다. 제 책은 3장과 4장에서 마르크스의 화폐론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을 분석했습니다. 근거와 결론을 여기서 모두 쓰기에는 지면 제한이 있어, 궁금하신 분들을 책을 보셨으면 합니다. 마르크스는 화폐의 본질을 ‘보편적 등가물’이라고 정의했는데, 이 정의가 21세기 금융 시장 분석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독자들은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자본론』 의 결론으로 설명하신 ‘작동중지’는 어떤 상태를 말하나요?
자본주의의 작동중지는 간단하게 말해 세계 경제가 아르헨티나와 일본 사이 어떤 상태로 돌입하는 것인데요.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면서, 아르헨티나처럼 반복해서 국가 부도가 나거나, 일본처럼 저성장 인구위기의 덫에서 수십 년을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성장엔진이 작동중지된 상태로 가까스로 경제가 유지되거나 추락하는 것이죠.
작동중지의 원인은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자본축적의 정체입니다. 산업혁명 같은 혁명적 기술진보가 있지 않으면 자본축적은 S자 곡선을 따르는데요. 증가, 급증, 둔화, 정체로 나아갑니다. 책에서는 이를 실증적으로도 분석합니다. 자본주의적 소유제도와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 경쟁의 필연적 법칙입니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는 확연하게 정체 상태로 진입했습니다.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어야 할까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중 한 명인 에릭 홉스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원대한 희망과 절대적 열정이 없다면 인간은 본래의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런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말입니다.” 저는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 제 책을 읽기를 희망합니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는 원대한 희망과 절대적 열정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관적 전망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를 폄하하기 좋아하는 분들은 종교적 종말론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영원한 균형, 절대적 균형이 있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종교적이라고 말입니다. 경제학은 절대적 균형이라는 대전제에서만 작동하는 이론입니다. 자연과학에서 거부하는 전제로 자연과학을 흉내 내고 있는 셈이죠.
저는 한 체계의 결함과 공백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원대한 희망과 절대적 열정을 갖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자본론』 을 해설한 제 책이 그런 희망과 열정을 이야기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작가님의 추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 책은 대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 다음 목표는 그 대안을 좀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인데요. 다만, 그 과업을 수행하려면, 먼저 역사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다음 수순을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변혁은 청사진이 아닙니다. 변혁을 시간을 두 동강이 내는 결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변혁은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지, 현실을 급속도로 뒤집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궤도를 알아야 하고, 시선을 돌리면서 그 궤도를 변화하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개혁들, 그리고 시민사회의 민도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축적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다음 책으로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고 싶습니다.
*한지원 시민사회가 주목하는 젊은 마르크스 이론가. 1977년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했고 13년간 사회단체에서 일하며 경제 및 노동 문제를 분석해왔다. 현재는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을 맡고 있다. 경제학의 결함과 공백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중에게 『자본론』을 쉽게 설명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 한국의 대표적 노동조합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으며, 칼럼, 언론 인터뷰, 보고서 등을 통해 사회변화에 필요한 공론을 만드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이론에 주목하면서도 실제 현장에서 돌아가는 일을 풍부하게 설명하는 능력이 스스로 내세우는 장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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