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행복한 이별을 만들어가는 법”
『도로나 이별 사무실』 손현주 저자 인터뷰
누군가와의 이별도 결국 기억으로 남기 때문에 뒷마무리가 좋아야 할 것 같아요. 이별 자체가 상처이긴 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 하는 성숙함도 필요하다고 봐요. (2020.12.17)
가족과 또래집단 등 삶의 섬세한 관계망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꼭 필요한 문제적 소설’을 쓰는 작가로 평가받아온 손현주의 신작 장편소설 『도로나 이별 사무실』이 출간되었다. 그간 예민하게 격동하는 청소년의 감수성을 깊이 있게 조명해온 손현주가 이번에는 관계를 버거워하는 이 시대 성인들의 이야기를 소설에 담았다. ‘이별 대행 서비스’라는 매력적이고 문제적인 소재를 특유의 유쾌하고 활달한 필치로 그려내는 이번 소설은, 관계 피로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무엇과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신작 『도로나 이별 사무실』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엔 성인 독자를 위한 작품을 쓰셨는데요, 이 작품으로 선생님을 만나볼 독자들께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2011년 『불량 가족 레시피』 이후 청소년 장편을 써왔어요. 그렇다고 성인 작품을 아예 쓰지 않은 건 아닙니다. 문학동네에서 소설집 『헤라클레스를 훔치다』도 냈고 단편들은 간간이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했죠. 그러나 정작 성인 장편을 게을리했던 것 같아요. 늘 머릿속에 성인 장편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되어 출간하게 되었어요.
『도로나 이별 사무실』은 주인공 ‘이가을’이 이별을 대행해주는 직업인 ‘이별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이별 매니저’라는 소재가 무척 매력적입니다. 어떻게 이런 소재를 생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래전에 독일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소설에 이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저는 그 소설을 읽으며 실제로 이런 직업이 있다면 어떨까, 이 소재로 사회 현상을 담은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요즘처럼 바쁘고 감정을 소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시대에 필요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직업 같기도 했어요.
이 소설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이별을 수행하거나 거절하는 캐릭터들이 나옵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특별히 아끼시거나 마음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면 그 이유와 함께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책과 이별하려는 도진우라는 공무원이 나오는데 저는 그 캐릭터가 작가 지망생이어서 그런지 마음에 끌렸어요.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겪는 감정이거든요. 저 역시 그런 시기가 분명 있었고 창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고되고 마음의 갈등이 심한지 알거든요.
이별을 소재로 글을 쓰신 만큼,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이별’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좋은 이별이란 어감 자체가 이율배반적인데요. 저는 누군가와의 이별도 결국 기억으로 남기 때문에 뒷마무리가 좋아야 할 것 같아요. 이별 자체가 상처이긴 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여야 하는 성숙함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 이별은 사람이 다시 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게 분명해요. 그래서 헤어지더라도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기보다는 관계에 있어 서로의 부족함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다면 아마 그게 좋은 이별이 될 것 같아요.
『도로나 이별 사무실』은 매력적인 소재와 더불어 재미있는 대화, 매력적인 캐릭터, 재미있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어 머릿속에 구체적인 장면들이 그려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글을 쓰실 때 구체적인 장면들을 머릿속에 상상하고 쓰시는지, 장면이나 대화는 어디에서 모티프를 얻으시는지 등, 글을 쓰실 때 어떤 것들을 염두에 두고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캐릭터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막연히 상상만 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 한 번이라도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 속에서 꺼낸다거나 아니면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귀동냥으로 들었던 사람들의 면면에 대해 떠올리곤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캐릭터와 성격 부여가 조금 수월해지거든요. 재미있는 대화는 수집하기도 하고, 지하철에서나 카페에서 귀를 열어 둡니다. 제 머리로는 한계가 있다 보니 습관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관찰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대략 이런 면면의 캐릭터를 데리고 제 소설 속에서 모험을 떠나는 기분으로 글을 씁니다.
이별이라는 주제가 보편적인 주제이니만큼 이 소설은 모든 독자분들께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이런 분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하고 생각해보신 적 있으실까요? 이 책이 어떤 독자들에게 가 닿으면 좋을까요?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떨치기 힘든 습관을 가진 독자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린 매일 관계를 맺고 살잖아요. 현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거나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별을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그런 책이에요.
혹시 선생님께서 ‘도로나 이별 사무실’를 발견한다면 어떤 걸 의뢰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요즘 유튜브를 오랜 시간 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관심사가 다양해 시간을 많이 소모하고 있어 마음에 좀 걸렸거든요. 그래서 저는 유튜브와의 이별을 의뢰하고 싶어요. 습관적으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시간을 할애하는 제 모습과 이별하고 싶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면 당당하게 진심이 묻어나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세요. 감정이란 타인이 대신 소모해줄 수 있는 것들은 아닌 것 같아요. 관계 속에 갇혀 버거워하는 삶을 사는 우리 독자님들이 관계의 벽을 부수고 나올 수 있는 행복한 이별을 만들기 바랍니다.
*손현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로 등단했고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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