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일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훼손시킨다”
장편 소설 『9번의 일』
막상 일을 하게 되면 스스로가 예상한 것들이 다 무너지는 것이 일이라는 것. 좀 체념적인 말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2019. 11. 19)
김혜진의 장편 『딸에 대하여』 를 새벽 6시 40분, 지하철 5호선에서 읽는 70대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굽은 등, 왜소한 체격의 할머니가 서서 책을 읽고 있었다. 곁에 서 있던 나는 묻고 싶었다. “어떤 사연으로 이 책을 읽으시냐?”고. 7개월 전, 그 때의 장면을 김혜진 작가에게 전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9번의 일』 이 출간되자마자 재빠르게 읽은 건 『딸에 대하여』 를 쓴 소설가 김혜진의 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움이 가셨고 동료들에 대한 서운함도 옅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자신에 대한 의구심과 자괴감 따위의 감정이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그는 누구에게도 이런 원색적인 비난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서운함과 불편함은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졌다. 그는 믿을 만한 동료들과 일했고 동료들은 그를 믿었다. 믿음은 하루가 가고, 계절이 쌓이고, 서로의 표정과 목소리에 익숙해지고, 버릇과 습관 같은 것들에 길들여지고. 그런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난 다음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는 그토록 어렵게 생겨난 것들이 이처럼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 『9번의 일』 , 34-35쪽)
반드시 기대를 비켜나는 ‘일’
일에 관한 소설을 쓰셨어요.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요?
2016년 가을에 통신회사 노동조합을 취재했어요. 당시 제가 경복궁 근처에 살고 있었거든요. 곳곳에서 시위가 있었는데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현실이 다르더라고요. 노조에 계신 분들도 만나보고 하루 종일 쫓아다녔어요. 당시에는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라 취재를 해놓고도 잊고 있었는데, 올 여름에 본격적으로 쓰게 됐어요. 소설로 완성될 이야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소설 제목이 『9번의 일』 입니다. 주인공이 ‘78구역 1조’에서 ‘9번’이라는 이름으로 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목만 읽은 독자들은 대개 횟수의 ‘9’를 상상하시더라고요.
처음 제가 제안한 제목은 ‘철탑을 오르는 사람’이었어요. 출판사에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면서(웃음) 몇 개의 후보를 주셨어요. 그 중에서 고른 제목이에요.
주인공은 통신회사에서 설치 기사로 26년간 일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러나 장기 근속 끝에 남은 건 ‘저성과자 관리 대상’이라는 이름이죠. 주인공은 회사로부터 지속적인 퇴직 권유를 받지만 끝까지 버팁니다. 하지만 상품 판매직으로 발령을 받고 정식 업무가 주어지지 않아요. 현실에서도 매우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 쓴웃음이 나왔어요.
통신회사를 배경으로 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보편적인 노동 이야기예요. 오랫동안 한 직장에 일한 사람이 점점 밀려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를 상상해봤어요. 사실 책을 내면서 고민이 좀 있었어요. 요즘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누가 읽을까? 한 직장에 오래 있는 경우가 드문, 젊은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이야기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슬프게 읽혔어요. 굉장히 담담한 문체로 쓰인 소설이라 더 슬프더라고요.
평소 인물에 거리를 두고 쓰려는 편이기도 하고, 3인칭 소설이니까요. 인물과의 거리를 잘 조정하고 싶었어요. 인물과 작가의 거리가 8이라면, 그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어요.
‘작가의 말’에 “일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둘 사이를 채운 어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257쪽)라고 쓰셨습니다.
일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훼손 시킨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어떤 체념의 정서라든가 허무의 정서? 슬픔의 정서?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어요.
노조를 취재했을 때는 어땠나요? 흔쾌히 수락하셨나요?
흔쾌히 오라고 하셨어요. 노조를 취재하는 것이 약간의 정치적 성향이 담긴 일이잖아요. 그분들을 만나면서 제 마음속에 ‘내가 이 분들을 대변하는 소설을 쓰려는 건 아닌데, 나중에 실망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어요. 책이 나오고 취재를 도와주신 선생님께 보내 드렸거든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소설은 아닐 거라고, 팩트를 바탕으로 했지만 픽션”이라는 말과 함께요. 소설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답장이 오진 않았어요.
직장인이라면 소설 속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켜봤을 거예요. 저부터도 그랬거든요. ‘나는 끈질기게 퇴직을 권하는 회사로부터 버텼을까?’, 전 못했을 것 같거든요.
주인공이 일을 그만두지 못한 건, 100% 경제적인 상황 때문은 아니에요. 그만두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때, 경제적인 상황을 동원시키는 거죠. 실제로 자신도 왜 회사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몰라요.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웠다면 버티지 않았을 거예요. 빨리 나와서 뭔가를 더 해야 했을 테니까요.
주인공은 자신이 빨리 회사에서 나가길 바라는 사람들로부터 서운함과 불편함을 느끼다가 그것 마저 익숙해져요. 자신에 대한 의구심, 자괴감 마저 옅어지는 일. 그것이 더 큰 파국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소설을 쓸 때, 회사가 ‘절대 악’이고 주인공이 ‘절대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인공이 9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일이 비극이라면, 이 일이 벌어지기까지는 회사의 탓도 있겠지만 주인공의 판단과 선택도 영향이 있었겠죠. 마지막에는 본인도 이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떤 독자가 주인공을 두고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 리뷰를 썼더라고요.
주인공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변한 걸 잘 모르는 상태잖아요. 만약 훗날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면, 괴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독자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2016년에 출간된 소설집 『어비』도 ‘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일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호기심이 있어요. 예를 들어 사람들이 편집자를 떠올리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일 외에도 많은 일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실제 하고 있는 일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어떤 물건을 쓰는지,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제 일을 생각할 때도 그래요. 외부에서 보면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이 있잖아요.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일이 그렇겠네요.
처음에는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제 성격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인데, 제가 너무 어려워하니까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그것도 네 일이다”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은 수월해지더라고요.
지금은 전업작가시죠?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어린이책 만드는 출판사에서 교정교열 보는 일도 했고, 도서관에서도 잠깐 일하고 구청 민원실, 엑스트라, 피자집, 패스트푸드점, 레스토랑에서도 일했고요. 200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4,5년 동안 등단을 준비했어요. 20대 후반에 굉장히 힘들었는데, 부모님이 다시 대구로 내려오라고 하셨어요. 2012년이 마지노선이었는데 그때 데뷔를 하게 됐죠.
2017년에 출간된 장편 『딸에 대하여』 가 큰 사랑을 받았어요. 퀴어를 소재로 엄마와 딸의 관계를 이야기한 소설인데, 이 작품으로 작가님을 알게 된 독자들이 꽤 많아요.
『딸에 대하여』 가 나온 이후 독자를 직접 만날 기회가 많았어요. 예전에는 독자라고 하면 추상적인 개념이었는데 실제로 독자들을 만나 이야기하게 되는 상황이 저에게 좀 놀라웠어요. 좋기도 무섭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소설을 쓸 때 독자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거든요. 두려울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걱정이 되는 점도 있어 부담이 생기기도 해요.
『딸에 대하여』 가 6만 부가 넘게 팔렸죠? 영화 판권도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이 영화화가 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절대 영화화를 할 수 없는 소설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영화는 부지영 감독님이 연출하신다고 들었어요.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는 또 하나의 창작물이니까요. 기대하고 있어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소설에 구체적인 지명을 잘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능한 한 사람들이 각자 생각할 수 있는 구체성을 획득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어요.
작가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쓰는 것을 노동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능한 예술적인 의미나 작가라는 자의식을 갖지 않으려고 하는데, 소설을 쓰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 이상의 의미가 있긴 해요. 저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하는 게 항상 즐겁지 않거든요. 모든 일은 사람을 훼손시킨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일을 하다 보면 흔히 둥글둥글해진다고 말하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었던 모서리가 깎여서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지는데, 무엇을 배우고 성장하는 면도 있는 반면에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이런 걸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할 말이 생기면 거리로 나오잖아요. 외국도 그런가? 우리나라만 그런가? 대규모로 일어나는 행동들에 관해 자주 생각해요. 흔한 일이면서도 약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어떤 이야기를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나요?
『중앙역』 도 『딸에 대하여』 도 두세 계절의 이야기거든요. 이번 소설은 조금 늘어났지만, 좀 더 긴 시간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9번의 일』 을 읽으려고 책장을 펼친 독자가 눈앞에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니까, 결국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게 있을 텐데요. 그 일이 자신의 기대를 반드시 비켜나가게 되거든요. 막상 일을 하게 되면 스스로가 예상한 것들이 다 무너지는 것이 일이라는 것. 좀 체념적인 말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9번의 일김혜진 저 | 한겨레출판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통신회사 설치 기사로 일하는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평온한 삶의 근간을 갉아가는 ‘일’의 실체를 담담하면서도 집요하게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