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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철 “독이 약이 된, 심리적 연애소설”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수상 작가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독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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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된다는 건 한 등장인물의 말일 뿐입니다. 우리는 원한을 만나도 약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으면 안 되겠지요. (2019. 05. 30)

최수철 작가 사진1.jpg

 

 

정밀한 언어와 문체 실험으로 인간 본연의 문제를 탐구해온 작가, 최수철의 신작 장편  『독의 꽃』 이 출간되었다.  『독의 꽃』 은 몸속에 독을 지니고 태어나 그 독을 점점 키우다가 결국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과 약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 스스로 이미 10여 년 전부터 ‘독’에 대한 작품을 구상해왔다고 밝힌 바 있듯이, 이 소설은 오랜 시간 궁구해온 사유의 결과물이자 실험적인 작가 정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독’과 그 상관물인 ‘약’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면서 우리 의식의 지평을 넓혀나간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심리주의와 상징주의, 임상 기록과 추리 기법, 연애소설의 형식 등을 동원한 이른바 ‘총체 소설’이라 직접 명명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소설은 한층 더 깊어진 주제의식과 다채로운 양식 실험으로 ‘독’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를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최수철 작가는 1958년 춘천에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문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으며, 이외에도 1998년에 윤동주 문학상을, 1993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5년 만에 장편소설을 출간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듯합니다.

 

사실, 날마다 꾸준히 쓰고 있으니까, 지금도 내게는 발표를 앞둔 글의 양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것과 그것으로 책을 만드는 것 사이에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했습니다. 세상에 내놓기 위해 최종적으로 어떠한 인상적인 주제와 형식으로 마무리 지을까 결정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지요. 이번 소설의 경우에는, 스토리텔링을 강화하여 극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 그리고 ‘독’에서 ‘약’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결말을 제시하는 것을 콘셉트로 잡았고, 이제 그 결과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독의 꽃’이라는 제목이 무척 강렬합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제목 ‘악의 꽃’에서 가져왔다고 하셨는데요, ‘악의 꽃’에서 소설의 제목을 착안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보들레르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창조를 추구하기 위해 관습 속에 자리 잡은 ‘선’보다는 복잡한 현대적 삶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악’의 세계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어낸 자신의 시집 『악의 꽃』에, 동료 시인 고티에 앞으로 “이 병든 꽃들을 바치며”라는 헌사를 썼습니다. 보들레르는 세상의 병든 부분, 혹은 병든 존재들과 깊이 감응하면서 그것으로써 한 편 한 편의 시를 꽃처럼 피워낸 것이지요. ‘독’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면서 나 또한, 인간들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온갖 종류의 독에 노출된 병든 존재지만, 동시에 그들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한 송이의 특별한 꽃이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작들에서 ‘침대’와 ‘의자’ 등 하나의 일상적 사물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발표하셨고, 이번에는 ‘독’이라는 소재로 소설을 구성하셨는데요, 이처럼 선생님의 작품들은 한 가지 대상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우리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듯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의도한 소설적 효과가 있을지요?

 

이번 소설도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총체적 소설’을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그러기 위해 새 소설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좋은 소재를 찾는 데 온 힘을 기울였지요. 내게서 좋은 소재란,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이야기성이 풍부하면서도 상징적인 의미가 깊은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하여 리얼리티와 상징성을 동시에 가지는 소재가 선택되면, 그 소재가 내게 들려주는 갖가지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요. 그런 맥락에서 지금까지 나는 ‘페스트’, ‘침대’, ‘의자’를 소재로 하는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이번에는 ‘독’이 그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최수철 작가 사진 3.jpg

 

 

이 소설에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독특한 인물들이 주로 나옵니다. 독에 중독되어 평생을 독 연구에 몰두하는 수호, 결벽증 때문에 구강 청결제 없이는 못 사는 소화, 독을 이용해 청부 살인업자가 되는 광수 등 이들의 뒤틀린 모습이 충격을 주면서도 우리 내면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는 듯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요, 등장인물을 구상할 때 특별히 주안점을 두시는 점이 있나요?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등장인물들은 부차적인 것이었어요. 그보다는 독의 중요한 특징들이 더 중요했습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 다양하면서도 모순된 독의 특징들이 하나씩 등장인물을 탄생시켰지요. 예컨대 선천적으로 독을 품고 태어난 사람, 독을 두려워하는 사람, 독과 자신을 혼동하는 사람, 독에 맹목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사람, 독을 통해 일상의 마비에서 벗어나려는 사람, 독으로 인해 병든 몸으로 어렵게 독과 싸우는 사람, 독을 이용해 세상에 제 존재를 드러내려는 사람, 독을 향유하며 독과 약 사이에서 어렵게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 등등이 그러합니다. 말하자면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독’의 분신들입니다.

 

40여 년간 소설을 쓰셨지만,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와 『타오르는 마음』 등 다수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하셨지요. 오랜 시간 소설가로서의 삶과 번역가로서의 삶을 살아오셨는데, 집필할 때와 번역할 때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덧붙여 소설과 번역 작업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지요?

 

불문학을 전공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터라, 늘 프랑스 소설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요. 작가로서도 창작에만 국한되지 않고 번역 작업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번역에 시간을 할애할 때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으로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번역에 착수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나 자신이 번역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번역에서 나는 그저 늘 아마추어 문학도일 뿐입니다.

 

소설 중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요?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된다는 건 한 등장인물의 말일 뿐입니다. 우리는 원한을 만나도 약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으면 안 되겠지요. 아마 원한도 약으로 만드는 게 진정한 사랑이겠고, 어쩌면 그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의 주제의식입니다. 사랑이란, 말하자면 무한긍정이고, 그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조건이지요. 처음 이 소설의 제목으로 떠올린 것은 ‘독은 없다’였습니다. 이 세상에 ‘독’은 없고 ‘사랑’만 있을 뿐인데, 때로 그 ‘사랑’이 ‘독’이 될 따름이라는 뜻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인물들의 몸과 마음속에서 지상의 모든 독이 서서히 약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담은 심리적 연애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독의-꽃_표지(입체)_띠지-무-1.jpg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혹시 구상 중인 또 다른 작품이 있으신지요?

 

요즘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뭔가 의미적이면서도 이야기로서의 흥미로움을 동시에 가지는 소재’는 ‘바퀴’입니다. 우선, 바퀴는 불교사상의 핵심적 상징이지요. 그런가 하면 인류의 문화적 진보를 떠받치고 있는 실질적인 물건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퀴를 소설의 중심에 둔다면 현대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세계를 관통하는, 그야말로 유위 변전하는 삶의 드라마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외에 ‘현대의 신화’를 화두로 삼는 소설,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테마를 가진 소설, ‘정신과 의사의 고백’ 등등의 소설도 조만간 완성하거나 정리를 끝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야 겨우 문학적 사춘기를 벗어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닐까 싶군요.

 

 

최수철(소설가)

 

1958년 춘천에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문과 및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맹점」이 당선되면서 등단했으며, 이외에도 1998년에 윤동주 문학상을, 1993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설집으로 『공중누각』(1985), 『화두, 기록, 화석』(1987), 『내 정신의 그믐』(1995) 등이, 장편소설로 『고래 뱃속에서』(1989),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랑』(4부작, 1991), 『벽화 그리는 남자』(1992), 『불멸과 소멸』(1995), 『매미』(2000), 『페스트』(2005),『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 등이 있다. 윤동주문학상(1988), 이상문학상(1993)을 수상했으며, 르 클레지오의 작품 『사랑의 대지』, 『매혹』, 『우연』, 『타오르는 마음』을 우리말로 옮겼다.

 

 

 

 


 

 

독의 꽃최수철 저 | 작가정신
기존 서사 양식의 관례를 그만의 방식으로 깨뜨리고, ‘독’이라는 하나의 메타포이자 모티프가 그야말로 소설의 주제이자 구성 원리이면서, 나아가 아예 소설 전체가 되어버리는 과감한 전도의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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