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인 “어린이책 디자이너로 일하다 만화가 됐어요”
첫 만화책 『기분이 없는 기분』
혜진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다녀오는 날을 그린 첫번째 장은 제가 그 날 겪은 일들이 너무 극적이라서 머릿속에서 저절로 이야기로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2019. 05. 30)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게다가 가정불화의 원인 제공자이자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던 아버지가 고독사를 맞이하고,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면? 아버지의 고독사라는 소재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30대 여성의 삶과 우울, 성장을 그린 만화 『기분이 없는 기분』 이 출간됐다.
『기분이 없는 기분』 은 ‘아버지의 딸’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서 깊이 숨겨두었던 감정을 아버지의 고독사 이후 걷잡을 수 없는 우울증에 빠지며 마주하게 된 혜진의 이야기이다. 우울증으로 인해 별안간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 ‘기분이 없는 기분’에 빠지게 된 혜진의 삶은 만성화된 아픔과 우울에 고통받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진심 어린 공감을 호소한다. 구정인 작가는 자신의 첫 단행본인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만화의 다양성 제고와 작가 발굴을 목표로 한 ‘2019 다양성만화 제작지원사업’ 선정 만화가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구정인 작가는 어린이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하다 만화가가 되었다. 『기분이 없는 기분』 은 첫 만화책이다.
디자이너로 일하시다가 만화가로 데뷔, 첫 책을 낸 소감이 궁금합니다.
책이 좋아서 북디자이너가 되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다보니 점점 책 만드는 재미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자로서 책을 만들어보니 다시 새롭고 설렜어요. 이 마음이 디자이너로 일하는데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자전적 작품으로도 읽히는데요. 이 책 작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 맞고요.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한참 애쓰고 있을 때 저절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 책 작업이 저에게는 회복을 위한 한 과정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혜진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경찰서에 다녀오는 날을 그린 첫번째 장은 제가 그 날 겪은 일들이 너무 극적이라서 머릿속에서 저절로 이야기로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이면지에 연필로 스케치를 해봤고, (작가의 말에 언급한)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친구들이 그것만으로도 좋은 만화라고 칭찬을 해 줬고, 계속 해보라고 (농담이지만) "가자, 앙굴렘!"을 외쳐주었어요. 그 친구들과는 한달에 한번쯤 만나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만날 때마다 스토리를 조금씩 더 진행해서 보여주고 의견을 구했습니다.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첫 스케치부터 출간까지 딱 2년이 걸렸습니다. 내용을 만들고 스케치를 하고 글을 쓰는데 1년 반이 걸렸고, 스토리와 스케치가 완성된 다음에 그림을 그리는 데는 두 달이 채 안 걸렸습니다. 그 두 달 동안은 매일, 쉬는 날 없이 하루에 4쪽씩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게 된 건, 어린이책을 디자인 하다 보니 삽화도 직접 그리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3-4년 전에, 안식년을 반년 정도 가지면서 그림 연습을 해야겠다 결심했습니다. (반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생계 문제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반년간 쉬면서 드로잉 수업도 듣고 매일매일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때의 그 시간이 바탕이 되어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그림체가 굉장히 간결하면서도 묵직하고 강렬합니다. 어떤 그림체를 선호하시나요?
사실은 더 세련되게 잘 그리고 싶습니다.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그림이라고 칭찬 받을 때마다 부끄러워지고, "제가 그림을 잘 못그려서...."라고 웅얼거리게 되는데, 이제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말이 인상 깊습니다. 남편, 정소영, 최은영 친구 분께 특별한 고마움을 다시 한 번 전한다면요.
세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책을 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나를 사랑해주고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남편은 원래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어서 저의 기쁨을 공감해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웃음) 2쇄를 찍게 되었다든가,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든가, 인터넷서점에서 만화 판매량 15위에 올랐다든가, 그런 기쁜 일들이 생겼을 때 그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잘 몰라요. 친구들과 작업실 선배들이 같이 '일희일희' 해주고 있습니다.
평소 어떤 책을 좋아하시나요? 최근 좋게 본 만화책이 있으신가요?
가리는 분야 없이 두루 읽는 편인데, 요즘은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소개해 주시는 책들을 따라가기 바쁩니다. 소설은 정세랑, 구병모, 어슐러 르 귄. 만화는 오사 게렌발과 마르잔 사트라피를 좋아합니다. 오사 게렌발의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를 정말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최근에 본 만화 중에서는 앨리스 벡델의 『펀홈』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저와 공통점이 있네요), 김예지의 『저 청소일 하는데요?』 , 정원 『올해의 미숙』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기분은 어떠신가요?
좋습니다. 책이 나오고 많은 분들이 격려와 칭찬을 해주시니 안좋을 수가 없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독자님들의 리뷰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독자들마다 각각 다른 장면, 다른 구절을 찍어서 올리시고, 전혀 예상도 못했던 부분을 인상 깊게 봐주시기도 하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디자이너와 만화가를 병행하실 생각이신지요?
네, 물론입니다. 어린이책을 디자인 하는 일도 좋아하니까요. 만화를 만드는 일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고요. 아직은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앞으로는 딱히 어느 분야라고 정하지 않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 ‘기분이 없는 기분’을 느끼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힘드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시면 좋겠어요. '이정도로 병원에 가도 될까?'라는 생각이 드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꼭 큰 병에 걸려야 병원에 가는 건 아니고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가니까요. 저는 서늘한 여름밤님의 블로그(blog.naver.com/leeojsh) 에서 언제 어떤 전문가를 찾아가야 할 지, 상담사의 자격은 어떻게 확인하면 좋은지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최근에 병원을 옮길때는 Soo님의 블로그(blog.naver.com/singpsh2008) 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구정인
어린이책을 만드는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하다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기분이 없는 기분』은 첫 만화책입니다.
관련태그: 구정인 작가, 기분이 없는 기분, 만화책,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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