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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아무도 이 책의 제목을 외우지 못했어요 (G. 김원영 변호사)

김하나의 측면돌파 (81회) 『희망 대신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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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대신 욕망』의 원작인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라는 제목이 책이 있는데, 다시 똑같은 제목으로 책을 내기가 부담스러웠고요(웃음). 중요한 건, 아무도 이 책의 제목을 외우지 못했다는 거예요(웃음). (2019. 05. 02)

[채널예스] 인터뷰1.jpg

 


“형, 저 아무래도 그냥 재활학교 고등부에 진학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히 시설 불편한 곳에 가서 고생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 하느니. 여기서 선생님들 도움 받고, 열심히 하면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


“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언제나처럼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이건 어때? 만약 네가 여기서 열심히 공부해서 네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합격했다고 치자. 근데 거기도 장애인 편의시설 같은 건 없어. 그럼 그 다음에는 또 포기하고 장애인을 위한 특수 대학에 가야 하나? 하지만 그런 데는 세상에 없지. 아니, 만약에 있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엔? 장애인을 위한 특수 회사, 특수 마을, 특수 국가 뭐 그런 곳으로 가는 건가?“


“물론…… 그러고 싶진 않지요.”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건 고등학교를 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네가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야.
이 껍질을 평생 안고 가느냐 깨고 나가느냐.“


찬오 형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바로 지금이야.”

 

김원영 변호사의 책  『희망 대신 욕망』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김원영 변호사 편>


오늘 모신 분은 “누구든 삶에서 자격 없는 인간은 없으며 누구든 당당히 욕망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변호사입니다. 마치 춤을 추듯, 리드미컬하고 우아한 글을 쓰시는 분이죠. 책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를 쓰셨고, 이번에는 개정판  『희망 대신 욕망』 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김원영 변호사님입니다.

 

김하나 : 제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을 읽고 너무 충격을 받았었어요. 그 책은 장르가 뭘까요?

 

김원영 : 제가 의도했던 것은 사회과학 에세이이면서 조금 더 문학적인 느낌을 받는 글이었는데요. 책의 장르를 크게 의식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장르적 특성들을 다 고려했던 것 같습니다.


김하나 : 그 책을 읽으면서 ‘논지를 전개하는 게 이렇게 섹시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김원영 : 제가 지금 너무 설레고 있어요(웃음).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웃음).

 

김하나 『희망 대신 욕망』  이라는 책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세요.


김원영 : 네, 이 책은 최근에 나왔지만 원래 첫 출간은 2010년이었고요. 제가 쓴 것은 주로 스물일곱 살 때였고 그 중의 일부는 20대 초반에 썼던 글들이에요. 이번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이 조금 더 알려지고 좋아해 주시는 독자 분들도 생기고 해서 개정판을 쓰게 됐습니다.  『희망 대신 욕망』 의 원작인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라는 제목이 책이 있는데, 다시 똑같은 제목으로 책을 내기가 부담스러웠고요(웃음). 중요한 건, 아무도 이 책의 제목을 외우지 못했다는 거예요(웃음). 저희 어머니도 못 외우시고, 친구들도 ‘네가 쓴 책 ‘차가운... 뜨거운...’ 그거 있잖아’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책 제목을 기억해야 검색하잖아요. 실제로 그런 글을 봤어요. 블로그에 어떤 분이 쓰셨는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을 보고서 ‘내가 이 작가를 예전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하면서 누구인지 궁금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을 읽어 보니까 ‘그때 그 책을 썼던 김원영이구나’ 하면서도 ‘그 책’의 제목이 뭔지는 모르시는 거예요(웃음). 어쨌든 제가 굉장히 애정하던 책이어서 이번에 새로운 서문과 약간의 수정들 거쳐서 개정판을 내게 됐습니다.

 

김하나 : 이번 책을 내시면서 덧붙이신 후기에 보면 ‘최근 10년여 간 나에게는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나는 매해 발전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2010년에 나온 책이고, 이후로도 9년이 지났잖아요. 이 책을 내실 때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김원영 : 사실 이 책에 굉장히 많은 허세들이 있는데요(웃음). 제가 집에서만 생활하다가 특수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정말로 매년 너무 달랐고 저는 매년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게 됐고 새로운 경험들을 계속 축적하면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이 처음 나오고 다시 9년이 흘렀는데, 지금 제가 느끼는 기분은 ‘한 해도 추락하지 않은 해가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웃음). 이 책을 처음 낸 시점 이후에 매년 조금씩 뭔가를 잃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조금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서라기보다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여러 가지 현실들, 삶의 도전들이 많이 있었고요. 그것들이 물론 가치 있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이 책을 다시 읽어 보니까 ‘이때는 나는 훨씬 더 힘이 넘치고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읽으면서 되게 좋으면서도, 부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시점의 내가 되게 부럽다’는 생각도 사실 했어요.

 

김하나 : 어렸을 때는 강원도에 계셨던 것 같아요. 강릉 쪽인가요?


김원영 : 네, 강릉에서도 버스 타고 한참 들어가는... 더 이상 산골일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웃음).


김하나 : 그런 산골에서 마당에 있는 강아지를 보고 할머니랑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어렸을 때는 나에게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장애가 있고 그것이 나아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는데요. ‘이게 나아질 수 없는 거구나’라는 걸 깨달으신 건 언제쯤이었어요?


김원영 :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잖아요. 요즘 같으면 11~12살 되면 인터넷에 물어보겠죠. 그러면 현재를 살고 있는 성인이나 같은 질병을 가진 사람들의 답변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정보들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 잘 몰랐어요. 그런데 사춘기 즈음이 되었는데 친구들이 되게 달라지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다 비슷비슷하고, 남자 아이들끼리 힘자랑하고 놀 때도 딱히 내가 밀리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떤 시점이 되니까 친구들이 엄청나게 빨리 커지고 나는 큰 차이가 없고 신체에 약간 변형이 생기는 거예요. 상체는 건강하게 근육도 생기고 그러는데 반면에 하체는 약한 상태로 있고...


김하나 : 그리고 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죠. 자고 일어나도 뼈가 부러져 있는 때가 있고...


김원영 : 네, 굉장히 많이 부러졌고요. 저는 어린 시절에 주로 그랬고 성인이 된 다음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요. 정확히 셀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경우가 10번은 훨씬 넘었었죠. 그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니까 굉장히 괴롭기는 하지만 부모님도 ‘어른 되면 안 다친대’라고 이야기를 해주시니까 ‘어른 되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빈도가 줄어들었고, 그러니까 그때 저는 ‘시간이 더 지나면 병원에 안 가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김하나 : 뼈가 부러지는 빈도가 점점 줄어드니까 내 뼈는 점점 튼튼해질 테고.


김원영 : 그렇죠, 개선되고 있다는 생각을 계속 하는 거죠.


김하나 : 그게 아니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셨어요?


김원영 : 뼈는 부러지지 않지만 ‘내 뼈의 모양이 다르구나’ 하는 형태적인 차이를 경험하게 되는 거죠. 그 전에는 ‘나는 못 걷는데 친구들은 걷는다, 나는 뼈가 잘 부러지는데 친구들은 잘 안 부러진다’처럼 기능상의 차이만 경험했다면, 사춘기가 되니까 진지하게 ‘몸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또 사춘기이다 보니까 ‘별로 아름답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하면서 깨닫게 됐죠. 그 무렵에는 ‘내가 종적으로 많이 다르구나, 같은데 조금 늦게 출발한 사람이 아니고 약간 다른 종인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면 ‘내 인생의 행동반경이라고 하는 것은 달빛이 들어오는 방, 강아지가 있는 마당, 작은 마을 언저리이겠거니’ 하고 생각하셨어요? 아니면, 그것은 너무 갑갑하다고 생각을 하셨어요?

 

김원영 : 그게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답답함은 정말 많이 느꼈죠. 그래서 저는 항상 지도를 너무 좋아했어요. 저희 누나가 보는 사회과부도가 있었거든요. 지금 같이 구글맵이 있으면 하루 종일 그걸 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없으니까, 사회과부도를 펼쳐서 상상 속으로 확대하는 거예요. 처음에 세계지도를 보고 어느 한 곳을 찍어서 서유럽 지도 페이지로 넘어간 다음에 거기에서 또 어디를 확대해 보고, 더 이상 클로즈업이 안 되면 상상으로 떠올려보는 거죠. 마치 공중에서 뭘 타고 내려가듯이, 육지로 착륙하듯이, 머릿속에 그려서 거기에 가보고 또 다른 공간으로 가고. 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콘텐츠가 없으니까 상상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오스트리아를 가든 뉴질랜드를 가든 공간은 다 똑같아요(웃음).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TV에서 본 약간의 이미지들밖에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했고, 사실 지금도 저의 꿈은 코스모폴리탄이 되는 겁니다(웃음).


김하나 : 이탈리아 가셨을 때는 언제였죠?


김원영 : 제가 대학교 때 방문 프로그램이 있어서 짧게 연수를 갔다 왔어요. 제가 해외 경험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감회가 되게 새로웠죠. 피렌체에 갔었는데 거기에 있는 ‘시뇨리아 광장’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상상을 했죠. 하늘을 보니까, 어렸을 때 제가 그런 데를 내려다보고 있었잖아요.


김하나 : 사회과부도를 내려다보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저 하늘에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김원영 : 네, 거대한 얼굴이 거기에 있는 걸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어떻게 내가 여기 있지?’ 같은 느낌.


김하나 : 강원도 시골 마을에 있던 소년이...


김원영 : 네,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의 이동이잖아요. 굉장히 놀랐죠.

 

김하나 : 저희가 오늘 김원영 변호사님 편을 녹음하면서 먼 데까지 진출을 했죠. 무려 DDP에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 안에서 녹음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원영 : 이런 날이 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 속에서 제가 김하나 작가님하고 대화를 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안 되죠.

 
김하나 : 사실은 여기에서 김원영 변호사님 모시고 팟캐스트를 녹음을 하고 있는 이유가, 저희도 부끄러운 일이죠,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이 있는 건물이 휠체어 진입이 어려워서거든요. 휠체어 진입이 되는 녹음 가능 공간을 찾다 보니까 DDP까지 와서 녹음을 하게 됐는데요. 청취자 여러분들도 지금 본인이 계신 건물에 휠체어가 진입할 수 있는지, 진입을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진입이 안 된다면 어떻게 보강을 해야 되는지, 한 번 상상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책 속에 그런 부분도 있었죠. 이를테면 정치인들이 사진을 찍은 걸 보면 장애인은 얼굴도 안 나오고 그냥 장애인이 있다는 기능적 요소로만 쓰이고 있다든가, 그리고 ‘천사 같은 장애인’ 같은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었죠.


김원영 : 요즘은 덜 쓰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그런 표현이 참 많았어요.


김하나 : 장애인은 그냥 할 수 없고, 굉장히 억울하고, 갇혀 있고, 하지만 어쩔 수 없고... 이런 식의 많은 것들을 복합해 놓은 대상으로만 보고 그 대상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면서 살아가는 사회처럼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나옴으로 인해서 깨닫게 되는 부분도 많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착한’, ‘천사 같은’ 장애인의 이미지에서 ‘욕망’이라는 이야기를 강조하시는 것도 ‘이 이야기를 내가 꺼내놓겠다’라고 하는 부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죠.


김원영 : 사실  『희망 대신 욕망』 에서는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굉장히 중요하고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에서 제가 ‘매력’이라는 말로도 표현한 것이 있는데요. 장애인에 대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희망 서사, 미담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 아니면 굉장히 비극적인 서사이고.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되잖아요. 이뤄져 봐야 덧없는. 그런데 오히려 그런 것들을 강조했을 때 실존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생생하고 복잡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래서 ‘욕망’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것이 있다는 거죠.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53

 

*속기록이 팟빵 공지사항에 올라가 있습니다. 해당 속기 파일은 사회적협동조합 AUD가 진행하는 '서울 청년 문자통역서비스'의 지원으로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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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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