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놀이터

[커버 스토리] 전이수, 이상한 세상을 사는 영재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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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가르치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표현하려는 걸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순 없잖아. (2018.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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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英才)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영재 교육 진흥법 제2조 제1호)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전이수는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강아지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인터뷰보다는 강아지와 노는 게 먼저였다. 물감이 묻은 찢어진 바지를 입고 흔들리는 유치를 잡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꼬마였다. 동시에 동화책 네 권을 펴낸 작가이자 TV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을 통해 유명해진 ‘영재’이기도 하다. TV 속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전이수 작가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카메라 앵글은 시종일관 골똘히 생각에 잠겨 그림을 그리는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누군가는 선천적인 재능이, 누군가는 후천적인 교육이 영재를 만든다고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이야기하다가도 빛나는 재능을 발견하면 혹시 아이의 재능을 썩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이수의 부모님은 영재 교육을 시키지 않고 어느 곳에든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말리지 않는 걸로 교육을 대신했다. 집 담벼락과 자동차 몸체가 그림으로 채워졌다. 때로는 놀게 내버려두는 일이 아이의 재능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영재 교육 진흥법'에 따르면 전이수는 영재가 아닐지 모른다. 그에게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의 눈에 이상해 보이는 걸 표현하는 창작자일 뿐이다. 자연이 훼손되는 게 안타까워 『꼬마 악어 타코』  를, 어른들이 휴대폰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이 이상해 『걸어가는 늑대들』 을 쓰고 그렸다. 세상에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작은 사람에게 세상은 늘 이상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세상 속에서 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닐까. 어른 작가와 아이 작가의 차이점이 있다면 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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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표현의 수단일 뿐

 

그림을 처음 그린 날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자고 있을 때 네임펜으로 엄마의 손등과 발등에 그림을 그렸다. 이수의 어머니 김나윤 씨는 작은 낙서였지만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크면 이 그림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 그대로 문신으로 새겼다. 악어와 사자와 독수리가 엄마의 몸에 새겨졌다. “발에 그린 아기 악어 타코는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손목의 문신은 뿌옇게 흐려져서 안타까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몸에 새긴 악어를 주인공으로 첫 번째 책  『꼬마 악어 타코』 를 냈다. 꼬마 악어가 사는 세상은 점점 나무가 적어지고 네모가 많아진다. 길쭉한 막대기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새들은 쉴 곳을 잃어버렸다. 이수는 꼬마 악어의 입을 빌려 더 늦기 전에 자기 자리가 오염되지 않도록 지키겠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수의 그림은 스케일이 크다. 어림잡아 40호가 넘어가는 그림이 즐비하다. 왜 크게 그리느냐는 질문에는 그림에 자신이 스며드는 느낌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꼬마 악어 타코』  와 비교하면 그림체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그리던 것보다 지금 그리는 게 더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는 그림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다 달라서 표현 방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작가 전이수에게 메시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 를 쓸 때도 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글로 쓰고 그림을 그렸다. “잘 그리고 싶지만, 잘 그린다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 잘 그린다….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 동화책은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적절하다는 직관적인 판단이었다. 아이에게도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책이었다.


이수에게 그림은 가르치거나 배우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건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표현은 각자의 몫이다.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의미로 이수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하기는 힘들 거예요. 그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죠. 자기 생각을 잘 담아내고 표현하면 그게 잘 그린 그림이지, 자세하게 그리거나 구도가 좋은 그림이라고 해서 잘 그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자신의 감정을 강렬하게 전달했다면 그게 저희에게는 좋은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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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동생 우태

                                   “나중에 그림 진짜 잘 그리는 사람이 이수를 가르치겠다고 하면 배우고 싶어?”                          
                                   "아니.그림은 가르치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표현하는 걸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순 없잖아.”

 

 

나의 사랑하는 가족


이수의 동생은 총 세 명, 우태와 유정과 유담이다. 같이 홈스쿨링을 하는 우태는 두 살 터울 동생이자 가장 친한 친구다. 우태가 쉬를 하면 이수도 같이 쉬를 한다. 혼자 혼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동생이 많아서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동생들이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힘들다고 대답했다. 같이 놀면 힘들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놀아줘야 하는 입장이 되면 자기가 하는 말에 따라야 하니까 힘들다. 떼쓰고 소란 피우고 소리 지를 때마다 동생들이 싫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아. 왜냐하면 나도 옛날에 그랬잖아. 그러니까 이해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 많이 싫지 않아.”


네 번째 책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 에는 가족을 향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림 속 부모님은 늘 고맙고 미안한 존재다. “동생이랑 내가 있으니까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 하잖아. 엄마 아빠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거 포기하고 낳아주고 길러주신 건데.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고마워.” 엄마의 꿈은 세계 일주였다. 아빠는 스키를 타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자신이 크고 나면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행을 떠난다면 같이 가고 싶기도 하다. 아직은 엄마 아빠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


「위로 1」과 「위로 2」에는 키우는 강아지 토토가 나온다. 그림 속 토토는 사람보다 훨씬 크다. 타고 다니고 싶어서 크게 그렸다고 한다. 앞으로 이수가 크면서 점점 무거워질 거라고, 그러면 강아지가 힘들어할 거라고 농담을 걸자 이수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살 빼면 돼. 나는 어른이 돼도 가벼울 거야.” 그림 속의 토토는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한다. 이수가 속상할 때 토토 옆에 있으면 마음이 느껴져서 위안이 된다고 했다.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토토도 이수의 가족이다.


전이수의 작품은 늘 사랑과 가족을 그린다. 사랑은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다. 사자와 사슴은 자연 속에서라면 쫓고 쫓기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지만, 사랑이 있다면 서로 애틋하게 쳐다보며 사랑의 하트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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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얼굴이 하트 모양이잖아.”
              “그건 몰랐네.”
              “비밀을 알고 있어야지.”
              “책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는걸.”
               “재미있는 비밀은 원래 안 알려주는 거야.”

 

 

자연 속 제주도 소년


아빠 전기백 씨는 발전소에서 일한다. 충남 보령에서 인천, 제주도로 이사했던 기억은 어린 나이의 이수가 ‘이야기가 끊기는’ 것처럼 가물가물할 무렵이었다. 그러나 인천의 공장에서 매연이 나오는 모습은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 있다.


신해철의 「너무 늦기 전에」 가사처럼, 너무 늦기 전에 환경을 지켜주고 싶었다. 제주도에 와서 그 마음이 강해졌다. 나무가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무 옆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하다, 나무 옆에 또 다른 나무를 심어주자고 생각한다.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더 나은 결과를 생각하게 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어른보다 훨씬 간명하다.


자연이 가득한 제주도에 와서 이수는 신난다. “밖에서 놀 때 재밌어. 여기 와서 다리가 계속 움직여. 신나서.” 변해가는 제주의 모습이 안타까워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도 썼다. 자연은 자신과 동생이 노는 놀이터고, 대통령 할아버지가 다른 것보다 자연을 먼저 지켜주셨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른들이 밉지 않아요?


2014년 3월에 제주도로 내려갈 당시, 가족이 쓰던 차를 세월호에 실어 보냈다. 한 달이 지나고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아빠 전기백 씨가 뉴스를 봤을 때는 그저 날씨가 추운데 아이들이 고생하겠구나 여겼다. 그렇게 큰 배가 가라앉을 수 없다고,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후에 들은 소식은 기가 찰 일이었다. 집회에 나가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세월호에 관해 알게 되었다. 이수의 부모님은 어른이 한 일이라도 고쳐야 하는 일이라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부끄러운 일은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아이들이 자라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부끄러움 때문에 공부나 하라고 면박을 주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어른에게 실망한 적이 없느냐고 묻고 싶었다. 명백한 어른의 잘못이었다. 뉴스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팠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아이들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수는 세월호 사건 이후, 선체를 들어올릴 때 기억을 되돌려서 그림을 그렸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들이 촛불을 들 때도, 백인들이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모습을 볼 때도 이수는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을, 자신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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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챙이떼

           형들 누나들을 떠올리며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올챙이를
           한 마리씩 한 마리씩 그렸다.

 

 

영재는 길러지는가


이수와 우태는 홈스쿨링을 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이수는 그곳의 통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뒤이어 대안학교에 들어갔지만 이수는 초등학교 3학년, 우태는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여전히 자기와 약속하지도 않은 활동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모는 아이가 통제에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들처럼 하지 않아서 불안할 때가 많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넘길 일을 이수의 부모님은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기존에 정해진 교과에 따라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걸 싫어했어요. 다른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이수를 키운 마음은 ‘심성 먼저, 학습 나중’이었다. 배려를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은 아이들이 어릴 때만 가르칠 수 있다. 경쟁하고 이기는 걸 주입시키는 교육은 가르칠 이유가 없다. “초등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습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기억을 더듬으면 기억나는 게 구구단 말고는 없잖아요. 중학교 즈음에나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왜 지금부터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학교를 가고 싶어 하면 그때 보내면 돼요.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안 해본 일이라서요.(웃음) 제 입장에서도 아이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10년이잖아요. 어른이 되면 떠나버릴 텐데, 그 시간이 아쉬워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영재라고 말할 때마다 이수는 기분이 좋지 않다. 이수가 보기에 자기 자신은 셈도 잘 못하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영재가 아닌 것 같다. 전기백 씨도 “영재 아니에요. 영재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라고 ‘영재설’을 부인했다. 전이수는 그저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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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이수


다른 예술작품도 이수의 그림 창작을 도와주는 원동력이다. 최근 본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와 <아무도 모른다>. 기억나는 노래는 김장훈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신해철 노래도 많이 듣는다고 한다. “음악이랑 영화가 없으면 세상이 슬플 것 같아. 슬플 때 음악을 들으면 좋아. 우울할 때면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려고 영화를 봐.”


최근 이수는 장유권 영화감독과 같이 <하늘을 달리다>(가제)라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빠의 슬픔」은 그 영화의 줄거리를 듣고 떠오른 감상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는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고, 주제곡 등도 같이 상의해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주연으로 출연시키자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부모는 지난한 오디션 과정을 거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수도 마찬가지였다.


이수는 남들 앞에서 살갑게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 낯을 가리는 편이냐는 질문에 수줍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곁눈질」에는 쑥스러워서 옆을 보는 말에 자신을 대입하는 모습이 나온다. TV프로그램 <비블리오 배틀>에 출연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앉아있는 가운데 혼자 무대에 서서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무서웠다.


영재라는 스포트라이트가 아이에게 비춰질 때마다, 악동뮤지션의 가사처럼 ‘얼음처럼 차가운’ 어른들이 아이들을 상처 입히는 자리가 되기 쉽다. <영재발굴단> 출연 이후로 그림을 팔라는 문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이수와 부모님은 기증하는 방식으로만 그림을 내보내고 있다. 이수는 카메라가 신기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좋다. 그러나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게 더 재밌다.


요즘 이수의 관심사 중 하나는 ‘입양’이다. 동생 유정이가 공개 입양으로 이수의 가족이 되면서 『새로운 가족』 이라는 그림책을 완성했지만, 아직 입양에 관해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결혼하지 않은 엄마가 아이를 데려가면 국가에서 매달 7만 원이 나오고, 가정에 아이가 입양되면 15만 원이 나오지만, 아이가 고아원에 가면 100만 원이 넘는 돈이 나온다. 여전히 이수의 눈에는 이상한 일이기에, 앞으로 그림을 그려 나온 수익 중 일부는 미혼모센터에 기부하려고 한다. 그림으로 못다 한 이야기는 앞으로 에세이로도 펴낼 예정이다. 이것이 작가 전이수가 세상을 향해 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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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꿈

          “어제는 무슨 글을 썼어?”
          “즐거움은 꼭 기억될 것이다.”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전이수 글그림 | 주니어김영사
여름이 가고 난 뒤에도 바다가 깨끗하기를 바라는 마음, 회색빛 도시 속에 집을 지은 새들을 보고 설레는 마음까지 전이수의 곁에는 늘 자연이 있고,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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