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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 “모든 사람이 일상의 다정한 전사가 되었으면”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 『당신이 옳다』 사람을 살리는 ‘심리적 C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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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 마지막 사회적 역할이다, 생각할 만큼 아주 본질적인 거였어요. (2018.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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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제공: 인사동 도도카페


 

식수 부족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 한 디자이너가 큰 공(드럼통) 모양의 물통을 만들어 사용하게 했다. 양동이에 물 길어 오다가 절반을 쏟았던 아이들은 공 모양의 통 덕분에 공놀이를 하듯 통을 굴리며, 동시에 물을 하나도 쏟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 통에 물을 저장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일상적이고 간단한 기술로 삶을 바꿔놓는 이 적정기술 사례는 어느 날 정신과 의사 정혜신에게 “화선지 위의 먹물처럼”(13쪽) 스몄다. 전문가들의 심리학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적정심리학’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이번 책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당신이 옳다』 에 담은 정혜신의 30년 치유 활동 경험은 공 모양의 물통처럼 우리들 스스로가 치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실전 적정심리학이다.


“지금이 평화시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길을 걸어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눈물을 갑자기 뚝뚝 흘릴 수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일상이에요.”라고 말하는 정혜신. 트라우마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온 그는 ‘심리적 CPR’이라고 부를 만한 질문 하나,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는지 목격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한 ‘다정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존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충분한 공감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정혜신은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심장 충격기 같은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간단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이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성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실화처럼 심리적 CPR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은 꼭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살리게 된다.(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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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이게 책이 아니에요


이번 책에 대한 작가님의 남다른 마음이 유독 크게 느껴졌어요. 책 나오고, 어떠세요?

 

전에도 책을 내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쓸 때 막 몰입을 하다 책이 나올 때쯤 되면 나는 멀리에 있는 느낌이잖아요. 그랬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인터뷰도, 북토크도 하겠다고 했어요. ‘심리적 CPR’워크샵도 하고 싶다고 했죠. 왜냐하면 그것을 하려고,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책을 쓴 거니까요. 우리 사회는 전문가를 만나기도 전에 일상에서 소리 없이 쓰러져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그런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 책에서 ‘이렇게 하면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라는 말을 막 얘기하고 싶었고요. 그 이야기를 할 도구가 책이었던 거예요. 말하자면 나한테는 이게 책이 아니에요. 이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면 그들이 마구 자기 일상에 들어가 다정한 전사가 되었으면 했고요. 이것이 내 마지막 사회적 역할이다, 생각할 만큼 아주 본질적인 거였어요.

 

방금 말씀하신 다정한 ‘전사’라는 표현도 그렇고요. 책 앞부분에 실린 ‘읽는 이에게’라는 글에서 이명수 작가님이 표현한 “고통의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온몸으로 그것을 감당하며 전진해야 하는 최전방 치유자”라는 말들이 결코 은유적으로만 들리지 않았어요. 이런 표현을 써야 했던 이유를 직접 듣고 싶어요.


저는 지금이 평화시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길을 걸어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눈물을 갑자기 뚝뚝 흘릴 수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일상이에요. 아닌 듯 살지만 실제 내면은 그렇지 않다는 걸 저는 너무 잘 알죠. 물론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이성복 시인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걸 계속 감지해왔으니까 다급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심지어 이걸 트라우마 현장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라 곁에서도 느끼거든요. 내 후배, 내 친구, 내 조카, 내 지인, 이런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내면이 이런 거죠.

 

그래서 심리적 CPR이라는 표현을 쓰신 거군요.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요.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이 우리 일상 속에서 계속 벌어지거든요. 삼시세끼 끼니를 먹듯이 찾아와요. 어떻게 이럴 때마다 상담가를 찾아가겠어요. 그럴 수 없잖아요. 우리 삶이라는 것, 일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곁에 있는 모두가 다정한 전사가 되어야죠.

 

“우울은 삶의 보편적 바탕색”(83쪽)이라고도 하셨죠. 그렇다고 한다면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적정 기술, 적정 심리학에 관한 것이 더 많이 이야기 되어야 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전문가와 상의하세요”가 나오잖아요. 하지만 우리 마음이 어렵거나 어떤 갈등이 있을 때 전문가를 찾아서 어떤 도움을 받았었는지를 하나씩 성찰하고, 복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진짜 도움이 되는 도움이 무엇인지, 그것의 본질이 뭔지 잘 따져봐야 해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네, 깨달을 수도 있거든요. 집밥처럼 말이죠. 맛은 셰프의 음식보다 덜할 수 있지만 집밥만 잘 먹을 수 있다면 평생 셰프의 음식 안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진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도움이란 무엇인가, 그 실체가 뭔가, 이걸 알아야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일상의 회복이나 일상적 교감에 집중하지 않고 전문가적 치유에만 기대려는 행위, 그게 일상의 외주화다.(중략) 일상의 외주화로 인한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내 삶의 고통과 외로움이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 영역으로 한계가 지어지는 순간 나의 존재 자체는 다시 소외되고 우울증 환자 일반으로 대상화되기 쉽다. 고통으로 피폐해졌을 때 사람은 무엇보다 정서적 공급이 시급한데, 그런 순간에 결정적으로 정서적 소외가 일어나는 것이다.(81쪽)

 

그렇다면 이때 필요한 ‘적정심리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CPR이라는 게 어린 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단순한데 결정적인 순간에 성인의 목숨도 구하죠. 단순하지만 목숨을 구할 정도의 결정적인 의학 지식이 다 집약되어 있는 건데요. 20년 전만 해도 사람이 쓰러지면 아무도 손쓰지 않고 그냥 들것에 실어 보냈거든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의학자들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연구하고, 업데이트해서 최종적으로 만든 것이 CPR이에요. 파괴력이 있는 근본적인 동시에 단순한 것인데요.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며 발견한 지점인 거죠.

 

그 지점이라는 것은 ‘존재를 확인 받는 것’이고요.


존재의 핵심까지 들어가 그 지점에 집중하고 그 지점에 공감을 퍼부으면 목숨을 구한다는 거예요. 반드시 반응해요. 그 존재에 들어가는 과정과 과녁에 관한 이야기,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 등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한 것이 결국은 그 한 지점을 들어가기 위함이 아닐까 해요.

 

이를 테면 영혼의 심장이겠군요. 존재를 온전히 확인하는 심리적 CPR이 자극하는 부분이란 말이에요.


그렇죠. 바로 그 부분만 자극을 하면 멈춘 심장이 뛰어서 온몸이 살아나듯 사람이 살 수 있어요. 존재의 핵심, 그 존재 자체를 봐야 하는 거예요.

 

 

공감은 마음에 봄을 불러오는 것


우리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러나 많이 하지 않잖아요. 


감정은 믿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계속 달라지니까요. 신념, 가치관, 이성, 이런 것은 영원할 수도 있고 일관되지만 감정은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그것 때문에 겪는 우리의 심리적 대가가 너무 크죠.

 

“감정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165쪽)만 잘 구분하면 되겠죠.


그럼요.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마음껏 공감할 수 있어요. 행동이 옳다는 게 아니에요. 그 감정이 옳다는 거죠. 그걸 알면 거기서부터 화해가 가능해져요. 그걸 못하니까 공감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공감하지 못하고요. 그러니까 공감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억울하고, 서운한 거예요. 그걸 잘 구별해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면 얼마든지 변화를 목격할 수 있어요.


책에는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간첩 조작 고문 피해자 선생님이 있는데요. 법정에서 판사가 최후진술의 기회를 줬대요. 보통 그 시절엔 그런 기회도 안 주는데 말이죠. 그래서 피를 토하듯 거의 한 시간동안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거예요. 결국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거든요?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긴 했는데요. 그 분 말이 자기는 그 판사가 밉지 않았다더라고요. 그게 사람 마음이에요. 자기가 할 말을 처음으로 들어준 사람이니까요. 자기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가 고맙다고 하는 거죠. 감정은 별개인 거예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무리 지났다 하더라도 공감 받고, 공감하는 일은 유효하다는 점일 거예요. 

 
존재 자체가 받은 모멸감, 상처는 항상 살아 있으니까요. 과거가 아니죠. 시간이 지났어도 심리적으로는 현재진행형이고요.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요. 게다가 부모가 과거에 자녀에게 한 잘못을 사과한다고 해보세요. 설령 자녀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가 얼마나 치유적인 행위인가요. 자녀는 부모의 그 말이 얼마나 고맙겠어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라는 거예요.

 

역으로 만약 과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요. 뒤늦게라도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해야 하는 걸까요?


내게 상처 준 사람에게 사과를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은 당황하거나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하는 것이 왜 의미가 있느냐면 내가 사과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내가 상처에 눌려서 그 사람을 피하거나 위축되어 살았었는데 그걸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거든요. 그 사람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당당하게 말을 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예요. 내가 한 반격인 거잖아요. 피해 다니다가 나를 드러낸 거잖아요. 사과를 떠나서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그럴 수 있죠.

 

어버이연합 노인 분과의 대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고향이 어디세요?”부터 시작해 그의 존재와 감정에 집중하니 스스로 생각을 바꾸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유가족한테 그러면 되냐, 안 되냐”하면서 백분토론을 한들 받아들일까요? 백분토론이 아니라 밤샘토론을 해도, 일 년 동안 쫓아다니면서 설득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아버지 그 집회 나가지 마세요”라고 아무리 해도 안 돼요. 그분에게 우울증이 좀 있는 것 같으니 항우울제를 먹인다고 되겠어요? 안 되는 거죠. 그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커요. 그런데 존재를 바라봐주면 단번에 변화해요. 저는 그것을 봄을 불러오는 거라고 말하는데요. 얼어붙은 한강물을 깨겠다고 곡괭이질을 하면 언제 다 깰 수 있겠어요. 봄이 오면 풀리는 거잖아요. 공감이라는 게 그렇게 사람 마음에 봄을 불러오는 거예요. 하나도 기운 빼지 않고, 단번에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말씀하시는 ‘공감’이 흔히 생각하는 공감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공감에도 연습이 필요할 것 같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이에요. 아버지가 저래도 이해해드려야지, 하면서 꾹 참는 것, 납득하지 않은 채 “네”라고 하는 것은 감정노동이지 공감 아니에요. 납득이 안 가면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때 어떤 마음이었던 거야?”라고 물어보면 되죠. 물건을 들어 엎어도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잘했다고 하는 건 아닌 거죠. 모르는 걸 꿀꺽 삼키면 반드시 탈이 나잖아요. 물어봐야죠. 논쟁 하자는 게 아니라 진짜 그 마음에 눈을 맞추고 물어보면 돼요. 그런 식으로 존재를 짚어주면 반응하게 되어 있어요. 그건 너무나 고마운 터칭이거든요. 이미 그 과정에서 치유가 시작돼요. 

 

이때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경계’를 인식하는 공감이잖아요. 나의 경계를 침범 당하면서까지 하는 공감은 감정노동일뿐이라는 말씀이 중요하게 들리는데요.


그건 타인을 공감한다면서 나에게는 반공감적인 사람이 되는 거죠. 왜 나한테 그런 대우를 하나요? 나를 왜 이유도 없이 힘들게 해요? 공감을 자기한테 강요하는 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요. 그건 공감이 아니에요. 공감은 반드시 양쪽이 다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다 자유롭고, 다 홀가분해지는 게 공감이거든요. 흔히 저한테 힘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힘들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시는데요. 힘들기만 하지 않아요. 힘든 것도 있죠. 그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만나는 과정에서 그 존재를 터치하고 그가 반응하면서 살아나오는 걸 목격하면 내가 얼마나 기운이 나고 얼마나 보람되겠어요.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힘든 것 같지만 또 힘들지 않죠.

 

이건 아주 직관적이고 멋진 조언인데요. 공감을 하려고 할 때 절대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 하지 말라고도 했어요.


‘이 사람은 이럴 거야’라고 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거든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요. 그런 경험을 몇 번만 하다보면 충조평판 안 하게 돼요. ‘혹시 이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해서 물어봤는데 전혀 다른 게 나오는 경험을 몇 번 해봐요. 더 이상 넘겨짚지 못해요.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돼요. 그런데 한 번도 안 물어봤기 때문에 충조평판을 계속 하는 거거든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경험을 실제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으니까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해보면 알겠네요.


저는 진짜 저희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단 한 번도 안 하고 키웠거든요. 사람들이 물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가능해요. 어떻게 잔소리를 참느냐고 하는데 참는 게 아니에요. 어렵지 않은 게, 아이들도 다 이유가 있어요. 물어보면 돼요. 미리 생각하지 않고, 넘겨짚지 말고 물어보는 거죠.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한 건데?”, “무슨 생각이었어?” 물어보면 뜻밖의 얘기를 한다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 잔소리를 안 하게 돼요.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건 아이도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 거든요. 저런 생각까지 하는구나, 저런 마음가짐으로 지내는구나, 의젓하구나, 알게 돼요. 그러면 잔소리 안 하게 되죠. 이건 다섯 살부터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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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을 먹든 이유가 있다


“지금 나는 전통적 의미의 정신과 의사와 다를 수도”(22쪽) 있다는 말을 하셨어요.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정신과 의사란 아주 기능적인 직업군이에요. 기능적으로 정신의학적 범주 안에서 사람들을 보도록 고도로 훈련되어 있는 사람이죠. 가령 어떤 사람이 회사 사장이지만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을 수 있어요. 다른 정체성을 다 망각하고 오로지 회사 사장이면, 집에 와서도 회사 사장이면 그건 망가진 사람인 거죠. 그런데 정신과 의사라는 게 묘해서 사람의 정신과 심리에 관한 전문가라고 하면 이게 아주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온전한 한 인간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은 존재로 확대해석을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자신도 그럴 수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 정신과 의사는 다만 아주 기능적인, 어떤 면에서는 테크니션에 가까운 경우도 너무 많거든요. 심지어 요즘은 워낙 우울증 정보도 많아서 아예 약을 먹어야겠다고 정하고 의사를 찾아오면 의사가 그렇게 처방을 해주기도 해요. 그게 뭐예요.

 

“의사는 충실한 약사가 되어준다(69쪽)” 같은 강한 표현을 쓰시기도 하셨는데요. 이런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비판적인 이야기라기보다 인정해야 한다, 인지해야 한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런 현주소에 대해서 말이죠. 의사를 만나는 사람도 물론이고 의사로 사는 사람도 자신을 객관화해서 알아야 한다, 자기를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저는 의사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이 된 정신과 의사라고 하는 직업적인 정체성 안에 저 자신을 가두길 원치 않아요. 그건 대단히 기능적 존재라는 느낌이 많이 들고요. 나는 온전히 한 사람이어야 더 온전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시대의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적 범주 안에 들어가면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고요. 그런 의미였어요.

 

점점 더 정신과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커지고 있잖아요. 동시에 정신과 의사의 목소리도 많아지는 환경이고요. 그런데 조금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서 질문 드리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고통스러우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과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느냐, 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게까지 일반화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지금 정신과 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너무 폭력적인 이야기죠. 사람마다 다른 거고요.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죠. 그래서도 안 되고요.

 

작년 출간된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에 ‘영감자’로 이름을 올리셨는데요. 이번에도 같은 이름으로 이명수 작가님이 기재되어 있어요. ‘영감자’란 어떤 의미이며, 이렇게 이름을 함께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어마어마한 둘 사이의 연대와 소통, 우리의 삶 속에서 나와요. 누가 더 주도해서 쓰고, 이런 것은 있으나 모든 작업이 사실은 함께 하는 작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영감자라는 말을 썼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죠. 그 시너지라는 것은 정말 지구 최강인(웃음) 것 같아요. 그런 존재가 내게 주는 힘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사인도 ‘혜신명수’라고 하는 걸요.(웃음) 붙어 있어야 의미가 있으니 하나로 움직이는 거예요. 활동만 같이 하는 게 아니고 심리적, 정서적으로 맞물려 움직여요. 그럴 때 온전함을 느끼고요. 한편으로는 서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위험부담이 크다고도 해요. 다른 삶에서 거의 재미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자극이 너무 크고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요.

 

지난 5월 이명수 작가님이 심정지를 겪으셨잖아요. <한겨레> 인터뷰를 봤어요.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너무 취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그래서 하고 있었는데요. 심정지를 겪으면서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둘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말을 했는데요. 이제 죽을 준비가 된 것 같다고 했어요. 살면서 확인해야 할 것은 다 확인했다, 정말 만족스럽게 사랑받고 사랑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것을 서로 느낀 거예요. 그래서 다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사는 시간이 10년이 됐든, 20년, 30년이 됐든 본질은 같은 거죠. 이번에 심정지를 겪으면서 우리가 진짜로 여한 없게 살았구나, 확인했어요. 진짜 저는 이번 책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었어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것까지 했으니 진짜 여한이 없죠.

 

이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군가와 애정을 가지고 관계를 하는 사람들에게, 라고 생각하니까 결국 모든 사람인데요.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하는 책이고요. 그것이 목표였어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봤으면 좋겠어요. 그 중 제일 봤으면 하는 사람을 얘기하라면 선생님과 부모고요. 꼭 다 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인터뷰 기사를 읽은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내가 어떤 마음을 먹거나 어떤 생각을 해봤다고 해도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당신은 옳다,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 어떤 마음을 먹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에 귀 기울여주고 주목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 | 해냄
사람의 마음에 대한 통찰과 치유 내공을 밀도 높게 담고 있다. 이론과 통계, 정형화된 사례에 의존하는 기존의 심리학 책과 달리, 풍부한 현장 경험과 육성을 통한 사례로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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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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