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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시인 “시는 절대 어려워서는 안 돼요”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예술은 또 다시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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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밟는 일은 사실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근심스럽기도 한 거죠. 열매를 향해 가는 것인데 과연 제대로 열매를 맺을 것인가, 생각한 거예요. (2018.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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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古代)의 융융한 세계”를 꿈꾼다는, ‘꽃 밟을 일을 근심’하는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 1987년 등단한 이후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온 장석남 시인. 그가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이후 5년 만에 여덟 번째 시집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을 냈다. 등단 30년 되는 해(2017년)에 출간된 시집이기도 해 더 의미가 깊었던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떠나온 자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떠나온 자리란 곧, ‘고대(古代)’다. 시인은 대장간을 지나면서도(「대장간을 지나며」), 기차를 타면서도(「검표원」), 고대를 탐구했다. 그에게 고대는 ‘크고도 깊은 쓸쓸한 나라’(「녹슨 솥 곁에서」)이며, ‘조용한 흥얼거림’(「햇소금」)이 들려오는 곳이었다. 즉, 고대란 우리가 떠나온 동시에 가 닿을 곳일 터. “우리의 과거는 우주에서 왔지만 또 우리의 미래도 우주로 가는 것”이라는 시인은 올 겨울 절에 머물면서 온 존재가 합일 되는 세계를 상상한다. 시인의 절에서의 하루를 떠올리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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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할 수 없는 부분들


5년 만에 여덟 번째 새 시집을 내셨어요. 한 권의 시집에 많은 시간의 무게가 담겼다는 느낌입니다.

 

5년 전에 시집을 냈다고 해서 그 5년 동안의 이야기는 아니겠죠. 살아온 이력의 전체가 다 담기는 걸 텐데요. 5년 동안 조금 전개된 것이 있다면, 어떤 축적된 것이 있다면 있겠죠. 굳이 얘기해서 그 전의 시들이 사는 이야기에 관점이 더 많이 있었다면 보다 떠나온 자리, 개인이든 공동체든 인류든, 떠나온 자리에 대해서 굉장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떠나온 자리요.


이제 나이가 꽤 됐잖아요. 저희 어머니도 연로하신 나이가 됐고요. 그러다보니 어디로 가는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는 것일 텐데 말이에요. 편의적으로 그것을 ‘고대(古代)’라는 이름으로 붙이기는 했으나 이름 붙일 수 없는 데죠. 말이 없던 자리, 그런 자리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말이 생기기 이전의 저 고대(古代)의 융융한 세계를 꿈꾸어본다.
삶이 덜 모순적이었으리라.
훨씬 넓었으리라.

다시 한살씩 어려지기로 하자.
말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에게로 가자.
그저 울음으로만 말하는……(114쪽, 시인의 말)

 

고대라고 하면 이전의 시간인데요. 굉장히 먼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어떤 시의 제목은 「고대에 가면」이기도 하죠. ‘가다’라는 동사를 사용한 것이 흥미로워요.


시간적으로는 과거인지 모르지만요. 우리가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죽음도 ‘돌아가셨다’고 말하고요. 결국 그것으로 향하는 것이겠죠. 전 우주가 되는 것일 테고요. 우리의 과거는 우주에서 왔지만 또 우리의 미래도 우주로 가는 것이죠. 합일 되는 것, 그런 세계를 상상해본 거예요.

 

말씀에서도 느끼지만 시 전반에도 불교적인 감각이 많이 느껴져요.


지금도 절에서 왔는데요.(웃음) 화엄사에 며칠 있다가 오늘 온 거예요. 다시 가서 있어볼 예정인데요. 불교 공부를 깊이 한 건 아니지만 조금씩 해 나가다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네 번째 시집의 「번짐」 같은 것들은 생각해보면 그렇죠. 오두막이 나비가 되기도 하고요. 여름이 가을이 되고, 또 삶은 죽음이 되죠.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 삶을 환하게 비쳐주고요. 죽음이라는 것도 삶 밖으로 나가는 것일 테죠. 말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들이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것이 불교적이라면 불교적일 수 있겠죠.

 

이번 시집에서 그런 생각이 특히 많이 담긴 시를 꼽아주신다면요?


2부 제목이 ‘한 소식’인데요. 한 소식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깨달음을 이야기해요. 시집 제목도 한 소식이라고 할까 했는데 너무 큰 말 같아서 그러진 못했고요. 「눈사람의 스러짐」 같은 시도 실은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우리가 자유 이야기를 하잖아요. 대자유를 얻기 위해서 수행을 하고요. 그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세계에 가고 싶다는 걸 텐데요. 우리 삶이 눈사람의 스러짐과 같지 않나 생각했어요. 눈사람이라는 건 본인이 형성된 게 아니라 만들어놓은 것이죠. 또 만들어놓고 가버리잖아요. 그러면 그 눈사람의 외침이 녹고, 흘러서 수로를 따라 가는데요. 녹아서 스러지는 게 자유를 얻은 것인가, 하는 한계 같은 것들을 얘기했다고 볼 수 있어요.

 

시라는 것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최대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말 이전의 것들, 즉 고대의 정체를 찾아가는 시인의 노력은 더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한 소식을 한다고 하는데요. 순간적인 것이죠. 「바람과 대와 빛과 그릇」도 그런 거예요. 제 방 이야기인데요. 방 앞에 대나무가 있어요. 대나무가 바람 불면 눕잖아요. 그러면 컴컴했던 방이 일순간 잠시 환해져요. 구석에 그릇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 그릇도 그 틈에 환해지고요. 그 환해진 틈에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에서 사용하려고 둔 그릇은 아니죠. 근데 그 그릇이라는 것도 인간이 빚은 거잖아요. 그것이 순간 환해졌고, ‘이게 뭐지?’라는 느낌이 오면서 나는 바람 족속이었고, 대와 그릇과 일가였다,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다시 환해지길 기다리니까요. 물론 바람은 유동체니까 인간의 삶과 비슷하겠죠. 빛도 그렇고요. 아름답다고 여기는 그릇과 빛과 대나무와는 일가였던 거예요. 그렇죠?(웃음) 그 관계들이 재미있죠. 그동안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불교적 인식이죠. 봄으로써, 관계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에요. 원래는 없었던 것인데 말이죠.

 

감씨 한 알에 감나무 전체가


너무 큰 말이라 제목 삼지 못했던 ‘한 소식’ 대신에 제목에 사용한‘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는 「입춘부근」의 시구예요.


이런 저런 제목을 놓고 얘기하다가 정한 건데 괜찮았어요. 보니까 꽃 얘기가 꽤 많더라고요. 이전 시집들에도 그렇고요. 전 몰랐어요. 잘 몰랐는데요. 우리가 나무 입장이 돼보지는 않았지만 꽃이라는 것은 식물로서는 청춘이잖아요. 꽃이 필 때는 식물들의 연애기간일 테고요. 열매로 가는 과정이죠. 한편 봄이 오는 것(입춘)은 다시 나이테 하나를 보태는 일인데요. 마침 그때가 저의 인생에서는 꺾여서 후반 쪽으로 가고 있다는 인식 같은 것들도 있었죠. 「입춘부근」은 홀로 밥 먹는 이야기인데요. 꽃을 밟는 일은 사실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근심스럽기도 한 거죠. 과연 제대로 열매를 맺을 것인가, 생각한 거예요. 또 우리는 꽃을 밟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고요. 거기에 기러기 소리와 우리 내면의 시끄러움 같은 것들이 동시에 무안하게도 ‘너 혼자 밥 먹니? 살려고?’라고 한 것 같은 그런 게 있던 거죠. 그런 면들을 얘기한 거예요.

 

전해주시는 이야기들이 쉬운 얘기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시인의 언어는 그렇지 않죠. 무척 자연스러운, 일상의 언어예요. 그런 시어가 주는 울림이 참 특별하더라고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사람이 공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생을 쉽고 간편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굉장히 공감하게 됐어요. 공부를 했는데 인생이 더 복잡해지면 공부의 목적에 맞지 않죠. 역시 시라는 것은 농담 삼아 얘기할 때도 쉽고도 간편한 언어로 인생의 깊이를 얘기하려고 하는 건인데요. 그게 왜 어려워야 하나요? 절대 어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아는 좋은 시, 오래 읽어서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시들은 공통적으로 또 그런 거죠. 말들이 꼬인 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가 왜 짧겠어요? 짧으라고 시죠.(웃음)

 

나는 일말의 유보도 없이 감탄한다. 쉬운 문장들이 차근차근 모여 전체가 깊어지는 좋은 사례다.(중략) 물론 이런 매혹적인 애매함이 시 내부에 넓은 사유의 공간을 열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103-104쪽, 신형철 평론가 해설 부분)

 

감 씨앗 같은 것 보세요. 얼마나 간단해요? 그런데 그 감씨 한 알에 감나무 전체가 들어 있잖아요. 그 자체가 감나무예요. 시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말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말이 아닌 행간 속에 감의 씨앗 같은 핵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들여다보면 그것으로부터 전체가 다 나오는 거죠. 그런데 감씨가 어려워서야, 말이 안 되죠. 꽃도 그렇잖아요. 알기로 치면 꽃처럼 어려운 게 없죠. 하지만 그냥 전체가 쫙 오는 거잖아요. 시가 어려워서는 안 돼요. 꽃처럼 쫙 온 다음에 그 의미가 보는 만큼 보이는 것이에요. 생명은 낳는 것이지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만들어서는 생명이 되지 않잖아요. 어려운 것은 만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드니 어렵죠. 낳아놓으면 안 그럴 거예요.

 

그렇다면 시를 낳는다는 건 어떤 걸까요?


굳이 찾아온 단어들이 어렵죠. 자기 생각으로 영글어진 것, 체험이나 느낌으로 영글어진 것이 낳은 시일 거예요. 사실은 쉬운 시를 쓰는 게 더 어려운지도 몰라요. 살아내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려운 시들을 보면 삶이, 인생이 느껴지지 않아요.

 

지금 시인 안에서 영그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궁금해지네요.


우리가 작년에 유래 없는 체험들을 했잖아요. 일련의 사회 현상들을 보면서 저의 일과 결부시킨 것이 있었어요. 촛불이라는 도구로 말하자면 무혈혁명을 이룬 것인데요. 혁명은 빨리 죽는 거예요. ‘혁’자가 ‘가죽 혁(革)’자거든요. 빨리 죽고 다시 나는 건데요. 사실 시라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던 것, 안다고 생각한 것들을 빨리 쳐내 새 가지가 나도록 갱신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시를 읽으면 갱신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살고 싶다는 에너지를 주는 시도 있고요. 쓰는 입장에서도 그렇거든요. 무서운 말이긴 한데 내가 죽어야 내가 난다, 는 말도 있고요. 시라는 것도 그런 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빨리 의심하고 빨리 묻어버리고 새싹을 돋게 하고 그것이 굳어지면 또 빨리 묻고요. 갱신하고, 갱신하면서 조금씩 나이테가 늘어나는 것이죠. 그 한 칸 늘어나는 게 쉬운 게 아니죠. 그렇죠?(웃음) 그런데 우리는 비로소 나이테 하나가 조금 늘어난 거죠. 죽음으로써 말이에요.

 

연작시를 많이 쓰시잖아요. 여러 편인 듯, 한 편인 듯 뻗어나가는 시들인데요. 함께 읽는 재미가 있어요. 여기에는 쓰는 입장에서의 즐거움도 있는 거겠죠?


그럼요. 맨 앞에 수록한 「소풍」과 「불멸」도 제목이 연작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 대화를 하고 있어요. 사실 크게 보면 다 연결이 되죠. ‘수묵정원’ 연작은 의도적으로 10편을 쓴 것이지만 「마당에 배를 매다」, 「배를 밀며」, 「배를 매며」 같은 시들은 한 편이 나온 후에 자매편처럼 같이 나온 거예요. 세 편이 앞뒤를 구성하죠. 이 시집에 있는 「문을 얻다」와 「문을 내려놓다」 같은 시도 그렇고요. 그것은 한 면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면이 있고, 측면이 있잖아요. 측면이라고는 하지만 그쪽 가면 또 그것에 정면이고요. 그런 면들을 보게 되니까 서너 개가 짝을 이루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시를 쓸 때는 물론이고 한 권의 시집에 묶었을 때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도 있을 것 같아요. 쓸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떤 시가 따로 떨어져 있던 다른 시의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고요.


차례대로 써지는 게 아니잖아요. 수년 동안 쓰인 시들을 배열하다보면 2년 전에 쓴 시와 지금 쓴 시가 호응하기도 하고 그렇죠.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것끼리 묶어 놓으면 이 시로 질문하고, 이 시로 답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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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 자체가 새로움


교단에 계시는데요. 학생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 있으세요?


우리도 그런 나이를 겪어서 알긴 하지만 잘 쓰려고 하는 면이 있어요. 이해는 할 수 있죠. 등단하고 싶고, 이름도 좀 나고 싶다,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자꾸 시를 쓰는 거죠. 인생을 안 쓰고요.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거예요. 자기를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리고 시를 써서 즐거워야 하는데 마치 숙제처럼 해요. 시의 즐거움을 알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것인데 그것을 마치 입시 도구처럼 대하는 거죠. 학생들이 그런 걸 통과해서 오니까요. 기준점이 자기 안에 있어야 하는데 바깥 어딘가에 있는 거예요. 어떤 선생님은 그렇게 가르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래서는 절대 좋은 예술가가 되긴 어렵겠죠.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본인이 지겨워서 못 쓰겠죠. 재미가 없으니까요. 이런 얘기들을 하는데 잘 안 먹히죠.(웃음) 그게 좀 안타까워요.

 

시인의 30년 시 삶도 되짚어보고 싶어요. 시는 어떨 때 시인에게 오는 건가요?


사는 건 비슷하잖아요. 안 쓸 뿐이지 쓰는 사람과 사는 건 다 비슷한 것인데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안 보이는 것에 대한 궁금증 같아요. 제게 그런 질문들이 끊임없이 온 거죠. 안 보이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 사진에서 ‘아이레벨숏(eye level shot)’이라고 하잖아요. 서서 사진을 찍으면 똑같아요. 남들 보는 것 나도 보는 거죠. 그런데 카메라를 바닥에 놓는다든가 높이 놓으면 다르죠. 정보적인 것을 뛰어넘는 게 있어요. ‘주역’을 보면 ‘겸괘(謙卦)’라고 있어요. 이 겸 자가 ‘겸손할 겸’인데요. 64괘 중 아주 선호하는 괘예요. 산이 땅 속에 묻혀 있는 이미지인데요. 낮은 자리죠. 안 보던 것, 못보고 지나친 것을 보는 거고요. 시 쓰는 사람들은 좀 모자라잖아요.(웃음) 부적응자고요. 그러니까 그런 게 보일 수밖에 없고요. 시는 그런 걸 보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런 면들을 보는 즐거움을 알게 된 거죠. 걱정스러운 인생이에요.(웃음) 개두릅나물과 비슷해요.

 

개두릅나물을 데쳐서
활짝 뛰쳐나온 연둣빛을
서너해 묵은 된장에 적셔 먹노라니
새장가를 들어서
새 먹기와집 바깥채를
세 내어 얻어 들어가
삐걱이는 문소리나 조심하며
사는 듯하여라
앞산 모아 숨쉬며
사는 듯하여라
(70쪽, 「개두릅나물」 전문) 
 
시, 그리고 시인을 볼 때면 경외감이 드는 동시에 걱정도 함께 들거든요. 종종 시의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 때가 있는데요. 여기에 대해 시인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명이, 기술이라는 것이 발전해가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달에도 가고, 핵도 만들죠. 그런데 궁극적인 것으로 가서 문명을 내다보면 참 야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또 한편으로는 그런 질문도 하고요. 과연 발전이라는 게 있을까? 저는 학생들과 그런 토론을 할 때도 있어요. 모더니즘, 현대성을 이야기하고, 시라는 것에도 새로운 게 있다는데 뭐가 새로운 것일까, 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거든요. 형식이 새로운 게 새로운 것일까요? 그렇다면 1930년대의 새로운 시 형식 실험 같은 것들, 이상의 시를 넘어설 새로움이라는 게 있을까, 그런 생각할 때가 있죠. 저는 회의적이에요.

 

시는 기술과는 다른 것이라는 말씀이시죠.


시란 끝없이 발전하는 게 아니에요. 한 개인에 있어 발전은 가능하죠. 못 보던 세계를 계속 봐야 하니까요. 그렇지만요. 정경화의 바이올린 기술을 그대로 받아서 가면 좋지만 아니잖아요.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또 하는 거잖아요. 미당이나 보들레르의 시력을 이을 수 없어요. 예술은 걸음마부터 다시 하는 거예요. 예술은 개인이 하는 것이고, 개인의 삶이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해가듯 사다리를 이어가는 게 아니죠. 자기 독립성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이미 낡은 것을 새로운 것이라고 일종의 강박을 갖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예술은 발전하는 게 아니고 또 다시 쓰는 거예요. 거기에 내가 있으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새로움이죠. 나라는 인생이 세상에 없던 거니까요. 내가 있으면 나라는 이름의 지문이 새로움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지금 절에서 지낸다고 하셨잖아요. 시인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이제 얼마 안 됐어요. 가니까 너무 좋아서 방학 내내 있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절 체질인 것 같아요. 딱 맞아요. 목탁 소리, 새벽 예불 소리도 좋고요. 절에서 재미있는 체험을 했는데요. 지금 묵고 있는 절에 일제 때 일본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소녀 시절 절에 올라온 할머니가 있었대요. 거기서 일생 지내신 거예요. 해방 후에도 말이죠. 70년 정도 됐겠죠. 그 절에서는 아주 전설 같은 할머니예요. 그 수행만으로도 부처가 된 거죠. 그런데 그 보살님이 돌아가시고 선한 귀신이 되셨다는 거예요.(웃음) 소원을 들어주는 보살님처럼요. 그런데 어제 절에서 자는데 문득 문을 툭 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바람도 안 불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쭈뼛했죠. 그게 그 할머니라고 하더라고요. 다음에 또 그러면 그 할머니니까 문을 열어주라고 하는 거예요.(웃음) 재미있죠?

 

이런 일화마저도 말 이전, 고대의 어떤 것으로 느껴지네요.


그런 거죠. 전설화된, 신화화된 거죠. 그분의 한(恨) 같은 것이 예쁜 이야기가 된 셈인데요. 그 이야기가 뭔가를 생각하게 하잖아요. 고대적인 것이지만 말이에요.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도리어 안 먹히죠. 사실은 설명처럼 미개한 게 없어요. 가장 낮은 수준의 말하기가 이해래요. 설명과 이해요. 그러고 보니 또 그래요.

 

올해 에세이도 출간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절에 대한 글들이 꽤 있어요. 글이 조금 부족해서 더 써서 마무리할 계획이에요. 지금 절에 간 김에 써보려고 하는데요.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장석남 저 | 창비
일상에서 정성스레 길어올린 사유와 특유의 아름다운 시어를 여전히 간직하면서도, 독특한 선적(禪的) 철학과 시적 뿌리의 탐구인 고대(古代)라는 새로운 화두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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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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