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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술 특집] 좋은 사람 알아보는 기술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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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각자의 마음속에 이미 놓여 있는 좋은 기운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하려고, 그 마음을 받는 데 부끄럽지 않으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2018.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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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영어학원이나 헬스클럽도 그 달의 중순쯤 되면 수강생의 반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다시 1일이 되면 백퍼센트 출석률을 보이다가,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점심시간에는 벌써 이번 주도 망했구나 싶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어쩌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기대하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연말연시에는 더하다. 그동안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기분이 들어도 혹시 이번엔 적성에 맞을지도 모르니까 새로운 운동도 시작해보고, 평소 좋아하던 악기 연주에 관심을 가져보고, 이론이나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새해란 새로운 것에도, 기존에 포기했던 것에도 도전하기 좋은 시절이다. 금방 관둬도 덜 민망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적절한 때, 새로운 기술 하나를 전수할까 한다. 바로 좋은 사람 알아보는 법이다.

 

기꺼이 폐를 끼치는 기술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일 벌이기를 좋아한다. 차곡차곡 과정을 밟아가며 일을 진행시키는 꾸준함과 단정하게 마무리하는 뒷심이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뭐든 시작하기 좋은 때다. 재미있는 걸 하겠다고 말하면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나고 마치 보물이 발견되는 것처럼 필요한 자원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요즘 나는 실컷 말하고 싶어서 팟캐스트 방송을 준비 중인데 같이 할 친구들이 모였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진행자, 피디, 편집자의 역할을 맡았다. 한 동네 사는 작곡가는 흔쾌히 자기 음악을 써도 된다고 하고, 장비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고 만난 음향 전문가는 고가의 장비를 기한 없이 쓰라고 빌려줬다. 제작비는 사비로 충당하되 조건 없는 후원을 받거나 지인들에게 소액의 광고를 받으려고 했더니 내가 일하는 카페의 사장님이 기꺼이 첫 번째 광고주가 되어주셨다. 자기가 심심하다는 이유로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어지간한 일이면 다 도와주는 한 친구는 팟캐스트 제작 워크숍 강사인 친구를 데리고 나타나 장비 세팅을 도와주었다. 나는 밥을 샀다.

 

나를 도와주러 나타난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냐고 깜짝 놀란다. 본인들이 보물이면서, 지금 나를 도와주러 왔으면서. 그들이 주는 마음은 엄청난 것들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 어마어마한 부담은 아닐 것이다. 나를 돕는다는 가벼운 생각,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한다는 유쾌한 기분일 거라고 추측한다. 나는 다만 각자의 마음속에 이미 놓여 있는 좋은 기운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하려고, 그 마음을 받는 데 부끄럽지 않으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최근에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이라는 책의 저자가 되었다. 세면대 막힘, 형광등 갈기 등 집에서 발생하는 작은 문제들은 누구 도움 없이 혼자서 고쳐보는 책이다. 그 책의 저자 소개에,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기꺼이 폐를 끼치는 기술이 있다고 적었다. 책을 쓸 때도 보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한눈에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초능력이 있다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대신 여러 번 보면서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고 좋은 사이가 되려고 노력한다. 좋은 사이에서는 ‘그냥 사람’도 ‘좋은 사람’이 되기 쉽다.

 

일 때문에 만나는 사이지만 괜히 더 마음이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내 마음에 들면 실컷 좋아해버리는 능력 때문인 것 같다. 물론 그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좋아한 게 아니고 좋아하는 순간의 내 마음이 행복했기에 크게 서운하지는 않다. 그러다 서로를 알아보면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함께 노력하는 사이가 된다.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은 그럴만한 곳에 숨어 있다.

 

고마워하는 기술, 그 마음을 전하는 기술

 

나중에 생각해보니 책에 적지 않은 중요한 기술이 더 있었다. 바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기술, 고마움을 표현하는 기술, 그 마음을 전하는 기술이다. 『안 부르고 혼자 고침』의 기술 자문이었던 목수님과 일할 때면 목수님이 좋아하는 핸드드립 커피를 현장에서 내려 함께 마셨다. 또 목수님의 목공 수업에서는 호기심 많고 성실한 학생이 되어 손을 번쩍 들었다. 실제로 궁금한 부분을 알려주고 재미있게 진행하시니 적극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가르쳐주고 싶은 게 많은 선생과 잘 배우겠다는 다짐을 하는 학생은 금방 좋은 사이가 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쩌면 내게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초능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사이로 지내고 싶은 사람들과 친해지는 과정이 한 쪽의 노력이나 희생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행동들로 마음을 표현하기만 하면 되었다.

 

팟캐스트 방송의 첫 번째 광고주이자 현재 나의 고용주인 카페 사장님과의 관계도 흥미롭다. 일을 시키는 사람은 일해주는 사람이 고맙고, 일을 하는 사람은 적절한 노동과 급여로 일을 주는 사람이 고맙다. 과한 요구를 하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서로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명절에 집안일을 우선해야 하는 사람들이 휴무를 신청하면 시간이 되는 내가 가서 일한다. 수명이 다한 전구나 고장 난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일도 ‘사장의 마음으로’ 먼저 나서서 해결한다. 집수리 안내서의 저자로서, 의리 있는 동료로서. 팟캐스트 광고를 내기로 한 사장님도 마음이 고맙다. 물론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일 테지만, 거기에 더해 카페 식구들과 한 문장씩 광고 문구를 읽으며 녹음하는 과정이 즐겁고 그 광고가 방송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흥분된다고 하셨다. 무턱대고 후원금을 내는 것보다는 재미있다.

 

무릇 기술이란 갈고 닦아야 한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게 초능력이 아니라 기술인 까닭은 좋은 사이가 되기 위해 연마에 힘써야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관찰하며 어떻게 해야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발견해야 한다. 여러 수단 중에 내가 기꺼이 행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역시 나를 잘 아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것일 터다.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관계의 꽃이 피어나지 않은 우리 사이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날지 물을 주며 기대하는 시간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은 크게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우고 마음을 닦는 일이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비법을 전수한다더니 두루뭉술 마음공부나 열심히 하자는 말로 맺음하게 생겼다. 그렇지만 무릇 기술이란 계속해서 갈고 닦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기반이 되어 다른 고급 기술로도 진화할 수 있다.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좋은 사이가 되면 점점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이 풍성해진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새해에는 우리 좋은 사람이 되는 자기수련을 하자. (마음 편히 실패해도 되는 시절이라고 앞서 말했다.)

 


 

 

안 부르고 혼자 고침완주숙녀회, 이보현 저/안홍준 그림 | 휴머니스트
못 박기, 형광등은 기본! 막힌 싱크대에서 세면대까지. 누굴 부르기도 그렇고 직접 손대기는 막막한 문제들, 직접 해결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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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보현(작가, 완주숙녀회 노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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