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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기술 특집] 책 읽고 서평 쓰는 기술

<월간 채널예스> 2018년 1월호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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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독후감은, 그러니까 책과 내 삶이 충돌해 일으킨 파장의 기록이다. 읽은 책 때문에 떠오른 슬프거나, 기쁘거나, 부끄러운 기억과 그것에 대한 나의 솔직한 성찰을 적으면 된다. (2018.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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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함 때문인지 강연을 하고 나서 질문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책을 잘 읽을 수 있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른바 독서법을 묻는 것인데, 별도로 긴 시간이 필요한 데다 사람마다 처방이 다를 수밖에 없는지라, 한마디로 읽고 글을 써보면 된다고 갈음하고는 한다. 그렇다고 성의 없고 효과 없는 대답이라 오해하지는 말기를. 핵심을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요약해서 해준 말이니까. 잘 생각해보라. 만약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읽는다고 쳐보자(이런 책 읽기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아마도 별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테다. 줄을 그을 필요도 없고, 메모를 하거나 내용을 요약할 리가 없다. 이런 독서 태도는 바람직하다. 목적이 시간을 메꾸면서 적적함이나 지루함을 없애려 한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후유증은 있다. 다 읽고 나서 무슨 내용이었는지 어림도 되지 않는 ‘기적’이 벌어지곤 하는.

 

하지만, 글을 쓰려고(여기서는 독후감이나 서평을 가리킨다) 책을 읽어야 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지은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고, 그것을 무엇을 바탕으로 삼아 펼쳐나갔는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그러자면 분석적인 읽기가 요구된다. 밑줄을 긋고, 내용을 요약하고, 지은이 생각과 다른 부분에 대해 자기의 생각을 적어놓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해서 독후감이나 서평을 곧바로 쓸 수는 없다. 책을 다시 펼치고 여기저기 남겨놓은 흔적을 되새김질하며 책을 음미해보아야 한다. 놀라운 일은, 이 과정에서 ‘기적’을 경험한다는 점이다. 흐리멍덩했던 책 내용이 또렷해지고, 근거와 주장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저자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지점을 명확히 찾아낸다.

 

어떤 특별한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로지 읽고 쓰려고 마음을 먹고 읽은 덕이다. 뭇 사람은 독후감이나 서평을 굳이 써야 하냐고 반문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시간도 많이 잡아먹고품도 많이 들여야 한다. 거기다 읽기도 번잡하고 버거운데 쓰는 고통까지 감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쓰기 이전에, 쓰려고 하면 제대로 읽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쓰기와 읽기가 별개로 떨어져 있지 않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는 말이다. 그러니까 책 읽기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할 수 있겠다. 재미와 흥미를 중심으로 시간 메우기용 독서가 있고(거듭 말하거니와, 이런 독서도 의미가 있다), 교양과 지식을 늘리기 위해 읽고 나서 꼭 독후감이나 서평을 써보는 독서가 있다.

 

읽고 나서 글 쓰는 데도 순서가 있다. 무턱대고 서평으로 직행하기보다는 독후감을 먼저 써보는 게 좋다. 안타깝게도 독후감에는 나쁜 추억이 있게 마련이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내준 숙제가 주로 독후감이었으니까. 억지로 읽고 쓰기 싫은 것을 썼으니 독후감이란 말만 나와도 도리질 할 듯. 하지만 의무로 쓰는 독후감이 아닌 만큼, 나쁜 추억은 떨쳐버리자. 좋은 독후감은 말 그대로면 된다. 그러니까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그 무엇, 일 테면 감동, 감응, 감오, 감상, 감정, 감회, 감격, 감탄 따위를 중심으로 쓰면 된다. 아무래도 ‘나’를 주어로 삼아 쓰는 것이 좋을 테다. 벌써 눈치 챘겠지만, 독후감은 결국 책을 읽은 사람이 중심이 된다. 책 내용을 요약하자는 게 아니라, 그 책을 읽으며 떠오른 기체와 같은 상념을 글로 사로잡아 ‘동결’하자는 것이니까.

 

좋은 독후감은, 그러니까 책과 내 삶이 충돌해 일으킨 파장의 기록이다. 읽은 책 때문에 떠오른 슬프거나, 기쁘거나, 부끄러운 기억과 그것에 대한 나의 솔직한 성찰을 적으면 된다. 독후감 자체가 아주 훌륭한 에세이나 자서전의 한 대목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좋은 독후감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다. 책을 건성으로 보거나, 책에서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서다. 책임이 두 군데 있다는 말이다. 읽는 이의 불성실이 그 하나가, 책 자체가 함량이 부족해서다. 뒷부분은 그런 유의 책을 읽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앞부분은 읽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함부로 읽고도 가치 있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독후감은 치유의 글쓰기이다. 그 책이 아니었다면 떠올리기 어려웠을 그 무엇을 대상으로 다시 생각해보고, 반성하고 쓰는 글이니 말이다. 상처 입은 짐승이 제 혀로 그곳을 핥듯, 우리는 읽고 쓰는 과정에서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을 터다. 뱀다리로, 독후감 쓰기에 좋은 갈래는 아무래도 문학임을 밝혀놓는다.

 

독후감 쓰기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으면 서평을 써보면 좋다. 서평도 어렵게 여기지 말고 사전식 뜻풀이에 충실하면 된다. 책에 대한 평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찌른 풀이다. 그런데 일반인 처지에서는 평가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흔히 평가라 하면 비판적 평가를 요구하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주눅 들 필요는 없다. 평가에는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평가가 다 들어 있다. 그러니, 첫걸음부터 비판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 책의 장점과 미덕 만을 말하는 긍정적 평가에서 출발하자. 실제로 온갖 매체에 실리는 전문가의 서평을 보라. 어떨 때는 낯간지러울 정도로 주례사 서평이 주를 이룬다. 전문가도 하기 어려운 일을 일차 과제로 삼을 이유가 없다. 기실, 일반인 처지에서 그 책이 왜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녹록잖다. 많이 고민해보아야 하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아야 가능하다. 그래도 포기해서 안 되는 것은 논리성이다. 이것이 부족하면 서평을 읽는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게 된다.

 

다음 단계로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비판적 평가도 아우르는 서평을 써보는 일이다. 여기에는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권의 책을 읽고 나서 부족한 점이나 아쉬운 점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왜 그런 점에 아쉬움이 남았는지를 해명하는 것은 상당히 고난도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그 책이 다룬 주제를 이미 언급한 책을 살피거나 지은이와 입장이 확연히 다른 이의 책을 뒤적여 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책이 다룬 주제를 보는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해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균형감 있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껏 말한 서평 쓸 적에 유의할 점을 졸저 『책 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서평 대상도서를 제대로 분석해 공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 분석할 때는 지은이의 핵심주장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드러내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 그 책에 담긴 지은이의 독창적인 해석을 잘 드러내고 그것의 가치를 평가해야 합니다.
- 대중을 대상으로 한 서평이라면 미리 책을 읽은이(프리뷰어)로서 미덕을 보여주어야 하는바, 책의 내용을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게 요약해주어야 합니다.
- 평가를 할 적에는 그 책의 미덕과 한계를 균형 있게 드러내주어야 합니다.
-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를 정확히 지적해 주어야 하며 분석이나 설명에 오류가 있다면 이 또한 말해주어야 합니다.
- 저자가 펴낸 기왕의 저서에 대한 정보, 이를 통한 저자의 특성을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 독자의 선택과 이해를 돕는데 서평의 일차적 목적이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 같은 주제를 다루거나 입장이 다른 책을 소개해주어야 합니다.
- 저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한결 같이 겸손한 자세로 서평을 써야 합니다.

 

여전히 책 읽기가 교양과 지식을 쌓는 유일한 매체인가 하는 고민을 해본다. 한동안은 유일하다는 데 동의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을 달리한다. 인터넷이나 영상 매체도 충분히 교양과 지식을 전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답이 달라진다. 인터넷이나 영상매체만으로도 글쓰기 능력을 키울 수 있나? 아니다. 구조가 다르다. 책은 이른바 선형적이고, 인터넷이나 영상 매체는 비선형적이다 선형이란 말은 논리가 쌓여 설득하는, 이라 이해하면 된다. 글쓰기는 선형적이다. 글 쓰는 능력이라는 DNA는 책에서 유전한다. 그러면 물어야 한다. 우리시대에 글쓰기는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 라고. 이미 답은 나왔다. 서점가에 그 많은 글쓰기 책이 나와 있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가. 그러니, 읽는 데만 정신 팔리지 말고, 쓰기를 두려워만 하지 말자. 쓰려고 읽다보면, 읽기 능력도 향상되고 쓰기 능력도 자라난다. 이거야 말로 마당 쓸고 돈 줍기이고, 도랑 치고 가재 잡기이지 않은가.

 

새해다. 새로운 결심을 할 때란 뜻이다. 그 결심의 목록에 읽고 쓰기를 반드시 넣어놓자. 한해가 저물 때 분명 부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테다.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이권우 저 | 한겨레출판
다양한 갈래의 글을 써보고자 하는 대학생과 일반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나를 읽어내고 사회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 자기만의 개성 있는 글을 써보고 싶은 욕망까지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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