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리 “아빠와 함께 행복한 그림책 여행을”
그림책작가 이루리의 서재
저에게는 없었던,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가족을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아끼고 놀아주는 아버지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아빠와 함께 행복한 그림책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독서가 가장 즐겁게 느껴질 때는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입니다. 아마도 저는 꽤나 까다로운 독자인 모양입니다. 언제나 제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니까요. 그래서 대개는 특별한 기대 없이 책장을 넘깁니다. 그러다 가끔 제 눈과 손을 끌어당기는 작품을 만납니다. 곧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심지어 제 영혼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면 어서 이 책의 재미와 감동과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야겠다는 흥분 상태에 빠집니다. 이 때가 바로 독서가 가장 즐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지요.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책의 행복’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림책을 단순히 어린이들만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책은 영화나 연극이나 드라마처럼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예술 작품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전국을 다니며 그림책에 관한 교양 강의도 하고 그림책 작가 과정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하고 독자들을 만나다 보니 교육제도와 도서관에 관한 관심이 점점 자라났습니다. 어쩌다 한국 사람들은 책의 즐거움을 모르게 되었는가? 한국의 도서관은 어쩌다 취업과 진학을 위한 독서실로 전락하였는가? 도대체 왜 선진국 사람들은 독서를 즐기고 행복한 삶을 사는가? 그들의 교육제도와 도서관 문화는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문제 의식과 호기심 모두 쑥쑥 자라났습니다.
선진국의 교육제도와 도서관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제가 지금 손에 든 책은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도서관; 선생님들의 이유 있는 북유럽 도서관 여행』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모임입니다. 이 책을 만든 선생님들은 이미 『유럽 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북미 학교도서관을 가다』 그리고 『북미 도서관에 끌리다』를 펴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만든 분들이 바로 한국에서 책의 즐거움과 진정한 도서관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가장 최근작은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2』입니다. 『지각대장 존』으로 시작된 저의 그림책 여행 이야기인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의 두 번째 책입니다. 아마도 저의 그림책 여행은 평생 이어질 테니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의 연작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 책 덕분에 강연 초대도 많이 받습니다만 이 책 제목 덕분에 제가 아빠라는 오해를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자녀가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만드는 책이 우리 부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만든 책은 우리의 아이입니다. 저는 책에도 생명이 있고 영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을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이라고 지은 까닭은 저에겐 책 읽어주는 아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책 읽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교과서나 참고서만 보기를 바랬습니다. 제가 공부를 잘 해서 상고나 공고를 나와 은행이나 공장에 빨리 취직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지금은 자신이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착하고 명랑했던 둘째 아들(저의 작은 형)을 단지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미워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작은 형은 아버지의 칭찬을 받지 못한 채, 고1때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아버지도 이제는 그냥 공부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버지보다 먼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희생 덕분에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고 책을 읽었습니다. 책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없었던,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가족을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아끼고 놀아주는 아버지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아빠와 함께 행복한 그림책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명사의 추천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저/박상희 역 | 비룡소
책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제 인생을 바꾼 것도 한 권의 그림책이었습니다. 바로 존 버닝햄의 『지각대장 존』입니다. 저는 서른 살에 이 책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그림책은 어린이가 보는 책이고 교훈적이고 단순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각대장 존』을 펼치는 순간 벌써 제 안에서 뭔가 깨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림의 톤부터 기대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존 버닝햄의 그림은 디즈니의 그림처럼 예쁘거나 아기자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마치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거칠고 단순하며 자유분방면서도 독자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 힘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존이 교실 구석에 벽을 보고 서서는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외치는 장면에서 제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런 기교없이 흑백의 선으로만 그린 교실 구석과 존의 모습은 아마도 그림책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일 것입니다.
게다가 『지각대장 존』의 결말은 모든 어른들을 충격에 빠뜨릴 만큼 강력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각대장 존』의 충격적인 결말 덕분에 저는 '그림책'이라는 새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각대장 존』 덕분에 저는 그림책 평론가가 되었고, 번역가가 되었으며, 그림책 기획자가 되었고, 그림책 글 작가가 되었고, 그림책 편집자가 되었고, 그림책 저작권 전문가(수출 및 수입)가 되었으며, 그림책 강사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지각대장 존』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다비드 칼리 글/세르주 블로크 그림/안수연 역 | 문학동네어린이
저는 매일 강의실에서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서평을 통해 지면에서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sns에서도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또한 이어서 나올 책을 통해 독자들을 기다립니다. 그분들에게 전할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그림책으로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작가들이 그림책을 통해 저에게 사랑을 전해 주었습니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난 작가들도 있고 아직 세상에 남아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새롭고 훌륭한 작가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타날 거라는 사실입니다.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의 『나는 기다립니다…』는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걸작입니다. 또한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이라는 빨간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기다림이며 이별이며 죽음이며 새로운 탄생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 놓은 사랑의 끈은 결코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기다립니다…
우리 가족 납치사건
김고은 글.그림 | 책읽는곰
출근하던 아빠 엄마가 바닷가로 납치됩니다. 교실에서 공부하던 나도 같은 바닷가로 납치됩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바다에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의 기둥 줄거리입니다.
아빠 엄마가 회사에 가지 않고 나도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 가족은 행복합니다.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은 어떤 사람에게는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작품입니다. 어른들이 회사에 안 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세상을 여러분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 김고은 작가의 천재성이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상상을 해낸 것입니다. 김고은 작가는 회사에 가지 않는 아빠 엄마와 학교에 가지 않는 어린이를 상상해 냄으로써 엄청나게 큰 물음표를 엄청나게 웃기게 독자들에게 던집니다.
여러분은 왜 회사에 다닙니까? 여러분은 왜 학교에 다닙니까? 모두 사랑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런데 회사와 학교가 오히려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래도 계속 회사와 학교에 다녀야 할까요? 『우리 가족 납치 사건』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프레드릭
레오 리오니 저/최순희 역 | 시공주니어
그림책 『프레드릭』은 일하지 않는 들쥐 '프레드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들쥐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먹을 것을 모을 때, 프레드릭은 먹을 것을 모으지 않습니다. 그런데 프레드릭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걸까요?
다른 들쥐들이 옥수수와 나무 열매와 밀과 짚을 모을 때, 분명 프레드릭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먹을 것 대신 '햇빛'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몸이 먹을 음식은 몸으로 만들 듯이 마음이 먹을 음식은 마음으로 만듭니다. 프레드릭은 가만히 앉아 영혼을 위한 양식을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별자리
린다 굿맨 저/이순영 역 | 북극곰
제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림책이 주는 행복'이고 또 하나는 '별자리가 알려주는 지혜'입니다. 여기서 '별자리'는 흔히 점성학으로 알려져 있는 Astrology입니다.
제가 공부한 곳에서는 Astrology를 점성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천문해석학이라고 부릅니다. Astrology는 천문학astronomy의 인문학이며, 아무도 미래를 점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역'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점을 치는 도구로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천문해석학 역시 학문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점술로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천문해석학을 인문학이자 심리학으로 공부하는 분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사실 천문해석학에 관련된 책도, 천문해석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린다 굿맨이 아주 쉽고도 실용적인 책을 쓴 것입니다.
린다 굿맨의 『당신의 별자리』는 12가지 별자리의 에너지와 캐릭터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양 별자리에 따라 각 별자리의 남자, 여자, 어린이, 직장상사, 부하직원이 어떤 에너지와 캐릭터를 갖고 있는지를 풍부한 임상 경험으로 해설하는 책입니다.
『당신의 별자리』는 별자리 공부의 원리를 모르더라도,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계의 평화와 지혜를 줄 것입니다. 저와 제 친구들이 체험한 것처럼 여러분도 별자리 공부의 위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브레히트의 어린이 십자군
베르톨트 브레히트 글/카르멘 솔레 벤드렐 그림/김준형 역 | 새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시를 카르멘 솔레 벤드렐이 절절한 슬픔으로 기록한 그림책입니다.
이 책에서 '어린이 십자군'이란 전쟁에 휘말려 희생된 어린이들을 상징합니다. '어린이 십자군'으로 불리게 된 어린이들은 그야말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이 무리입니다. 폴란드의 어린이 십자군은 '성지 탈환'같은 거창하고 거짓된 명분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절실하고 숭고한 본능을 위해 평화의 땅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 길을 안내해야 할 대장은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릅니다. '길을 모른다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어린이 십자군이 찾는 길은 바로 생존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펭귄, 위대한 모험
Morgan Freeman
내 인생의 영화 세 편을 고르라면 굉장히 고민이 됩니다. 한때는 영화 감독이 제 꿈이기도 했으니까요. 좋아하는 영화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도 딱 세 편만 골라 보겠습니다. 우선 뤽 자케 감독의 『펭귄, 위대한 모험』이 떠오릅니다. 혹한의 남극에서 아기를 낳고 기르는 펭귄 부모의 사랑이 저를 울렸습니다. 펭귄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영혼의 존재라는 걸 저에게 일깨워준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감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저는 이모토 요코의 그림책 『아빠의 발 위에서』를 출간했습니다.
러브 액츄얼리
우수정 편역 | 스크린영어사
다음으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러브 액추얼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러브 액츄얼리』가 나오면 그때마다 다시 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보다 더 사랑스럽게 표현한 영화가 있을까요? 이 영화를 보면 혼자인 사람은 곧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연인들은 서로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마법을 부리는 영화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 때문에 제가 오나리 유코의 그림책 『행복한 질문』을 출간했을지도 모릅니다.
토미 웅거러 스토리
Tomi Ungerer,Maurice Sendak
그림책이나 그림책 작가 토미 웅거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해도, 20세기와 21세기를 함께 살아온 지구인의 이야기로서 충분히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림책 예술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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