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려령 “내 손목을 잡는 책이 있어요”

첫 번째 소설집 『샹들리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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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게,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읽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그래서 지금 읽어서 나한테 가장 딱 달라붙는 책이 좋은 거예요. 그 순간 내 손목을 딱 잡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이 좋은 거예요. 다음에 내가 또 다른 삶을 겪으면서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거든요. 그때 또 좋은 작품이 오겠죠. 지금 상황에서 읽었을 때 내 손을 딱 잡은 책, 그 책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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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스피커’가 되고 싶었어요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기억을 가져온 아이』의 작가 김려령이 첫 번째 소설집 『샹들리에』를 출간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빛깔을 지닌 일곱 개의 이야기를 들려준 김려령 작가는 지난 7월 14일, 출간 기념 북콘서트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읽고 듣고 느끼는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의 공개방송으로 이루어진 이 날의 행사는 박혜진 아나운서와 송종원 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됐다.

 

송종원 평론가는 “영혼의 발굴자”라는 말로 김려령 작가를 소개했다. “우리의 엄마 아빠, 우리의 친구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푸른 냄새 나는 영혼을 발굴해주는” 작가라는 것. 독자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무대에 오른 김려령 작가는 “올해로 등단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소설집으로 독자 분들과 소통하는 건 처음”이라며 “처음 데뷔했을 때, 첫 책을 냈을 때처럼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가까운 곳에서 독자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라디오 책다방> 출연을 결심했다고.

 

이어서 박혜진 아나운서는 『샹들리에』를 읽으며 “아무도 풀어보지 않은 선물을 처음 개봉했을 때의 설렘과 벅참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책에 수록된 일곱 작품 중 절반 정도가 미발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려령 작가는 “단편은 청탁을 받아서 쓰기도 하고, 어떤 것을 봤을 때 ‘이건 이야기로 보존해놔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 빨리 단편으로 완성시켜 놓는다”면서 “기존에 발표된 작품들을 다 보신 분들은 『샹들리에』를 읽으시면서 조금 심심하실 것 같아서 미발표작과 함께 구성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부분의 소설집이 수록된 작품 가운데에서 제목을 빌려오는 것과 달리 『샹들리에』에는 동명의 작품이 실려 있지 않다. 김려령 작가는 “표제작을 선정하지 않고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을 정하자는 아이디어는 편집부에서 나왔다. 그래서 ‘샹들리에’는 어떠냐고 말씀 드렸다”고 밝혔다. “어감이 예쁘고, 샹들리에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샹들리에가 어느 장소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기괴해 보일 때도 있다”고 말하며 “이 작품을 읽을 때 빛의 조도, 조명을 가져다가 전체적으로 비추면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샹들리에』에는 각기 다른 빛을 내뿜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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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 『샹들리에』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가지 주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엄마가 보였어요. 이번 소설집에서도 「미진이」, 「만두」, 「이어폰」에서 엄마들이 등장하는데요. 작가님의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들을 떠올려 보면, 삶이 너무 고달프고 아파요. 혼자 너무 꾹꾹 참아서 언젠가는 터져버리고요. 보면서 굉장히 짠하고 우리 엄마 모습인 것 같기도 하죠. 선생님이 바라보는 엄마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요.


김려령 : 청소년 소설에서 엄마를 쓸 때는 같이 아프다는 표현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사춘기로 힘들 때 엄마도 또 다시 사춘기를 겪어요. 그래서 ‘사실은 엄마도 아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청소년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 때문이야’라고 내지를 수 있는 대상이 있는데 엄마는 그 대상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엄마들이 엄청난 우울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나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할 수도 없죠. 아이들이 그 말을 들으면 얼마나 더 힘들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나처럼 힘든 상황에 있는 엄마들에게 ‘그래요, 사실은 당신도 힘든 걸 알아요’라고 말해주는 거예요. 청소년들도 자기 엄마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듣기 싫지만,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엄마도 이렇게 힘들 수 있겠구나, 엄마도 힘들구나’ 하고 알 수 있거든요. 아빠도 마찬가지죠. 그렇게 제가 청소년과 부모님 사이에 스피커가 돼주고 싶었어요. 부모와 자식, 가족들을 연결해 주는 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제가 해야 할 하나의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어서 작가는 “‘나쁜 스피커’가 되어보자”는 생각으로 「미진이」를 집필했다고 고백했다. 작품 속에서 미진이의 엄마는 딸을 향해 날 선 말을 내뱉는다. 누군가는 ‘어떻게 부모가 자식한테 저런 말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실의 부모들은 그런 말을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간다는 게 김려령 작가의 이야기다. 그녀는 늘 주위의 부모들에게 “내가 대신해서 속에 있는 말을 해줄 테니까 그 말을 자녀들한테는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미진이」 역시 그와 같은 마음으로 썼다고. 작가는 “「미진이」를 읽은 분들이 대리만족을 하고 자녀들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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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내 손목을 잡는 책이 있어요


『샹들리에』의 북콘서트에는 특별한 손님이 초대됐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이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와준 것이다. 2인조 포크 듀오 ‘김사월ㆍ김해원’으로 활동하며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의 ‘올해의 신인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수상했던 그녀는 2015년 발표한 솔로 앨범 <수잔>으로 ‘2016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다시 한 번 수상했다. 「존」, 「접속」 두 곡의 노래로 인사를 대신한 김사월은 김려령 작가로부터 “듣는 사람을 자꾸 어딘가를 가고 싶게 만드는” 뮤지션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김려령 : 제가 올해 속초를 두 번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한 번은 김사월 씨 때문에 간 거예요. 며칠 전에 제가 사월 씨 CD를 선물 받았어요. 이틀 동안 듣다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월 씨 목소리에 그런 게 있어요. 가만히, 조용히, 그냥 노래를 부르는데 듣는 사람한테는 자꾸 어딘가를 가고 싶게 만들어요. 그래서 속초에 가서 산도 보고 바다도 보고 왔었어요.

 

한편 송종원 평론가는 김사월의 <수잔>『샹들리에』의 「미진이」와 겹쳐 보인다고 말했다. 소년도 소녀도 아닌 모습으로 “그저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살아가는 수잔의 모습이 소설 속 미진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김사월 역시 미진이와 그녀의 엄마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며 『샹들리에』을 직접 읽은 소감을 밝혔다.

 

김사월 : 너무 재밌게 읽었는데, 재밌다는 단어를 쓰기는 조심스럽고요. 앞서 작가님께서 제목에서 풍기는 기괴함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일상에서 일어날 법 하지만 어딘가 기묘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서 저도 집중이 잘 됐었어요. 「고드름」 같은 경우에 굉장히 텐션 있고 속도감이 있어서 재밌었고요. 어떤 단편은 굉장히 어두운 느낌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색채를 가진 작품들이 있어서 재밌게 읽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네 사람은 『샹들리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박혜진 아나운서는 “『샹들리에』에는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며 특히 「아는 사람」은 읽는 동안 많이 아팠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혜진 : 「아는 사람」은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샹들리에』가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부담스럽거나 민감하게 다가오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이번 작품집에 수록하게 되셨어요?


김려령 : 성폭력 관련된 이야기는 제 입으로 언급하는 게 상당히 아파요. 하지만 반드시 해야 될 이야기거든요. 이 작품을 써놓고도 발표하지 못한 건 제가 그만큼 용기가 없었던 거예요. 말하는 저도 무서우니까요. 그런데 무서워도 한 번은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피해자들이 너무 아파하는 걸 봤거든요. 저는 그 친구들한테 ‘너한테는 아무 잘못 없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범죄라는 것이 그 친구들의 일상으로 침범한 거지, 그 친구들이 범죄에 다가간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너는 너의 일상을 그냥 평범하게 산 거야, 너한테는 아무 잘못이 없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직도 성범죄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성교육과 성범죄교육은 반드시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니까 그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 거예요. 이렇게라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아는 사람」을 읽으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김사월은 작품을 직접 낭독하기도 했다. 그리고 뒤이어 세 곡의 노래를 선물했다. 「전화」, 「젊은 여자」, 「수잔」을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김려령 작가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박혜진 아나운서와 송종원 평론가의 진행으로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작가는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자 했었던” 학창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는가 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며 독자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김려령 : 글이라는 게,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읽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그래서 지금 읽어서 나한테 가장 딱 달라붙는 책이 좋은 거예요. 그 순간 내 손목을 딱 잡는 책이 있어요. 그 책이 좋은 거예요. 다음에 내가 또 다른 삶을 겪으면서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지거든요. 그때 또 좋은 작품이 오겠죠. 지금 상황에서 읽었을 때 내 손을 딱 잡은 책, 그 책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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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김려령 저 | 창비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국문학의 비범한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김려령이 짧고 강렬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샹들리에』는 작가가 『완득이』 이후 8년 동안 써 온 작품들을 엮어 처음으로 펴내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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