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이은의 “예민하다고요? 정말 괜찮아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로서, 대기업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긴 최초의 여성 변호사 된 후, 두 번째 책 『예민해도 괜찮아』 펴내 이 책은 ‘갑을’이 함께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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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사회는 불편한 사람을 계속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약한 사람들을 계속 약하게 만들면서 괜찮다고,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말한다. 진짜 “괜찮아”가 되려면, 괜찮지 않은 것에 대해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예민’이라는 단어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반응하게 된다면 『예민해도 괜찮아』를 읽어보자.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한 과거, 혹은 현재를 살고 있다면 변호사 이은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빠르게 읽히는 책인데, 잔향은 꽤 크다.

 

지난해 봄, 변호사사무실을 연 이은의 저자는 과거 ‘삼성맨’이었다. 상사의 성희롱 문제를 고발했다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4년간의 투쟁 끝에 승소했다. 지금은 성희롱 피해자가 아닌 차별과 갑질에 맞서는 ‘피해자’ 편에 서는 변호사가 됐다. 가해자 전문 변호사로 사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노동과 더 적은 대가를 감수하지만, 그는 ‘자부심 있게 사는 길’을 선택했다. 이은의 저자는 “다수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 ‘노’라고 말한다고 해서 내 인생에 큰일이 나지 않는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유리한 쪽보다 유익한 쪽에 설 때 내 인생도 더 단단하게 다져진다”고 말한다. 『예민해도 괜찮아』는 이 시대 ‘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하지만 ‘갑을’이 함께 읽어야 마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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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좀 예민한 게 낫지 않겠니?

 

어제도 밤을 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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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터 철야를 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심하게 앓고 있는 성폭행 피해자 의뢰인이 가해자와 대질신문을 앞두고 연락이 두절됐다. 너무 걱정스러워서 업무를 전면 중단하고 의뢰인 소재 파악에 나섰다. 자정이 돼서야 겨우 연락이 닿아, 새벽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 성폭행 사건은 책에도 등장하는데, 특별히 애정과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특별히 눈여겨보는 이유가 있나?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착한 피해자들을 가해자들이 어떻게 악용하는지, 얼마나 가해자가 자기 변명에 능수능란한지를 보여준다. 어떤 한 성실한 개인이 준강간과 같은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삶이 어떻게 유린당하는지,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꼭 이기고 싶고 이겨야만 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2011년에 출간된 『삼성을 살다』 이후, 만 4년만에 두 번째 책 『예민해도 괜찮아』를 펴냈다. 전작 때와 비교해 책을 펴낸 소감이 궁금하다.

 

『삼성을 살다』가 20,30대 직장여성으로서의 삶, 삼성에서의 싸움을 정리하는 책이었다면, 『예민해도 괜찮아』는 변호사가 된 후 제2의 삶이 시작되면서 쓴 책이다. 나로서는 타임머신을 탄 책이기도 하다. 전작은 싸움이 끝난 상태에 관해 썼지만, 이번 책은 현재 속에서 내 과거를 만나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썼다. 그래서 감정기복이 심했다. 더 냉철하게 쓸 수 있었지만, 과거의 이은의를 만나고 미래의 이은의를 만나면서 쓴 책이기 때문에 지금 인터뷰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이 알록달록한 느낌이다.

 

한 줄 한 줄 꼼꼼히 기록했다는 느낌보다는 한 호흡으로 쭉 썼겠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가 그렇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감수성이 차기 전까지는 쓸 수가 없었고, 한 호흡으로 뽑아내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서 쓸 수가 없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의 피해자들을 현재도 만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삶을 한자 한자 담다 보면 쓰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당사자 특정 사건이 되지 않기 위해 많은 걸 혼재했지만,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썼으니까 마음이 어려웠다. 『삼성을 살다』는 나만 보면 됐는데, 이번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현재 느끼는 소회를 포장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 더 고치면 더 신중하고 차분한 문장이 됐겠지만, 현장감을 살리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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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피해자들도 이 책을 읽었나?

 

먼저 읽고 “다섯 권쯤 샀어요” 하신 분도 있고, 선물로 준 분도 있다. 자기 이야기가 나올 줄 모르고 보신 분도 있을 거다. 남들은 몰라도 자신은 알 수밖에 없으니까.

 

반응은 어땠나.

 

대개 양가 감정이 있다. 사건이 알려지길 바라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한 피해자가 이 책을 읽고 집에 놔뒀는데, 아버지가 보시고는 내게 전화를 주셨다. “우리 딸 잘 부탁한다”고 하셔서, 내가 왜 이 사건을 애틋하게 바라보는지를 설명해드렸더니 나중에 많이 우셨다. 마음이 아팠다. 이런 과정을 함께 밟는 책인 것 같다.

 

초고를 쓸 때, 가제도 『예민해도 괜찮아』였다고 들었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욱 하는 마음에 “예민할 테다”, “예민하면 어때서”로 하면 어떨까도 생각했지만, 처음의 기획 의도에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피해 당사자나 여성에게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다. 사회는 혼자 사는 게 아니지 않나. 나는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이 젠더의 문제보다 인간의 문제로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갑을을 둘러싼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갑에게 “너도 좀 예민한 게 낫지 않겠니?”라며, “네가 살짝 던진 돌에 을은 이렇게 고통 받고 그 주변은 이렇게 병 들고 종래에는 그 화살이 너에게도 아프지 않겠니? 네가 좀 예민할 수 있다면 을을 배려하지 않겠니? 그럴 수 있지 않겠니?”라고 말을 건네고 싶었다. 갑을을 떠나 주변인들에게도 내 일이 아니라고 배제하지 말고, 더욱 관심을 두고 약자의 어깨에 손 한 번 얹어줄 수 있는 인권 감수성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한 사람을 두고 ‘예민하다’고 하면, 썩 긍정적인 평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맞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형용사는 부정적인 언어가 아니다. 과민한 게 나쁜 거다. 예민, 과민, 과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민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태도를 말하지만, 예민은 그렇지 않다. 느끼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른 것을 말한다. 나는 많은 사회문제가 예민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과도하거나 둔감해서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예민한 게 나쁜 것처럼 돼버렸다. ‘예민’이라는 단어가 청년, 노동자에게 ‘닥쳐’를 말하는 키워드가 됐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예민한 게 어때서’다. 첫 번째 포문으로 여성을 차용했을 뿐이다. 내 변호사 사무실에는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갑을 소송이 있다. 두 사람만 모여도 권력이 생기는데, 그 권력의 헤게모니 안에서 을의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을만이 해결하길 바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라미란의 존재를 피부로 느꼈다. 만약 라미란처럼 예민하고 섬세하게 이웃을 배려하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이 드라마는 어땠을까? 사람은 누구나 때론 을이 되고 갑이 되고 주변인이 되지 않나? 독자들이 이 책을 여성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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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컵에 마시면 뺏어 마셔도 될까?

 

책의 카피가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이다. 우선 ‘불쾌한 터치’에 대해 좀 묻고 싶다. 삼성에서 성희롱 사건을 겪었고, 지금도 실제 많은 성희롱, 성폭행 사건을 변호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신고가 늘어나면서 가해자에 대해 처벌이 강화됐지만, 가장 문제는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아직도 성폭력을 ‘갑을’ 문제가 아닌 ‘성’의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하면 성폭력의 발단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

 

애초에 추행은 상대의 성적 매력이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망상에서 태어나 힘의 불균형에서 꽃피는 거다. 단적인 예를 들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여성인데 굉장히 아름답다고 가정해보자. 국무총리가 장관이 대통령을 만지고 성적 농담을 할 수 있나? 그렇게 따지면 수많은 여자 연예인은 희롱 받다가 닳아서 없어진다. ‘만지고 싶어서 만진다’가 아니라, ‘만질 수 있어서 만진다’의 문제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성희롱 문제도 남자 상사에 의한 여자 부하직원의 추행으로 보면 곤란하다.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에게 성희롱 하는 경우도 희박하진 않다. 이를 테면,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에게 도를 넘어서 추근댈 때, 을 쪽에 있는 남자가 ‘허허, 이 여자가 나한테 이렇게 하네. 어 재밌네?’ 이렇게 안 한다는 거다. 짜증나는데 말하기 어려우니까 참는 거다. 받는 상처는 전혀 다르지 않다.

 

성희롱 또한 다르지 않을 텐데.

 

성희롱은 희롱의 범주에 있고, 희롱은 모욕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이 같지 않은 거다. ‘내가 너를 흔들 수 있어’ 이게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희롱이라는 범주 안에 성적인 제스처로 나타나는 것뿐이다. 성폭력 또한 물리적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행동이다. 준강간의 99%가 남자에 의해 벌어지는 이유가 물리력도 권력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유리컵 비유를 했는데,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영화 <피고인>을 보고 성폭력의 인정 기준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논의하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 후배가 내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더니 “그런 정도면 사실상 허락이 아니냐”고 했다. 내 대답은 이랬다. “만약에 우유를 먹고 싶은데 누가 옆에서 우유를 먹어. 누군가는 불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누군가는 유리컵에, 그런데 우유가 빤히 보이는 유리컵에 마시면 뺏어 마셔도 될까?” 부끄럽지만 대학생 때가 더 똑똑했던 것 같다. 더 예민했던 거다. 그 예민이 사회를 달려오면서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듯이 평편해진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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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산휴가를 끝내고 복직한 후배가 있다. 상사와 면담을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대개 여자 사원들이 남자 사원에 비해 업무 강도와 실적이 낮다. 육아와 병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뒤처지기 마련인데 더 노력하길 바란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후배나 나나 기분이 몹시 나빴다. 우리가 예민한 건가?

 

예민한 건 좋은 일이다.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연차가 많이 차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면,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발언 아닌가?

 

물론이다. 다만 상대의 캐릭터에 맞게 부드럽게 대응할 필요는 있다. “부장님, 조금 불편해요”와 “부장님, 저 지금 굉장히 불편합니다!”가 다르니까. 사실 상대 캐릭터를 보지 않고 대응하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폭력, 강제 추행의 문제도 그렇고 직장 성희롱, 모욕 등의 사건을 진행할 때,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지의 여부가 참작되는 부분이 있으므로 어떤 식으로든 의사표현을 하는 게 좋다. 종래의 싸움으로 불거질 때도 필요하지만, 현재를 해결하는 데도 필요하다.

 

데이트폭력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최근 경찰청은 “데이트폭력 피해 집중 신고기간 운영, 일주일 만에 37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발표했다. 저자는 책에서 “데이트폭력은 없다. 그냥 폭력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든, 여자가 남자를 때리든 폭력은 문제가 있다. 뭐가 됐든 각각은 다 폭력이다. 물론 정당방위는 다르다. 하지만 1대 때렸는데, 방어한다고 100대를 때리면 이건 다른 문제다. 또 데이트폭력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건, 폭력을 당했을 당시에도 폭력이라고 느꼈는지 사후구성에서 제기된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안 좋게 헤어진 후, 이 과정이 서로에게 납득되지 않았을 때 한 쪽에서 사후구성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문제 때문에 진짜 데이트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성폭력 문제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피해자가 더 많은데, 구분을 못하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안타깝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어떤 교육을 말하는가?

 

국어, 영어, 수학 같이 시험을 보는 과목 말고 사랑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사랑, 이별에 대한 담론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딱딱한 성교육만 가르치고 있다. 청소년기에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남녀가 원하는 스킨십의 정도는 다를 수 있지 않나? 남녀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관한 담론이 풍성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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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서 말을 걸면 소통의 고리가 된다

 

‘막말’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언어적 성희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말하는 입장에서는 희롱이 아니라고 하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희롱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계속 같은 귀결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회사의 회장이 미꾸라지 같이 생겼다고 치자. 비서실장이 “당신, 미꾸라지 같이 생겼어요”라고 말하나? 못한다. 하지만 말단직원이 미꾸라지 같이 생겼으면, 말한다.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또한 권력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반문할 수 있다. 서로 친하면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정말 친해서 그런 건지, 그냥 웃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입장, 느낌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또 듣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나쁘면 어느 정도는 표현하는 게 좋다. “저는 이런 이야기 좋지 않은데요”라고.

 

기분이 나쁘지만, 내가 ‘을’이니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갑’이 마음을 고쳐 먹는 게 중요하다. ‘을’이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는 반응을 나를 무시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버릇이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한국은 태어나서부터 장유유서에 노출되는 사회다. 존댓말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연장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격체다. 어리다고 다 만져도 되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물어봐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자연스럽게 사회 안에서 체화되는 것인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니까. 많이 담론이 되고 교육하는 게 절실하다.

 

“마녀가 다수가 되면 마녀들이 아니다. 그냥 여성이 된다”고 했다. 연대가 정말 필요하다.

 

예민해서 말을 걸면 소통의 고리가 된다. 이 예민을 조금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친함’이 발생한다. 윗사람들은 소위 부하 직원들을 자기만 친하다고 생각한다. 막말, 터치가 허용되니까 “나는 이 대리랑 꽤 친해”라고 하는데, 이거 다 개소리다. 절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많은 중년이 퇴사를 하고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과장, 부장 타이틀 다 버리고 나니까 정말 남는 사람이 없다”고. 계급장을 뗐더니 연락을 끊는다고들 하는데, 필요 없어서 안 만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친하지 않았던 거다. 애당초 관계가 일방적이었던 거다. 권력이라는 고리 안에서 서열화된 상황에서 갑이 봤을 때, 편안했던 상황은 단지 갑에게만 해당한다. 을은 힘들고 피곤했다. 결국 더 외로워지는 건 갑이고 주변부는 몸을 사리게 된다.

 

악순환이다. “너 예민해”라는 평이 너무나 부정적이니까.

 

사람들은 예민해서 피곤해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예민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예민하지 못한 둔감함에서 우리 사회는 피곤해졌고 청년들은 병이 들었다. 그러니 아픈 청년에게 ‘괜찮아’를 말하는 세상이 됐다. 나는 『예민해도 괜찮아』가 이 담론의 포문을 여는 책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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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독자만 읽으면 안 되는 책

 

한때 드라마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예민해도 괜찮아』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반향이 있지 않을까? 언젠가 드라마로 쓸 계획은 없나?

 

『삼성을 살다』를 썼을 때, 드라마를 쓰시는 분이 각색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언제라도 원하면 쓰시라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웃음) 지금 1년에 5백 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는데, 언젠가 좀비를 다룬 독립영화를 만들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고 싶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웃음)

 

독립영화는 한계가 있지 않나? 『예민해도 괜찮아』와 같은 소재는 좀더 대중적인 매체로 접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다만, 조심스러운 게 드라마작가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지망생들이 올인해서 하는 직업군을 두고 “언젠가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진다. 겸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항상 꿈은 있다. 영상이든 책이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 떠들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여성 독자들이 많이 볼 것 같다. 저자로서 어떻게 보나? 책을 읽은 남성의 리뷰를 읽은 적이 있나?

 

전작을 읽고 찾아준 남성 독자들이 꽤 있다.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경우도 많고. 재밌게 읽었다고 하더라. 저자로서 바라는 건, 대한민국의 사장님과 여성들이 이 책을 사서 남자들에게 선물해줬으면 한다. 표지가 분홍색이라, 남자들이 서점에서는 딱 집어 들기는 조금 힘들지 모른다. 남자들은 “또 여자 이야기야?” 하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비단 여자들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 독자만 이 책을 읽는 건, 책을 펴낸 의도와도 맞지 않다.

 

“나는 여자로서 조직 생활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물론이다. 여성이라고 무조건 이 책에 호의를 갖긴 어려울 수 있다.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20대들도 있을 수 있고,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인데,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하는 심리적 장벽을 갖는 분도 있을 거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마케팅을 했으니까, 저자 입장을 떠나 이 책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20, 30대  심지어는 40대 여성이 일하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담았기 때문에, 그 변수로 ‘약자들과 우리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던지고 싶었다.

 

에필로그의 제목이 ‘피해자 편에 서는 변호사로 산다는 것’이다. 유리하게 사는 것보다 자부심 있게 사는 길을 선택했다. “유리한 쪽보다 유익한 쪽에 설 때 인생도 단단해진다”는 이야기가 크게 와 닿았다.

 

삼성과 싸우면서도, 지금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당장 여러 사건을 잡다하게 하면 변호사로서는 유리할 수 있다. 서면 작성 같은 일은 다음에 보강하면 되니까 조금 대충 써도 된다. 하지만 당장에 유리함이 아니라 나중에 유익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작은 것도 허투루 할 수 없다. 지금은 불편한 일이 발생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발을 쭉쭉 내딛는 힘이 생긴다. 내 삶도 나아지고 남의 삶도 나아지는 경험이 있으면, 그 경험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들이 흔히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것 또한 양가적인 말이 아닐까 싶다. 그냥 묵직하게 건네는 “괜찮아”가 있고, 얼른 이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는 “괜찮아, 괜찮아”가 있는데, 이 “괜찮아”도 항상 옳은 게 아니다. 우리는 “괜찮아”라는 말을, 지금 너무 힘들고 약한 존재들을 향해 하는데, 이런 “괜찮아” 말고 진짜 용기 낼 수 있는 한 마디를 던지고 싶다. 당신의 불편한 상황이 괜찮다는 말은 이제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한국사회는 불편한 사람을 계속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약한 사람들을 계속 약하게 만들면서 괜찮다고,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말한다. 진짜 “괜찮아”가 되려면, 괜찮지 않은 일들에 대해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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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괜찮아 이은의 저 | 북스코프
우리 사회에 성범죄와 성희롱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민해도 괜찮아』의 저자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이나 강제추행은 단지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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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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