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생긴 뒤에 그만 두게 된 일이 몇 가지 있다. 커피와 여행, 먼 곳의 카페에 가서 일하는 것, 새벽의 영화 감상과 산책, 바닥에 엎드려서 책 읽기……. 그런가 하면 그만 둘 수도 있었는데 고집을 부려가며 끝까지 한 일도 있다. 바로 소설과 관련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빼어난 소설을 골라 같이 읽고 누군가 써 온 풋풋한 소설을 읽은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수업에 참여했고 진심으로 즐거웠다. 일주일에 하루,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마주 보며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새로운 수업을 하나 더 시작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동네 주민들이 도서관에 모여 읽고 쓰는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였다.
오전의 소설 수업이다 보니 수강생은 대부분 아이 엄마들이었고 연령대도 이십 대부터 육십 대까지 다양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녀들은 여고생처럼 깔깔거렸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문학의 재미에 푹 빠졌다. 누군가는 책이 커피보다 향기롭다고 했고 누군가는 남편이나 자식보다 다정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면서 자신도 모르게 꼭꼭 싸매두었던 개인사를 털어놓고는 속이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그녀들은 상징이나 기법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모든 소설에서 자신을 발견했다.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지망생들과 함께 공부할 때와는 또 다른 공감, 이해의 장이 펼쳐졌다. 수업시간에 커피나 음료는 자유롭게 마셔도 좋다고 하자 떡과 고구마, 빵을 싸들고 와서 나눠 먹었고, 소설을 읽고 글을 쓸 때는 나에게 극존칭을 쓰며 선생님 대접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거나 수업이 끝나면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은 배불뚝이 소설가를 까마득한 육아 후배 취급했다. 나도 처음에는 빙그레 웃으며 묻는 말에만 대답하다가 어느새 그녀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농담을 던졌다. 어쩐지 소설의 한 장면 같은 오전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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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