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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글을 쓰고 싶다면 현실과 접촉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석영 북토크 한국 명단편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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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은 북적거렸다. ‘황석영 북토크 한국 명단편 다시 읽기’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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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은 북적거렸다. ‘황석영 북토크 한국 명단편 다시 읽기’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거장 황석영 작가가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의 소설문학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단편 101편을 묶어 10권으로 내놓은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세트』의 출간기념 북토크 행사에 황석영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독자들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이 책은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신수정 문학평론가와 함께 엄선한 작품과 문학 이야기를 다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찾은 독자들은 부흥회에 온 것 같은 분위기 속에 유정아 씨(노무현시민학교 교장)의 사회로 ‘황석영’이라는 필터를 통해 한국 문학의 100년을 만났다. 

 

근황을 묻는 질문에 황석영 작가는 “새 작품 준비를 하는 와중에 『바리데기』의 해외 진출과 관련해서 런던에 있는 에이전트로 옮겼는데 영업을 잘 했는지 15개국에 팔았다”며 “올 상반기 8개 국가에서 『바리데기』가 나오고 여름까지 11개국에서 나올 예정이라 프로모션 투어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행사가 진행됐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은 우리 시대의 한국문학에 바치는 나의 헌사가 될 것이다. 아직도 나라와 사회의 운명이 평탄치 않아서 서구문학에 견주어 우리 문학의 수준을 감히 타매하는 이도 있고 일본과 중국 문학에 빗대어 비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선집을 통해서 ‘고통받은 고통의 치유자, 또는 수난당한 수난의 해결자’인 문학의 이름으로 곡절 많은 이 땅의 삶을 담아낸 한국문학의 품격과 위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 이 작품과 작가들을 보라.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인생을 문학에 바쳤다. 나는 특히 작고한 선배들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자신의 갖가지 영욕의 생활을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던 그 숨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우리 근현대문학의 강인한 힘을 새삼 확인했다. 그들은 동구 밖의 돌담이나 정자나무처럼 풍상 속에서 무너지고 꺾이기도 하면서 늘 우리 곁에 있었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세트』 ‘펴내며’ 중에서)

 

2011년 3월부터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3년 동안 연재했는데, 어떻게 시작했으며 방대한 작업이라 압박감을 느꼈을 것 같다.

 

이 작업을 감옥에 있을 때 생각했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글도 못쓰고 책도 읽을 수 없어서 휴지 조각 같은 것에 메모해서는 마루장에 숨겨놓곤 했다. 그런데 석방될 때는 그걸 갖고 나오진 못했다(웃음). 그렇게 계획했던 프로젝트를 절반 정도 했다. 왜 단편을 생각했느냐면 근현대사를 다룬 역사책은 많은데 소설가가 당대의 일상을 그린 것을 통해 시대와 역사를 들여다보는 그런 작업은 이전에 없었던 것 같다. 평론가와 편집자, 학자가 앤솔로지(선집)를 엮어내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창작하는 소설가가 앤솔로지를 내는 경우는 드물다. 서머셋 모옴이 만든 20세기의 명단편 모음집 같은 것은 있을까. 역사책이나 문화사 등을 보는 것보다 단편 소설을 모으면 치우치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는 과거를 불러와서 현재를 파악하고 현재를 살아내기 위함인데, 현재의 관점이 우세한, 어떻게 보면 현재에 입각한 작업이 되겠지. 젊은 시절에는 한국문학을 보다가, 작가를 하면서 정신없이 일감에 시달리다보니, 한국문학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젊은 작가들의 책도 집으로 많이 오지만 읽지 못했었는데, 이 작업을 하려다보니 찾아보게 되고, 작품을 골라야 하니 단편뿐 아니라 중요 장편까지 찾아보게 되더라. 그래서 힘들었다(웃음).

 

이 책의 즐거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달도 보고 손가락도 보는 즐거움,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석영이 뽑은 책도 보고, 황석영의 글도 보고, 평론가가 쓴 글도 보는. 읽는 재미가 달콤하고 고소하더라. 101명의 소설가를 뽑기 위해 몇 편의 작품을 읽었나?

 

기억에 의거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를 고르는 작업은 시대 구분과 같이 했다. 그 작업을 신수정 평론가와 함께했다. 편집부와 얘기하다보면, 거의 비슷하게 추려지더라. 내가 우겨서 넣은 작가도 있고 내가 토론에서 지고 넣은 작가도 있고(웃음). 최종적으로 합의를 본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염상섭은 단편집 2권을 읽고, 중요 장편인 『삼대』, 『만세전』 등을 필히 읽었다. 60~70년대로 넘어와서는 아는 작가들이 많은데 단편집을 다시 읽었다. 90년대로 와서는 이름도 모르는 작가들이 많아서 그들의 책을 읽는 게 힘들었다. 빡세더라(웃음). 고시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10시간 이상 앉아서 읽고 메모했다. 처음에는 왜 이걸 했나 싶더라. 말년을 지혜롭게 살지(웃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는데, 감명 받았다. 젊은 작가들이 지근거리에서 놀고 있음에 안심했고, 대단히 세련됐더라(웃음). 그동안 문창과가 많이 생겨서인지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재능은 갖췄음을 느꼈다. 세련되고 근사하게 써서 놀랐다. 단점이라면 60~70년대는 체험과 인생의 피와 눈물이 녹아서 서사의 힘이 있었다면 요즘 작가들은 세련된 반면 텍스트에 (다른 소설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런저런 책을 읽었구나 하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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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염상섭은 철저히 현실직시의 태도와 비판적인 리얼리즘을 보인 반면 이광수는 허무주의적인 경향이어서 염상섭이 빛을 발했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를 하고 한 신문에서 사설이 나왔다. 어느 나라든 작가는 원래 삐딱하니까 좌파니 뭐니 하는 말이 성립 안 된다. 나는 자유주의 작가 정도면 모를까. 그런데 이광수, 김동인 등이 친일이니 뭐니 (선집에) 싣지 않았다며 속 좁은 황석영이라고 사설을 썼더라. 유치찬란해서(웃음). 황석영이 자기가 편집하는데 자기(소설)는 왜 넣었느냐, 이런 식이야. 이 작업을 하면서 시대 구분이 중요했다. 근대를 언제로 보느냐면, 서구에서도 1차 대전이 끝난 후부터 근대라고 말한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났는데, 3.1운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만세전』이다. 염상섭은 근대의 시작을 3.1운동 이후로 본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이 진행되고, 일본의 문화통치 영향이지만 그렇게 쌓인 문화적 역량이 신문화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산업화가 시작되고 1년에 500~600건의 소작쟁의가 일어났다. 근대적 자각이 시작된 거지. 전통이 단절되면서 문학도 이식 문화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서양음식으로 알았는데, 실은 일본의 개화 음식이다. 사이비 서구 문화가 들어온 거지. 개화주의의 흔적들이 1920년대 전에는 많이 보인다. 이광수 등은 개화 문화의 한계를 보였다. 요즘 식민지 근대에 대한 얘기가 많다. 현재에 입각해서 보자는 시선인데, 식민지 근대를 몇 시간동안 논쟁하면서 그것에 대한 글을 쓸 가치는 없다. 너무 자명하니까. 식민지 근대를 보여주기 좋은 작가, 근대적 자아가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는 작가가 염상섭이다. 요즘 작가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선정한 것이다. 당시 구두 닦는 값이 얼마고, 담배값이 얼마인지 잘 나와 있어서 당시의 일상을 잘 들여다볼 수 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선정하게 됐나?

 

두 번째 작가가 이기영이다. 그는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 가담했었는데, 당시 식민지 상황에서 치열하게 저항했음에도 80년대 민중문학 진영이 추상적인 구호를 들고 나왔듯, 카프도 그런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기영 등 농촌을 근거지로 활동한 사람은 늙을 때까지도 활동을 했다. 그는 북에서 홍명희처럼 생을 마친 사람이다.

 

그 다음이 채만식인데, 식민지 작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가가 아닌가 싶다. 채만식이 논산, 전주를 무대로 활동한 농민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도 대단히 모던하다. 당대 작가들이 훼절을 많이 했는데, 이 사람도 친일 행적이 조금 있긴 하다. 그리고 해방 후 소설을 열심히 쓰다가 죽었다. 분단 이후 채만식은 서울이 아닌 변방에 살고 있기도 했지만 제도권 문단에서 소외된다. 제도권이 채만식의 문학 세계를 용납 못한 거지. 80년대 이후 재평가가 됐는데, 그전에는 버려져 있던 작가였다. 해방 전후와 전쟁 전후, 이데올로기 전투가 심했는데, 월북자, 월남자, 귀순이라는 표현은 분리주의에 종사한다. 월남한 작가들이 반공을 내세우고 철저하게 북을 비판하거나 저주하는 식이었으나 채만식은 지주 계층이고 아버지가 민족주의자였으나 남한에 내려와서는 남한 사회를 비판한다. 전쟁 직전까지 쓴 글들을 보면 그렇다.

 

작가를 배치할 때도 역사와 사회적 상황에 연계해서 했고, 한 작가의 많이 알려진 작품보다 그 작가가 감추거나 평생동안 다른 작품을 쓸 때 영향을 줬을 것 같은 작품을 골랐다. 황순원의 경우, 인터뷰나 강연을 안 하고 학교와 집필실만 왔다 갔다 했던 작가였다.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고, 식물성의 삶을 견지했다. 즉 선비 같은 작가다. 현실과의 거리를 지키면서 황순원이 지키려고 한 것은 자기 문학이었다. 남한 문학의 시작을 황순원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황순원 단편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모든 영광은」이라는 단편을 골라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었다.

 

101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다 싶은 작품을 꼽을 수 있나?

 

글쎄, 지금 나이가 들어서 기운이 빠져서 그런지 나보다 다들 잘 쓰는 것 같아(웃음). 누구에게나 절창은 있다. 인생에서 여러 가지 진정성 있는 대목이 불꽃을 냈을 때 좋은 작품을 내는 것 같다. 작가들에게는 그런 시절이 있다. 물론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절창의 시절이 있지 않겠나. 101편의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그런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지금 기획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90세 넘어서까지 소설을 쓰는 것은 안 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데, 2018년에는 나올 것 같다. ‘철도원 3대’라는 작품이다. 나는 태생이 도시것이고 산업도시 근방에서 자랐다. 좋은 작가를 보면 공업지대나 산업화지대의 언저리, 삶의 조건이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났더라(웃음). 나도 식민지 근대의 전형적인 도시인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영등포공장지대에서 자라서 그런 추억이 많다. 근대와 후기근대를 세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나의 죽을 때까지의 소망이다. 철도원 3대를 쓰면서 근대와 후기근대를 잇고 싶다. 이것을 가족사로 쓰면서 환상과 비약을 서슴지 않고 새로운 장르를 쓸 것이다. 앞선 실험적 작품을 토대로 철도원 3대를 쓰고자 하는데, 이것이 마지막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엔 좀 놀려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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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Q&A

 

『바리데기』를 재밌게 읽었고, 『오래된 정원』도 흥미로웠다. 영화화나 크로스오버로 됐으면 좋겠다는 작품이 있나?

 

나는 대중적으로 큰돈을 벌고 대박이 터지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물론 『장길산』은 350만부 나갔지만. 나는 중박을 지향한다. 20~30만부(웃음).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다. 영화 판권을 팔면 이상하게 늘 실패하더라(웃음).

 

행복하신가요?

 

이 질문, 참 잘 나왔다. 내면이 정해진 사람은 행복과 불행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여곡절을 겪고 감옥에서 나오니 내 나이가 57세였다. 오갈 데 없는 노인이 된 채 석방됐는데 그때 내 계좌에 700만원이 있었다. 문단에서도 15년 동안 글을 안 썼으니 작가로서도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행복이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 남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건 자기계발서 등이 강요한 것이다. 행복 속에도 불행이 있고 불행 속에도 행복이 있다. 행복은 소비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있다. 루이비통을 사면 행복해? 70평대 아파트에 살면 행복해? 우리는 행복과 불행에 대해 과소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 소설책을 많이 읽어라. 그 사람 내공 있어, 라고 일상에서 말을 하는데, 내공이 뭐냐면 속이 깊고 힘이 있다는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 왜 내공이 생기느냐. 일상을 영위하면서 숱한 사람들의 삶을 모두 경험할 수는 없다. 소설을 읽으면 다른 사람의 생을 자기 속에서 살필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근육이 생기고 내공이 생긴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다. 선진국에서 그래서 문학이 모든 교양의 기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공은 어떤 불행이나 밑바닥에 처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 힘이다. 나보고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때때로 불행하고, 때때로 행복하다고 말할 것이다.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 해준다면?

 

편집자들에게 하는 말인데, 현실과의 접촉이 중요하다. 세월호 사태가 터진 후 작가들에게 소감문을 쓰라고 했는데, 그 책도 참 좋았다. 젊은 작가들이 현실 속으로 그렇게 차고 오르면 좋겠다. 자기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일상에서 만나는 구체적인 접점을 글로 쓰는 작업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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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세트황석영 저/신수정 해설 | 문학동네
1962년 등단, 오십여 년 한결같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해온 거장 황석영이 지난 100년간 발표된 한국 소설문학 작품들 가운데 직접 가려 뽑은 빼어난 단편 101편과 그가 전하는 우리 문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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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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