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의 눈으로 『보다』

김영하 작가 『보다』 낭독회 김영하의 눈으로 사람을, 세상을, 우리를 ‘다르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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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동숭아트센터에서 김영하 작가의 『보다』 낭독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사회를 다르게 ‘보는’ 작가와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는’ 독자와의 만남이었다.

지난 9월 23일, 동숭아트센터에서 김영하 작가의 『보다』 낭독회가 열렸다. 김영하 작가는 그 동안 2010년 화제를 모았던 테드(TED) 영상과 2013년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판의 고정 칼럼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보다』는 김영하 작가가 5년 만에 펴내는 산문집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번 행사의 진행을 맡은 이병률 시인은 ‘내가 사용하지 않는 뇌를 쓰는 작가’라는 표현으로 김영하 작가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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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들여다 ‘보기’ 시작한 소설가

이병률: 2012년부터 부산에서 살고 계신데, 서울이 낯설어진 것과 반대로 부산에서 가장 익숙해진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영하: 사람이 많이 달라요. 부산 사람들은 무람없이 남의 일에 잘 끼어들어요, 좋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부산에서는 장을 보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그거 안 좋다, 사지마라”하세요. 마트 판매원 분께 “과일 이게 좋아요, 저게 좋아요?” 물으면 서울에서는 보통 “다 좋아요”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오늘은 사과가 좋습니다”, “오늘은 배가 좋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의견이 있습니다. 또 며칠 전에 부산에서 행사를 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한 분이 “이런 행사 또 언제 합니까?!” 하시더라고요. “왜요? 불이라도 싸지르시게요? 화나셨어요?” 그랬는데, 부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 말이 서울말로 “이런 행사 정말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뵙고 싶은데, 또 언제 오시나요?” 이런 뜻이래요. 처음엔 낯설었는데 이제는 이게 익숙해져서, 서울에 오면 ‘사람들이 가식적인데?’ 이런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병률: 『보다』에 실린 작품도 대부분 부산에서 집필하셨다고요. 작가에게 『보다』는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김영하: 많이 예고가 나갔습니다만, 『보다』 다음에는 『말하다』와 『읽다』가 출간될 예정입니다. 제가 해외 생활을 하다가 2012년 한국으로 돌아오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작가는 글을 써야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 때부터 여러 매체에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소설만 쓰던 생각의 근육을 다른 쪽으로 사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 글들을 이렇게 한 책으로 묶어놓고 나니, 생각의 양상이나 관심을 가졌던 주제가 일목요연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보다』는 한 마디로 세상을 좀 더 잘 보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병률: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한동안 나는 망명 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김영하만 쓸 수 있는 구절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본다’는 행위에도 맥없이 보는 것, 의미 있게 보는 것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김영하 작가에게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영하: 저는 양쪽 시력이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책을 볼 때는 아예 한쪽 눈을 감고 볼 정도예요. 또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약간 사시가 있어서 사물이 둘로 보이곤 했습니다. 두 세상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본다’는 행위에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보는’ 것도 하나의 훈련입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시장에 가서 본 것을 적어내는 과제를 냈습니다. 보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몇 개 보지 않아요. 봤음직한 것, 시장이면 있을만한 것만 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장에는 반드시 우리의 예상이나 짐작과는 다른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소설가든 시인이든 사실은 ‘잘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계속 훈련을 통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저 역시 늘 조금 다른 것들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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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통해 누리는 즐거움


이번 낭독회에서 김영하 작가는 『보다』에 실린 세 개의 글을 낭독했다. 그는 가장 먼저 「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부자를 정말 부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 대한 무지다. (…) 내 짝은 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으로 당시 압구정동에 살고 있었다. (…) 어느 날 우리 둘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우리 집에 가서 놀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가 가지런히 높인 슬리퍼를 보고 이렇게 말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작은 집에도 슬리퍼가 필요해?” 그의 말에는 그 어떤 공격성이나 비아냥의 기운도 없었다. 그의 의문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천진함이야말로 그가 가난을 거의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진짜 부자는 소유하지 않는다」 中


이병률: 김영하 작가는 부자였던 적이 있으셨는지, 아니면 부자가 될 예정이신지요. 억만장자가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김영하: 부자가 될 준비는 이미 끝났는데 말이죠! ‘부자가 되면 해야지’ 하는 일은 많은데 아직 부자가 되지는 못했네요. 저는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꼭 도서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곳에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을 세우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 김영하 작가는 「나쁜 부모 사랑하기」,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유」 를 낭독했다.


진짜 죽음에 대한 직면과 통찰이 그녀에게 에피쿠로스적 계시의 공간을 열어준 것이다. 가서 지구의 공기와 물과 중력, 늘 네 곁에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저 찬란하지만 유한한 것들을 죽음이 찾아오기까지 마음껏 즐기라. -「어차피 죽을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유」 中


이병률: 김영하 작가는 사고가 단정하고, 일목요연한 사람 같아요. 같이 술을 마실 때도 흐트러짐 이 없으시고. 김영하 작가에게 인생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나요?


김영하: 에피쿠로스가 이런 말을 했어요, ‘고급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삶을 단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는 사치를 멀리했고, 소박한 삶에서 크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누리고자 했습니다. 알베르 카뮈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너무도 많은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없다’. 저는 많은 것을 단순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출판사도 하나, 서울은 너무 복잡하니까 부산. 하루 생활도 굉장히 단순해요. 글 쓰고, 책 보고, 산책하는 정도예요. 저는 제 인생을 스스로 꾸려나가고 있다고 느낄 때, 즐겁습니다. 내가 먹을 것을 내가 만들고, 팟캐스트를 집에서 내가 하고, 여러 게스트 부르면 복잡하고 귀찮아지니까 나 혼자 하고, 이런 거예요. 이런 과정에서 산 속을 걷거나, 맛있는 것을 해먹거나, 좋아하는 사람 몇몇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술을 한 잔 한다든가 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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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독서는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


김영하 작가는 낭독 이후 독자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보다』 북트레일러를 보고 사안의 복잡성과 별개로 빠른 판단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점점 피상적인 견해만을 갖게 된다는 말에 공감했습니다. 스스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독자들 중 젊은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세상이 ‘네가 원하는 게 뭐냐?’ 자꾸 묻는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어떻게 아나요? 어려워요. 어른도 잘 몰라요. ‘네가 원하는 걸 해라’ 계속 말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참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걸 알기 위해서 평생이 걸릴 수도 있는 건데, 세상은 ‘너는 왜 원하는 걸 모르냐?’, ‘왜 원하는 게 없냐?’ 다그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결단을 내리고 그걸 향해 달려가기를 강요하는 거죠.”


“저는 가끔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가’ 생각을 합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왜 책을 읽을까. 독자는 세상이 우리에게 빠른 판단을 내리고 열심히 살기를 강요할 때 그게 싫은 거예요. 멈추고 싶은 거죠. 그렇다면 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저는 책을 읽는 행위는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그 순간 우리는 소비자도 생산자도 아니며, 좀 더 다른 차원의 세상에 가게 돼요. 책과 나밖에 없어요.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순간,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죠. 저는 이런 것이 책을 읽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곳에 오신 분들이 세상의 강요에 맞서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감이 가장 잘 떠오르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침대요. 특히 자기 전까지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잠이 들면, 아침에 이에 대한 많은 영감이 떠오릅니다. 제가 최근에 지리산에 캠핑을 갔습니다. 혼자 산 중턱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데,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들고 잠이 얕게 오더라고요. 벌레 소리와 새 소리로 시끄러워서, 얕게 잠을 자면서 이상한 꿈을 많이 꿨습니다. 이럴 때는 녹음기를 옆에 두고 녹음을 하기도 합니다. 아침에 깨서 들으면 대부분 헛소리지만, 그 중에 흥미로운 생각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는 동안 머릿속에 마법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책을 보면 자신이 본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보는’ 행위가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본다는 것과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사실 인류사에 남아 있는 위대한 생각은 대부분 대화에서 나왔습니다.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글을 쓴 적이 없습니다. 저는 소크라테스가 이미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진리를 터득하지 않았을까요. 여러분도 이런 경험 해보셨을 거예요. 어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남에게 설명하다 보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거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 갈 때가 있습니다.”


“이런 대화는 사실 다른 사람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때도 많이 일어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쓰여진 글과 자신이 대화하는 것이죠. 글을 쓸 때는 앞의 전제들과 어긋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주가 살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알고 보니 왕자였다, 내시였다’ 이렇게 이어갈 수는 없죠. 이렇게 앞의 전제를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면 계속 자신의 글과 대화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처음 쓰고자 했던 것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소설가들이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죠. ‘왜 내 글은 산으로 가나?’ 할 수 있지만, 이건 산으로 간 게 아니라 작가의 내적 무의식과 자아가 자신이 써놓은 글과 대화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마찬가지로 ‘보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그 후 본 것을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더욱 분명해지고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김영하 작가의 『보다』 낭독회는 사회를 다르게 ‘보는’ 작가와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는’ 독자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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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김영하 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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