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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지는 6시 17분

- 경계는 진실이 회귀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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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술이 이해되어야 하듯이 B사감은 이해되어야 한다. 그가 늘 경계를 사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6시 17분은 인간이 분열되는 시간이 아니라, 진실이 회귀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퇴근길에 이 진실의 시간을 노을을 보며 걸어보라.

문학평론가 함돈균의 에세이 <시간의 철학>이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시간과 날짜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다르게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을 철학적으로 풀어봅니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갔을 때 갑자기 어려워졌다고 느낀 과목은 ‘국어’였다. 당시 나는 나름대로 우리말에 대한 감각적 소양이 있는 어린이라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작품들, 특히 ‘동시’에서 ‘현대시’로의 점프는 내게는 버거운 수준의 비약이었으며, 이른바 본격적인 ‘현대시’의 논리를 납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 교과서에서 만난 첫 번째 시 중 하나는 박목월의 「나그네」였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국어선생님의 ‘교과서적’ 설명에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아이들은 시를 이해했다기보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는 착한 아이들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난 선생님의 설명 이전에 이 시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고, 시인에게 동의할 수 없었다. 의문이 생기자 첫 시간부터 나는 삐딱해질 수밖에 없었다. 손을 들고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저는 3연의 논리가 이해되지도 않고 거기에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시가 씌어졌던 시기는 식민지 치하 말기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가능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던 시절이 아니었나요. 보통의 조선인들은 당시 매끼 양식이 충분치 않아서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던 것으로 알아요. 그 당시 술은 집에서 쌀을 담가 먹던 것이었습니다. 먹을 양식도 충분치 않은 고생스러웠던 시절에 어떻게 ‘마을마다 술이 익을’ 수가 있을까요. 이 시는 당시 민족적 현실을 왜곡하고 있고, 도덕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렀지만, 중학교에서 시를 배우던 거의 첫 번째 수업 시간을 반론으로 시작했던 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잘 생각해보면 또래들에 비해 많이 예민했던 나는, 책 좀 읽은 어린이들이 가지는 순진한 정의감에 사로잡혀 이 시를 쓴 시인에게 심지어는 상당히 화가 났던 듯하다. 물론 그 시절 국어선생님에게 난 납득할 만한 해명을 듣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후에도 이 시에 관한 충분히 설득력 있는 해명을 들어보지는 못한 것 같다. 물론 당시 학교들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러했듯이 규율이 무척 센 중학교에서 난 그후 ‘관심아’ 비슷한 존재로 찍혔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누구나 한 번 즈음은 보았을 저 유명한 시에서 시인의 직관과 어린 학생의 순진한 의협심의 차이는 시의 시간과 사회적 시간 사이에 난 간극을 이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것은 깊이 통찰하지 않으면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어른들 역시 간과하는 인간-삶의 복합적인 시간성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다. 어린 학생이었던 나는 “술 익는 마을”을 문학의 유일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 사회적(역사적) 정황의 차원에서 이해했으나, 시인이 직감한 것은 ‘술-저녁놀’이 맺는 상관성에 대한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의 직관과 관계한다. 여기서 ‘술-저녁놀’은 좀 더 일상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의 인간 현실에 관여하고 있는 상시적인 시간에 관한 어떤 것이다. 그 시간이란 언제인가. 아마 낮의 시간이 저녁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어스름, 아마 이맘때 한가위가 지난 무렵이라면 해가 스러지고 이지러져 저녁놀로 번져가기 시작하는 오후 6시 17분 즈음이 아니었을까.

 

함돈균.jpg

 

방심의 시간


이 시의 3연을 읽는 세 가지 층위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술이 익어가는 마을이라는 공간에 저녁놀이 불타고 있다’는 정황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어린 학생이었던 내가 읽었던 방식으로, 시의 현실을 삶의 실제와 관련하여 정황적이고 공간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둘째, 이미지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술이 익는다’는 것은 우선 얼굴이 술을 먹고서 붉어지는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으며, 이것이 “타는 저녁놀”과도 이미지의 유사성 차원에서 연결될 수 있다. 그런데 시에서 이미지는 단순하지 않아서 이미지의 연상 차원으로 시를 읽게 되면, 충분히 자각되지는 못하지만 이미지가 내포하는 다른 삶의 진실과도 어렴풋한 조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공간적 정황의 단순한 물리적 결합으로 시를 읽는 첫 번째와는 달리, 이 두 번째 차원은 이미 술과 저녁놀 사이에 모종의 ‘화학적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지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층위는 “술 익는 마을”과 “타는 저녁놀”을 근본적인 시간의 지평에서 읽는 방식이다. ‘마을’에는 누가 사는가. 사람이 산다. 사람의 현실에는 역사의 층위를 넘어서 늘 지속되는 일상적이고 실존적인 현실이 있고, 그것은 심리적인 차원에 관계된 현실이기도 하다. 이 심리의 차원은 자각될 수 있는 차원의 시간보다 더 깊숙하고 야생적인 시간이라는 점에서, 흔히 ‘정신’이라고 쓰는 층위보다 더 밑바닥에 있지만 강력하기도 하다. ‘술’은 그 야생적인 시간을 매개하거나 불러오는 촉매제이자 그 자체가 그 시간의 상징이다. 그 시간은 노동하고 기획하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강력한 통제가 풀어지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는 물론이고 의식의 자기 검열로부터도 어느 정도 놓여나는 ‘방심’의 때라는 점에서 ‘밤’의 시간이다. 이 방심의 시간에 인간은 제 안에 있었지만 자신도 몰랐던 ‘타자’들이 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술의 시간은 그런 점에서 밤의 시간이다. 술과 저녁놀의 연관성은 이렇게 이미지의 차원에서 실존의 시간 층위로 이어진다.

 

여우와 늑대 사이


이맘때 노을이 지는 오후 6시 17분을 그러므로 ‘여우와 늑대 사이’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속담이 지칭하는 바로 그 시간으로 보아도 좋다. 왜 ‘여우와 늑대 사이’인가. 해질 무렵이 여우인지 늑대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시간이라는 어떤 이의 풀이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이 속담의 진실과 유리되는 얘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풀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시각적 차원의 문제는 좀 더 근본적인 인간 현실의 차원과 결부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여우는 이솝우화 시절부터 통상적으로 늘 꾀가 많고 영리한 동물로 지칭되어 왔다. 늑대는 좀 더 야성적이고 통제되지 못하는 정신의 층위와 관련된다. 서양에서 밤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보름달’ 뜨는 날 본성을 드러내는 ‘늑대인간’의 이야기가 바로 이와 관련이 있다.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은 ‘여우와 늑대 사이’의 그 경계의 시간이다. 여자는 여우고 남자는 늑대라는 얘기가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여우였다가 늑대가 되며, 여우이자 늑대라는 이중의 현실을 산다는 걸 감지하게 하는 경계가 이 즈음의 6시 17분이다. 이 시간이 도래하면 학생들의 연애편지를 압수했던 엄격한 문명의 여자 B사감도,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한 명의 여자가 된다. 타인의 시선이 사라진 한밤의 방에서는 누구나 제 안에 낮과는 다른 타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점에서 「B사감과 러브레터」를 지금도 ‘풍자 소설’로 배우고 가르치는 국어시간은 좀 더 근원적인 시간성의 관점에서 수정될 필요가 있다. B사감은 풍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저녁놀이 도래하면 그 이후 누구나가 살게 되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밤과 술이 이해되어야 하듯이 B사감은 이해되어야 한다. 그가 늘 경계를 사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6시 17분은 인간이 분열되는 시간이 아니라, 진실이 회귀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퇴근길에 이 진실의 시간을 노을을 보며 걸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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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함돈균(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이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문학 속에 나타난 전위적 감각과 윤리를 탐구하는 연구·비평·강의에 매진하고 있다. 인문정신의 사회적 확산과 시민적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천적 인문공동체 시민행성’을 기획하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매일경제신문에 문명의 무의식과 시대정신을 사색하는 <사물의 철학>이라는 인문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문학평론집으로 《예외들》, 《얼굴 없는 노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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