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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위험해서 더 말해야 하는 현대사”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자 쓴 55년의 기록 『나의 한국현대사』 유시민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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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나의 한국현대사』의 출간을 기념하여 유시민이 독자를 만났다. 유시민의 눈으로 한국 현대사 55년을 돌아본 독자는 유시민에게 2014년의 대한민국을 물었다.

유시민이 『나의 한국현대사』를 출간했다. 현대사는 이에 대한 해석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주제라 할 수 있다.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유시민은 ‘그럼에도’ 『나의 한국현대사』를 썼다.

 

삶에서 안전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내가 보고 겪고 참여했던 대한민국현대사를 썼다.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을 다루었으니, ‘현대사’보다는 ‘현재사’ 또는 ‘당대사’가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 『나의 한국현대사』, 11쪽)

 

작가만남-유시민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대화를 이끄는 책

 

8월 24일, 파주 돌베개 사옥에 위치한 ‘행간과 여백’에서 독자와 만난 유시민은 먼저 책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 밝혔다.

 

“책을 쓰면서 기대했던 효과가 있습니다. 젊은 이들은 ‘아버지는 이런 사건을 겪으셨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이해하고, 기성세대는 ‘우리 때는 그랬지만,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각자의 견해에 찬성할 수 없더라도 서로 간에 ‘그럴 수 있지’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쓰면서 아쉬움도 있었다. 책은 수십 명의 독자에게 전달되지만 TV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는 수 만 명의 청중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한국현대사를 통해 우리 삶의 진지한 과제를 말할 수 있는 매체는 ‘책’밖에 없었다.

 

“공중파에서 이순신 장군 같은 몇 백 년 전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삶이 급한데 말입니다. 토크쇼에서는 연예인들의 이별과 같은 사생활을 다루는 데 급급합니다. 동시에 ‘사회적 갈등이 심하다’며 비판도 많이 합니다. 저는 ‘너희들이 그렇게 하니까 이렇게 된 거야’ 말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현재 우리 삶의 진지한 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소통이 막혀 있는데, 이는 대통령만의 문제도 아니고 국민들이 어리석어서도 아닙니다. 대중 미디어가 진짜 소통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번 행사는 『나의 한국현대사』의 서평을 남긴 독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만큼, 유시민의 짧은 담화 이후 독자들이 직접 묻고 유시민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작가만남-유시민

 

50보와 100보의 차이

 

광화문 세월호 농성에 함께 하는 분들 중, 세월호 특별법에 본인의 의견을 보태어 같이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경우를 보았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참 복잡한 문제죠. 세월호 문제는 원래 다툴 이유가 없는 일입니다. 참극이 벌어졌고, 구조를 못했고, 결국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여전히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큰 권한을 구성하여 실제적으로 사건의 원인, 경위, 사람들을 구조하지 못한 이유 등을 조사해야 합니다. 야단 맞을 사람들은 야단 맞고, 법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처벌 받고, 제도의 문제는 고쳐나가야 하는 사안이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어렵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로 막히고 꼬여서, 누가 조사를 하고 누가 권한을 어느 정도 갖느냐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해결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겁니다.“

 

유시민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 뒤, 인간이란 ‘천사와 악마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존재’라는 말을 했다. 그런 인간이기에 인간이 느끼는 감정,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한 판단은 쉽지가 않다.

 

“웹툰 작가 강풀 씨가 저한테 한 이야기인데, 고양이들은 밥을 적게 주면 싸우고 많이 주면 다같이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많이 남아도 서로 싸웁니다. 짐승보다 못한 거죠. 그런데 또 밥이 모자랄 때 나눠 먹는 것도 인간입니다. 사람은 자기 것이 모자랄 때도 서로 나눕니다. 결국 동물보다 사악하면서도, 동시에 어떤 동물보다도 고상한 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동시에 일어납니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이 합리적인지, 이성적인지, 올바른 것인지 판단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질문에 명확한 답은 드리기 어렵지만, ‘저걸 어떻게 봐야 하지?’, ‘왜 이런 감정이 느껴지지?’ 생각이 들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더 찾아보고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문제이긴 한데, 내가 나서서 하기는 좀 그래’ 싶으면 그만큼 망설이면 됩니다. ‘저 사람들은 절박하겠지만, 그래도 저건 아닌 것 같아’ 하면 외면해도 됩니다. 모두가 만사를 제쳐놓고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세상 일에 나설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가 가치 없는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에, 각자 처해 있는 환경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동시에 연대하고 있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서울역 회군’ 부분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특히 회군 이틀 후 계엄군이  진입할 것임을 알면서도 혼자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을 지킨 일화가 있었는데, 그 당시 심정이 어떠셨나요?

 

“우리가 하는 말 중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 즉 ‘50보 도망간 자가 100보 도망간 자를 비웃냐’는 말이 있는데 저는 그게 잘못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50보 도망간 것과 100보 도망간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는 ‘옳다, 그르다’ 확실히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이 사실 ‘정도’의 차이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일반적입니다. 100보를 도망간 사람은 해보지도 않고 맨 처음 도망간 사람이에요. 50보 도망간 사람은 해보려고 노력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도망간 사람입니다. 저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만남-유시민

 

상식의 기반은 공감, 공감 없는 사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저는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안의 책임이 여당과 대통령에게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언론은 야당의 잘못을 탓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세월호에 대한 얘기 자체를 터부시하고 침묵합니다. 이것이 한국 사람의 특징인지, 미디어의 영향인 건지 너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가는 것과 아주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을 잘 보지 못합니다. 따라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존하고, 직접 경험하고 있는 시간을 넘어 인간의 역사와 함께 길게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우리는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상식이 현실보다 앞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보편적인 인권의 개념이 나온 지 300년이 안 되었습니다. 사회권적 기본권이 나온 건 200년도 안 됐고, 여성이 참정권을 가진 것도 100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과 우리가 지금 서 있는 현주소 간의 불일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 한국 사회는 문명의 보편적 규범을 뜻하는 ‘상식’이 완벽하게 잘 통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그게 잘 안 통합니다. 최근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찰이 절도 혐의를 받은 비무장 흑인 청년을 총으로 6발이나 쏴서 죽였습니다. 여기에 상식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그 곳에 ‘저희는 경찰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배우 이산이 세월호 유족을 향해 ‘단식하다 죽으라!’는 말을 페이스북에 올려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 고민은 몇 천년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시민은 맹자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측은지심’을 언급했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악인’에 대해 인간이기에 측은지심을 타고 났지만 이를 갈고 닦지 못해서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악인은 어떤 억압적 이유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측은지심을 발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억압은 이데올로기일 수도, 이익에 대한 욕망일 수도 있습니다. 배우 이산의 페이스북 글 논란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감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념 전쟁이 학살로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혁명가들은 불합리한 제도에 분개하고, 이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응하기에 혁명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반대파를 죽일 때는 너무나도 잔인해집니다. 상식의 기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직관과 도덕적 감성에 있습니다. 따라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를 억압받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너무도 많다는 뜻입니다.”

 

책에서 한국 현대사를 난민촌-병영-광장으로 비유하셨는데, 현재 대한민국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광장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책에서 한국 현대사를 반공 난민촌에서 시작해서 자본주의적 병영을 거쳐 민주적 광장 사회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광장에서 어떤 옷차림으로,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관계 맺으면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대한 것은 아직 열려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장이 뺏기거나 닫히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은 아직 열려 있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 광장에서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아직 없을 뿐입니다. 지금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특정한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 광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점차 광장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국입니다.”

 

유시민은 광장의 주도권이 특정 세력에 집중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더 나은 광장에 대한 희망을 보였다.

 

“우리 나라는 광장이 열린 지 채 30년이 안 되었습니다. 아직은 이 광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미숙하죠. 하지만 저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만족스러워서 괜찮다는 것은 아닙니다. 불만족스럽지만, 이 정도의 문제라면 시간과 경험, 그리고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사회가 추하고 불합리하며 저열한 상태에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더 아름답고 합리적이며 고결한 상태로 변화했다면, 그 과정을 기록한 역사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대한민국현대사 55년이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역사라고 생각한다. 2014년의 대한민국은 결코 완벽하고 훌륭한 사회가 아니다. 수치심과 분노, 슬픔과 아픔을 느끼게 하는 일들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1959년의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를 뿐만 아니라 훨씬 더 훌륭하다.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점이 55년 전보다 훌륭한가? 무엇이 그 변화를 만들었는가? 어떤 면이 아직도 부끄럽고 추악하며 앞으로 우리는 어떤 변화를 더 이룰 수 있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나의 한국현대사』,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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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유시민 저 | 돌베개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14, 55년의 기록』은 ‘프티부르주아 리버럴’인 유시민이 대중의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들여다본 한국현대사 55년의 기록이다. 왜 55년인가? 1959년 돼지띠 출생자 중에서 유일하게 국무위원을 지낸 유시민이 출생 후부터 현재까지 보고 겪고 느낀 주요 사건들을 다뤘기 때문이다. 현대사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큰 줄기로 삼고 저자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잔가지로 삼아 엮어낸 이 책은 현대사라기보다 ‘현재사’現在史 또는 ‘당대사’當代史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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