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펴낸 임종의료 의사 존엄사 아닌 ‘품위 있는 죽음’을 지향한다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의 저자이자 대표적인 임종의료 의사인 윤영호가 파격적인 두 번째 고백을 들려준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고 말하고 있는 것. 그가 목격한 한국 사회의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기에, 그는 이처럼 서늘한 고백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걸까. 의사 윤영호가 꿈꾸는 죽음과 현실 속의 죽음, 그 사이의 괴리를 들여다봤다.
호스피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비참한 나라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대한민국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 담긴 저자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의 죽음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던져준다. 당신은 이상적인 죽음의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는지, 당신이 목격한 모습대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해답을 찾고 싶다면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가족들보다는 의료진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병원에서, 거추장스러운 의료 장비를 온 몸에 부착한 채,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싶은가? 아마 그런 죽음을 꿈꾸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아프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의사 윤영호는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걸까. 각자가 꿈꾸는 모습대로 죽어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안에 담긴 것은 바로 그 질문들에 대한 윤영호의 대답이다. 그는 준비된 죽음을 저해하는 요소들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 사망 선고를 전하기 두려워하는 가족, 연명치료를 끝까지-그것이 무의미해진 순간에도-고집하는 태도, 통증관리에 소극적인 일부 의료진 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시한다.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효과 없는, 죽음이 예정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최소화시켜 주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는 의사로서 오랜 기간 환자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의사이기 이전에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느꼈던 죽음의 의미가 투영된 것이었다.
그는 24세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누이의 죽음을 통해 의사가 되기를 결심했고, 대학 시절 의료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환자가 유언처럼 남긴 한 마디,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암 전문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의사가 된 후에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을 보아야했다. 그래서 그는 국립암센터로 터전을 옮겨 ‘삶의질향상연구과’를 만들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의 설립위원으로 활동했다. 말기 환자들이 겪는 통증과 간병 부담,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문제들, 그리고 호스피스와 가족들의 삶의 질 등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가정의학과로 전공을 선택한 건 네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지속적인 치료를 이어간다는 점, 신체적 치료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이고 영적인 돌봄까지도 병행하는 전인적인 치료를 한다는 점, 환자와 가족을 함께 돌보는 가족 중심의 의료라는 점, 그리고 휴머니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죠. 하지만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호스피스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호스피스를 하기 위해 가정의학과에 지원했다고 하자 다들 웃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호스피스는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종교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던 거죠.”
원래 호스피스는 중세 유럽 여행자와 순례자에게 숙박을 제공했던 작은 교회를 의미했다. 그런데 여행자가 병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는 경우, 그대로 그곳에서 치료 및 간호를 받게 되면서 이 수용시설 전반을 호스피스라고 부르게 됐다. ‘Hospice’의 어원은 주인과 손님 사이의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장소인 ‘Hospitium’에서 유래됐다. 교회에서 간호를 맡는 성직자의 헌신과 환대를 ‘Hospitality’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오늘날 병원을 일컫는 용어인 ‘Hospital’이 나왔다. (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258쪽)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서 저자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 환자들에게 극심한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심리적?영적인 측면 등 여러 고통에 대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호스피스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통증을 최대한 경감시켜주는 것이 의료진의 몫이라면, 환자와 가족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심리적이고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종교인과 봉사자, 심리치료사들의 몫이다. 아울러 경제적 또는 정책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사업가나 사회복지사가 함께 돕는다.
“호스피스는 죽음에 대해, 인생에 대해 배우는 겁니다.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배우는 교훈이 있죠. 그리고 호스피스는 교감입니다. 삶을 주고받는 거예요.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 그를 영영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그의 삶이 내 삶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임종이 중요한 거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떠나는 이의 삶이 남겨진 이의 삶으로 이어지는 순간인 거죠.”
존엄사 아닌 ‘품위 있는 죽음’을 지향한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심리적?문화적 장애는 이에 접근하는 것이 생명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인식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41쪽)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의사가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과 호스피스 기관으로의 입원을 권유하면 절망감이나 분노를 느낀다. 마치 사망선고를 받는 것과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윤영호 저자가 처음 호스피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때에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이 더 짙게 깔려있었다. 그 스스로도 ‘환자들이 나를 저승사자처럼 생각하지는 않을까’ 우려했을 정도였다.
“환자들을 만나면서 왜 이렇게 같은 고통이 되풀이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면서 연구한 끝에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죠. 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환자 본인에게 알려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첫 번째였고, 말기 암 환자의 3차 의료 기관 입원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것이 두 번째였어요. 그 과정에서 관련 법과 보험 정책이 만들어지고 재정적인 지원으로 시설이 세워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국립암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처음 제가 ‘삶의질향상과’를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재차 물었어요.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거죠(웃음). 제가 그곳에서 가장 처음 한 일은 통증 관리에 대한 지침을 만든 거였어요. 말기 환자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통증입니다. 너무 아프니까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죠. 그래서 통증 관리에 필요한 약물의 생산을 촉진하고, 통증 관리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그는 호스피스 기관을 마련하고 그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관련자들과 함께 일본과 대만 등을 방문하며 시범 사례를 목격했다. 그 결과 말기 암 환자 전문 기관 지정과 보험수가 마련을 내용으로 하는 정책 발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동안 언론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EBS 프로그램 <명의>의 제작진이 출연 요청을 해온 것.
“처음 제작진이 찾아왔을 때 프로그램의 컨셉과 제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었어요. 명의라고 하면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이야기하는 건데, 저는 사람들이 잘 죽도록 도와주는 의사잖아요(웃음). 제작진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 번은 다뤄야 할 이야기인 것 같아서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참 좋은 생각이라는 들었어요. 저도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호스피스가 어떤 것이고,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숙제는 무엇인지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저자는 호스피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스피스에 대해 제대로 알리기 위해, 학술적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언론을 통해 그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존엄사와 안락사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고, 그들과 호스피스를 연관 지어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존엄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부적절한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말기 환자가 되면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계속 치료를 할 것인지, 아니면 남은 기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의료를 선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죠. 그때 호스피스를 선택하면 연명 치료를 중단하게 되고요. 존엄한 죽음이라는 건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 받는 거니까요. 하지만 의미 없는 치료를 중단한 뒤에도 환자에 대한 돌봄은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지만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가족들과의 삶을 완성시켜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줘야죠. 그런 것 없이 연명 의료만 중단하는 존엄사는 반대한다는 겁니다.”
호스피스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저자는 존엄사 대신 ‘품위 있는 죽음’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다. 흔히 존엄사라고 하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안락사와 그 의미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의 여부가 아니라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기술적인 부분’과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죽음의 질 지수’ 40개국 중 32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삶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으려면 첫 번째로 말기 환자라는 사실을 본인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통증 관리가 병행되어야 해요. 정서적인 지원을 통해 가족과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고, 사회 복지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필요하죠.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를 완성시켜주는 영적인 차원의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 이후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호스피스 완화 의료 팀인 거예요. 그런데 한 편에서는 연명 의료에만 초점을 맞추니까 제대로 진행이 되고 있지 않죠. 호스피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건 맞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립암센터에서 근무하던 2004년부터 4년마다 대국민조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품위 있는 죽음과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왔다. 2008년에도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결과 국민의 87.5%가 품위 있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84.6%는 말기 환자가 된다면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이용하기를 원했다. 2004년 57.4% 보다 무려 30% 가까이 증가했다. (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38쪽)
호스피스 의료 시설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요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를 통해 저자가 제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호스피스?완화의료 병상 수는 인구 대비 필요 병상 수의 35.2%에 그치는 수준이다. 또한 의료 기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6.0%가 국내 호스피스 정착이 어려운 이유로 재정부족을 꼽았다.
“환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연명 치료를 위해 부담하는 비용이 호스피스 운영비용의 세 배 정도 됩니다. 제가 주장하는 건, 그 비용을 연명 치료에 쓸 게 아니라 호스피스 의료를 위해 쓰자는 거예요. 세계적으로도 완화 의료로 전향했을 때 비용이 절감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보험수가를 충분하게 주더라도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죠. 기존의 연명 치료가 고가의 검사나 약재에 비용을 지출한다면, 호스피스는 환자를 돌보는 인력 확충에 지출을 하게 됩니다. 말기 상황이 되면 환자를 더 집중관리 해줘야 하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정도의 의료진이 필요할 수 있거든요. 또 중환자실과 다르게 사회복지사, 심리치료사, 종교인의 인력이 필요하죠. 연명 치료에 들어가던 비용으로 더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예요.”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는 충격적인 지표 한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죽음의 질 지수’를 나타낸 이 보고서는, 2010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연구소인 EIU가 OECD 회원국을 포함한 4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작성한 것이다. 조사의 목표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얼마나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살펴보는 것.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수는 40개국 중 32번째였다. 1위는 영국, 2위는 호주가 차지했다.
“캐나다는 국회가 주도해서 ‘캐나다인의 권리’를 선언했습니다. 그 내용을 번역해서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 소개했는데요. 국회가 나서서 연방 정부로 하여금 ‘말기 환자 관리의 5개년 계획’을 세우게 하고 매년 보고하게 한 거예요. 미국은 메디케어라는 제도가 84년부터 마련됐어요. 이미 70년대에 카터 대통령이 11월을 ‘호스피스?완화 의료의 달’이라고 선언하기도 했고요. 그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서 클린턴 대통령이나 오바마 대통령도 호스피스에 관한 발표를 이어가고 있죠. 그만큼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움직이거나 국회가 법안을 만들고 재정을 지원하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을 고발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을 이야기 해보고자 이번 책의 제목도 도발적으로 쓴 거예요.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고요.”
윤영호 저자는 호스피스 의료 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도적, 경제적, 인적 지원과 함께 ‘적극적인 통증 관리’를 강조했다.
“어떻게든 통증을 관리해야 된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마약성 진통제에 의해서 부작용이 생길까봐 혹은 내성이 생길까봐 주저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통증 관리를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자세를 가진 의료진이 있어야 해요. 말기 상황이 되면 통증뿐만 아니라 아홉 가지에서 열세 가지 정도의 증상이 생깁니다. 그 증상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춰야 하죠. 물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찾아낼 수 있는 부분이에요. 기본적인 훈련을 통해서 그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의료진이 필요한 거예요. 말기 환자가 겪는 고통을 가족처럼 돌봐줄 수 있는 간호사도 있어야 하고요.”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완성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 죽음에 앞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 준비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가족을 떠나보내야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 즉 웰다잉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에게는 호스피스 의료 활동도 그것을 위한 하나의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서 의미 있는 날을 제정하자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 아니고 삶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정하자는 거예요.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음의 문제도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바람직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종 장소에 대해, 그리고 임종 과정에서의 고통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죠. 이제는 국민들을 위해서 대통령이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정리해서 제도적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선언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에 맞는 진로 지침과 법, 정책, 보험수가, 필요한 교육과 기금이 마련되니까요. 국회가 나서든 대통령이 나서든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의 독자들에게도 사고의 전환을 주문했다.
“말기 상황이라고 해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실은 할 일이 정말 많거든요.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기인 거예요. 화룡점정의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삶을 완성하는 시간이 되니까요.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를 읽은 독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함께 변화를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죽음만큼 확실한 미래는 없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모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네가 바라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고, 너는 내가 꿈꾸는 죽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간곡한 한 마디의 부탁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간 생명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곁의 소중한 이들이 행복한 마무리를 짓길 원한다면, 나 역시 만족스럽게 떠날 수 있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잘 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 변화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윤영호 저 | 엘도라도
연일 죽음이 화두인 사회. 수많은 대형사고와 참사로 얼룩진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병원에서 25년 동안 삶의 끝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켜봐온 저자가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죽음의 현실적인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다만 “죽음이 눈앞에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을 뿐이다. 아무도 제대로 물어본 적 없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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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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