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펴내 국보법 전과자와 서울대 교수 사이의 일관된 그 무엇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신작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펴냈다. 대학 연구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그는“학과, 입시 공부가 아닌 ‘내 삶의 공부’라는 주제였기 때문에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7평 법대 교수의 연구실은 생각보다 무척 작았다. 국립대의 교수 연구실은 평수가 정해져 있다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말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지낸다. 그는 연구실을 빗대어 “이 작고 견고한 성은 나에게 즐거운 탐구의 시간과 고독한 성찰의 시간을, 동시에 뜨거운 참여의 시간을 허락해준다”고 말했다.
그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형사법의 성편향』, 『성찰하는 진보』, 『배신』, 『진보집권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 등 주로 사회과학서를 집필한 조국 교수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신간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펴냈다. 출간 제안을 받아들인 까닭은 딱 하나, 주제가 ‘공부’였기 때문이다. 소위 사람들이 이해하는 학과, 입시 공부 범위를 벗어나 ‘자신을 아는 길’로써의 공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서울대 교수가 ‘공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누구에게는 식상하고 따분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나, ‘만 16세 서울대 법대 입학, 만 26세 당시 최연소 교수’라는 타이틀을 잊고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읽다 보면,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꺼내놓게 된다.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는 조국 교수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는 책이다. 특이한 이름에 얽힌 어린 시절 에피소드부터 법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 교수가 되자마자 감옥에 가야 했던 사연 등을 낱낱이 공개했다. 집필 기간만 무려 2년이 걸렸다. 류재운 작가가 조국 교수를 인터뷰해 초고를 완성했고, 조국 교수가 원고를 추가 집필해 5차례 이상의 수정을 거쳤다. 지난 6월 출간된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는 벌써 4쇄를 준비 중이다. 표지에는 조국 교수의 얼굴이 작게 들어갔지만, 그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 바로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이다.
책들만 빼곡히 자리한 대학 연구실에서 조국 교수를 만났다. 한 한문학자는 조국 교수를 두고 ‘상산 조자룡’으로 비유했다. “전투력도 강하고 머리가 좋다. 조용히 공부만 하는 사람 같지만, 싸우는 버릇이 들면 본색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저자의 본색을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겉치레하는 모습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란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 (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8쪽)
호기심이 좋은 공부의 길을 이끈다
표지가 눈에 띕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현대 버전인 것 같은데요. 조국 교수의 얼굴이 더 크게 들어가야, 독자들이 더 주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표지 사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놀립니다(웃음). 너무 세련되고 젊은 여성의 사진이라. 어디에서 이미 찍은 사진을 가져온 거겠지요? 사진 덕분에 사람들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더 갖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웃음).
2년 전에 집필 제안을 받았는데 ‘공부’를 주제로 한 책이라 수락하셨다고요.
‘공부 이야기’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요. 건축가 김진애 저자의 『왜 공부하는가』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런 식으로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 이야기를 하면서 법 이야기를 넣으면 더 좋을 것 같았고요. 그런데 막상 책으로 내려고 하니까, 뭘 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결국 사적으로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도 넣게 됐는데, ‘나 공부 잘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공부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접근을 하려고 했습니다.
최근 ‘공부법’ ‘공부’에 관련된 책들이 다수 출간되고 있는데요.
갑자기 많이 이야기 된다는 것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공부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공부 이야기를 하면 대개 학과 공부만을 떠올리니까 지긋지긋하죠. 최근 몇 년부터 공부를 다르게 보는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고미숙 저자의 책을 시작으로 공부 관련 책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공부란 것이 반드시 학과, 입시 공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는 사회적 필요가 있는 거죠. 방향을 틀어 보려는 시도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호기심’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 요즘은 호기심조차 강요 받는 시대 아닙니까?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생각하고 고민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호기심만 인정 받는 사회가 됐습니다. 호기심이란 원래 독립된 인간으로서, 어릴 때부터든 성인이 되어서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감정, 생각을 갖고 실행하는 것인데요. 교육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특정 방향의 호기심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른 호기심은 제거해야 하는, 억압되어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게 문제죠.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호기심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법을 공부하게 된 것도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죠?
그렇죠. 호기심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힘인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이 좋아하는 걸 해야 오래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지적 능력이 있고 체력이 있고 성실하면, 일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확 꺾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자기 내면이 원치 않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성취도가 떨어지고 흥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돌잔치로 비유하자면, 부모들이 아이의 손에 가까운 곳에 돈이면 돈, 연필이면 연필을 선택하도록 배치합니다. 아이가 실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려면, 아이를 내버려 놓은 상태에서 막 놀게 하다가 뭔가를 잡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선택을 강요합니다. 이건, 진짜 호기심을 억압하는 행동이죠.
근본적으로는 입시 문제가 얽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서울대 교수이기 때문에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서울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한가요? 절대 보장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과거에 대학 진학률이 적었을 때는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 신분상승이 보장됐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긴 하지만, 명문대에 나와서 자동적으로 잘되는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전체 고등학생 숫자 중에 소위 SKY에 들어간 학생들을 이야기한다면, 퍼센트로도 매우 적습니다. 5%라고 한다면, 95%는 그 작은 수치를 강요당하고 있는 거죠. 나라건, 학부모건, 학교건 95%가 행복하고 호기심을 갖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보고, 법학 선택하게 돼
또래보다 2년이나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으셨습니까? 영재라서가 아니라, 동네에서 같이 놀던 형들이 학교에 가니까 심심해서 학교를 보내 달라고 부모님을 조르셨다고요. 학교 생활에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리다고 무시 당할 수도 있는데.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면, 다들 저에게 “야, 너 형이라고 불러”라고 그랬어요. 저는 “내가 왜 그렇게 불러야 하냐?”고 따졌죠. 다행히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무시를 안 당한 거죠. 체구가 작지도 않았고. 왕따를 시킬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건 없었어요.
뺑뺑이 세대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밝히셨는데요. 일반고교에서 다양한 환경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고요. 지난 지방선거 때, 전국 17개 시,도에서 13곳의 진보교육감이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으로 보고 있나요?
모두가 공교육 붕괴에 대해 말합니다. 이번에 교육감이 많이 바뀌면서 서울시는 혁신학교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정부 차원에서 무조건 공교육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이번에 왜 대부분 진보교육감이 이겼을까요? 그건 아이를 키워보면 압니다. 공교육 체제에 대한 불만이 엄청납니다. 모든 아이들을 입시로 집어넣고 90% 이상을 패배자로 만들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경제 성장은 높을지 몰라도 교육은 야만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예산의 상당수를 공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개인 돈을 써가면서 사교육을 하고 취미활동을 시키지 않습니까? 다른 OECD 국가의 수준처럼 보장해줘야 합니다.
예비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사립과 공립 중에 갈등합니다. 안전한 사립초교를 보내고 싶어 하는데 등록금이 만만치 않죠.
사립학교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다고도 생각하고요. 그건 자유입니다. 다만, 전 제 자녀들을 모두 집에서 가까운 공립 초,중학교에 배정을 받아 보냈는데 어릴 때는 무조건 공립학교가 좋다는 소신 때문입니다. 사실 사립초교를 보내면 일단 시스템이 안전하기 때문에 아이가 안전해집니다. 계층이나 문화 수준, 재산소득 수준이 비슷하니까 아이나 부모도 동질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죠. 선생님 숫자도 많고 체계가 잘 잡혀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사립초교를 선택하지 않은 건, 다른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립학교에 들어가면 여러 상황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하지만 ‘저렇게 사는 경우도 있구나,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어린 시절에 경험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 16세 서울대 법대 입학, 만 26세 당시 최연소 교수 등 조국 교수라는 이름 앞에는 ‘엄친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습니다. 이런 타이틀이 부담스럽거나 꺼려지진 않나요?
이름도 특이하니 타인에게 기억이 잘 되는 편인데, 처음에는 이런 이미지가 피곤하다고 해야 하나, 부담스러운 게 없진 않았죠. 미국 철학자 존 롤즈가 <정의론>에서 “사람은 누구나 각각의 자연으로부터 받은 복권이 있다”고 말했잖아요. 저는 그저 공부를 조금 잘하는 복권을 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하는데, 우리 모두에게는 가슴에 각각의 별이 하나 있는데 그 별은 다 다르거든요. 크기가 다를 수도 있고 성격이 다를 수도 있고요. 장미꽃 같은 사람이 있고 난초 같은 사람이 있듯이, 내 속에 있는 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서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엄친아’라는 건 스펙적 관점인데, 저는 일찌감치 내가 운동에는 소질이 없고 공부가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닫고 노력을 한 거죠.
고등학교 시절, 외화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보다가 공부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고 하셨는데, 법학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나요?
그렇죠. 제 고등학교 시절은 머리를 완전히 빡빡 깎고 일본식 교복을 입던 시대였습니다. 지금보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심했던 시절이죠.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보니까 완전히 다른 모습인 거예요. 토론식, 소크라테스식 교육방식이었는데 교수가 학생들에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질문을 계속해요. 질문하고 답을 하는 과정을 한 시간 정도 거치면,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답을 알게 되는 거죠.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의 주입식 교육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무척 부러웠죠. 저런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공중파에서 방송했던 드라마죠? 제목이 얼핏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이 아마 ‘하트’였을 겁니다. 머리가 꼬불꼬불한 친구였죠(웃음). 하버드 로스쿨 안에서의 협력, 경쟁이 나오는데 그 당시 제가 처해 있던 고등교육, 한국 대학이랑 무척 달랐어요. 입시 시절이었는데도 방송을 빼놓지 않고 봤어요. 로스쿨이 배경이니까, 법을 이야기할 거 아닙니까? 당시 우리 사회의 법은 겁나는 것, 경찰서에 잡혀가는 것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법이라는 게 뭔지를 보여주더라고요. 독재와 민주의 차이는 문제가 발생하면 주먹으로 해결하냐, 말로 해결하냐 아닙니까. 과거에는 강한 사람이 주먹으로 해결했는데 요즘은 그게 쉽지 않으니까 말로 논쟁을 벌이죠. 법도 지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는 분쟁 해결의 도구로서 법이 등장해요. 여러 가지 사례를 다루면서 논리를 갖고 토론을 하면서, 어느 쪽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승복하죠. 나중에는 영화로도 개봉된 걸로 알고 있어요.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법대에 진학할 생각을 하지 않았나요?
막연히 생각은 했죠. 당시에는 누가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법대에 간다고 으레 생각했잖아요. 저도 ‘그렇구나’ 생각했었고. 최종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지원서를 넣을 때, 1지망은 법대를 넣었지만 2지망은 역사학과를 넣었어요. 학창시절에 역사책도 많이 봤고 법학, 역사 양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법학 쪽으로 저를 당긴 건, 그 드라마였죠.
담임 선생님이 육사에 가면 좋지 않겠냐고, 추천도 하셨다고요.
선생님이 육사를 추천하신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권력의 핵심을 육사가 쥐고 있었으니까요. 공부 잘하고 체력도 나쁘지 않고 더욱이 영남 출신이니(웃음), 육사에 가서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출세가 보장된다고 생각하셨죠. 그런데 전 ‘육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싫었어요. 일단 제복을 입기 싫었거든요. 6년간 입은 교복도 싫은데 또 제복이라니. 단순한 걸 수도 있는데 머리도 기르고 싶었고요(웃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사법시험 보지 않고 대학원 선택
고등학생 때까지 무난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대학에 가면서 방황을 시작하셨어요. 학부, 대학원 시절의 인연과 활동이 문제가 돼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으시죠. 형사법 전공학자로서 형사절차의 전 과정을 '현장실습'하는 행운(?)을 누리셨습니다. 학업에 정진하다가 노동야학에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을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박종철 열사가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에요. 종철이가 고문치사를 당해서 죽었는데, 당시 어린 저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죠. 누가 간첩이 돼서 죽은 일은 신문에서 볼 수 있었지만,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죽은 거랑은 너무 다른 거예요. 충격이 너무나 컸고 그 연장선상에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 학생운동에 관여하고 사회참여활동을 하는 것도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종철이가 있어요. 수용생활의 뿌리가 있다고 하면 그것도 종철이죠. ‘종철이가 살았더라면, 이런 일을 했을 것 같다’, 내가 대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부채의식일 수 있는데, 종철이가 바랐던 세상에 대해 일종의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죽을 때까지 그래야 하지 않나, 해요. 제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지금도 1월이 되면 종철이를 생각해요. 종철이가 올해는 몇 살이지? 생각해 봐요.
법대 교수라면 논리와 이성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머리와 가슴이 충돌할 때, 가슴을 따르라고 말하셨어요.
저는 이성적으로 훈련이 잘된 사람 중에 하나일 거예요. 법학이 전공이니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수없이 검토해야 하는데, 이성이 필요하죠. 그런데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극단적으로는 사람을 왜 죽이냐는 거예요.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아주 보통의 사람이 격분해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요. 그러면서 감정을 억압하도록 교육 받아왔다고 생각하죠. 현대인은 이성의 독재 하에 있어요. 억지로 감성을 억압했다가 나중에 왜곡된, 극단적인 행동을 드러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감성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 하고, 충족시켜 줘야 해요.
법학계에서는 조국 교수를 두고,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나요? 최근 교수님이 쓴 한 시인의 산문집 추천사를 읽었는데, 필력이 상당하시던데요.
감히 시인의 글에 추천사를 썼는데, 부끄럽죠. 평소에 법을 공부하면서 다른 분야들도 많이 보려고 애를 써요. 문학을 보고 영화, 미술도 접하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성 과잉일 거예요. 다만, 상대적으로 법학계 내에서 보면 감성적인 사람일 수 있죠. 예술가들과 비교하면, 아주 이성 과잉일거고요(웃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대학생 때로 보자면 사법시험을 보지 않고, 대학원을 간 일인 것 같아요. 2학년 때 친구들 앞에서 일종의 선언 비슷하게 “나는 대학원에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 때는 대학원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는데. 사법시험을 본다는 것과 법학 대학원을 간다는 건, 똑같이 법을 공부하지만 접근이 달라요. 존재하는 법률과 법의 판례를 잘 정리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대학원에서는 현재 판례와 법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니까요. 물론 현재 판례를 존중하고 많이 보고 있습니다만, 하나의 틀에 있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법학을 하지만 인접 학문을 공부해서 그 성과를 가져오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최근에 한 선택 중에는 무엇이 현명했다고 보시나요?
공적으로 말한다면 지난 대선에 깊숙이 관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공격을 받을 거라는 예상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고, 위험한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뭐 지금도 온갖 소리를 듣고 있고요(웃음). 하지만 당시에는 정권을 바꿔야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치인이 아니지만,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발언했을 때 더 효과가 있는 면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대선만으로 보면 제 선택이 졌지만, 어쨌든 잘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에필로그를 보면, 야구선수 최동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생에서 좌절할 때마다 롯데자이언츠를 떠올린다고요.
야구를 좋아합니다. 최동원 씨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선배인데, 그 분이 공을 던지는 걸 실제로 보고 자랐죠. 당시 야구 글러브를 갖는 일이 꽤 힘든 일이었는데, 부모님을 졸라서 글로브를 하나 받았어요. 아마, 인조가죽이었을 겁니다(웃음). 지금도 아주 소중한 선물이죠.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조국이 출마하라는 말은 안 들어도, 롯데자이언츠 구단주를 제안하면 바로 교수직을 그만둘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웃음).
야구 칼럼을 쓸 생각은 없으신가요?
쓰려면 쓸 수는 있겠지만, 실제 야구전문가들이 쓰시는 게 더 낫죠. 저는 팬 수준이라서 욕 먹는 일이 될 겁니다(웃음).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학생들이 봐도 좋지만, 부모들이 읽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어떤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일단 법 이야기를 했으니까, 법대를 가고 싶거나 법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법 이야기를 떠나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내 아이가 실제로 무엇을 좋아하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공부 이야기’라는 타이틀 때문에 혹 해서 책을 집는 분들도 있을 텐데, 이 책이 공부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편견, 관념을 깨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학과 공부가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봐도 흥미로울 수 있겠고요.
곧 4쇄를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꼭 넣고 싶었는데 빠진 내용이 있나요?
율곡 이이가 13세에 과거에 응시해 진사에 뽑혔고 그 후 아홉 번의 모든 과거를 장원 급제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최고의 기록이죠.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내 아이가 율곡 이이처럼 아홉 번, 모두 장원급제를 하는 일을 상상합니다. 그건 0.1%만 가능한 일인 데도요. 곧 영화를 개봉한다고 하는데, 이순신 장군은 28세인가 되던 해에 무과에 떨어지고 32세에 겨우 합격했습니다. 무과 등수는 무려 12등이었고요. 그런데 나라를 구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등수를 너무 많이 말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래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건데요. 옛날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왔지만 바뀐 건 별로 없죠. 부모나 학교, 사회에서 “공부 안 하고 미술하겠다, 음악하겠다, 딴 짓을 해보겠다”는 아이를 환영하지 않고 구박을 하는데, 이런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수석 합격자 이야기만 꺼내 놓는 언론도 바뀌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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