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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 “고흐의 자살은 완성하는 죽음”

『반 고흐 인생수업』으로 현대인의 고민도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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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인생수업』은 독특한 책이다. 반 고흐를 다뤘다는 점에서 평전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저자의 인생 이력이 비중 있게 담겼다. 둘을 병렬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이유는 고흐가 살았던 삶이나 저자가 사는 삶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삶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인생과 닮기도 했다.

영화, 드라마, 소설에서 우리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가장 사실적인 이야기는 실제로 살았던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가 아닐까. ‘평전’에는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적이고 공간적인 이야기와 함께 한 개인이 살다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 고흐 인생수업』은 새로운 형식의 평전이다. 평전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름이 부담스럽다면 에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오랫동안 파리에서 예술을 공부했고 지금은 문화 전반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는 이동섭 저자가 쓴 책이다. 책 제목에서처럼 반 고흐라는 미술가를 다루되, 고흐의 인생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짚었다.

 

이동섭 오베르쉬르우아즈 고흐 집 앞.JPG

 

반 고흐의 발자취를 주로 시간순으로 서술하되, 핵심 주제를 장마다 배치해서 그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저자가 꼽은 주제는 연애, 결혼, 콤플렉스, 아버지, 가난, 행복, 도시, 친구 등이다. 이들 면모를 본다면 고흐가 맞닥뜨린 문제가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와 동시대인인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고흐의 인생에서 인생 문제의 답을 구하다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파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성신여대, 청강대, 한예종 등에서 문화와 융합, 뮤지컬에 관해 강의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에 칼럼을 쓰고, SBS 컬처클럽에 출연 중이며 지난 3월부터 ‘스튜디오 뮤지컬’ 이라는 뮤지컬 전문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 고흐를 다룬 책은 많았는데요. 이 책은 기존에 나온 반 고흐 관련 책과 어떤 점이 다를까요?

 

빈센트 반 고흐는 『햄릿』처럼 명작 소설 같아요. 모든 고전이 그러하듯이, 저도 제 나름의 시각으로 그의 삶과 그림을 읽어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는 고흐의 이미지는 귓불을 자르고 가난하고 자살한 불행한 화가잖아요? 그런데, 4~5년 정도 그에 대해 공부하고 생의 행적지들을 다녀본 결과, 저는 고흐가 행복했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는 자신의 전 생애를 거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색했고, 그림이라는 결론에 도달해요. 그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림에 전력질주 했거든요. 어떻게 이런 사람을 불행하다고 하겠어요? 물론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불행한 순간이 있었죠. 하지만 그는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그가 이루려던 ‘가난한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을 마침내 그려냈거든요. 그 지점에서 반 고흐는 제게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물었어요. 그러니까, 반 고흐의 인생에 제 청춘의 고민들을 투사하여 제 나름의 답을 찾아봤어요. 아마 이 부분이 반 고흐를 다루는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이 아닐까 싶어요. 

        

책이 반 고흐의 삶을 다루면서,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풀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자님의 인생까지 되돌아보잖아요. 이런 특별한 형식의 책을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반 고흐를 크게 좋아하지 않았어요. 워낙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고 그의 그림에 어떤 감흥도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번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밝혔다시피 몇 년 전 제게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그의 그림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어요. 반 고흐의 삶과 그림은 분리되지 않아요. 신기하게도, 관람객들은 그의 그림을 그의 자화상인양 감상해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전 과정을 다룬 전기들을 읽으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만들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을 질문했어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 결혼, 콤플렉스, 부모와의 관계, 직업, 행복, 우정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반 고흐의 삶을 거울삼아 보게 되었어요.

 

쇼펜하워나 칸트든 책 곳곳에서 인용했던 다른 역사적 인물을 다룰 수도 있었을 텐데요. 왜 반 고흐였을까요.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도 연결되는데, 반 고흐의 삶이 제게 던진 핵심 질문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할까?’였어요. 그는 그리고 싶은 그림만을 그렸지만 평생 가난했죠. 가난해서 고생했지만, 원하던 바를 성취했어요. 요즘은 우리 모두가 삶에 지치고 힘들잖아요? 열심히 일하는데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가장 불행해 보이는 삶을 살았던 반 고흐도 알고 보면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은 잘하는 것을 할 때의 만족감과 비교되지 않아요. 그러니 잘하는 것을 좋아하면 인생이 편하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잘하면 행복해요. 그리고 제겐 빈센트 반 고흐가 이걸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어요.  

 

고흐의 자살은 완성하는 죽음일 수도

 
이택광 교수가 쓴 『반 고흐와 고갱의 유토피아』는 고흐가 자살한 주요한 이유로 고갱과 꿈꾸던 아를에서의 공동체가 파탄 난 것으로 지목하는데요. 그보다는 선생님께서는 테오와 관계를 중심에 두는 듯합니다. 사람마다 고흐의 자살을 두고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는데요. 그만큼 고흐의 자살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소재입니다. 고흐의 자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살, 이란 단어는 참 무거워요. 특히 요즘 한국 사회에서 카뮈의 말처럼, 어쩌면 철학이 대답해야할 유일한 질문이 ‘인간은 왜 자살하는가’일지도 모르겠어요. 통상적으로 자살의 원인을 크게 연애, 치욕, 명예, 희생적 자살, 명령, 충성심과 신념, 재산 문제, 부당한 대우, 정신병, 미신과 주술 등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어요. 반 고흐는 이 가운데에서 뭘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그가 입원했던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갔을 때, 복도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삶을 완성하는 죽음도 있겠구나.’ 이것은 제가 책에도 썼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완성하는 죽음을 보여줄 것이다. 산 자들에게 가시이자 서약이 될 죽음을”이라고 말한 니체의 ‘완성하는 죽음’이자, 하이데거가 말하는 ‘죽음을 향한 자유’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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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연애, 결혼, 우정, 여행 등 인생을 수놓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연애겠죠. 연애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거든요. 저는 인문학을 나를 알아가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연애와 인문학은 접점이 있어요.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행복을 향해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어요. 그런데 연애를 하면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상대와의 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다른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을 자신의 불합리, 모순, 욕망 등과 직면하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아,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되죠. 그래야 결혼, 콤플렉스, 자립, 직업, 행복 등의 주제도 더 쉽게 해결될 것 같아요. 

 

파리에서 삶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서울에서의 이동섭, 파리에서의 이동섭,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도시가 파리예요. 그러니까 처음 서울에 돌아왔을 때는 파리에 살 듯이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서울은 더는 방학 때 잠깐 나와 쉬던 곳이 아니라, 돈을 벌고 살아야 하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귀국 초반엔 파리와 서울 사이에 제가 끼여 있는 듯했어요. 어디에도 마음이 확 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각 도시가 갖고 있는 좋은 점을 받아들여서 편하게 지내요. 굳이 차이가 있다면, 서울에서는 많이 먹고 파리에서는 많이 걷는 것 같아요. (웃음) 

 

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책 곳곳에 아직 진로를 정하지 않은 청춘을 향한 조언을 담았는데요. 실제로 강의도 하잖아요. 요즘 청춘은 어떤 것 같나요. 그리고 그들에게 주로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요즘 20, 30대들은 예전에 비해 스펙이 대단히 좋은데, 그걸로 뭘 할지 모르는 것 같아요. 처음엔 그게 참 이상했어요. 알고 보니, 본인이 원해서 쌓은 스펙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성장은 공짜가 아니에요.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대가를 치러야만 그만큼 성장해요.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려면,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봐야 해요. 낯선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인간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사진, 무용, 비디오아트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미학 공부를 해보니 제가 왜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탐구했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름다움이 다른 아름다움 속에서만 제 얼굴을 드러내듯이, 그것은 다양한 장르로 나뉜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었어요. 그러면서 같은 말도 다르게 하는 것의 차이를 즐기게 된 것 같아요. 마치 밀가루를 좋아하면, 라면이든 빵이든 짜장면이든 맛있게 먹는 거죠. 앞으로는 예술이 지친 우리의 일상에 친구가 되는 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래서 ‘예술인문학자’라는 다소 낯선 타이틀을 붙이기도 했어요. 예술작품을 통해서 인문학을 배우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앞으로 나올 책은 어떤 책인가요?

 

우선 반 고흐를 소재삼아 다른 주제로 원고를 좀 써둔 게 있는데, 그걸 마무리해야 하고요. 고양이를 그린 명화에 얽힌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에 대한 책이 올여름이 지날 무렵에 출간될 것 같아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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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인생수업 이동섭 저 | 아트북스
연애, 결혼, 아버지와의 관계, 우정, 경제적?정신적 자립, 콤플렉스 등 19세기 유럽에 살던 반 고흐를 괴롭혔던 문제들과 그가 그런 문제들에 대처했던 방식들이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이 신선하다. 반 고흐는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조용히 질문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향타 역할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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