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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한국의 미를 논하다

『미학 에세이』 출간 기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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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미가 이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진중권은 예술의지라 번역되는 kunstwollen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예술의지는 자연이 되려 하고(mimesis), 일본의 예술의지는 자연을 모방(imitatio)하려 한다. 이 예술의지를 구현하는 건 솜씨(konnen)인데, 한국이 일본식 정원을 만들지 않은 것은 예술의지가 달라서이지 솜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진 교수는 말했다.

현대 미학은 권태기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진중권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이날 강연은 『미학 에세이』 출간을 기념하여 마련된 자리다. 『미학 오디세이』로 미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널리 알린 진중권은 전공 학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최근에는 SNL에 출연하여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를 발휘하기도. 현재는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번에 출간한 『미학 에세이』는 <씨네21>에 2012년부터 올해 초까지 연재한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그의 표현대로, 에세이의 주제는 전적으로 우연에 맡겼다. 강의하다 떠오른 단상,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읽다 받은 자극, 글을 쓰다 우연히 마주친 일화들 등 진중권이 쓴 에세이는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그런 만큼 책 제목도 에두르지 않고, 『미학 에세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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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시작 시각에 맞춰 등장한 진 교수는 현대 미학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부터 진단했다. 그에 의하면, 현재 미학은 권태기다. 푸코와 데리다, 보드리야르 등이 주도한 포스트모더니즘 때 미학도 활기를 띄었다. 이들의 논의는 유행이 지나, 예전만큼 열렬히 논의되지 않지만 그를 대체할 만한 담론도 등장하지 않는 상태. 게다가 한국에는 괜찮은 미학 개론서나 미학사 교재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진중권은 앞으로 제대로 된 미학사를 쓸 계획이라고 한다.


 

이어서 그는 최근에 생긴 관심사를 소개했다. 그간 싫어했던 정신분석학에 최근 관심이 부쩍 생겼다는 진중권. 정신분석학과 함께 동양 미학도 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 소재다. 특히 한국 미학을 향한 관심은 진교수 개인사와도 밀접하게 엮여 있다. 일본인 아내와 함께 일본을 찾은 그는 일본의 미를 보며 한국의 미를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미, 일본미와 어떻게 다를까


일본 정원은 자연을 완벽하게 모방하려 노력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산이나 자연을 축소하여 미니어처 형태로 만들어 놓았다. 자연을 닮은 정원을 만들려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개입이 일어난다. 그에 비해 한국은 자연물에 인간의 손이 가능하면 덜 닿도록 힘쓴다. 한옥 짓는 데 사용하는 대들보나 주춧돌은 따로 가공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사용한다. 근대적인 관점에서는 일본이 뛰어나 보일 수 있으나, 지금은 근대성이 넘치는 게 문제인 시대. 대안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두 나라의 미 중 어떤 게 낫다고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과 일본의 미가 이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진중권은 예술의지라 번역되는 kunstwollen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예술의지는 자연이 되려 하고(mimesis), 일본의 예술의지는 자연을 모방(imitatio)하려 한다. 이 예술의지를 구현하는 건 솜씨(konnen)인데, 한국이 일본식 정원을 만들지 않은 것은 예술의지가 달라서이지 솜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진 교수는 말했다.

 

프랑스식 정원과 영국식 정원에서도 각각 다른 예술의지가 발견된다. 프랑스식 정원이 일본정원과 비슷하다면, 영국식 정원은 한국정원과 유사하다. 전자는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고전주의를, 후자는 비합리적인 면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영향을 받았다. 전자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사상가가 헤겔로, 헤겔은 인간이 예술을 하는 이유로 자연미에 결함이 있어서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칸트는 예술이란 인위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칸트의 낭만주의적 지향은 그의 천재론에도 드러나는데, 천재란 자연의 총아로, 배워서 만들어지지 않고 그저 태어나는 존재다.


칸트와 헤겔의 미학관을 설명한 뒤 한국적 미에 관한 예시가 이어졌다. 진중권 교수가 든 예는 ‘그랭이 공법’이다. 인간과 자연이 만날 때, 자연에 인간이 양보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법이다. 불국사의 석축을 보면, 아래에 위치한 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축대 위에 얹은 긴 장대석을 다듬어 물려 놓았다. 주춧돌을 깎는 게 더 쉬웠을 법하지만, 자연을 손대지 않았다. 이렇게 지은 건축은 튼튼하여 지진에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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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존중한 한국적 미를 보여준 다른 예가 배흘림 기둥이다. 배흘림 기둥을 놓고 학계가 기존에 내린 해석은 크게 2가지다. 첫째, 착시 현상이다. 인간의 안구가 타원형이라, 중간 부분을 의도적으로 두껍게 해서 곧은 기둥으로 보이게 했다는 설명.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고대 그리스 건축은 신전을 기둥의 가운데를 살짝 두껍게 했다. 하지만 한국의 배흘림 기둥은 그 정도가 심하여, 착시 현상으로 설명하기는 무리가 따른다. 둘째, 구조공학적 이유다. 중간을 두껍게 하면 더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다. 이 설명에도 허점이 존재한다. 건물 정면에는 배흘림 기둥을 쓰고 뒷면에는 보통 기둥을 쓴 건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중권은 배흘림 기둥은 미학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고 추측한다. 즉, 한국적 미는 직선을 별로 안 좋아했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한국 미학에 과제를 던졌다. 『미학 에세이』에서 부분적으로 시도하기는 했으나 한국미를 분석하는 담론이 아직은 미약한 게 사실. 예를 들어 탈춤은 1970~1980년대 ‘민중’을 강조하며 원래 의미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었다. 탈춤, 하면 양반 계급을 향한 풍자로 보지만 과연 탈춤이 풍자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을까? 탈춤 무대는 양반이 제공했고, 풍자는 계급 의식이 생긴 뒤에 발현한다. 탈춤은 지배 계급을 풍자했다기보다 우주론적 평등을 추구하는 카니발이라는 게 진교수의 분석. 이외에도 병신춤과 같이 분석이 필요한 미적 현상이 많다며 앞으로 분석 작업을 해가겠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하는 이날 참석한 청중과 나눈 질의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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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과 나눈 대화


통합진보당 사건을 어떻게 보나. 고학력자도 많은 집단에서 이런 일이 생기니 의아하다.


학력하고 상관없다. 옴진리교에도 교수, 박사 다 있지 않았나. 주체적으로 판단할 시기에 집단이 세계관을 개인에게 강요하면서 생긴 문제다. PD(민중민주 노선)는 복잡하고, 대중적이기 힘들다. 그래서 PD는 어느 정도 엘리트주의다. 그에 비해 NL(민족해방 노선)은 애국, 구국, 조국을 강조한다. 여기서는 조직 결정이 중요하고 개인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끈 떨어진 간첩 처지인데, 이게 생업이 됐다. 전쟁 나고, 예비 검속당하고, 학살당한다는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으로 조직을 향한 충성심을 이끌어 냈다. 사이비 종교 현상이다. 남녀호렌게쿄가 미쓰비시와 한몸인데, (통합진보당은) 정치조직과 생업조직이 한몸이 되며 문제가 심해졌다. 그러다 발각됐다. 사실, 내란죄로 걸릴 것도 없다. 마지막 남은 게 국가보안법인데, 이 법은 UN이 공고한 악법 아닌가. 잡을 게 없으니 내란으로 못 잡는다. 북한과 연계? 없지 않나. 북한은 아마 (이들의 존재가) 짜증 날 것이다. 대남 관계 개선해야 할 상황인데 저러니 말이다.


탈근대 이후 권력의 해체, 권위의 해체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탈근대는 담론이다. 이 담론이 현실로 관철되는가는 다른 문제다. 탈근대 담론이 휩쓸었으나 이후에 현실 정치는 보수주의, 권위주의로 갔다. 솔직히 어떻게 돌아갈지 잘 모르겠다. 탈근대 담론은 될 것이다가 아니라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현실에는 권위주의, 자유주의 욕망이 섞여 있다. 한국의 문제는 권위주의가 무너지며 있어야 할 권위조차 사라진 것이다. 권위 해체가 더 큰 권위를 향한 열망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이 박근혜 리더십으로 이어졌다. 박정희를 향한 그리움, 박근혜 리더십이다. 자유와 권위 간 대립은 영원한 싸움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선천적인 바탕이 있겠으나 문화적인 현상으로 후천적이다. 미인의 기준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한국만 해도 80년대 스타와 지금 스타는 얼굴형이 다르다. 시대마다 미에 관한 합의는 존재하나, 달라진다. 우리 사회의 미는 획일화됐다. 이런 외적 미보다는 개성적, 성격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 좋겠다. 연예인이면 생길 만큼 생겼는데, 이들도 성형을 한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미를 개념화하며, 미가 이데올로기화되는데 웬만큼 생겼으면 성형수술은 하지 마라. 완전 대칭이면 기계적이라 지루하다. 약간 비대칭이 좋다.


앞으로 예술의 미래는 어떨까.


팝 아트 이후에는 유파가 사라졌다. 개인화 추세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미술계에도 나타났다. 이즘이 사라지고 개별화되어 미술사를 쓰기 더 어려워졌다. 예측하지 못하겠다. 다시 이즘이 나올 거 같진 않고, (유파가 아닌) 개인별로 미술사가 구성되지 않을까. 큐레이트들간 싸움, 누구를 컬렉션 하느냐가 중요해진다.
 
미학과를 지향한 계기가 궁금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인문학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예종에서 한 이야기에 관해 더 듣고 싶다.


미학을 전공한 계기? 아무 생각 없었다. 이름이 예뻐서 갔다. 한예종에서 애니메이션 전공 학생에게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인문학은 다른 말로 스토리텔링인데, 우리나라가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하다. 한국에는 문학이 약하다. 소설가, 만화가 다 적용된다. 그림은 하청업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도 그림 작업은 한국에서도 많이 하지 않나.


한국미를 논하면 야나기 무네요시, 유홍준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을 어떻게 평가하나. 지젝이나 바디우를 어떻게 읽었는지도 궁금하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논리가 민족주의적 틀, 근대주의적 틀이다. 한국미를 비애라 하고, 한국의 투박함을 상찬한 것에 비판이 존재한다. 그의 미학을 수정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유홍준 교수 책을 비판하겠다는 생각은 안 들고, 다른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필요하다. 나의 작업은 유홍준 교수의 작업을 보완하는 성격이다. 바디우는 안 읽어서 모르겠으나, 지젝이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옛날 공산주의자들은 목적론자였는데 마르크시즘이 망하면서 신학으로 간 느낌이다. 이 사람들이 얘기하는 해방이 종말론 같이 흘러간다. 하지만 그 종말이 언제 올지, 올지 안 올지도 모른다. 그러한 환상이 왜 필요할까? 공허한가 보다. 마르크시즘은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했으나, 지금 남은 동유럽 이론가는 좌파 신학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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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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