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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인터뷰] “무협지 탐독하던 소년, 한국의 대표 이야기꾼이 되기까지” - 소설가 성석제 인터뷰

소설가 성석제, “당신의 가족은 몇 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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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이야기꾼. 성석제 작가에게는 마치 이름에 성이 따라붙듯, 그를 소개하는 자리마다 따라붙는 수식어다. 소설가는 모두 이야기를 빚는 사람인데, 그중에서도 빼어나게 이야기를 맛있게 짓는다고 하여 이야기꾼이라는 칭호를 데뷔 때부터 독차지했다. 유행이 뜨고 지고, 소설도, 새로운 작가의 얼굴도 뜨고 지는 시간 동안 성석제 작가는 꾸준히, 오직 소설가라는 직함 하나로 한 길을 걸어왔다. 그야말로 이야기의 달인인 셈이다.

[리뷰]
성석제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
대표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
[스페셜]
함정임 작가가
성석제 선배에게




이야기의 달인, 성석제의 귀환 『위풍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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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홍대에 나타났다. 안전모까지 착용한 모습이 딱 라이더다. 2, 3개월부터 즐기기 시작했다는 자전거로 올여름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라이딩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위 안 타고 갈 수 있을까요?(웃음) 자전거는 생물이 아닌데도 가장 인간적인 수단인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고, 쾌감이 있고요. 자기 신체의 능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죠. 자전거를 쉬지 않고 계속 타다 보면, 어느 순간 도취경을 느낄 때가 있어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나와 자전거만 달리고 있는 그런 느낌. 물론 가끔 겪는 일이지만.(웃음)”

대표 이야기꾼. 성석제 작가에게는 마치 이름에 성이 따라붙듯, 그를 소개하는 자리마다 따라붙는 수식어다. 소설가는 모두 이야기를 빚는 사람인데, 그중에서도 빼어나게 이야기를 맛있게 짓는다고 하여 이야기꾼이라는 칭호를 데뷔 때부터 독차지했다. 유행이 뜨고 지고, 소설도, 새로운 작가의 얼굴도 뜨고 지는 시간 동안 성석제 작가는 꾸준히, 오직 소설가라는 직함 하나로 한 길을 걸어왔다. 그야말로 이야기의 달인인 셈이다.

1986년 ‘문학사상’에서 시 ‘유리 닦는 사람’으로 등단한 성석제 작가는, 문학동네에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작품 활동을 해나간 덕분에, 그의 작품집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몇 줄이 꽉 찬다.


소설집으로는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재미나는 인생』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조동관 약전』 『호랑이를 봤다』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참말로 좋은 날』 『지금 행복해』 『인간적이다』 장편소설로는 『왕을 찾아서』 『아름다운 날들』 『인간의 힘』 『도망자 이치도』 산문집 『즐겁게 춤을 추다가』 『소풍』 『농담하는 카메라』 『칼과 황홀』 등이 있다. 그리고 올해 반가운 장편소설 『위풍당당』이 한 권 더 추가되었다.

『위풍당당』에 해설을 붙인 차미령 문학평론가는 “성석제가 돌아왔다.(…) 이 말만큼 『위풍당당』을 마주한 독자의 감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풍당당』은 노련한 입담가의 주특기인 해학이 물씬한 장편소설이다. 코 고는 장면 하나의 묘사만으로도 잠시 숨을 멈추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산의 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코 고는 소리에 문풍지가 흔들릴 정도다. 먼저 “크으”하고 콧구멍을 통과한 공기가 입장료를 내듯 코 천장을 울리고 이어 “크큭”하고 좁은 곳에서 막히면서 길을 모색한다. 길을 찾는 동안 호흡이 끊기면서 옆에서 자는 사람이 숨이 멈춘 게 아닐까 불안해할 만큼 휴지기가 찾아온다. 이윽고 활로를 찾은 공기는 비강을 통과한다. 그로부터 거침없이 폐에 도달한 공기가 되돌아나오면서 코 전체를 소리통 삼아 “콰콰아”하고 폭포수 소리를 내며 내려온 뒤 “푸우우” 하고 마무리된다. 이러니 여산의 곁에서 자려는 사람이 없었다.(『위풍당당』 p.85)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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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작가에게 근황을 물었다. 요즘 단편 소설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접하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지낼까?

“대개가 쓰지 않는 시간이죠.(웃음) 무의미하게 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위도식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게 있어야 조바심 같은 게 생겨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자전거도 많이 타고요. 몸과 머리와 가슴이 기억하고 저장하고 정리하도록 하는 시간을 가지죠. 대개는 막걸리를 마시면서.(웃음) 홍대역, 상수역에 단골 막걸릿집도 생겼어요.”

성석제 작가를 홍대에서 만난 날은, 스승의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성석제 작가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거의 없다. 두 학기 정도 창작 수업 강사를 한 이력이 전부다. “글쓰기라는 게 배워서 하는 것인가? 그렇게 잘할 수 있나요?”라고 되묻는다.

미술이나 음악이야 가르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글쓰기가 기술도 아니고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글을 잘 쓰고 싶어 창작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기가 배울 수 있는 것과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하겠구나 싶다.

“역시 많이 읽는 것. 많이 읽고 많이 겪는 게 중요하죠. 또 많이 겪어야 하고요. 그리고 느껴야죠.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리는 동안 심심할 테니 계속 읽는 거고요. 당장은 자기 자신의 글로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문학적, 화학적 변성을 가져와서 그것이 자기의 문장으로 나올 거예요.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그럴 시간에 더 읽는 게 낫죠(웃음)”


“책을 읽을수록, 다른 존재가 되는 거죠”



정말 많이 읽기만 하면 될까? 잘 읽는 법이 따로 있는 걸까? 분명 다 읽은 책이어도 책장을 넘겼을 때 영 데면데면한 책들이 있다. 책은 계속 읽어가는데, 동시에 계속 잃어가는 기분도 든다.

“기억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뉴런이라고 하는 뇌세포 하나하나에 기억이 저장돼요. 워낙 숫자가 많아서 평생 보고 느끼고 하는 것들을 다 기억하고도 남을 거예요. 기억나지 않는 건, 그 기억이 없어진 게 아니라 연결시키지 못하는 거죠. 어떤 계기를 통해서 미세한 전기가 뇌세포에 흘러 저장된 걸 다시 불러오는 게 기억하는 거거든요. 기억이 있긴 있어요. 다만 비활성화되어 있는 것뿐이죠.”

고로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란, 기억을 잘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말씀. “책을 읽는 건 기억의 양을 많이 늘리는 거예요. 양적으로 늘어나면 자기에게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연결형태도 복잡해지겠죠. 어떤 단어가, 냄새나 느낌으로 연결되는 식으로 복잡한 방식의 회로도 생겨나겠죠.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의 존재가 좀 변하는 거죠.

하나를 봐도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떠올리거나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겉보기에는 똑같지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죠. 책에 의해서, 문학에 의해 존재의 변형이 일어나는 게 인류에게는 큰 축복이죠. 공룡이나 동물들은 자신이나 인생에 대해서, 가족이나 세계에 대한 해석. 인식의 확장 같은 게 힘들 거에요. 책이나 문자가 없어서.(웃음)”



제도권 가족에서 벗어나, 사회적 가족 만들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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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시간과 우연, 고통과 기쁨의 실과 바늘에 엮여 모자이크와 같은 삶을 이루는 소설을 생각해온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또 그런 삶이 여럿 모여 하나의 모자이크를 이룬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들을 가족으로 묶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이었다.(p.289)



『위풍당당』은 궁벽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주어진 운명으로서의 식구가 아닌 자신이 선택해서 한 식구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자 무너진 가족에게서 의지로 혹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와 마을에 모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가족의 형태로 어우러져 살아간다. 이 평온한 마을을 접수하려고, 또 하나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마을이 시끄러워진다. 형님과 아우로만 이루어진 검은 양복의 조폭들이 그들이다. 전국구를 들썩이는 조폭이 동네 아가씨 하나 건드리려다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이 번지게 된다.

성석제 작가는 오래전부터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고 고민해왔다. “인터넷만 봐도 그렇잖아요. 해체되어가고 원수가 되어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죠.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하면 얼마나 많겠어요. 가족이라는 게 인간이 워낙 약한 존재라서 생긴 울타리가 아닐까 싶어요. 수렵시대에는 가족 공동체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웠어요. 막 태어난 아이는 털도 없고, 이도 없고 절대적 보호를 받아야 하잖아요. 지금은 생존적 측면에서도 환경이 좋아졌는데, 왜 가족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일이 더 많아졌을까요?”

수렵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제도적 가정은 해체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사회에서 집 밖에서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간다. “밖에 나가서는 의형제를 맺고, 어머니 아버지와 비슷한. 그런 존재를 또 갈구하고 찾고, 맺고 하잖아요. 보통 기존의 가족은 의무나 도덕을 강요해서,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부양하라든지 게임을 그만하라든지, 결혼을 왜 안 하느냐는 식의 참견 때문에 사이가 나빠지기도 하고요. 가끔 만나는 사회적 가족들은 일정한 거리가 있잖아요. 가까워도 서로 넘지 않는 선이 있죠.”

고로 가족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존중’이다.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인정해주는 거죠.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거나 상처를 주면 안 되겠지만, 어느 정도 범주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허용하지 않는 일이 많으니까요. 부부간에 존댓말을 하면서 존중을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거고요.”

마을에 모인 식구들과 조폭 식구들과의 한판 전투. 당연히 조폭 식구가 강하지만, 이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마을 식구들도 지형지물을 이용해 만만치 않은 응수를 해나간다. 섬에서 벌어지는 포복절도 액션 활극이다. 마을 식구들의 무기는 숲, 나무, 강…… 그저 자연이다.


강은 발원지이고 생명의 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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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은 강에서 시작해 강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성석제 작가의 고향이자, 그의 많은 작품의 주 무대가 되었던 상주 역시 강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강을 볼 때마다 발원지를 상상했다. “샘. 물방울 하나. 빗방울. 계곡. 도랑. 실개천. 하천. 내가 어릴 때 집 앞에 도랑이 있었어요. 도랑에 세수하곤 했죠. 도랑 물이 한없이 가면 강에 닿겠구나 싶어서 걸어가 보고, 그 강이 또 바다에 닿겠구나 생각했죠. 내가 사는 곳보다 훨씬 더 광활한 삶의 무대를 상상하게 해주고, 바다로 인도해주는 것이었죠. 강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생태계였어요.”

강에 대한 추억을 묻자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온다. 이 대목은 작가의 음성을 그대로 옮겨야겠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강이 그에게 특별히 ‘생명’의 이미지를 가진 사연이 여기에 담겨 있다.

“한강 팔당댐 쪽에 있는 한 섬에서 아버지가 소를 키우셨어요. 지미 카터 대통령이 땅콩 농장을 하다가 대통령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땅콩도 키웠어요. 고등학생인 제가 수학의 정석, 성문 종합 영어책 들고 한 달 동안 거기 가서 아버지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지냈죠. 당시 막 팔당댐이 만들어지던 때였는데, 어느 날 홍수가 났어요. 섬에 물이 차올라서 집이 떠내려가게 생겼는데 야속하게도 팔당댐을 열지 않는 겁니다. 오로지 라디오 하나 의지해서 섬 제일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데, 섬에 사는 날개 없는 동물들은 다 모였어요. 뱀, 개구리, 소, 벌레들, 나, 아버지…… 팔당댐 위에 마을도 침수되고 난리가 났다고 원성이 자자해지니까, 댐을 열었어요. 집이 떠내려가기 전에 간신히 살아났어요.

만세를 부르다가 사람이라는 게 금방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 나니까 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배가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 모르게 불은 강 위로 배를 띄웠어요. 댐을 열어버리니까 물살이 엄청나게 빠르더라고요. 섬 주변을 돌다가 그만 노를 놓쳤어요. 아무 대책 없이 있으니 배가 팔당댐으로 가더라고요. 거기서 떨어지면 죽는 거죠.

너무나 암담했죠. 강이 사람 잡네. 목이 터져라고 소리를 질러도 강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아버지는 집 안에 계셨어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강이 휘는 부분에서 배가 기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쪽으로 필사적으로 움직였죠.(웃음) 아버지한테는 당연히 말도 못했고요. 다시 살아나게 해준 것도 강이죠. 강이 생명의 은인인 셈이죠. 죽이지 않았잖아요.”



무협지를 탐독하던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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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작가는 잘 알려진 대로 다독가다. 어렸을 때는 말도 없고, 노는 데도 별로 끼지 않고 무협지 세계에 빠져 있던 소년이었다. 오로지 책 읽는 데에만 바빠 친구들에게 “냉정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고등학교 때까지 읽은 책의 80퍼센트는 죄다 무협지였어요. 남자들이 빠져들 만한 흡입력 있는 요소를 다 가지고 있죠. 패싸움이 있고, 신분상승이 있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모두 주인공만 좋아하고요. 복수나 기이한 인연 등의 여러 가지 장치가 어린 영혼에는 대책 없이 매혹적이었죠.”

무협지는 그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세우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해방구 같은 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 집의 열서너 명이었던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여자였어요. 아버지, 돌아가신 형, 삼촌, 나. 남자는 넷이었는데, 아버지와 형은 일하러 공부하러 자주 나가계셨으니까.” 가족 구성원이 거의 여자였던 집에서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무협지 때문이었단다.

“집안에 여자들하고 생활해야 하는데 나는 약하잖아요. 무식하고 어리고 만만하고. 내가 뭐라고 말만 하면 그렇게 혼나고 지적받곤 했죠. 여자들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보다 다 힘 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니까. 또 여자들끼리 공유하는 비밀도 있었고요. 서럽던 차에 그래도 무조건 저를 지지해주는 할머니라는 해방구가 있었죠.”

그런 여성들의 세계에서 소년이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투항하고 여성들의 세계의 일원이 되거나, 아니면 얻어터지더라도 맷집으로 자기의 개성을 지켜내거나. 저는 맷집이 좋은 아이였어요”


“좋은 독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무협지 외에 책이라는 걸 손에 쥐게 된 것은 군대를 다녀온 이후였다. 물론 그때 읽은 책은 감상용이 아니라 허세용(!)이었다. “그때는 철학이나 역사서를 자주 봤어요. 대학 시절이잖아요. 아이들 앞에서 서로 자랑하고 싶었는데, 자랑할 때 필요한 인풋이 책밖에 없었거든요. 책을 읽고 소화되기도 전에 다음날, 어제 읽은 걸 가지고 떠들어야 되니까(웃음) 그런 수요 때문에 책을 읽었죠.”

그 당시 가장 유용하게 써 먹었던(!) 책이 뭐냐고 묻자 성석제 작가는 아놀드 하우저의『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꼽았다. “거기는 수많은 거장의 이름과 저작과 그 사람들의 생각한 것들이 아주 명료하게 압축되어 있거든요. 정말 유용한 책이었죠.(웃음)”

그 무렵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교내 문학상에 투고한 시가 가작에 당선됐다. 상금 8만 원으로 세계 현대 문학 전집을 샀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의 낯선 작가들뿐이었지만, 대부분 살아있는 작가들의 소설이 실려 있었어요. 훼드니낭 셀린느. 카티비. 나중에 노벨상을 받은 바르가스 요사 등의 작품이었어요. 내 돈 가지고 산 책이니까 아까워서 열심히 읽었죠. 그게 저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동시대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성석제 작가는 희미하지만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고.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학적 연대 같은 거요. 우리가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예술적인 연대감을 공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들보다 훨씬 오래전에 글을 쓴 작가들과도 그 연대의 맥이 닿아있을 거고요. 상상해보니 근사했어요. 그 연대를 따라가 보면서 인생을 채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좋은 독자가 되자고 생각했어요.”

이십 대 중반. 시인으로 데뷔하고 성석제 작가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지방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웃음) 취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라. 일단 제주도로 내려갔다가 해남으로 올라오는 식으로 북상(北上)했죠. 그런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사는 걸 보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때부터 소설가 비슷한 흉내를 낸 걸지도 모르죠. 그로부터 7~8년 후쯤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몇십 년 후에 사람들은 무엇을 읽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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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는 살았던 시간을 남기는 방법의 하나죠. 소설을 쓴다는 건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삶의 세부를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에요. 제가 소설을 쓰는 건 거창한 사명 때문이 아니라, 이게 재미있지 않을까? 싶은 일을 하는 것뿐이고요.”

성석제 작가는 최근 고향에 내려갔다가 4대강 공사 때문에 제 모양을 잃어버린 강의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위풍당당』이 강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는 글이라고도 했다. 계속 변한다. 그때 강 근처에서 발원지를 상상하며 배를 띄우던 소년은 중년의 소설가가 되었고, 그때 놀던 강은 허물어졌고, 당시 친구들 역시 다 변했다. 어쩌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이야기뿐이 아닐까? 강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소설에 관한 이야기로 다시 흘러갔다.

“이야기 역시 변하고 있어요. 의미를 잃어가고 있고, 어떤 현상이나 흐름에 주인 자리를 내놓고 있죠. 이야기가 쪼개지고 사소해지고 있어요. 이렇게 소멸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도 싶어요. 완성도가 높은 서사체계가 아니라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글들이 많아지고, 결국엔 ‘오늘의 유머’식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어요. 총체적이나 전체성을 가진 작품들은 흘러간 것이 되고 있어요. 세계 전체성을 무화시키고, 그런 것들을 사소하게 여기는 성향으로 흘러가고 있죠. 이게 나쁘다기보다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는 거죠.

전체 총량으로서의 이야기 양은 같을지 몰라요. 하지만 완성도 높고 예술 작품 수준으로까지 고양된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이야기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아요.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가 아직까지 남아있어야 할까요? 셰익스피어가 지금도 유효하나요? 그 당시만큼의 영향력은 없겠죠. 변해가는 건 당연한 건데, 요즘은 뭐든 너무 빨리 변해가면서 파편화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호머를 가지고 있지만, 몇십 년 후에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가 만들어낸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요?”


블로그에서 SNS로, 게다가 줄임말까지. 점차 짧은 문장으로 소통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그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파편화되는 언어매체 속에서 문학은 어떻게 될까? 그가 꺼낸 마지막 이야기는, 시대가 엄혹한데도 우리가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총체적이고 전체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는 고전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한 답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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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성석제 저 | 문학동네

‘탁월한 이야기꾼’ ‘해학과 풍자의 장인’ ‘입담과 재담의 진면목’ 성석제가 돌아왔다. 2003년 장편『인간의 힘』이후 구 년 만에 신작장편소설『위풍당당』을 들고 또 한번 성석제표 웃음의 축제의 장으로 초대 한다. 시골마을에서 빚어지는 맹랑한 소동극의 형식을 빌려 재담과 익살,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세계를 그려낸다. 동시에 그 웃음 뒤에 숨은 우리 사회가 처한 도덕적 파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부정한 권력에 저항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충동이 소설 심층부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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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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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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