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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건축과 정원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던 건축적 이상이 구현된 것” - 유홍준 교수와 나영석 PD가 창덕궁에 간 사연

“많은 왕들이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사랑했던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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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답사는 돈화문에서 시작되었다. 구선원전과 취규정을 지나 관람정과 연경당, 기호헌이 있는 길을 따라 부용정으로 이어진 여정은 인정전에서 끝이 났다. 끊임없이 비가 내렸지만 ‘유홍준의 해설이 있는’ 창덕궁 답사를 함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의 무게를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인류의 유산들을 접할 때면 이따금씩 ‘과연 인간은 진화하고 있는가.’ 의문이 든다. 이미 수백 년, 수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 유산들이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심지어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로 남아있기도 하는 까닭이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울 것은 없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이것을 능가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러나 가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비석이라 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한낱 우물가의 빨래판과 다를 바가 없다. 돌과 보물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작가 유홍준 교수는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 할 만하다. 적어도 ‘한국의 문화유산’과 관련해서는 그러하다. 긴 시간동안 자신이 쌓아온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나눔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에 대한 관념과 가치에 눈뜰 수 있도록 이바지했다.


국내 인문서 최초 300만부 판매 돌파,
내용의 퀄리티는 유지하면서 형식을 대중적으로 만드는 것이 대중성이죠.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3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국내 인문서로는 최초의 기록이다. 이를 기념해 지난 4월 21일, 출판사 <창비>와 YES24가 함께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작가 유홍준 교수와  <1박 2일>의  나영석 PD가 함께하는 창덕궁 답사였다.



“지난번에 저의 답사기 300만부 돌파 기념식이 있었어요. 그때 백낙청 선생님이 축사를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건 유홍준을 축하할 일이 아니고 우리 국민들과 출판계에 축하할 일이다. 만약 이 책이 없다면 한국에서는 아무리 책을 잘 써도 10만부 이상 안 팔린다고 낙인이 찍힐 뻔 한 것을, 잘만 쓰면 300만부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하나의 기준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고 하셨어요. 사실 영어권에서는 밀리언셀러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독자를 너무 수준 낮게 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였다고 생각해요. 질이 낮아져야 하는 것이 대중성이 아니라, 내용의 퀄리티는 유지하면서 형식을 대중적으로 만드는 것이 대중성이죠.”

아울러 그는 ‘대중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이루는 데 <1박 2일>과 같은 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실제로 유홍준 교수는 그동안 <무릎팍 도사>와 <1박 2일>과 같은 대중적인 예능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면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구했다. 그 인연으로 답사에 함께한 나영석 PD는 <1박 2일>에서 미처 다룰 수 없었던 창덕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서울 역사여행 특집’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창덕궁을 답사한 후 소개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으나 시간 관계상 경복궁과 종묘만을 다루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영석 PD는 창덕궁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으로 비원(후원)을 꼽았는데, 촬영 당시에는 겨울이어서 비원이 제 멋을 뽐내지 못하고 다소 썰렁해 보였다.

“방송을 통해 보여드릴 때는 시민들이 좋게 보시고, 의미를 알아채시고, 또 그 반응으로 많이 와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을 만듭니다. 그런데 겨울에 썰렁할 때의 비원을 보여드리면 ‘저기에 가도 별로 재미가 없겠는데.’ 생각하시는 분들이 혹시라도 계실까봐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어요. 저희가 비밀로 간직하고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뒷동산에 집을 지어놓은 것과 같은 편안함이 있기 때문에
많은 왕들이 창덕궁을 더 사랑했던 것 같아요.


창덕궁 답사는 돈화문에서 시작되었다. 구선원전과 취규정을 지나 관람정과 연경당, 기호헌이 있는 길을 따라 부용정으로 이어진 여정은 인정전에서 끝이 났다. 끊임없이 비가 내렸지만 ‘유홍준의 해설이 있는’ 창덕궁 답사를 함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행여 그의 이야기를 놓칠세라 우산을 쓰고 또는 우비를 입은 채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된 여정이었지만 비오는 날 영화당에서 바라보는 부용지와 부용정의 모습은 고단함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그 자체로 한 장의 그림이고, 영화의 멋진 한 장면이었다.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이 운치 있는 풍광이었다.

유홍준 교수 역시 한옥은 비가 올 때 진정으로 멋이 있다 했다. 비오는 날 병산서원의 만대루에 앉아 있노라면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고, 안동이나 양동마을에 답사를 갔을 때 비가 오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처마 밑에 앉아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이 날 역시 감흥이 일었으나 궂은 날씨에도 창덕궁으로 모인 많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위해 어렵게 걸음을 떼었다.

창덕궁은 조선의 이궁(離宮)이다. 이성계가 창건한 경복궁이 정궁이었고 이후 태종에 의해 별궁의 개념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이른바 양궐 체제로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왕이 거처한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이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창경궁, 창덕궁 세 궁궐이 모두 불탔을 때에도 가장 먼저 재건된 곳 역시 창덕궁이었다.

“이궁인 창덕궁을 짓고 태종이 이곳에 와서 근무를 했죠. 특히 태종에게 경복궁은 왕자의 난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달갑지 않은 공간이었고, 그래서 창덕궁에서 더 많이 근무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에 창덕궁과 경복궁이 소실되고, 경복궁은 대원군이 증수할 때까지 빈터로 존재했어요. 그래서 임진왜란 이후에는 왕들이 창덕궁에서 근무를 했죠. 그 전에도 왕들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오가면서도 창덕궁에 있기를 더 원했어요. 아마 창덕궁이 더 편했을 겁니다. 경복궁은 사무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이 있는데, 창덕궁은 뒷동산에 집을 지어놓은 것과 같은 편안함이 있기 때문에 더 사랑했던 것 같아요.”


창덕궁의 멋과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방법 - ‘옥류천 관람 코스’ 와 ‘달빛기행’

유홍준 교수는 옥류천으로 이어지는 길의 초입을 지나면서, 제한적으로 관람이 이루어지는 ‘옥류천 관람 코스’를 추천했다. 차후에 꼭 한 번 와 보시라는 권유였다. 아울러 창덕궁의 멋과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가 제안하는 프로그램은 ‘달빛기행’이다. 매년 3~6월, 9~11월에 보름을 전후하여 14~16일 3일 동안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밤 8시~10시 사이에 창덕궁 관람이 이루어진다. 그야말로 달 밝은 밤에 한적하게 궁을 거닐 수 있는 것이다.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만큼 그 인기도 높아 벌써 6월까지 신청이 마감된 상태다. 입장료도 1인 3만원으로, 문화재 관람비용으로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유홍준 교수는 양질의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서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이야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박물관 입장을 무료로 바꾼 것은 교육적으로 잘못한 일이에요. 천원을 내더라도 자기 돈을 내고 입장해야 성실하게 보는 법이거든요. 천원이 아까워서 박물관에 가지 않을 사람은 안 가도 됩니다. 그리고 박물관에 오는 사람들의 1/3은 외국인이에요. 더군다나 국립중앙박물관이 무료로 운영을 하니 사립박물관이 운영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엄청난 문화유산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되니까, 그보다 조그만 것을 보는데 3천원을 내라고 하면 아까워서 못 가요.”


시선이 연못으로 떨어지게 하기 위해
반드시 정자를 연못 속으로 빼서 지어요.


우리의 전통 건축양식과 궁궐 문화에 대해 관심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창덕궁 내의 수많은 정자들이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서양인들의 눈에는 동양인은 다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듯이. 한국의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눈에 있어서는 외국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위해, 유홍준은 창덕궁 내에 있는 정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용정은 배가 떠 있는 모양과 같이 지어졌고, 물결을 바라본다는 뜻의 관람정(觀纜亭)은 부채살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육각으로 된 이층 지붕으로 거룩하게 만들어진 정자인 존덕정도 있다. 이밖에도 맞배지붕에 온돌까지 갖춘 정자가 있는가 하면 팔짝지붕을 한 정자, 원형으로 지어진 정자 등 창덕궁 안의 모든 정자가 다 다르게 생겼다. 정자의 외양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곳에 올라 바라보는 경치 역시 아름답다. 여기에는 세심한 배려와 깊은 고민, 뛰어난 발상과 기술이 숨겨져 있다.

“연못이 있는 곳에 정자를 만들 때는 반드시 정자를 연못 속으로 빼서 지어요. 관람정도 그렇고 부용정도 그렇죠. 그 이유는 정자에 앉았을 때 시선이 연못으로 떨어지게 하기 위해서에요. 이것이 정자가 가지고 있는 그윽한 맛이죠. 축대(돌다리)를 만들어서 건물을 연못으로 빼면 연못 공간도 다양성을 갖고요. 옛날 사람들이 갖고 있던 미학이죠.”


우리의 정원은 주변의 자연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서
형태가 완전히 달라져요.


정자 위에 올라 내려다보면 마치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부용정은 부용지를 사이에 두고 영화당과 이웃해 있다. 과하거나 모자란 느낌 없이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느낌을 주는 공간이지만, 연못(부용지)을 파기 전에는 그저 민둥산에 불과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연못을 파고 부용정을 놓고, 규장각을 지어 아름다운 공간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의 정원은 평지 위에 건물을 지어서 인공적인 느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자연이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형태를 다르게 한다. 그 공간의 계곡이 어떻게 생겼고, 식생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구상하고 만드는 것이다. 창덕궁의 정원을 비롯해 보길도의 부용정이나 담양의 소쇄원, 영양의 서석지, 성락원 등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정원들이다.

바로 이 점이 동양의 다른 나라들, 예컨대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 차별화되는 한국식 정원의 특징이다. 중국 또는 일본의 정원은 정해진 기준과 형식에 따라 만들어져 전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에 반해 전통적인 한국의 정원은 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 특징과 형식을 공식화하기 어렵다. 이러한 특징은 언제나 산과 자연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온 옛 사람들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창덕궁이 보여주고 있는 건축과 정원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던 건축적 이상이 구현된 것입니다.


답사를 마무리하는 인정전에 이르러 유홍준 교수는 근정전을 떠올렸다. 그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쓴, 비오는 날 근정전 앞마당의 박석 이음새를 따라 빗물이 흐르는 장관을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창덕궁을 답사지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라, 창덕궁의 앞마당은 박석을 사용하지 않고 화강암을 쪼아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창덕궁 앞마당에 잔디를 심어 놓은 것을 광복 후에 걷어내고 정비하였는데, 당시에는 박석을 채취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화강암을 쪼아서 만들어 놓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두고 유홍준은 ‘근정전 박석의 조각이불 같은 아름다움’을 그리워했다.

창덕궁의 인정전에는 비오는 날 조각이불을 보는듯한 아름다운 빗물의 동선은 없지만, 근정전에 비해서 월대로 올라가는 축대가 약해 근엄함이 적지만, 조선의 그 어떤 궁궐보다도 아늑하고 편안한 기운이 서려있다.

순조가 효명세자를 위해 지은 공부방인 기호헌 앞에서 여느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은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정자 애련정 옆에 서면 연못에 이는 물결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왕과 신하들이 함께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었다고 하는 옥류천의 풍류도 느껴보시기 바란다.

지나는 길목마다 자리하고 있는 모든 건축과 정원들은 그 자체로 자연인 듯 하다. 자칫 모르고 지나치는 안타까운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도움을 받아 보시는 것은 어떨지. 작가가 직접 추천한 책 『궁궐의 우리나무』(박상진 저) 와 『궁궐의 현판과 주련』(문화재청)도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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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문화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은 궁궐 문화입니다. 왕실 문화는 지배층의 문화이자, 그 시대 그 민족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창덕궁이 보여주고 있는 건축과 정원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갖고 있던 건축적 이상이 구현된 것입니다. 그런 각도에서 이 다음에 창덕궁을 계절에 따라서, 시간에 따라서 새롭게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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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저 | 창비

답사기 제1권 ‘남도답사 일번지’는 출간 당시 남한땅 답사의 첫번째 답사처로 유배의 땅 강진ㆍ해남 일대를 꼽은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남도답사 일번지’에서는 사진자료를 컬러로 복원하면서, 본문에서 묘사하는 색감과 질감 등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본문의 설명과 사진자료가 일치하도록 촬영 위치까지 고려하여 수차례에 걸쳐 자료를 엄선하였다. 강진ㆍ해남 일대와 예산 수덕사, 경주 일대, 담양 소쇄원, 고창 선운사 등을 수록한 제1권은 풍성한 내용과 저자 특유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로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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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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