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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전도사, 유홍준 교수와 함께한 특별한 투어- 『유홍준의 국보순례』

지난 9월, YES24 이벤트 블로그에서 모객한 유홍준과 함께 하는 부여답사 이벤트는 반응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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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여명의 독자가 댓글을 달았고, 그 중 40명의 독자가 부여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몸을 실었다.

유홍준과 떠나는 부여답사여행


아침 저녁 쌀쌀한 바람이 불지만, 오후에는 귀한 햇살이 내비치는 요즘. 짧게 스쳐갈 것만 같은 가을 정취는 사람을 밖으로 이끈다. 이런 때에 단풍 구경도 좋지만, 자연도 즐기고 문화재도 볼 수 있는 국보순례는 어떨까? 문화재 전도사 유홍준 교수가 앞장 섰다.

지난 9월, YES24 이벤트 블로그에서 모객한 유홍준과 함께 하는 부여답사 이벤트는 반응이 뜨거웠다. 180여명의 독자가 댓글을 달았고, 그 중 40명의 독자가 부여로 향하는 버스에 함께 몸을 실었다. 당일 날 출석률은? 100퍼센트였다.

유홍준 교수가 부여 답사 전도사로 나선 것은 특별한 까닭이 있다. 문화재청장 사퇴 이후 부여 반교리로 귀농을 했기 때문이다.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사연을 밝힌 것처럼, 65세 부여군 반교리 청년회원이 되었고, 부여문화원이 주관하는 ‘유홍준과 함께하는 부여답사’ 프로그램에 차출되었단다. 봄, 가을 두 차례씩 진행되는 답사 프로그램은 부여문화원 홈페이지 (▶ 사이트 바로가기)에서 신청할 수 있다. 3년째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막내딸처럼 귀여운 ‘장하리 3층 석탑’

부여로 내려가는 버스 안, 유홍준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일어나자, 차 안이 술렁거린다. ‘무릎팍 도사’ 출연 이후 인기가 부쩍 늘었다. 교수님의 행사 소개에 이어 함께 하루치 여행을 떠난 독자들이 차례로 자기 소개를 했다.

국사를 좋아한다는 똘똘한 학생부터, 국사를 가르치는 교사, 자녀들이 신청한 덕분에 오게 되었다슴 부부독자 등 여러 가지 소소한 사연이 이어진다. 매번 답사 때마다 본인이 직접 선곡한 음악을 틀어준다는 유홍준 교수는 이날 레이 찰스의 음악을 골랐다.


장하리 3층 석탑을 시작으로 임천 대조사, 외산 무량사, 반교마을 돌담길 등 부여군에 흩어져 있는 문화 유적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유홍준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총 80여명의 독자들은 부지런히 유적을 보고, 듣고, 감상했다. 인적 드문 벌판에, 혹은 절 한 가운데 유적들은 자연물처럼 고요하게, 수백 년의 시간을 통과한 위엄 있는 자태로 서 있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금방 머리 정수리를 따뜻하게 덥히는 햇살도 이날 답사에 잘 어울렸다.

“귀엽지 않아요? 꼭 막내딸처럼 말이죠.”

장하리 3층 석탑을 본 유홍준 교수의 첫 마디였다.


고려 중기에 세워졌다는 장하리 3층 석탑은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닮아 있다. 이 석탑에서 주의 깊게 볼 점은 3층 탑신이다. 1층과 2층의 몸돌은 네 귀퉁이에 긴 기둥을 세우고 가운데 홈을 파서 상승감을 강조했다면, 3층 몸돌은 홈을 위쪽으로 반만 깎아 凹자형을 이루고 있다.

“정림사지 오층 석탑을 맥없이 배낀 것이 아니라 은근히 미적 변주를 가해 자기만의 독특한 미감을 갖추고 있는 거죠. 이것은 결코 재탕이 아니라 경쾌한 변주이고, 익살조차 느껴지는 일종의 패러디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유홍준은 답사기에서 이를 백제의 여운이라고 표현했다.


자연과 인공물의 멋스러운 조화, 대조사 미륵보살


부여군 임천면에 위치한 대조사로 이동했다. 대조사를 지을 때, 공사 현장에 새가 날아와 울면서 주위를 밝혔다고 한다. 10년이 걸릴 대규모 사업이었는데, 사공들이 새소리에 피곤을 잊고 공사에 매진해 5년만에 대사찰을 완공했다. 그때 나타났던 황금빛 큰 새의 이름을 따서 사찰 이름을 ‘대조사’로 지었다고 전해온다.


대조사 법당 뒤에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우뚝 서 있다. 법당 뒤쪽에 긴 유리창을 두어 무릎을 꿇고 예불하면, 미륵보살과 눈이 마주치게끔 만들어두었다. 몇몇 독자들은 법당에 들어가 직접 예불하고, 미륵보살과 눈맞춤 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본 미륵보살은 우아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저 어마어마한 불상은 어떻게 세워졌을까? 돌산과 어우러진 4등신의 불상은 크기부터가 놀랍다. 미륵보살의 머리 위를 감싸고 있는 노송의 자태 역시 기이하고 멋스럽다. 유홍준은 답사기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대조사 보살상에는 근엄, 원만, 자비, 평온 같은 이미지는 없지만 무언가 신기를 일으킬 것 같은 괴력이 느껴진다. 이 점이 사실상 고려시대 지방 양식으로 나타나는 불상들의 중요한 특징이다.(…) 저렇게 세월의 때를 입혀가면서까지 자연과 인공을 결합시키는 마음은 진실로 이 땅의 문화가 만들어낸 가장 큰 미덕이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p398)


이날의 여정도 그러했다. 이름이야 역사문화탐방이지만, 유홍준 교수는 사람들 앞에 나서 이끌기보다, 함께 관람하면서, 관람 포인트를 쉬운 말로 전달해주었다. “여기는 저 앞에서 기념 촬영하면 되요.” “이 법당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저 처마 끝이 포인트예요.” “이 석탑은 이쪽에서 보는 풍경이 장관이에요.” 등등. 그는 강단에 서는 교수님이지만, 그보다도 언제나 현장에서, 길 위에서 사람들을 인솔하고 안내해왔던 문화재 전도사였다. 이날 유홍준 교수가 보여준 탁월한 진행과 인솔력은 그의 전력을 새삼 체감하게 했다.


1000살 먹은 주암리 은행나무, 3개국의 흥망을 지켜보다


외산 무량사로 가는 길에 내산 주암리에 들렀다. 거기에 약 1000년의 시간을 거친 은행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높이 23미터, 둘레 약 8미터를 자랑하는 주암리 은행나무는, 마을의 신령한 나무로 보호되어 왔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고려가 세워졌다 망하는 일을 우뚝 서서 다 지켜본 게 바로 이 은행나무다.

전염병이 돌 때 이 마을만 화를 면했다고 해서 영험한 나무라고 알려져 있다. 이제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무를 관리해주는 사람이 없어 말라가고 있었는데, 최근 다시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무의 기력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량사, 김시습의 삶을 음미하다


오늘 관람의 하이라이트. 무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에 소개된 무량사 사하촌 식당가에서 점심을 먹고 움직였다. 무량사 극락전, 조소아미타삼존불, 무량사 석등, 미륵불괘불탱 등 많은 보물을 보유하고 있는 무량사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큰 절이다. 김시습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건물이 언제 지어지고, 어떤 양식이고 하는 것보다도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무량사에 오면 김시습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죠.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금오신화』 를 쓴 저자예요.” 유홍준 교수는 김시습과 같이 비범한 사람들의 일대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리가 기억할 만한 한 사람의 역사야 말로, 하나의 학문으로 규정할 수 없는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홍준 교수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시습의 일대기를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났어요. 세종대왕이 그의 작문 실력을 시험해보고 이렇게 지시를 해요. 친히 만나고 싶지만, 세속의 이목을 놀라게 할 듯 하니, 그 실력을 드러내지 말고 잘 가르치게끔 김시습 가정에 일러두라. 세종은 특출 난 재능이 송곳같이 튀어나오면 문제가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안 거죠.”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마냥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토록 따뜻한 폐사지라니, 보령 성주사지


유홍준 교수는 보령 성주사지에 도착하자 “이토록 따뜻한 폐사지가 있냐”며 감탄을 쏟아냈다. 이곳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화재로 인해 절은 폐사하고, 백월보광탑비, 성주사지 5층 석탑 등의 유물만 남아있는 곳이다. 광활한 터전에 드문드문 국보와 보물이 서 있지만, 조금도 쓸쓸하거나 스산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족히 이삼 만 평 되는 넓은 분지에 반듯하게 정비된 절터만도 수천 평에 달하니, 하늘로 열린 시계가 넓어요. 대지의 설치미술을 보는 듯한 감동이 있는 곳이죠.”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좌)와 성주사지 5층 석탑(우)



유홍준 교수가 머무는 집, 휴휴당


유홍준 교수는 부여에 살 집을 알아 볼 때, 다섯 가지 조건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서울과 2~3시간 거리에 위치할 것. 집 근처에 걸어서 들를 수 있는 사찰과 박물관이 있을 것. 바다가 가까울 것, 그리고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시골에 위치할 것. 그런 조건을 딱 부합하는 곳을 부여 반교마을에서 찾아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위치한 유홍준 교수의 집, ‘휴휴당’에 들르기로 했다.

‘쉬고 쉬는 집’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포도를 잘 그린 이계호의 아호가 휴휴당인데 그걸 빌려와 나도 쉬고 쉬는 집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5도 2촌이 시작되니까 쉴 시간이 없다. 여름이면 풀 뽑아야지, 봄 가을로 밭에 나가야지, 나무 가꾸어야지, 겨울이면 장작 패야지. 해가 지고 나야 책 볼 시간이 생긴다.(『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p.334)


코스모스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는 길목이 매우 운치 있다. 해질녘이 되자, 반교의 돌담길은 꽃과 나무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100개의 유물과도 바꾸지 않겠다.” 정림사지 5층 석탑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며 함께 길을 걸으니 지치는 줄도 모르겠다. 부여 정림사지 탐방이 이날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정림사는 서기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현재 부여(당시 사비)로 천도하면서 사비성 중앙에 창건한 사찰이다.

백제의 대표적인 절터인 이곳에는 현재 5층석탑과 석불좌상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의 하나로 비례 구성과 구조수법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정림사지 5층석탑 앞에 서면 절로 이런 얘기가 나온다. “참 잘 생겼다!” 학창시절 미술책, 역사책에서 보고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늠름하다. 유홍준 교수는 이 석탑이 “부여답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표현했다.


그가 답사기에 써둔 표현을 살펴보자. “완만한 체감률과 높직한 1층 탑신부는 준수한 자태를 탐미케 하며 부드러운 마감새는 그 고운 인상을 말한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그러나 단정한 몸가짐에 어딘지 지적인 분위기, 절대로 완력이나 난폭한 언행을 할 리 없는 착한 품성과 어진 눈빛, 조영한 걸음걸이에 따뜻한 눈인사를 보낼 것 같은 그런 인상의 석탑이다. 특히 아침 안개 속의 정림사탑은 엘리건트하고, 노블하며, 그레이스한 우아미의 화신이다.” 게다가 마지막 문장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100개의 유물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명작”이라는 코멘트까지 덧붙였다.

1400년 백제의 혼이 담긴 정림사 절터는 1942년부터 현재까지 부분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특히 올해 5월에는 정림사 복원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복원이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다. 입구에 붙어있는 복원계획도를 보니, 복원이 되고 나면 정림사도, 5층석탑도 한결 아늑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게 될 것 같다.


현역 문화재 전도사와 함께한 특별한 투어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 안은 잠잠하다. 피로가 몰려드는지 대부분 독자들이 곤한 잠에 빠졌다. 유홍준 교수는 ‘휴휴당’ 집으로 돌아갔다. 문득, 그가 무량사에서 한 얘기가 떠오른다. <무릎팍 도사> 출연을 하기까지 망설였는데, 출연하고 나서 인생관이 조금은 바뀐 듯 하다고 했다. “예능프로에서도 그런 얘기가 통해서 놀랐다. 이런 이야기도 재미있게 할 수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더욱 박차를 가해 부여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최근에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특별한 답사를 떠나기도 했다. 유홍준 교수는 여전히 가슴 뿌듯해하며 문화재 전도사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선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법. 오늘 스쳐간 이런 저런 풍경을 떠올리며 깜빡깜빡 잠이 들었다. 한 낮의 따뜻한 꿈 같은 부여 답사를 이렇게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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