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다른 세상은 항상 가능하다”
『카카듀』 『고백루프』 출간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른 세상은 항상 가능하다. 우리가 그걸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할 뿐이지. (2024.04.25)
“카페란 무엇인가. 서구식 끽다점을 이른다. 끽다점이란 또 무엇인가. 말 그대로 차를 즐기는 점포를 뜻한다.”
1920년대 경성 관훈동, 그곳에 끽다점 ‘카카듀’가 있었다. 영화인 이경손과 신여성 현앨리스가 공동운영 했던, 북촌 일대에 처음 생긴 서구식 끽다점이었다. 당대의 젊은 예술가들이 무시로 드나들었을 수밖에. 그런데 웬일인지 카카듀는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폐점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후에 현앨리스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는지, 애초에 이경손과 현앨리스는 어떤 관계였는지, 분명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서로 다른 말들이 풍문으로 떠돌 뿐.
카카듀의 이야기에는 빈 곳이 많았다. 바꿔 말하면, 작가에게 강한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소재라는 뜻이다. 그런 이야기가 박서련 작가를 만났다. 그러니까, 경성과 끽다점과 신여성과 소설가 박서련이 만났다는 뜻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기대와 흥분으로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박서련 작가는 말했다. “나는 허구적 재현이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스칠 때가 있다고 믿는다.” 『카카듀』를 읽은 후, 그가 믿는 바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번 소설을 두고 ‘『체공녀 강주룡』과 함께 내 무덤 옆에 놓일 두 번째 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작품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 어떻게 확신하게 되셨나요?
쓰는 게 가장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웃음) 힘든 만큼 보람이 있는 작품이 있고, 힘든데 다시 봤을 때 ‘아, 더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 있잖아요. 『카카듀』는 그런 아쉬움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했고, 다시 봐도 재밌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를 정말 많이 고생시켰지만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는 저의 책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내 무덤 옆에 놓일 책으로) 꼽게 된 것 같아요.
무덤 옆에 놓일 책 두 권이 모두 역사 소설인데요. 이 공통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셨어요?
네, 이것도 다시 한 번 제가 저에게 던지는 숙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작품들의 인물들을 다 역사에서 빌려왔다는 것은, 어쨌든 제가 스스로 만드는 인물보다 그 인물들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 아닌가 싶고요. 역사에 빚지지 않고 혼자 쓰는 소설로도 제가 가고 싶은 데까지 갈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숙제를 스스로에게 남기는 것 같아요.
『체공녀 강주룡』 이후에 ‘또 다른 역사소설을 쓸 것인지’ 묻는 질문이 많았다고요. “어떤 순간에는 넌더리가 나서 다시는 안 쓸 거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카카듀』가 나왔습니다. (웃음) 쓸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있었을까요?
글쎄요. 그 또한 『체공녀 강주룡』을 쓴 뒤에 남겨진 숙제였던 거죠. 『체공녀 강주룡』의 독자님들이 남겨주신 감상을 보면 ‘강주룡은 한 세기 전의 사람이고 너무 대단한 노동자였다, 이 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노동 현실이 이렇게나마 된 거겠지’ 하고 약간 멀리 두고 보는 거예요. 저는 시대가 조금 먼 역사 소설일지라도 동질감 또는 몰입감을 더 느끼길 바랐었는데, 그렇게 멀리 보지 말고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기에 현앨리스와 카카듀의 이야기가 적합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현앨리스와 카카듀의 어떤 점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셨어요?
되게 세련됐잖아요. 그때 현앨리스가 했던 모든 선택들이, 저조차도 그 시대를 약간 타자화하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 시대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이 인물 자체가 너무 현대적이고 굉장히 세련됐으니까 ‘이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 세대 이야기가 그 시대로 간 것처럼 전도되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카카듀』는 현앨리스에서 시작된 소설인가요? 아니면 ‘카카듀’라는 공간에서 시작됐나요?
제가 먼저 발견했던 건 카카듀였어요. 카카듀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인터넷 곳곳에 산발적으로 카카듀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내용이 조금씩 달랐어요. 공통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건 ‘현앨리스라는 여성과 이경손이라는 남성이 동업을 하던 곳이었다’ 정도였고. 그 밖에 개업 시기라든지 폐업 시기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하고, 어디에 있었다더라 하는 것도 조금씩 이야기가 다르고요. 어쨌든 카카듀라는 곳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곳을 당대의 예술가와 사상가가 같이 영업했고, 또 조사를 해보니까 둘이 친척 사이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이 친척 사이였던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어서 ‘이경손이 현앨리스를 잃고 시련을 당해서 그 상처를 달래느라 어떤 여배우랑 사귀었다’라는 식의 낭설들도 있었어요. 조금씩 기록의 차이들이 있지만 어쨌든 그곳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에 되게 흥미를 느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그 모든 이야기들, 모두 다르게 기록된 이야기와 헛소문들 또는 풍문들 자체에도 약간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흐리게 (소문을) 낸 거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찾아보니 이경손에 대한 정보는 비교적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데 반해, 현앨리스에 대해서는 상반된 정보들이 산재해 있더라고요. 그나마도 한 데 모아서 정리한 것이 없다시피 하고요. 자료 조사 과정에서 헷갈리거나 혼란스럽거나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언론이나 이런저런 언급들에서 현앨리스를 한국판 마타 하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현순(현앨리스의 아버지) 가족이 남긴 기록이 굉장히 많고, 그것을 중심으로 기록을 정리해둔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라는 집대성된 자료가 있어서, 저는 현앨리스를 파악하고 이야기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에만 전적으로 기대서는 안 됐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경손의 경우는 어땠나요?
이경손은 작가였고 영화감독이었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당시 동료들도 꽤 있지만 약간씩은 이야기가 다 달라요. 그리고 이경손 씨 스스로 남긴 기록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 분은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의지가 굉장히 강했거든요. 작가였으니까. 이 분이 <신동아> 편집부에 보낸 3부짜리 수기 중에 일부를 제가 구해서 읽었어요. 중편 소설 분량 정도 되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된 수기인데, 자신이 목격했던 무성영화 시대에 대한 부분이 1부였어요. 일단 이 분이 쓴 기록이 하나 남아 있었다는 게 저한테 되게 큰 힘이 됐고, 그 외에는 말씀드린 것처럼 이경손에 대해 조금씩 다르게 말해요. 게다가 이 분이 쓴 소설도 남아있지 않고, 물론 흔적이나마 볼 수 있기는 하지만, 남긴 책도 없고 영화 필름도 거의 다 소실됐고. 그렇게 기록을 남기고자 했던 사람이 남긴 기록이 이렇게도 없으니, 이 사람을 파악하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신동아>에 실린 수기 일부를 갖게 되었을 때 ‘아, 이제 쓸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 쓰시길 “현앨리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소설을 구상하는 동안에 이경손에게 매료되었다”고 하셨어요. 그의 어떤 점에 매료되셨나요?
일단은 창작자라는 점이죠. 사실은 저도 데뷔하고 나서 3년 정도 청탁이 전혀 없는 시절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계속 자조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촙수이 문사다’라고 하잖아요. ‘누가 시키는 대로 글을 쓰고 누가 주문만 하면 그때그때 바로바로 글을 써 내주는 촙수이 문사다’라고 자주 말하고. 그렇게 글을 많이 썼는데도 남은 글이 별로 없다는 것도 그렇고, 망하고 또 망하고 이것도 잘 안 되고 저것도 잘 안 되고 해도 ‘나 다음에 또 이야기할 거 있어’라고 하는 점에서도 저의 어떤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고요. 아마도 많은 소설가들이 공감하면서 볼 만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또 하나는 이 사람이 질투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라는 거죠. 제가 만든 이경손은 길을 가다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봐도 저 사람이 나보다 나은 점을 열까지는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왜 못 났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거죠. 그런 점이 저로서도 떨쳐버리고 싶은 저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게 제가 쓸 수 있는 이경손이고 제가 발견한 이경손이고, 제가 스스로 발견한 거지만 제가 매료된 어떤 모습이기도 한 것 같아요. 몰입할 수 있으니까.
처음에 이 소설의 화자가 남성인 걸 알고 놀랐어요. ‘박서련 작가님 소설에, 화자가 남성?’ 하고요. 이런 반응도 듣지 않으셨나요?
아니요, 아직까지 아무도 말씀 안 하셔서 지레 제가 먼저 ‘저 이번에 남성 화자 썼습니다’ 하고 자진 납세를 하고 다니기도 하는데요. (웃음) 저는 확실히 많이 의식했어요. ‘내가 처음으로 남성 화자로 독자님들께 다가가 본다.’ 저한테는 어떤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치사하고 더러워서 남성 화자 안 쓴다’라는 것이었어요. 습작기에 남학생들이 여성 습작생이 써온 남성 이야기를 보면 ‘어떤 남자가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냐, 남자는 이것보다 단순하다’고 하고, 그래서 단순하게 써서 가면 ‘남자가 그렇게 바본 줄 아냐’ 하는 식이고.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란 말인가...
똑같이 해줘야 돼요. ‘너는 여자 이야기 잘 쓰는 줄 아냐, 완전 이상하게 쓰면서’ 라고.
여자 이야기 안 써와요. 여자 입장에서 생각할 생각을 안 해요. 보통은 안 쓰죠. 그리고 써오면 맹공을 받죠. 이런 식으로 말하는 여자는 세상에 없다고. 진짜로 이상하게 써오거든요. 한 번도 몰입하고 공감해볼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어떤 금녀의 구역을 만들어 놓은 게 더럽고 치사해서 ‘그러면 나는 남성 화자 안 쓸 거야’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성별을 생각하기 전에 이경손이라는 인물의 내면이, 콤플렉스가 많고 질투 많고 시샘 많고 그럼에도 계속해서 소설을 쓰려 하고 영화를 찍으려고 하는 이 이야기꾼의 면모가, 아무래도 저한테는 조금 더 공감이 가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현앨리스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카카듀』를 읽으면서 ‘현앨리스는 어떤 성정을 가진 사람일까’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현앨리스는 저와 정반대의 인물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한테도 약간은 미스터리해요. 지금도. 알 것 같으면서도 절대로 제가 하지 않을 선택들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도 하고요. 여기서 말하는 제가 하지 않을 선택이라는 건, 가령 아이를 버리는 선택 같은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양치질을 할 것 같은 사람인 거예요. MBTI로 얘기하면 저는 INFP인데 ESFJ일 것 같은 사람. 저랑 정반대라서 완전히 알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미스테리인, 저한테도 아직은 그런 인물이에요.
이경손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가 되는데, 그래서 현앨리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보이지 않는 이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정확히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소설 초반부를 (출판사) 대표님께 보내드릴 때 ‘아직 현앨리스가 안 나오는데, 현앨리스가 주인공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이런 말씀을 가끔 하시기도 했는데요. (웃음) 저희 에이전시 실장님도 ‘현앨리스가 아직 안 나오는 것 같던데요’라고 하시고. (웃음) 저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앨리스에 대해서 저 자신에게도 소설 내에서도 미지의 어떤 것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현앨리스를 둘러싼 주변을 완벽하게 그리면 현앨리스의 자리가 실루엣으로 완벽하게 남을 거잖아요. 그 실루엣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현앨리스는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라서 놀라웠어요. 어떤 때는 자기가 한없이 약하다는 것도 알고, 약한 자신을 마음에 안 들어 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결국은 강단 있는 결정을 하고 실행하는 사람 같았어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약간 ‘뭐, 어떡해. 킵고잉 해야지’라는 태도로 계속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일어난 일은 뭐, 어떡해. 내가 할 수 있는 거 해야지’ 하고.
2부 제목이 ‘부산’입니다. 현앨리스에게 부산은 조선으로 들어가고 또 나가는 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경손에게는 실패의 경험이 있는 곳이고요. 두 사람 7년 만에 재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부산을 비중 있게 다루신 이유가 있을까요?
두 사람이 재회하기 전, 말하자면 가장 큰 실패를 맛보면서 지금의 그들이 되는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일단은 이경손은 거기에서 영화를 시작하고요. 현앨리스는 미국 여권을 가진 지식인의 딸이면서 자신도 굉장한 엘리트로 멋있는 여성이었는데, 조선인 남성과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시가에 오자마자 갑자기 조선 여성 구여성으로 전락하죠. 원래는 신여성과 구여성 사이에 어떤 위계 차가 있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전락하는 기분을 맛봤을 거예요. 그런 장소가 부산이었고. 어쩌면 그곳에서 과거의 자신을 송별하기도 하면서 둘이 재회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연도에서 앞 두 자리를 생략한 까닭은 정확히 한 세기 전에 벌어진 일들을 담은 이 이야기가 오늘날의 것처럼 보이기를 바라서다”라고 쓰셨습니다. 100년 전을 살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일이 왜 의미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일단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항일 정서인데요.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또한 저는 한 10년 전부터 믿어오고 있는 게, 사람들이 관용이 적어졌다는 거거든요. 경제적으로 표현하면 마음에 잉여가 없는 거예요. 조금도 남에게 뭔가 베풀거나 양보할 여유 자산이 마음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거죠. ‘이렇게 관용이 작은 사회가 된 건 왜일까, 다들 왜 쪼그라들어 있을까. 다 자기가 가장 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개개인을 탓하기도 어렵다, 사실은 나 자신도 그러하니까. 우리를 이렇게 쪼그라들게 만든 지금 사회를 현실을 우리는 이렇게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 딱 100년 전에 식민지를 살아갔던 젊은이들은 심정이 어땠을까. 더구나 그들은 10~20년 안에 광복이 찾아온다는 것을 몰랐을 텐데.’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들도 살았고 광복을 맞았고 다른 사회가 왔고, 다른 세상은 항상 가능하다. 우리가 그걸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할 뿐이지.
현앨리스와 이경손이 그런 말을 하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도 엉망진창일 것만 같다. 끝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우리 세대가 느끼는 마음과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독자 님들께 바란 그대로예요. 그 마음을 읽어주셨으면 했고 ‘이게 내 마음이다’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하고 바랐어요.
반면에 ‘내가 두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앨리스와 이경손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결정을 하든 시대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조국이 처한 상황 때문에 내 모든 선택이 영향을 받는데, 그때 그들이 느꼈을 감정을 아는 게 가능할까요?
글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제의 존재감을 느낀다는 것은 정부의 존재감을 느낀다는 것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었을 거예요. 일제의 존재감이라는 것은 총독부의 존재감일 테니까. 저도 잘은 모르지만 문화 통치 시기가 있었고, 10개년 단위로 통치 기조가 바뀌었고, 굉장히 엄혹한 시대가 된 거는 1930년대 초반부터라고 알고 있어요. 『카카듀』는 그 직전까지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이때의 젊은이들은 지금 우리가 정부의 존재감을 느끼듯이 총독부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해요. 항상 어려운 사회일수록 정부의 존재감을 느끼잖아요. 정치를 누가 하는지 몰라야 정말 평화로운 시대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엄혹할수록 하루 종일 정치 생각이 나죠. 그래서 지금 총선 전후의 우리 마음하고 1920년대 후반쯤의 젊은이들의 마음하고 그렇게 크게 달랐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물론 그들이 했던 항일 운동을 폄하하거나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우리라고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그렇다면 우리도 지금의 현실에 저항할 힘이 없다고 인정해버리는 것이니까.
끽다점의 이름을 왜 ‘카카듀’라고 지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는 거죠?
노다객이라는 사람이 50~60년대쯤에 남겼던 에세이가 하나 있는데, 경성의 끽다점을 취재하고 역사를 써놓은 에세이예요. 거기에 ‘카카듀라는 이름은 프랑스에서 왔다고 하더라’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사실은 독일어거든요. ‘프랑스에서 왔다고 하던데?’라고 하기도 하고 ‘독일어를 전공한 누가 지어줬다고 하던데?’라는 이야기도 있고...
썰이 분분한 건가요?
네. 그런데 카카듀를 연결해 보면, 작품에도 인용했던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희곡 『초록 앵무새』에 나오는 프랑스에 있었던 술집 이름이 카카듀거든요. 저한테는 ‘거기서 따왔겠거니’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이경손이 ‘해외문학파’라는 동인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저한테는 그것도 약간 흥미로웠었거든요. 당시에도 자기들끼리 번역을 열심히 해가지고 거의 동시대의 해외 문학들을 다 섭렵하고 있었다는 게 되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기도 했어요. 그때는 인터넷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장 대단한 걸 꼽으라면 그 열정일 것 같아요. 그래서 카카듀라는 이름을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희곡에서 따왔겠다는 생각은 가능성이 충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끽다점 이름을 카카듀로 짓자고 두 사람이 의논했던 것도 아닌데, 이경손이 자신도 모르게 “우리 가게 이름은 카카듀입니다.”라고 말하잖아요. 그 시절 이경손의 머릿속에 카카듀가 계속 맴돌았던 이유는 뭘까요?
카카듀가 거짓의 전당이어서, 라는 것은 사실 사후적인 이야기인 거고요. 그 전부터 경손의 세계인식 현실인식 같은 것은 ‘경성이라는 곳은 자기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거짓말쟁이들의 도시다. 다 거짓이야, 진짜는 없어. 진짜는 어디에 있을까. 정말 진짜는 귀한 것이다’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현앨리스를 싫어하는 이유도 ‘미옥 앞에서 내가 가짜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싫어서’라고 했잖아요. 항상 경손이 바란 건 진짜가 되는 것, 진짜를 찾는 것이었는데 ‘이거 다 가짜야’ 하고 자조해버리는 태도가 있었고. 가짜 중에서도 가장 가짜인 것 진짜잖아요. 늘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에게 찰칵하고 맞물려 떨어진 게 ‘거짓의 전당, 카카듀’라는 것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이경손은 자신이 사랑을 믿는 사람, 예술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현앨리스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작가님이 보시기에 현앨리스는 무엇을 믿는 사람인가요?
글쎄요. 현앨리스는 자기 자신도 믿지 않아요. 제가 봤을 때는. 자기가 젊을 때 내렸던 몇 가지 판단들을 바탕으로 해서 ‘나 자신은 그다지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을 해오고, 그 행동들에 책임을 지려고 노력은 했었겠지만, ‘나는 원래 믿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이러한 일들을 저지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도의 합리화가 늘 머리에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현앨리스는 굉장히 냉철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자신도 안 믿었을 수 있겠어요.
맞아요.
이경손이 조선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쓴 ‘철인도’라는 시나리오에는 현앨리스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 인물에 대해서 경손이 “혹자는 내가 여자를, 마리아를, 앨리스를 서사의 도구로 격하시켰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고 하는데요. 『카카듀』를 쓰실 때 작가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었나요?
네. 그 말이 약간 ‘철인도’라는 이야기에 대한 경손의 말인 동시에, 경손의 입을 빌려서 제가 『카카듀』에 대해서 하는 말이기도 한 거죠. 현앨리스는 물론 더 이야기되어야 하고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하는 인물이고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고, 그래서 아쉬움을 느끼고 있어요. 지금 기록에 잘 나오지 않는 현앨리스의 사라진 1~2년, 그러니까 1928년부터 1929년까지의 이야기가 『카카듀』에 담겨 있는 건데,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인물인데 제 멋대로 제 소설에 빌려와서 어떤 구도를 만들어 놓은 셈이니까요. 또한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경손이 너무 못나게 그려져서 그렇게 보실 분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남자 하나를 깨닫게 하고 여자 하나가 떠나는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단 말이죠. 구도만 놓고 보면. 그렇게는 보지 않았으면, 제발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한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려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아주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온 인물이라는 게 보이거든요.
다행입니다.
『카카듀』의 뒤를 이어 『고백루프』도 출간됐습니다. 두 책이 밭은 간격으로 나왔어요. 어떻게 된 일이죠? (웃음)
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사실 제 목표는 1년에 책 한 권 내는 거예요.
항상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셨어요?
그렇죠, 초과달성이죠. 그래서 우스개로 ‘저는 문학계의 전지현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라고 하는데요. (웃음) 왜냐하면 전지현 씨는 1년에 한 개씩 작품을 하고 있고 심지어 시나리오를 굉장히 잘 보시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요. (웃음) 제 기준에 작년에는 발간을 많이 하지 않았고, 『카카듀』는 작년 하반기에 연재를 했었고요. 연재가 끝나면 바로 책으로 낼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동시에 제가 지금까지 썼던 청소년 단편들을 묶어서 내는 걸 이야기하게 됐고요.
어떻게 그렇게 바쁘게, 부지런히, 쓰실 수 있는지 궁금해요.
진짜 별 게 아니에요. 원고를 쓰는 게 일이라서 그냥 일을 한 거고, 일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책으로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시는 회사들이 있는 거고, 그 계획에 맞춰서 하다 보면...
『고백루프』는 창비교육의 성장소설 시리즈로 기획된 거죠. 지금까지 작가님이 쓰신 청소년소설 중에 ‘성장’이라는 주제로 엮은 7편이 실려 있고요.
맞아요. 청소년소설 앤솔로지에 실었던 작품들이 가장 많고요. 청소년들이 보기에 적합하거나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들...
청소년이 쓴 소설도 실려 있죠. (웃음)
(웃음) 네. 그런 주제들로 엮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고등학생 때 쓰신 소설도 두 편 수록되어 있는데요. 그 시절에 썼던 작품들을 가끔 보세요?
안 본 지 한 10년 된 것 같은데, 그 전까지는 많이 봤어요. 10년 전이면 그래도 20대 후반 때거든요. 그때까지는 그래도 ‘나 고등학교 때 소설 잘 썼는데’ 하면서 보는 거죠.
10년 만에 봉인을 해제하신 느낌은 어땠어요?
‘아, 다 내려놓았다’라는 느낌이었어요. (웃음) 『호르몬이 그랬어』가 나올 때, 20대 초반에 쓴 것들이어서, 지금은 그것보다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때의 작가 박서련과 30대의 작가 박서련은 다르다’라는 존중의 마음으로 그 책을 낼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쓴 작품들은 정말로 ‘서툴러서 부끄러운’ 부분들이 확실히 있거든요. 소설가 되기를 처음 마음먹었을 때 쓴 작품들마저 내보이고 나니까 ‘이제 저는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습니다’ 하는 내려놓음의 감정이 들고. (웃음) 동시에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이것을 보고 어떤 청소년들이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가벼운 마음을 먹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소설 쓰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 했던 생각이 바로 그거였어요. ‘이만하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라는.
십대 때 쓴 소설을 책에 실으면서 고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셨을까 싶었는데, 아니었겠네요. ‘그때의 나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계셨으니까요.
고치고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고치면 다 고쳐야 돼서, 한 군데 고칠 게 아니라 그냥 ‘안 보여줄랍니다’가 되기 때문에. (웃음)
표제작 「고-백-루-프」 관련해서 작가의 말에 쓰시기를, 주인공 현지 안에 작가님의 모습이 있다고 하셨어요. 현지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고, 결핍이 있는 사람이죠. “결핍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은 꼭 필요하다. 사랑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할 근거가 되기도 하니까”라고 쓰셨는데, 경험으로 알고 계신 건가요?
그렇죠.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매번 연애를 할 때마다 그걸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입에 달고 사는 질문 베스트 원도 ‘내가 왜 좋아?’ 같은 거예요. 오래 사귀고서도 ‘내가 왜 좋아?’ 같은 것을 물어보곤 하는데, 왜냐하면 의심스럽기도 하고 그걸 또 들으면 좋으니까. 또 하는 생각은, 누가 누구를 먼저 좋아한다는 것도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거든요. 아까 말했던 마음의 잉여, 문화력의 잉여에서 나오는 거예요. 먼저 고백하고 마음을 돌려받지 못하면 손해를 보는 거잖아요. 썸이라는 말도 너도 나 좋아하고 나도 너 좋아하기로 약속을 하는, 약간 돌다리 두드려보는 습성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모든 부끄러움과 망신 같은 것을 무릅쓰고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나는 너를 좋아해’라고 하는 것은 진짜 풍요로운 마음에서 나오는 마음의 잉여라고 생각해요.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것은 마음이 얼마나 넓어야지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제가 녹아 있다는 현지의 모습처럼 결핍되어 있는 사람의 작은 마음에 그런 큰 마음이 갑자기 밀려들어올 때의 감동 같은 것을 읽는 분들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인터뷰 초반에도 요즘 우리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다시 한 번 하게 되네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우리 다 망한 거 아닐까요? (웃음)
글쎄요. 그런데 100년 전에도 비슷한 생각들을 했겠죠. 우리 다 망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 당시의 신문을 꽤 봤는데 별별 사건이 다 있더라고요. 비가 엄청 많이 온 재난도 나오고, 평양에서 어떤 사람이 유부녀를 강간하고 죽였다는 같은 사건도 있고. 그런 사건 같은 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 세대가 너무 강퍅하고 마음이 다 말라서가 아니라 이런 놈들은 늘 있구나. 우리 시대에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일어나고야 만다’는 것이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세대가 가장 망한 건 아니다,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가 지금 현재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미래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일 뿐이지, 항상 현재를 살고 있었던 이전 세대도 그 이전 세대도 ‘우리 세대가 가장 망했다, 역대 가장 망한 세대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기후 위기를 생각하면 정말 진짜 망한 건 맞는 것 같고... 어쨌든 변화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빠질 수 있다면 좋아질 수도 있어야죠, 사실. 물론 나빠지는 게 100배는 쉽고 좋아지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자원이 더 들어가는 일이지만, 나빠질 수 있었다면 그 전 수준으로 복구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세요?
제가 올해 일을 정말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하고 있고요. 일단 4월 말에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미국판이 정식으로 릴리즈 됩니다. 그래서 코리아 소사이어티라는 곳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것도 같이 공개가 될 예정이고요.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를 미리 만나본 미국 서점 협회에서 5월의 선택으로 이 책을 뽑아주셨다고 하고요. 발맞추어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의 후속작도 곧 만나보실 수 있도록 작업을 절찬리에 하고 있고요. (웃음) 아마 도서전에서 「폐월」도 선보이게 될 것 같고요. 더 보여드릴 작업이 아직 많이 있는데, 올해의 첫 선을 보인 『카카듀』 기억해 주시고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말 자랑스러워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박서련 1989년 음력 칠석에 철원에서 태어났다.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프로젝트 브이』,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나, 나, 마들렌』 등이 있다. 2018년 한겨레문학상, 2021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2023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
추천기사
12,600원(10% + 5%)
15,120원(10% + 5%)
13,050원(10% + 5%)
11,700원(10% + 5%)
10,800원(10% + 5%)
9,800원(0% + 5%)
11,760원(0% + 5%)
9,100원(0% + 5%)
7,560원(1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