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우리는 모두 어릴 때 과학자였다”
『물리박사 김상욱의 수상한 연구실』
저도 그렇고 제 동료들도 그렇고 대부분 과학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열정을 꺾이지 않은 사람들이 끝까지 과학자로 남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집 풀라고, 과학 문제집 풀라고 강요 안하면 과학자가 될 거예요. (2024.04.19)
햇빛 마을의 떡볶이집, ‘또만나 떡볶이’에 새로운 주인, ‘김상욱’이 찾아왔다. 떡볶이 맛집 동아리의 멤버들은 부푼 기대감으로 새로 연 떡볶이집에 찾아가지만, 이삿짐은 온통 과학책뿐이고 설상가상으로 주인 ‘김상욱’은 떡볶이를 못 만든다. 한편 햇빛 마을에는 처음 보는 마법의 생물이 나타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김상욱은 어릴 적 읽었던 과학 학습만화를 돌아보며 어린이들이 물리 이야기를 공룡이나 곤충처럼 재미있게 읽는다면, 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시민으로서 교양을 얻을 거로 생각한다. 시도해 보지 않았던 어린이 학습만화를 시작한 이유다. 『물리박사 김상욱의 수상한 연구실』 시리즈는 아이들에게 물리에 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리는 우리의 일상에 있다. ‘칠판에 쓰여있는 글자가 눈에 보이는 것’, ‘점프를 하면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것’, ‘소금과 설탕이 다른 맛이 나는 것’ 모두 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알쓸별잡> 출연 이후로 고정 출연하는 방송은 없고요. 지난해 겨울에 디스크가 재발해서 좀 아팠어요. 지금은 쉬고 다시 원상 복구해 가는 시기예요. 이번 학기도 수업해요. 하나는 온라인 수업이고 하나는 제 전공과목, 하나는 교육대학원 수업이 있어요.
방송에 출연한 이후 학생 수가 늘었다거나 하진 않았나요?
천 명쯤 듣는 온라인 강의를 하거든요. 매 학기 천 명씩 꽉꽉 채운 강의가 벌써 한 5년 넘었어요. 학교에서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되게 많죠. 인사를 받아도 저 친구가 제 강의를 듣는 학생인지, 그냥 방송 보고 인사하는지 잘 몰라요. (웃음) 방송에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불편하다면 불편하지만, 알아봐서 고마운 마음도 있고요. 양가감정이 들어요.
이제까지 어른 대상의 책을 냈다면, 이번에는 어린이 대상 도서가 나왔어요. 어떻게 기획했나요?
출판사 제안이 오기 전까지는 어린이책을 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강연도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거의 안 갔거든요. 제 콘텐츠가 적어도 고등학생 이상 나이대 사람들을 상대로 한다고 생각해서요. 출판사에서 제가 큰 틀을 잡으면 작가님과 검수자를 두고 제작하겠다고 해서 도전해 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리에 대한 책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학습 관련 책을 보면 어떤 아쉬움이 들게 마련이잖아요. 어린이라도 알면 좋겠다는 내용을 풀어낼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1권 주제가 ‘빛’이에요. 순서를 정하면서 고려한 게 있나요?
반드시 다뤄야 하는 중요한 개념들이 뭘까, 시작점은 여기였어요. 논리적으로 앞에 개념을 알아야지만 뒤에 오는 게 이해되는 순서를 고려해서 처음 주제를 찾았죠. 물리는 관찰에서 시작되고 관찰은 본다는 뜻이에요. 보는 건 빛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빛을 처음에 소개하게 됐어요. 어린이들한테도 익숙한 개념이고요.
2권에서는 중력이 나오죠.
중력이 가장 흔하게 느껴질 수 있는 현상이라서요. 여러 가지 힘이 있지만 일상에서는 중력이 가장 가까이 느끼는 힘이에요. 그리고 우주를 다루려면 중력을 먼저 이야기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요. 3권의 ‘원자’ 편이 좀 특이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어린이들 대상 물리에서 원자는 잘 이야기하지 않을 텐데, 제 생각에는 원자가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 조금 어려워도 알아야 할 만한 내용을 소개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3권 이후에서도 원자를 많이 사용할 거거든요. 제 전공이 원자와 양자였기 때문에, 제 색깔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어요.
어떤 식으로 작가분들과 협업하는지도 궁금해요.
어떤 주제를 할 건지, 그 주제에 관해 다뤄야 하는 개념이 어떤 건지 큰 기획을 제가 짜고 작가님과 이 주제를 선택한 동기나 꼭 다뤄주면 좋겠다는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죠.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교육과정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고요. 제가 다루고 싶은 주제만 생각할 수는 없었고, 현재 초등학교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들을 고려해서 정했어요. 이렇게 작가님에게 넘기면 물리학을 전공하신 분이 또 있어요.
자문으로 표기된 강신철 연구가님인가요?
네. 현재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에서 박사 준비하고 계시거든요. 물리 교육과 과학 연구 커뮤니케이션에 뛰어난 분이에요. 제가 쓴 내용을 실제 책 내용으로 연결하기 위해 이야기를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을 하세요. 작가님이 작업을 하다가 저와 감수자 두 사람에게 질문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글 작가님이 콘티를 짜면 그림 작가님과 같이 모여서 회의해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놓고, 회의가 끝나고 나면 이후에는 작가님들의 몫이 되죠. 작업한 대본을 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지만 실제 물리학상으로는 개념이 맞지 않으니 고치면 좋겠다든가, 아니면 강조하면 좋겠다는 부분을 수정 요청을 드리고, 예쁘게 그림으로 입혀진 뒤 다시 보고, 과학 설명 파트들을 쓰고 또 수정하고, 이렇게 수정 작업을 몇 번 거치면 이 책이 나오죠.
순서대로 1권 작업하고, 이후에 2권 작업하는 순으로 하셨군요.
맞아요. 현재 3권까지 나와서 인터뷰하고 있지만, 지금 4권이 거의 마무리 작업 중이에요. 회의 작업은 6권까지 끝났어요. 작가님들은 큰 틀 안에서 구체적으로 내용을 어떻게 풀지를 고민하고 계시죠.
작업 스타일도 그렇고, 대상이 어린이라는 점도 그렇고 처음 해보는 도전이 많아요.
재미있어요. 어린이 대상 글 쓰시는 분을 처음 만나기도 했고, 이런 내용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요. 특히 그림이 이렇게 풍부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우리가 하는 물리 이야기가 이렇게 예쁜 그림으로 나온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 작업을 하면서 초등학생 대상으로 강연도 두세 번 했어요. 쉽지는 않아요. 방송에서 보셨듯이 제가 일반적으로 하는 강연은 인문학을 포함해 물리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아이들에게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잖아요. 하다못해 방귀 얘기도 해야 하고요. 이제 조금 감을 잡아가고 있어요.
어린이 친구들은 좋아하던가요?
세 차례 강연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봤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평소에 하던 식이지만 어린이가 이해할 만한 내용으로 풀어서 설명했어요. 세 번째는 영화를 보여주고 영화 장면을 가지고 조금만 설명한 뒤 질문을 받는 시간으로 대부분을 채워 봤는데, 그게 재밌더라고요.
질문 중에 기억나는 게 있다면요.
강의 내용과 상관없는 질문이 많았어요. 블랙홀, 시간 여행… 아이들은 주제와 무관하게 자기가 평소에 갖고 있었던 온갖 의문을 다 물어보더라고요. 주름살이 생기는 게 중력 때문이냐고 물어보는 질문이 기억나네요.
어떻게 답변하셨어요?
사실 정답은 중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힘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았어요. 아이들은 꼭 답을 들으려고 한다기보다 과학자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즐거워지고 싶어서 얘기하는 질문도 많고, 자기가 알고 있는 걸 말하고 싶어서 질문하는 것도 많고요. 답을 구하기 위한 질문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거기에서 배워가요. 목적은 아이들이 물리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거니까, 강의 시간에는 뭔가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이게 즐겁고 재밌다는 느낌을 자꾸 심어주려고 노력해요.
책의 주인공은 ‘김상욱’이에요. 젊고 활기찬 떡볶이 가게 사장님인데요.
그거는 글 작가님 아이디어였어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로 넣으신 건가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뭘까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뭐가 가능했을까요? 우리 어릴 때 문방구도 중요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안 가잖아요. 서점은 이상하잖아요. 피시방도 이상하고요.
작가님은 학자 스타일이고 조곤조곤하게 공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면, 책에 나온 ‘김상욱’은 버럭 화를 내고 엄청나게 요리를 못 하는 캐릭터로 나와요.
저도 요리 못해요. 가끔 버럭버럭하기도 하고요. 저를 잘 나타낸 것 같아요. 출판사와 이야기하다가 떡볶이 가게 주인으로 나오니까 떡볶이를 직접 만드는 이벤트를 하는 건 어떠냐는 아이디어가 나온 적이 있는데, 요리를 못 해서 안 될 것 같아요.
책에 ‘이데아’라는 캐릭터들이 나오는데요. 어느 이데아가 제일 마음에 드셨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빛 이데아는 노란색이어서 마음에 들어요. 새여서 날아다닌다는 콘셉트도 빛의 경우와 잘 호응한 것 같아요. 빛은 무게가 없으니까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요.
원자 이데아는 블록 형태의 캐릭터예요.
딱 보고서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역시 작가님이 개념 파악을 정확히 하셨더라고요.
이제까지 나온 3권 중에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중력 파트에서 이데아를 포획하는 장면 아이디어를 내야 했는데, 중력을 막을 방법이 없거든요. 전기는 서로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지만, 중력은 당기기만 하는 힘이라 막을 방법이 없어요. 물에 빠뜨려서 부력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작가님이 내셨어요. 저와 감수자 선생님 모두 깜짝 놀란 아이디어였죠. 물론 물리적으로 완전히 정확한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중력의 개념을 이해할 만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아요.
그러게요. 중력 이데아를 물에 넣는 거 말고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요? 무중력 기기 속에 넣는다?
어려운 개념이죠. 인력 기기라는 게, 이를테면 자유낙하 중에 중력이 사라지는 순간을 설명하려면 어려운 개념이 필요해요.
사람들에게 과학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일종의 방법론이죠.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만들어 왔거든요.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역사가 대단히 길어요. 서양을 예로 들면, 세상이 왜 이런가에 대해 우리가 아는 수많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고민을 해왔잖아요. 하지만 다 틀렸어요. 반면 과학은 근대 과학이라고 불리는 갈릴레이로부터 시작되는 거죠. 몇백 년 되지 않은 방법이 세상을 가장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이거든요. 왜 이것이 반짝거리고 왜 얼음은 차갑고 왜 컵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는지, 모든 세상에 관한 질문을 지금까지는 과학이 제일 잘 답해주고 있어요. 철학이 수많은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연구를 해왔다면, 재현 가능한 방식으로 미래 예측 가능성까지 갖고 가장 성공적으로 자연을 기술한 방법론이 과학입니다. 가장 성공적인 철학이죠.
그렇다면 아이들이 과학을 접하는 좋은 방법은 뭘까요?
사실 저는 어린아이들은 다 과학자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어릴 때 과학자였어요. 과학의 핵심은 의심과 질문과 호기심이거든요. 인간의 본능이라 생각하는데, 저도 어릴 때 땅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 땅을 많이 파 봤어요. 어릴 때 많이 해보지 않나요?
저도 개미를 관찰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죠. 개미도 잡아보고, 저 산 너머에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끝없이 걸어보기도 하고, 태양은 왜 안 떨어질까, 오만 가지 질문들을 하고요. 우리 모두 어릴 때 과학자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과학자의 본성을 억제당했다고 생각해요. 질문을 하면 “무슨 그런 질문을 하니? 공부해. 책 봐. 시험 준비해”라고 들으면서 우리가 세상에 갖고 있던 호기심을 억압당하고,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 예절을 지키고 법을 따르는 법을 배우죠. 이 규칙은 다 인간이 만든 건데, 이건 과학의 대상이 아니거든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체계를 이해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과학을 거세당한 게 아닐까요? 우리가 한 달 정도 마음대로 시간을 가지고 놀아보라고 하면 다들 바로 과학자가 될 거예요. 지금도 보면 생업에서 벗어나 시간 여유가 생기신 분들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을 그냥 놔두면 과학자가 된다고 그래요. 저도 그렇고 제 동료들도 그렇고 대부분 과학자가 되기 위한 특별한 교육을 받은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열정을 꺾이지 않은 사람들이 끝까지 과학자로 남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집 풀라고, 과학 문제집 풀라고 강요 안 하면 과학자가 될 거예요.
연결된 질문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순수 과학이 전공과목으로 인기 있던 때는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의학이나 응용과학 쪽으로 많이 가는데, 우리나라가 과학을 잘하는 나라가 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이것도 어려운 질문이죠. 기본적으로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좋아서 하는 거거든요.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학을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진다면 잘 될 텐데, 그 여건이 안 된다는 거겠죠. 당장은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길게 봤을 때 전체 사회, 한 국가를 넘어서서 인류 사회 전체가 기초 과학에서 이익을 볼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이걸 국가의 세금으로 지원하죠. 예술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가치가 있을 거라고 예상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 있으니까 돈을 쓰는 거잖아요. 미국에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가속기를 만들까 말까를 놓고 청문회가 열렸어요. 연구소 소장이 증인으로 나오자, 의원들이 가속기가 미국을 적국으로부터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질문을 했거든요. 그러자 이 연구소 소장이 ‘이 장치는 미국을 적으로부터 지켜주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적으로부터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들어 줄 겁니다.’라고 답했어요. 저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왜 우주를 연구하고 지구상 생명체들의 다양성을 연구할까요? 우리가 이걸 알고 싶기 때문에 하는 거죠. 과학 연구를 통해 이게 무엇인지 우리가 알게 됐고요. 이 모든 지식이 그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가진 어떤 본성인 것 같아요.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하고,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요. 그걸 알게 해주는 학문이 과학이라면, 이게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가 여기에 투자해야 하고 그걸 하고 싶은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요. 막대한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연구자들이 먹고살게만 해주면 열심히 일할 사람들인데 지금처럼 연구비를 막 깎으면 안 되죠.
최근 최재천 교수님 간담회에서도 한참 R&D 예산에 관한 우려를 말씀하시더라고요.
연구는 사람이 하는 거고, 사람이 떠나면 비가역적인 현상이 되거든요. 사람들이 먹고살지 못하면 떠나요. 실험 장비는 나중에 살 수도 있지만, 사람은 없어지면 돌아오지 않아요. 다시 복구하려면 그 사람을 키워야 하니 20년이 들어요. 정말 돈을 아끼고 싶으면 동결을 시키거나, 점차 깎아야 사람들은 잃지 않으면서 예산이 줄어들겠죠. 30%씩 깎는데 어떻게 사람이 해고되지 않을 수 있어요? 지금 대량 해고가 일어나고 있는데 내년에 갑자기 예산을 두 배로 늘린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외국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요. 젊은 사람들에게도 나쁜 신호예요. 이제 과학은 해봐야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분야를 바꾸기 시작할 테니까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아이들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지금의 과학기술이 여기까지 오는데 40~50년 투자했다면 단 1년 만에 30년 뒤로 후퇴한 거죠. 당장은 느껴지지 않겠지만 5년 뒤, 10년 뒤부터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할 텐데, 많이 걱정돼요.
지금 과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무조건 해야죠. 모두가 다 과학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과학은 인간의 상식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어려운 거죠. 원자는 눈에 안 보이잖아요. 전기 현상이나 지구가 돈다는 사실이 인간의 경험과는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요. 눈에 보이지 않고 증거가 없는 것들을 좋아하고 잘하는 건 보편적 능력이라기보다, 특정 사람들이 좋아하는 능력이에요. 옛날 같았으면 살아남기 힘든 특성이었을 거예요. 제가 200년 전에 태어났으면 아마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어요.
먹을 걸 찾아 나서야 하는데 다른 걸 보고 있었을 테니까요.
땅을 갈아 농사를 짓거나, 과거 시험을 쳐야 하는데 자연을 보고 있었을 테니까요. 지금은 어쨌든 우리가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알고 과학자들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잖아요. 아이들이 모두 다 전문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학을 알긴 알아야 하죠. 기본 소양으로 우리가 예술과 문학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과학을 소양으로 알고 있으면 돼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이 과학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이를테면 어떤 것들일까요?
집단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개개인이 제대로 판단하고 있어야 해요. 인공지능이 올바른지, 원자력 발전이 필요한지, 미세먼지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나름의 생각을 하고 있어야 그게 다 모여서 최선의 답을 내는 거죠. 과학에 관심 없고 과학자들이 알아서 한다고 생각해 봤자 모든 결정은 정치가 하게 되거든요. 시민의 모든 생각이 모여서 정책이 되고 법률이 돼요. 앞서 제가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과학을 이야기했지만, 과학은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라도 중요해요. 시민들이 올바로 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정치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이 있어야 해요. 민주시민의 교양으로서, 소양으로서 과학은 알아야 하는 지식이에요.
출판사에서 처음 어린이 책을 내자고 제안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사실 처음 제가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시작할 때의 이유였죠. 어떻게 하면 과학을 알릴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고민했어요. 책 읽는 사람들은 다 인문학자들이에요. 이과생들은 관심이 없어요. 어떻게든 인문학과 물리 지식을 결합해야 했다면, 어린이책은 조금 다른 전략이 필요해요. 책을 쓰면서 떠올렸던 것 중 하나가 제 어린 시절인데요. 제가 어릴 때도 집에 어머니가 사 준 학습만화 전집이 있었어요. 20권이 있었다면 제가 맨날 보는 책은 ‘공룡’하고 ‘곤충’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공룡 편은 100번 넘게 읽었을 거예요. 그때 물리 지식을 다룬 책은 ‘빛, 소리, 열’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미래에 물리학자가 될 사람도 어린 시절에는 물리책을 싫어한 거죠. 어린 시절에는 재미있어야 해요. 정확한 내용의 전달 내지는 지식의 전달보다 더 중요한 게 재미예요. 재미만 있다면 아이들은 이 책을 보고 또 다른 책을 찾아 나설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인간 김상욱의 계획이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계획을 안 세우고 살아요.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나요? (웃음)
30~40대만 해도 계획을 세우고 그걸 이뤄가면서 살아왔거든요. 교수가 되려면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끝없이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이루어내면서 별거 없다는 생각이 반복됐던 것 같아요. 이제는 목표를 세우고 그걸 위해 최대 효율로 일하기보다, 그냥 하고 싶은 걸 건강을 잘 챙기면서 행복하게 하자고 마음가짐이 바뀐 것 같아요.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죠. 그때그때 호기심이 충족되는 삶을 사는 게 되게 행복하거든요. 지난겨울에 아픈 바람에 책을 많이 읽게 됐는데, 지금은 중국 역사책을 열심히 보고 있어요. 과학을 공부하면서 서양에 관해서는 열심히 공부했지만, 동양에 관해서는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중국 역사를 가지고 뭐 할 거냐고 물어보면 저도 몰라요. 목표 없이 호기심을 채우고 있어요.
*김상욱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예술을 사랑하고 미술관을 즐겨 찾는 ‘다정한 물리학자’.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도쿄대학교와 인스부르크대학교 방문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로 양자과학, 정보물리를 연구하며 70여 편의 SCI 논문을 게재했다. tvN [알쓸신잡 시즌 3], [금요일 금요일 밤에] 등에 출연했고,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에 연재를 했으며,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 APCTP의 과학문화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과학을 매개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 『김상욱의 양자 공부』, 『떨림과 울림』, 『김상욱의 과학 공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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