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참새 "제 시집이 일종의 덜컹거림이길 바랐어요"
『정신머리』 박참새 작가 서면 인터뷰
‘정신머리 좀 챙겨라.’ ‘정신머리 나갔냐.’ ‘정신머리 두고 왔냐.’ 등 이렇게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 말이 저에게는 매우 흥미롭고 이질적인 합성어처럼 느껴졌거든요. 독자들도 이 이상함을 느껴 보셨으면 했어요. (2024.01.10)
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이 많았다고 평가받은 이번 김수영 문학상 투고작 가운데서도 박참새의 『정신머리』는 활화산처럼 들끓는 에너지로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풍부한 문학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한 과감한 발상과 파격적인 형식들, 다채로운 화자가 빚어내는 매력. 그리고 이 모든 장점을 아우르는 시적 주제를 파고드는 정통적인 힘, 파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중심을 잡는 고유한 “박참새만의 시론”을 만나 볼 수 있다.
안녕하세요, 박참새 시인님. 김수영 문학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유난히 바쁜 연말 연초를 보내셨지요. 수상 이후 어떤 나날을 보내셨나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간지에 여러 번 실려 보기도 하고……. 첫 시집은 출간 2주 만에 2쇄를 찍었어요. 일이 끊겼던 시간이 너무 길었어서 그런지 지금 바쁜 것이 적응도 잘 안되고 조금 무섭기도 해요. 언제까지나 이럴 순 없는 일이잖아요. 외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잘 잡고 싶은데 아직 연습 중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엔 《데이즈드》와 인터뷰 겸 촬영을 하면서 멋진 옷도 입고 헤어도 메이크업도 풀로 장착했어요. ‘내가 시인이 되어서 이런 일까지 하다니……!’의 가장 멋진 일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재밌었습니다.
『정신머리』는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이자, 시인으로서 독자분들을 만나는 첫 책이기도 해요. 출간이 되자마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아직까지 객관적인 소회를 말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시간이 훨씬 많이 지나야 지금을 잘 말할 수 있을 듯하고요. 하지만 저의 소감을 다 빼고서도 크게 남아 있는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과 응원이 저는 그저 너무 감사할 뿐이죠. 작은 기적 같아요.
시인이 되기 전부터 가상실재서점 ‘모이’, 팟캐스트 ‘참새책책’의 진행자, 『출발선 뒤의 초조함』의 저자 등 책을 둘러싼 다양한 활동들을 해 왔어요. 스스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기획하고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굉장히 용감하고 진취적인 ‘독립자’라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실제로 그 길을 걸어오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너무 무모했던 시절이라 그때 제가 어떤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지 일말의 추측도 안 돼요. 저는 가끔 그런 시기를 지나고 나면 ‘그때 그냥 조금 미쳤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는데요……. 그때도 살짝씩 맛이 가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의미로요. 하찮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저는 정말 보잘것없어요. 겁도 많고 용기도 없어요. 쉽게 움츠러들고 실패를 너무 두려워하죠.
첫 시집 제목을 『정신머리』로 정하게 된 이유를 개인 SNS에서 짧게 밝혀 주셨어요. “‘정신’은 보이지 않고 희미한 내면의 것, ‘머리’는 확고하고 가시적인 부위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상반된 두 가지가 “시를 쓸 때 필요한 것들”이라고요. 그와 별개로 ‘정신머리’의 사전적 의미(‘정신’을 속되게 이르는 말)를 염두에 두면 제목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속됨’의 영역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한 사람을 떠올리면 외롭게 보이기도 하고, 그 목소리를 떠올리면 전복적인 선언 같기도 하고……. 어떠신가요? 시인님이 의도하신 대로 시집이 독자분들께 잘 가닿고 있는 것 같나요?
저는 시집을 묶으면서 제목뿐만 아니라 이 시집 전체가 그냥 제멋대로 뻗어 나가길 바랐어요. 제목에 관해서는 최소한의 제 의지가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주 간단히 설명했던 것이고요. 이외에는 모두 독자의 영역이에요. 제목이든, 시 한 편이든, 시집 전체든, 저는 이것이 어떤 식으로 읽히고 도련되고 제련되고 하는 것이 정말 상관이 없고 오히려 즐거워요. 이해받으려고 시를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혹은 이해받기 위해 쓴 시들이 아니기도 하고요.) 다만 저는 우리가 마구잡이로, 의미를 다소 생각하지 않고 쓰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어요. ‘정신머리 좀 챙겨라.’ ‘정신머리 나갔냐.’ ‘정신머리 두고 왔냐.’ 등 이렇게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 말이 저에게는 매우 흥미롭고 이질적인 합성어처럼 느껴졌거든요. 독자들도 이 이상함을 느껴 보셨으면 했어요. 일상에서는 단어 하나에 멈칫하며 곰곰이 생각할 여유가 없잖아요. 제 시집이 일종의 덜컹거림이길 바랐어요.
어느 인터뷰에서 시에서의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형식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형식적 시도들은 ‘하나의 도구를 활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만큼 하나의 시를 쓰는 데 여러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많은 고민을 하는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를 쓰실 때 어떻게 형식과 내용을 구상하고 완성에 이르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첫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은 수업들 들으며 수행했던 과제들이 대부분이에요. 매주 특정한 주제가 있거나 아주 좁은 길 같은 것이 제시된 상황이었고, 저는 그것에 집중하며 돌파해 나가는 식이었는데요. 그래서 제게 정착된 시작 과정이나 작법이 아직 명확하게 있지는 않아요. 있더라도 설명할 수 없는 식이에요. 너무 정제되어 있지 않거든요. 다만 저는 형식과 내용을 달리 생각해 본 적이 없고, 형식 역시 고도화된 내용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시를 써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읽고 배워 온 것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태도에 가까워요. 그리고 이건 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제 시들이…… 그렇게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말을 계속 들으니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인데도 이제야 신경이 쓰인달까요. 더더욱이 내용과 형식을 구분 짓고 싶지 않아요. 저의 무엇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 스승님 없이 저 혼자서도 잘 써야 하는데 그것만큼은 좀 어떻게 개조하고 싶네요. 잘 안 됩니다.
『정신머리』 0부부터 6부까지 시집의 전체 흐름을 아주 세밀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기준으로 지금의 순서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염두에 두신 다른 순서는 없었는지, 그 순서대로였다면 어떤 시집이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본능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아주 처음에 짠 목차도 사실 괜찮았거든요. 지금이랑 별다를 바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게 최선이 아니라는 확신 같은 게 있어서 자꾸만 들여다보고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 모습을 보던 사진작가 동료가 사진집을 만들 때의 방식인 ‘시퀀싱(sequencing)’을 알려 주었어요. 그러면서 제게 시를 아주 작게 만들어서 우선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어 보라고 제안해 주었어요. 그 말을 듣고 제 시편들을 손바닥만 한 크기로 만들어서 인쇄하고 자르고 방바닥에 흩뿌려 보았어요. 멀리서 봐도 어떤 시인지 알고 있으니 작은 크기는 배치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은 반면, 제가 그동안 가지지 못했던 크고 넓은 눈을 가질 수 있게 되더라고요. 한편에만 매몰되었던 저를 꺼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배치를 할 때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거리감을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어요. 내용상 혹은 시의 특성상 가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시들이 사실 꼭 그렇지 않아도 될 때가 많더라고요. 오히려 적당한 거리감을 두어서 독자로 하여금 지나간 시편들에 대한 감각을 다시금 깨우길 바랐어요. 동시에 붙여 놓으면 안 될 것 같은 시들을 밀착시켜 보기도 하고요. 안전한 선택보다는 편집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로서 이 시집을 생각하며 만들었기 때문에 세밀한 구조가 잘 짜여졌다고 생각해요. 편집자와 독자의 자아가 없었다면 이 시집은 나오지 못했거나 아주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아요.
첫 시집 『정신머리』로부터 시인으로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실 텐데, 앞으로 어떤 시를 보여 주실지 궁금합니다.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미칠 것 같아요. 수상 소식을 접한 이후로 어떤 글도 못 쓰고 있어요. 심지어 일기조차도요. 혼이 나가 버린 것처럼 아무런 욕망도 욕심도 없어진 느낌이에요. 이 상태가 너무 공포스럽고 걱정되지만, 역시도 제가 넘어야 할 산인 것 같아요. 출간 직후에는 청탁을 받아도 내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저를 극복할 때까지 청탁을 받지 말아 볼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꾸 피하기만 하면 무엇도 되지 않잖아요. 앞으로 정말 후지고 구리고 실수투성이인 시들을 많이 쓰게 될 것 같아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다 가끔 잘할 때도 있겠죠. 그것들이 또 차곡차곡 잘 모이길 바랄 뿐이에요.
*박참새 199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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