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매우 예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끼리 잘 지내는 법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51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
남극의 겨울 밤 아래 불 켜진 이글루를 통해서 저자가 비유를 합니다. 이글루가 있다면 안에서 추위나 바람도 피하고 따뜻하게 몸도 녹일 수 있고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그 공간 자체가 있으니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밖으로 나가서 바깥을 탐험해볼 용기도 낼 수 있는 거잖아요. (2023.07.27)
전홍진 저 | 한겨레출판
한자(황정은) : 오늘 저희가 같이 읽고 온 책은 전홍진 저자가 쓰고 한겨레출판에서 출간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입니다. 부제가 있는데요.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통해 예민함을 나만의 능력으로'라는 부제가 붙어 있어요. 저는 사실은 이 책을 이 부제 때문에 읽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지난번 방송에도 말씀드렸다시피 표지에 실린 고슴도치들의 이 사랑스러움, 이 매력에 홀딱 넘어가서 모종의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짧은 감상을 일단 전달을 하자면 '쉽게 잘 쓴 대중서다'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양한 사례들이 모여 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읽기에 정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이 책의 겉면이나 겉면에 실린 문장을 보고 제가 기대했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었거든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예민함은 어떻게 섬세함이 될 수 있는가' 이게 좀 궁금했어요. 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이게 또 어떻게 풀이가 될까 궁금했는데, 물론 그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 많지는 않아서 그 점은 살짝 아쉽기는 했어요. 프롤로그에서 보면 전홍진 저자 본인이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극히 일부인 경우이고, 게다가 심각한 증상을 가진 환자의 사례는 이 책에 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기준으로 선정된 사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더라고요.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을 약간 소개를 해보자면,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고 하고요. 그런 예민한 사람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혹은 배우자 등의 예민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하고, 대단히 바람에 잘 부합하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부를 하나 남겼는데요. 책 내용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진단이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하는 글이 꼼꼼하게 실려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 책을 찾아보는 분들이 책을 보면서 나의 사례나 혹은 자신의 주변의 사례를 만나려고 어떻게든 들어맞는 경우를 찾아내려고 읽는 경우들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의학적 판단은 의사에게'라는 점을 분명히 짚고 있습니다.
단호박 : 의사 선생님들이 책을 쓰면 그 내용이 빠지질 않아요.
한자(황정은) : 걱정이 되니까요. 방송 시작하기 전에 제가 녹음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냥 작가님이 저에게 예민함 지수가 몇 개 해당이 되냐고 물으셨죠.(웃음)
그냥 : 아뇨, 단호박 님한테 여쭤보고 나서 '한자 님한테는 안 물어도 될 것 같은데...' (웃음)
한자(황정은) : ...라고 물어보셨죠.(웃음)
단호박 : 14페이지에 '자신이 매우 예민한 사람인지 스스로 평가해 보세요'라는 표가 있습니다.
한자(황정은) : 이건 아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유혹이죠.(웃음) 28개의 문항이 실려 있고요. 이 중에서 13개 이상의 '예'라는 대답이 나오면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냥 : 저는 11개가 나왔는데 '그렇게 심하진 않아' 하고 넘긴 게 두세 문항이 있었어요.
단호박 : 저는 4개 나왔습니다.
그냥 : 정말 갓생! 멋진 삶이다!(웃음)
단호박 : (웃음) 그게 어떤 특성이니까요.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는 게 병증은 아니잖아요. 의학적인 용어도 아니고.
한자(황정은) : 그렇죠. 저자가 그 점도 분명히 짚고 있죠.
단호박 : 네. 특성일 뿐이고, 다르게 보면 둔감한 사람일 수도 있는 거죠.
한자(황정은) : 이걸 체크해 보니까 저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 맞습니다. 몇 개인지는 얘기 안 하고, 매우 예민한 사람이 맞다.(웃음) 그런데 저와 같이 사는 사람은 저의 1/3개, 거의 단호박 님과 같은 개수를 체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확인을 했죠. 나에게는 상시적인 상태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구나. 너무 놀랍고 좀 든든하기도 하고, 그래서 같이 사나 라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습니다.
단호박 : 상호 작용을 통해서 많이 나아지는 편이 있기는 하죠.
한자(황정은) : 그런 면이 있기도 하죠. 또 매우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네다섯 개 정도만 해당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관계에 이롭다, 라는 이야기가 여기에 실려 있기도 하지요.
단호박 : 그래서 가족 상담이라든지 커플 상담이라든지 같이 사는 사람들과 상담을 하게 되면 두 부류로 쉽게 나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민하지 않은 편과 예민한 편 혹은 갈등 상황이 생겼을 때 회피하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그 갈등 상황을 해결하려고 드느냐, 그런 식으로 많이 나누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자(황정은) : 비슷한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는데, 미국의 '클로닝거'라는 사람의 기질 및 성격 이론을 소개를 하고 있잖아요. 그 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기질은 반응 양식에 따라서 네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자극 추구, 인내력, 위험 회피, 사회적 민감성, 이렇게 네 가지인데, 그 중에서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위험 회피, 그리고 사회적 민감성 기질을 예민하게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위험 회피'라는 것은 내성적이고 걱정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낯가림도 심하고 낯선 장소에서 쉽게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고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는 회피 반응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감정에 민감한 편이고, 그래서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많은 편이라고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눈치를 많이 본다고 합니다. 또, 주위 사람들의 행동을 내 잘못이라고 잘못 해석을 해서 지나친 죄의식을 갖기도 한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 보이는 기술로 고반응성 그리고 저반응성으로 나눌 수도 있는데요. 고반응성인 경우에는 자라는 과정에서 양육이나 성장 환경에서 갈등을 겪게 되면, 저반응성인 아이의 경우보다 심각하게 더 예민해지고, 그리고 내적으로 고립되는 양상으로 진행이 된다고 합니다.
한자(황정은) : 이 책에서 등장하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말씀을 드리자면, 책에 나온 말을 인용을 해서 비유를 하자면 '인풋이 너무 많은 사람들'입니다.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진 사람을 이른다고 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느끼고 각성 수준이 항상 높기 때문에 뇌가 더는 견디지 못하는 상태에 자주 다다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울증이나 불안증이나 불면증을 겪기도 쉽겠죠. 책에 나오는 비유인데요. 카페에 앉은 두 사람을 통해서 비유를 하고 있는데,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앞에 앉은 사람의 말의 내용을 듣는데, 예민한 사람은 바로 앞에 대화 상대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소리를 다 듣고 거기에 일일이 다 신경을 쓴다는 것입니다.
단호박 : 책에서 좋았던 부분 중에 하나가 60대 70대의 사례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좋았습니다. 섬망 이야기도 다뤘고.
한자(황정은) : 맞아요.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불안 편」, 「우울편」, 「트라우마편」, 그리고 「분노편」, 이렇게 네 가지 편으로 나누어져 있고요. 끝에 가서 실전으로 다섯 번째 챕터가 붙어 있습니다. 불안이라든지 우울이라든지 트라우마, 분노 이런 것들은 살면서 매우 흔하게 겪는 감정들이잖아요. 이런 보편적인 감정들을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겪고 있는지, 특히 이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이 왜 병이 되는지, 어떻게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저자가 만난 환자들의 상담 사례를 인용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예민성을 다루고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소들로 이 책에서 반복해서 매 챕터마다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요. '안전 기지(secure base)'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좌절, 편안한 대인관계. 이 세 가지 조건을 통해서 매우 예민한 사람들도 자신의 예민성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안전 기지'부터 설명을 하면,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의 이론이라고 합니다.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상을 말하는데요. 강하고 지속적인 유대감을 통해서 형성되는 감정 대상, 즉 애착 대상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대개는 어린 시절에 부모가 초기에 이 역할을 하는데 모든 부모가 그렇지는 않잖아요. 생애 초기에 이런 애착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저자가 이야기를 해요. 사람뿐만이 아니고 반려동물이라든지 취미라든지 혹은 직업이라든지 담요 같은 물건도 안전기지 역할을 할 수 있고, 친구도 담당 의사도 안전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안전 기지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책에 등장하는 '이글루 묘사'인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읽으면서 한 번에 딱 알아들을 수가 있었거든요. 남극의 겨울 밤 아래 불 켜진 이글루를 통해서 저자가 비유를 합니다. 이글루가 있다면 안에서 추위나 바람도 피하고 따뜻하게 몸도 녹일 수 있고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그 공간 자체가 있으니까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밖으로 나가서 바깥을 탐험해볼 용기도 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그런 게 없다면 탐험은커녕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거죠. 그래서 안전 기지가 잘 형성이 되면 내민성을 스스로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굳이 매우 예민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 그런 것 같아요.
그냥 : 그렇죠.
단호박 : 다들 안전 기지가 있어야 됩니다.
한자(황정은) : 그렇습니다. 적당한 좌절과 편안한 대인관계도 마저 설명을 할까요? 적당한 좌절은 마음의 성장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하는데, 아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좌절을 경험하고 견뎌보는 경험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맷집을 기르는 일인데요. 이게 자존감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해요. 그리고 매우 예민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 같은 사건을 겪어도 트라우마를 경험할 확률이 높은데, 특히나 트라우마를 경험한 매우 예민한 사람의 경우에서는 대인관계에서 편안함을 경험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고 해요.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게 되면 회복 탄력성을 길러내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고, 다른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한자(황정은) : 마지막 챕터는 「실전편」인데요. '예민함을 나만의 장점으로 만들어보자'라는 부제가 달려있고, 매우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예민성을 관리해서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매우 실전적인 방법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매우 예민한 청년의 경우라든지 매우 예민한 중장년의 경우, 매우 예민한 노인의 경우, 이런 식의 사례들이 소개가 되고 있는데요. 이 책의 좋은 점을 소개해보고 싶은데 그냥 페이지 하나를 낭독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골라와 봤어요.
예민한 분들은 자기애적이나 미성숙한 신경증적 방어기제를 자신도 모르게 사용해서 대인관계나 가족관계의 문제가 일어나고 다시 예민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되기 쉽습니다. 베일런트에 의하면 50대 이후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47세 무렵까지 만들어놓은 인간관계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났던 과거의 불행한 일들은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며, 현재의 노력을 통해서 미래를 바꾸어나갈 수 있습니다. _396쪽
단호박 : 이 대목에 앞서서 '방어 기제'를 설명해 준 부분도 좋았어요. 방어 기제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방어를 하면 좋다'라는 게 있었는데, 이 부분을 한번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성숙한 방어 기제에는 이타주의가 있고요. 자신의 욕구를 직접 충족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이 욕구를 해결해나가는 거죠. '예측'이라는 방어 기제가 있습니다.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미리 예측해서 방어를 하는 거죠.
세 번째는 '금욕주의'인데요. 만약에 자신이 술로 인해서 뭔가 사고가 많이 일어났던 경험이 있다면 금주를 유지하면서 그 문제의 과정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고요. 네 번째가 '유머'인데요. 불쾌하거나 기분 나쁘거나 혹은 나에게 공격이 되는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을 유머로써 해결하는 과정이 저는 되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다섯 번째가 '승화'인데, 사회적으로 용인되거나 바람직한 목적을 추구해서 욕망을 충족하는 행동이라고 하고요. 여섯 번째가 억제인데 충동과 갈등을 축소하거나 조절하면서 자기 자신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방어 기제를 다루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한자(황정은) : 저는 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의 삶을 같이 개선하는 방향을 짚어주는 게 좋았던 점이, 과거랑 완전히 단절을 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기 위해서 하는 노력이 그거를 잊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새로운 안전 기지를 형성하는 데서 찾아온다는 점. 그 점을 이 책이 짚고 있어서 좋았어요. 과거는 불변이고 과거의 영향력을 너무나 크게 얘기하고 이런 게 아니라, 매우 예민한 기질은 타고날 수 있지만 조절을 할 수 있고, 그리고 내 삶과 주변인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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