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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어쩌다 어른> 출연 약학자 백승만 인터뷰

『분자 조각가들』 백승만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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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혼자 힘으로 스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일은 함께 헤쳐 나갔으면 해요. (2023.05.11)

백승만 교수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들이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하는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 수소, 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분자 조각가들의 최종 목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화합물을 약이라고 부른다. 『분자 조각가들』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생명을 살리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화학자들이 절묘하게 분자를 조각하고 이어붙이는 과정을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 그림과 비유를 통해 쉽게 설명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백승만입니다. 신약을 연구하고, 그 과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지요. 신약 개발이라고 해도 접근법이 다양하거든요. 저는 원래 약대에서 화학 쪽 연구를 했었고, 지금도 그 분야를 강의합니다. 아무래도 약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면이 있잖아요. 화학도 마찬가지구요. 두 분야를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재밌게 가르치려고 하다보니 책을 쓰게 됐네요.

스스로를 '분자 조각가'라고 칭하시는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화합물을 만들어 의약품으로 개발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있는 게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좀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이 분야에서 노벨상 받은 사람은 화학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기도 했거든요.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합물을 뗐다 붙였다 하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낸다면, 그게 바로 조각이라는 생각에 그 후로는 분자를 조각한다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물론, 제가 만들어 낸 모양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울 필요는 없어요. 원하는 약효를 내야 하니까요. 그래도 관점은 다르지만 본질은 비슷하다고 봐요.

교수님께서는 평소에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가요? 분자 조각가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지금 하고 있는 연구는 파킨슨씨 병 치료제 연구이고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갈 길이 머네요. 분자 조각가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아무래도 처음 경험이 더 기억에 남네요. 대학원 다니면서 어떻게든 아이디어를 내서 전략을 짜고 실험을 해서 화합물을 만들었는데 정말 만들어진 거에요. '헌팅턴씨 병'이라는 퇴행성 뇌질환의 증상 개선제로 신규 승인된 의약품이었습니다. 정확히 따지면 '무도병'이라고 부르는데, 근육을 조절하지 못하는 증상이에요. 최근에 넷플릭스에 나온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 이 질병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더라고요. 그만큼 더 애착을 가지고 드라마를 보게 됐네요. 어쨌든 당시 이 의약품은 신약으로 승인되긴 했지만, 주성분 화합물에 대해서는 더 좋은 합성법이 필요하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개발해 낸 거에요. 나중에는 논문으로도 실리고요. 그 당시의 짜릿한 경험을 잊지 못해, 계속 연구를 거듭하다보니 어느덧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약의 역사를 다룬 교수님의 교양 강의가 대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라고 들었습니다. 약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의약품 개발은 정말 힘들잖아요. 신약 하나 만들면 대박이라고 할 정도에요. 저도 20년 넘게 이 일을 합니다만 아직 갈 길이 멀고, 주변에서 성공한 경우도 보기 어려워요. 물론, 그 와중에 성공하신 분들도 계신데 모두 대단한 분들이시죠.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많은 약을 먹고 있잖아요. 이 약들은 도대체 누가 만든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의약품 개발의 역사를 강의 중간에 조금씩 채워 넣는 용도로 공부했어요. 아무래도 화학 관련 강의만 하면 어려워 하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그랬는데 어느덧 양이 채워지니 독립된 강좌로 개설해도 충분한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 후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료를 채워 나갔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약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 몸은 수십만 년간 진화해 왔지만, 우리가 제대로 된 의약품을 만들기 시작한 건 백 년 남짓한 역사에요. 그리고 지금 개발되는 의약품도 부작용 때문에 문제되는 경우가 많고요. 그렇다면 그 전에 만든 약들 중에는 더 위험한 케이스들이 많겠죠. 어쩌다 보니 약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픈데 약을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떻게든 이 위험한 약을 우리는 복용해야 해요. 그러므로 우리는 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약을 알고 나를 알아야 건강을 지키죠. 정 안 되면 약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사실만이라고 알고 있었으면 해요. 그래야 정해진 용법과 목적에 맞게 쓸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개발되었지만, 보통 신약 개발에 10년씩 걸린다고 합니다. 신약 개발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부작용 때문이죠. 우리 몸은 하나의 자연이에요. 생로병사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개입해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조절하는 게 쉬울 리는 없습니다. 연금술부터 따져도 수백 년 가량의 지식으로 무장한 인류가 풀기에는 턱없이 고차원적인 퍼즐이에요. 이 퍼즐을 푸는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었고 이런 부분들이 『분자 조각가들』에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행착오들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고요. 그러면서 지금의 의약품 개발 시스템으로 진화해 왔네요. 하지만 지금의 시스템도 마냥 완전하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의약품 개발하는 과정을 보면 극단적으로 시야를 좁혀 목표로 하는 단백질이나 유전자를 관찰하거든요. 그 단백질이나 유전자의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서 약으로 개발해요. 그런데 우리가 개발한 물질이 막상 몸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수많은 물질과 만나게 되거든요. 실험실 플라스크 위에 원하는 단백질이나 유전자가 예쁘게 깔려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곱게 키운 물질이 야생에 나왔다고 봐야죠. 따라서 원하는 효과 외에도 수많은 다른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런 효과들을 부작용이라 하는데, 그중에는 몸에 안 좋은 효과가 대부분이에요. 그러다 보니 종합적으로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 알아야하고 최종적으로 이 효과들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신약 개발은 끈질긴 노력, 우연한 행운, 치밀한 계획이 공존하는 세계인 것 같습니다. 약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어떤 것이 있나요?

같이 해야 한다는 거에요. 운이든 노력이든 계획이든 혼자서 약을 만들어 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우연히 푸른곰팡이의 항균 효과를 발견한 것은 기적이에요. 그 후로 플레밍도 그 기적을 의약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고요. 하지만 사실상 혼자서 연구한 플레밍으로서는 페니실린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연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 페니실린이란 화합물을 제대로 파헤칠 수 있는 화학자들이 함께 했더라면 플레밍이 직접 페니실린 연구를 마무리지을 수도 있었을 거에요. 결국, 그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옥스퍼드의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계승하면서 완성될 수 있었죠.

100년 전 연구가 그랬는데 지금은 오죽 하겠어요. 지금의 신약 개발은 원인 단백질 규명부터 시작해 효과 좋은 물질을 발굴하고 구조를 수식해 후보물질을 도출하기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관여합니다. 이 물질이 약으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환자를 모집하고 어떻게 약효를 평가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 또 다른 단계를 통과해야 하고요. 이 지난한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경영이나 재무, 특허 쪽 전문가를 제외하더라도 수백 명의 박사급, 수천명의 석사급 인력들이 힘을 합쳐야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시스템이 신약 개발입니다.

의약품 개발은 아이돌 오디션과 비교해도 돼요. 예전에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뽑혀서 스타가 나왔잖아요. 친구 따라 오디션 가서 데뷔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소속사에서 어릴 때부터 관리해서 아이돌로 데뷔해서 스타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아요. 순수하게 혼자 힘으로 스타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죠.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든 일은 함께 헤쳐 나갔으면 해요.



*백승만

서울대학교 제약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댈러스에 위치한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현재는 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천연물과 의약품의 효율적인 합성이며, 이러한 유기화학 및 의약화학 연구를 통해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분자 조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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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만 저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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