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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지금, 이 책을 플레이하세요!

<월간 채널예스>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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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넘겨 보는 건 마치 음악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일을 닮았다. 음악이 세상과 연결되는 일에 관해 들려주는 도서 네 권을 모았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지 기다려보자! (2023.05.03)


오늘의 기분에 맞게 적당한 제목을 가진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두세 곡을 듣다 보니 갑자기 책을 읽고 싶어진다. 작가가 들려주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이 이야기에 어울릴 만한 또 다른 음악을 떠올려본다. 다음에 이어서 읽을 책은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달린 추천 댓글을 보며 결정한다. 음악이 있는 우리의 모든 순간에 독서가 있다.


책의 표지를 넘겨 보는 건 마치 음악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일을 닮았다. 음악이 세상과 연결되는 일에 관해 들려주는 도서 네 권을 모았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지 기다려보자!


『플레이리스트』

김호경 저 | 작업실유령



노래를 1분도 듣지 않고 다음 노래로 넘겨버리는 건 냉혹하다기보다는 한없이 자연스럽다. 이를 "환승을 위해 선 승객과도 같은 모습을 한 현대의 음악 감상자들"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플레이리스트』는 「스트리밍 시대 새로운 음악 감상 방식의 출현과 그 의미 연구」라는 논문의 저자 김호경이 이를 단행본의 호흡으로 다듬어 출간한 것이다. 미디어 연구를 하면서 대중음악 작사가로 살아가는 김호경은 유럽 전통 음악 이론을 공부하고 공연 예술 전문지에서 클래식 음악가를 취재하는 시간을 지나쳐 왔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음악가가 곡을 만든 의도를 파악하는 데에만 집중하느라 감상자의 생각과 느낌은 쉽게 소외되었던 유구한 과거를 향해 있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유튜브,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매일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음반이 아닌 플레이리스트를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첫 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들어볼 것도 없이 그 플레이리스트의 감상을 중단하는 사람도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추천하는 알고리즘과 큐레이터에게 의존하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인 음악 감상자로 불리기는 싫어한다. 해리 스타일스의 '애즈 잇 워즈(As It Was)',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bad guy)' 같은 최신 팝송을 듣던 사람이 1980년대 강변가요제 음악에 갑자기 빠져드는 일은 그런 식으로 얼마든지 생겨난다. 모순된 행동과 마음이 이 책의 부제처럼 '음악 듣는 몸'의 구성 요소가 된다. 책 후반부에는 미디어 연구자의 관점에서 살펴본 학술적 자료가 충실하게 채워져 있어 새로운 음악 듣기 방식에 대한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뮤직 포 시티 트래블러』

박정용 저 | 노웨이브



목차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런던과 삿포로가 있는데, 신당동도 있고, 동성로도 있기 때문. 왜 서울과 대구가 아니라 신당동이고 동성로일까. 지엽적인 동네와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도시 사이를 오가는 『뮤직 포 시티 트래블러』는 저자 박정용이 좋아하고 즐겨 찾던 열두 곳을 걷는 모습을 상상하며 고른 음악과 그 이유를 담은 책이다. 격변의 시대에 홍대 앞에서 음악이 있는 공간 벨로주를 운영하며 그는 '홍대 앞'이 단지 홍익대학교 앞 거리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의 산증인'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어느 골목을 걸어 다니든 홍대 앞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서의 정체성을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골목을 돌아 돌아 마주친 간판을 보며 그는 소리 없이 질문하는 듯하다.

'이곳은 어떻게 살아남고 있을까?'

그리고 자영업자의 감각에 음악 애호가의 감각이 더해지면 『뮤직 포 시티 트래블러』 같은 책이 나온다. 플레이리스트 가이드북 시리즈를 세 권째 펴내고 있는 그는 "이 음악이 어디에서 온 음악인지를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같은 음악을 서울에서 들을 때와 다른 도시에서 들을 때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 책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도시는 삿포로인데, 그가 노래를 고르는 기준은 "서울의 짜릿하지만 절박한 시간이 주는 내 주위의 피곤한 삶에 대한 반작용"이다. 삿포로 거리에서 연상되는 노래로 미국 컨트리 가수 케니 로저스의 '유어 마이 러브(You’re My Love)'와 캐나다 록 밴드 칠리왝의 '빌리브(Believe)' 같은 올드 팝이 선곡된 이유다. 이 책에는 저자가 여러 번 들른 열두 도시의 단골 가게들도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음악이 모여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지듯, 터를 잡아 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을 중심으로 도시는 계속된다.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권민경, 김겨울, 김목인, 나푸름, 민병훈 저 외 5명 | 테오리아



언젠가부터 나만의 '새해 첫 곡'을 고르는 의식이 유행 중이다. 새해 처음으로 듣는 노래가 그 사람의 그해 운세를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이 아니라, 희망차고 긍정적인 기운을 가진 음악을 매해 1월 1일이 되자마자 듣는다. 대표적으로 걸 그룹 우주소녀의 '이루리'는 소원을 빌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리라는 노랫말을 가진 곡이다. 2019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이듬해부터 1월 1일이면 스트리밍 사이트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새해 첫 곡으로 '소원이 이루어지리라'는 노래를 듣는 건 지난해를 고단하게 보낸 이가 자신을 위해 정교하게 짜놓은 계획의 일부다. 그 외 대부분의 처음에는 운명이 끼어들 여지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 또한 단순히 우연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건 처음으로부터 조금 멀어진 후에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책에선 소설가, 시인, 뮤지션, 그래픽 디자이너 등 열 명의 작가가 각자의 '첫 음악'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먼저 송지현 시인은 세상과의 첫 만남이 곧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다.

"산부인과에서 나를 데려와 아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헤드폰으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준 것이었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에 기대는 대신 누군가가 카메라를 통해 담아준 사진을 통해 과거의 한 장면을 회상한다. 한편 김겨울 작가는 첫 자작곡 'Seaside(해안길)'의 데모 버전을 들어보며 "너무 기뻐서 세 번쯤 텀블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보는 별은 이미 수천수만 년 전에 죽은 별이라는 것처럼, 음악에 관해 쓰는 것은 필연적으로 언젠가 재생한 적 있는 그 음악 속에 붙들린 과거를 돌아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줄곧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떤 노래 한 소절의 환청과 함께한 시절이 오롯이 복원되곤 한다"는 걸 열 명의 작가는 외면하지 않았다. 



『일요일의 음악실』

송은혜 저 | 노르웨이숲



전작 『음악의 언어』에서 "인생에 선생님이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했던 송은혜가 『일요일의 음악실』에서 선생님을 자처했다. <채널예스>에 연재된 동명의 칼럼을 엮은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음악으로 연결되는 쉰두 번의 음악 수업'이다. 

아무리 성실한 선생님이라도 두 번의 민족 대명절이 끼어 있으면 휴강할 법도 한데, 쉰두 번의 일요일을 착실하게 채운다. 그는 빠른 답변을 원하는 수강생들이 원하는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과 더불어 산 지 마흔 해가 지났음에도 클래식 음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이 왜 막연하게 들리는지 짚는다. 그건 "타인이 맥락 없이 추천하는 음악, 작곡가, 연주자는 내가 생생히 겪고 있는 삶에 연결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건반 악기 버지널(virginal)을 영국 작곡가 올란도 기번스가 연주하는 곡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잠자리 날갯소리가 들릴 정도로 숨을 죽이고, 자세히 들어보세요. 공기의 흐름을, 여러분의 침묵을요."

 『음악의 언어』에서 음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의 적막을, 관객과 다 함께 숨을 삼키는 고요의 순간을 전한 것처럼 그는 이번에도 침묵의 가치를 말한다.

쉰두 번 중 가장 감동적인 수업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조카 하윤이에게 들려주는 음악 동화 『피터와 늑대』에 관한 것이다.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구어체로 쓰여 있지만,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사려 깊은 선생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악기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본문 곳곳에 등장하는 QR코드를 통해 직접 음악을 들어보면서 입체적으로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19세기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 남매를 배출한 멘델스존 가문은 사교계의 인사들이 모여드는 '일요 음악'를 정기적으로 열었다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이 책 덕분에 그에 비견하는 음악실이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331쪽부터 펴서 이 곡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오월, 떨리는 사랑 고백과 지독한 우울의 만남, 바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입니다."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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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경 저
작업실유령
뮤직 포 시티 트래블러 (Music For City Trav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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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용(벨로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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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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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해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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