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 청소, 식탁, 마감,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핑계 - 워크룸프레스 편집부

<월간 채널예스>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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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의 한 구절은 요즘 음악 감상자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잘 보여준다.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 흘러가는 듯 귓가에 걸린 배경 음악을 붙들어 자신을 들여다볼 저자를 발굴하는 일.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식탁에서 듣는 음악』,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을 펴낸 워크룸프레스 편집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2023.05.03)


오늘의 기분에 맞게 적당한 제목을 가진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두세 곡을 듣다 보니 갑자기 책을 읽고 싶어진다. 작가가 들려주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이 이야기에 어울릴 만한 또 다른 음악을 떠올려본다. 다음에 이어서 읽을 책은 플레이리스트 영상에 달린 추천 댓글을 보며 결정한다. 음악이 있는 우리의 모든 순간에 독서가 있다.


"음악에 집중하기는 싫지만, 배경 음악(BGM)은 필요할 때가 있다."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의 한 구절은 요즘 음악 감상자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잘 보여준다.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 흘러가는 듯 귓가에 걸린 배경 음악을 붙들어 자신을 들여다볼 저자를 발굴하는 일.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식탁에서 듣는 음악』,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을 펴낸 워크룸프레스 편집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 Diana Ross — Why Do Fools Fall in Love

      ♬ Youth Lagoon — The Year of Hibernation


'~하면서 듣는 음악'(이하 '듣는 음악')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처음부터 시리즈로 기획된 건 아니었어요. 스튜디오 에프엔티(studio FNT)의 이재민 실장이 SNS에 비정기적으로 올리는 음반에 대한 짧은 글을 즐겁게 따라 읽다가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출간 제안을 한 것이 시작이었죠. 이재민 실장이 가지고 있는 음반이 워낙 많았고, 마침 FNT와 같은 건물을 사용하던 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texture on texture)가 책에 수록될 음반을 촬영하면서 글의 분량과 이미지 작업 방식 등을 포함한 책의 전체 형식이 결정되었어요.

이 시리즈에 참여한 이재민 디자이너, 이용재 음식 평론가, 전은경 디자인&브랜드 디렉터는 바이널과 CD로 음악을 감상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를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리즈의 저자들은 바이널로 음악을 들은 마지막 세대이자 40대입니다. 그렇다고 이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음악 저장 매체의 물리적 형식에 구애받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앞으로 책 속에 실린 음반 사진 자리에 애플뮤직이나 스포티파이 이미지와 음원 링크가 들어갈 수도 있을 테고요.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에 "글에 등장한 음반 중 청소를 하면서 들은 건 사실 별로 없다"라거나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에 "나는 원고를 쓰거나 잡지 마감할 때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등 저자들이 제목의 키워드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의외의 고백이 있습니다.

청소, 식탁, 마감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핑계 정도랄까요. 모두가 음악을 듣잖아요.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도 하나씩 있을 테고요. '듣는 음악' 시리즈의 차별점은 음악에 대해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과 엮어 글로 풀어낼 수만 있다면, 누구든 이 시리즈의 저자가 될 수 있어요.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 

                                              ♬ Joy Division — Unknown Pleasures

                                              ♬ Max Richter — Sleep

                                              ♬ Charlie Haden — Nocturne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은 잡지 편집장 출신 전은경 작가의 첫 책입니다. 집필을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은경 작가는 18년간 디자인 분야의 잡지를 마감해 왔는데요. 디자인에 관한 책이 아닌 음악, 예술 분야에 대한 책을 제안하니 응해 주시더라고요. 이 책에서는 "반복적으로 들리는 음계를 따라가다 보면 적당한 긴장감이 생기고 그것이 마감을 독촉하는 것처럼 들린다"라며 마감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스티브 라이히의 '18인의 음악가를 위한 음악' 같은 음악을 소개하고 있죠.

그럼 마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이 책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까요?

마감이 잡지 만드는 사람에게만 있는 건 아니죠. 세상은 결국 마감이 있어야 제대로 굴러가는 거니까요. 어떤 일이든 마치고 난 후, 5분에서 10분 정도 음악을 듣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좋아하실 거예요. 음악처럼 글도 잠시 환기를 위해 읽히기를 바라며 길지 않은 분량으로 배치했습니다.

음악에 관한 책인데도 시리즈의 표지 사진에 스피커, 헤드폰 등 음악 관련 소품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앞표지에는 저자가 무언가를 하고 있는 도중의 장면을, 뒤표지에는 무언가를 하고 난 후의 모습을 담았어요. 고가의 스피커가 등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가 '오디오 덕후'처럼 보이지 않기를 바랐어요. 가끔 오디오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아는 걸 드러내기 위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이들이 있는데 '듣는 음악' 시리즈는 그런 분들을 위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컴퓨터의 내장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이죠.


                                                               『식탁에서 듣는 음악』

                                                           ♬ Def Leppard — Hysteria                                           

                                                           ♬ Lumiere — Diary


『식탁에서 듣는 음악』의 본문에는 빨대, 포크, 맥주병, 후추통처럼 음식 관련 오브제와 음반이 함께 배치된 사진이 등장합니다. 사진 작업을 담당한 정멜멜 작가와의 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나요?

음식 관련 오브제들은 모두 정멜멜 작가의 아이디어였어요. 시안을 받아보고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정멜멜 작가와의 협업은 대체로 말없이 조용히 진행되는 편이에요. 간단한 의견을 나누고 나면 어느새 끝이 나 있는 식이죠. 서로가 잘하는 부분을 알기 때문에 참견하거나 의견을 덧붙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럴 때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더라고요.

'청소'는 누구나 일상에서 하는 일을, '식탁'과 '마감'은 음식 평론가와 잡지 편집장으로 일해 온 저자들의 직업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갈까요?

다음 책에서는 저자의 주요 활동과 상관없는 제목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1년에 한 권 나올까 말까 한 책이라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구상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는데, 마음 같아선 열 권 정도까지는 내고 싶다는 바람 정도가 전부예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책 중에 '대기하면서 듣는 음악'이 있는데, 만일 이 책이 출간된다면 정말 대기하면서 듣는 음악의 목록이 되겠죠?



*워크룸프레스

2006년 12월 서울 창성동에서 시작한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2013년부터 임프린트 작업실유령도 함께 운영한다. 동시대 시각 문화와 예술, 문학, 인문, 실용 등에 관심을 두고 책을 펴낸다.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이재민 저
workroom(워크룸프레스)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
전은경 저
workroom(워크룸프레스)
식탁에서 듣는 음악
식탁에서 듣는 음악
이용재 저
workroom(워크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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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해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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