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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실패는 밥을 먹고 배고파지듯이 평범하게 일어나는 사건" (G. 정지음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36회) 『오색 찬란 실패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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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의 ENFP, "실패와 나는 친한 친구 사이" 라고 말하는, 책 『오색 찬란 실패담』을 출간하신 정지음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3.04.13)


그 때문에 나는 늘 스스로를 누추한 위험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는 내 인생의 지루한 클리셰였다. 그래서 한 때는 노력 없이 성공 가도로 치닫는 반전만이 내 인생을 구원해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상상해 보면 그런 삶이야말로 어둡고 축축한 흑백의 세상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제 쉬이 얻는 행운들을 꿈꾸지 않는다. 남이 보기에 아름다울 법한 성취만을 욕심내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다소 초라하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불운의 텃밭을 가꾸며 살기를 원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햇빛을 쬐어주고 벌레를 쫓아내고, 세찬 비바람을 맞다 보면 내 불운의 텃밭에서도 언젠가 푸릇푸릇한 새싹들을 보게 될지 모른다. 나는 실패로써 수확한 초록 열매들을 내 생의 청신호로 여기며 내일로 건너갈 수 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정지음 작가님의 책 『오색 찬란 실패담』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실패에도 전문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정지음 작가님은 실패의 기상천외함이 남다른 삶의 역사를 갖고 계십니다. 약속 지키기에 번번이 실패하고, 거금을 주고 시작한 PT에 좌절하고, 멀쩡한 길에서 넘어지기 일쑤인 정지음 작가님은 그러나 그 실패들을 모두 오색 찬란하게 바꾸어버립니다. 실패를 인생의 청신호로 여기면서 말이죠.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정지음 작가님을 모시고 실패의 찬란함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정지음 편>

오은 : 작가님 책에 있는 '정지음 지음'이라는 부분은 마주할 때마다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대목이에요. 필명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지은 이름인가요? 

정지음 : 사실 어떤 공간에 글을 처음 올릴 때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그냥 닉네임으로 '정땡땡 지음'을 줄여서 정지음이라고, 고민을 안 하고 지은 이름이죠. 그런데 『젊은 ADHD의 슬픔』이 브런치북에 당선 되면서 그 이름으로 공지가 나갔어요. 그 후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려서 그냥 쓰고 있습니다.(웃음)

오은 : 바꿀 기회가 없었군요. 먼저 '정지음'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를 해버렸기 때문에요.

정지음 : 이름 같은 걸 바꾸려면 사실 엄청 유명해야 되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야 이름을 바꿨다는 사실도 퍼지는데 저처럼 애매한 단계에서는 이름을 바꾸는 것이 정말 애매해질 뿐인 것 같아서 그냥 숙명이다 생각했어요. 게다가 저는 본명도 별로 의미가 없어요. 한글 이름인데 저와 전혀 상관없는 어떤 단어가 이름이거든요. 그냥 그런 운명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은 : 술에 취하면 쓰는 버릇이 있을 정도로 쓰는 것에 중독이 되었던 작가님인데 이번 책은 쓰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고민이 있었을까요? 

정지음 : 일단 시간이 빠듯했는데요. 그 빠듯한 시간에도 '시간이 없다'는 생각만 계속 하게 되는 거예요. 심지어 출판사 사장님과 편집자님이 꿈에 나와서 독촉을 하기도 했어요. 저는 사장님 얼굴을 모르거든요.(웃음) 그런데도 꿈에 나오더라고요. 그게 압박감이 컸고요. 또 이번 책을 시작하면서 이사와 복직도 결정이 됐어요. 삶의 큰 일이 많이 겹치다 보니까 정신이 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뭔가를 배우긴 했죠. 사람은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마치 그 일이 실제 벌어진 것처럼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은 : 정지음 작가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젊은 ADHD의 슬픔』『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와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이 있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다. 한 번 좋았던 책을 여러 번 다시 보는 독서 습관이 있다. 중견 ADHD가 되니, 완벽하게 낫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실수한다는 건 매일매일 세상을 배워 간다는 말과 같다고 생각한다." 한 번 좋았던 책을 여러 번 읽는 습관이 있다고요? 

정지음 : 자꾸 까먹기 때문이에요. 읽을 때마다 새로워서 그것도 되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즐길 거리가 무한한 거니까요.

오은 : 이제 책 『오색 찬란 실패담』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정지음 : 제가 살아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실패담을 담았고요. 그 실패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엮은 에세이입니다. 궁극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는 사실 실패도 조명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실패가 무가치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에요. 또한,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성공담은 읽으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오은 : 서점에서 보더라도 실패담보다는 성공담이 훨씬 많아요. 또 이 사람이 성공을 했다는 전제 하에 실패는 성공의 계기가 되었다는 방식으로 기술되곤 하잖아요.

정지음 : 말씀하신 대로 자기 계발서나 훌륭한 사람들이 쓴 책을 보면 실패가 성공으로 가기 위한 어떤 장치처럼 서술되곤 하지만요. 사실 삶에는 아무 의미 없는 실패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실패랄까요. 흔히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아니었던 사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걸 억울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삶이 좀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오은 : 맞아요, 실패라고 하면 왜 실패한 건지 원인을 찾고,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한 로드맵을 그리곤 하죠. 하지만 실패를 그저 실패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방식으로 책이 전개되는 것 같았어요. 

정지음 : 실패를 하고, 복구하려고 노력을 했는데도 안 되고요. 실패에 여러 가지 나쁜 감정들까지 따라오잖아요. 저는 거기까지가 인생이다, 하는 생각을 책을 쓰면서 하게 됐어요. 좋은 것만 취사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 삶이라고요. 인생이라는 게 너무 랜덤이다보니까 내 삶에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은 실패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억울한 사안이 아닌 일종의 자연 법칙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오은 : 책을 읽다가 육아서가 등장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울감과 자괴감이 들 때 육아서를 읽는다는 대목이 있잖아요. 뭔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의 근원을 찾아서 과거로 한 발 한 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는데요. 육아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뭘까요? 

정지음 : 우선 지칠 때 읽으면 좋은 게, 책의 논조 자체가 되게 상냥하거든요. 잘하고 있어요, 하는 식으로 펼쳐지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읽기 편해요. 또 한 가지는요. 제 인생을 바꿔줬던 개념 중에 하나가 '내면 아이'라는 거거든요. 엄청 축약해서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어린 날에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마음속에 있다는 건데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성인인 사람들이 육아서를 읽는 게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의 마음속에나 상처받은 아이 한 명이 있는 거라면,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 마주한 게 35살 철수 씨나 영희 씨가 아니라 저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아이와 대면하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 상대방이 조금 덜 미워지는 것도 같아요. 

가장 좋았던 건 '나이듦은 성숙함'이라는 공식이 깨진 거예요. 따라서 '어림은 미숙함'이라는 것도 깨졌죠. 누군가를 대할 때 나이로 기대하는 게 별로 없어지니까 나보다 어린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과 지내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그냥 다 사람으로 보여서요.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정지음 : 아무래도 계속 실패에 대한 얘기를 나눴으니까요. 같이 보시면 좋을 책을 추천하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기도 한데요. 여러 번 읽은 책 중에 조지프 버고의 『수치심』이라는 책이 있거든요. 말 그대로 '수치심'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책이에요. 특히 좋았던 건 수치심이 창피와는 다르다는 개념을 알려준 점이었어요. 그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말하거든요. 또, 수치심에도 여러 종류가 있더라고요. 저도 수치심에 취약한 편인데요. 이 책을 통해 수치심의 종류를 배우고, 수치심에 번호나 점수를 매길 수 있게 되어 상황 대처 능력이 상당히 향상된 걸 느껴요. 예를 들면 1번 유형의 30점짜리 수치심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패닉 상태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청취자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정지음

1992년 경기도 출생.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젊은 ADHD의 슬픔』,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와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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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찬란 실패담
오색 찬란 실패담
정지음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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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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