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스페인 남부 해변 같은 글이 있다면 눅눅한 글도 있다 (G. 오지은 작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35회)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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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소수라도 어두운 곳을 계속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한테 나는 계속 편지를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인생에 몇 번 없었던 강한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2023.04.06)


저는 여전히 뾰족한 수가 없는 어른이지만 당신께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또다시 잔인한 봄이 왔습니다. 봄은 여전히 또는 새롭게 우리를 할퀴고 갈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의 등 뒤에 아름다운 숲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겨울 동안 차가운 땅에 당신도 모르는 새에 모였던 기운이 싹을 내고 나무를 키우고 꽃을 피웠을지도 모릅니다. 나무도 꽃도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쉽게 알아채기 힘들겠지만요. 너무 힘이 들 때는 등 뒤의 숲을 떠올려주세요.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꼬물꼬물 앞으로 그게 어떤 방향이든 나아가려는 당신께 제가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보냅니다.

오지은 작가가 쓴 『당신께』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오지은 작가 편>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 오지은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 이번 책이 7년 만에 나왔어요. 원고를 모으는 데 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도 드는데, 감회가 어떻습니까?

오지은 : 주변에 이 책을 쓴다는 얘기를 하도 오래 해가지고...

황정은 : <책읽아웃>에 나오셨을 때도 말씀하셨더라고요.(웃음) 

오지은 : (웃음) 진짜 진정성 있죠. 지긋지긋한 진정성이 있어요. 2016년에 『당신께』의 원형이 되는 편지글을 연재를 했는데, 저는 작가가 책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랑 독자 또는 출판사가 이 책을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좀 일치해야 책이 나오기도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때 2년간 편지를 쓰고 별로 안 원한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독자와 출판사가.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말씀을 감사하게 듣고 '그럼 편지를 이어서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2020년부터 편지를 썼는데, 3년간 쓰지 않았던 편지를 게다가 앞에 2년 동안 쓰고 나서 부치지도 않았던 편지를 이어서 쓰는 게, 마음은 그렇다 쳐도 테크닉적으로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황정은 : 그렇죠.

오지은 : 나이에 따라서 성격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어도, 개인적으로는 30대 중반의 저와 변화가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내가 지금 마치 무언가 깨달은 듯 이야기를 하면서 앞의 걸 약간 부정하는 뉘앙스이기도 싫고, 그리고 현재의 저는 무조건 되게 한심해 보이고, 과거의 저는 그저 장하게 느껴지는 때가 저한테 있어요. 그래서 과거의 저랑 섀도복싱을 하다가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를 너무 오래 한 거예요. 그러니까 과거의 저와 이어지는 정서이면서, 약간 '아유, 이 사람도 이렇게 고생해서 좀 나이 먹었구나'라는 보람이 좀 있으면서도, 그런 류의 장애물을 엄청 만들었더라고요. 원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였는데, 그 과정에 하나씩 장애물들을 없애는데 한 2년 정도가 걸렸어요. 그래서 2020년 2021년에 쓰고 지우고를 계속하고, 2022년 말에 거의 지금의 형태가 나와서, 2023년 초에 책이 나왔고, 아마 14교까지 나왔던 것 같아요.

황정은 : 교정 과정이요?

오지은 : 네, 7교 넘어갈 때부터 좀 스스로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져서 안 셌는데, 막판에 가서 약간 실눈 뜨고 봤더니 14교쯤인 것 같아서... 『마음이 하는 일』 편집자님이 그 얘기 듣고 작가님은 구속되셔야 될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웃음)

황정은 : 2016년에서 2017년 사이에 원고를 쓰면서 '사람들이 내 글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셨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오지은 : 2016~2017년에 2년간 쓸 때에는 '뭔가 써야겠다'와 '쓴다'에 급급해서, 그때는 스스로 마음속에 의문이 되게 많았던 시기였어요. 

황정은 : 게다가 일도 많았죠. 이런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오지은 : 그러니까요. 그래서 '나는 왜 이렇고, 내 바깥 세계는 왜 이렇지? 거기에 살아가는 나는 또 왜 이렇지?'라는 의문이 되게 많아서, 의문의 세계를 보내고 나서 그 프로젝트를 일단 접고 사는 동안에 '이렇게 의문투성이인 책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제멋대로 했던 것 같아요. 세상이 복잡해질 때 '우리 지금 복잡하니까 더 복잡하게 생각해 볼까?'라고 할 수 있으면 좋은데, 세상이 복잡하다는 거는 사람들에게 그럴 생각이 되게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더 세상이 복잡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 한번 앉아서 이런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서 한번 얘기해볼까?'라고 하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점점 적어지는 세상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확실하게, 명쾌하게, 겉핥기로, 짧게,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세상.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 무슨 얘기 할 건데? 너 어떤 음악 할 건데? 나 한번 들어볼게' 이렇게 스페이스를 못 주게 되는 세상이 된 거예요. 그건 그 사람들이 잘못한 게 아니고 그들도 세상에게 그런 스페이스를 못 받고 있겠죠. 

황정은 : 그렇죠.

오지은 : 그리고 제가 쓰는 건 약간 하릴없는 마음, 갈 곳 없는 마음, 사람들이 생략하는 마음, 응달, 이런 것들이다 보니까, 약간 스페인 남부의 엄청 쨍한 색감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너무 이해가 가는 거죠. 지레 그런 생각에 편지를 계속 쓴다는 생각은 잘 못하고, 그때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라는 책을 내면서 막 기차 타러 다니고 그랬거든요. 즐겁고 싶다, 라고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도무지 즐거울 수가 없는 상태였어요. 『당신께』의 앞에 보면 '즐겁고 싶은데 어떡하지?'라고 좌충우돌의 시기를 보낸 기록이 있고, 음악으로는 오지은, 서영호 프로젝트 팀을 하고, 감사하게도 "다시 편지를 이어서 써보시는 게 어때요?"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사람들이 되게 생략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러니까 "그런 칙칙한 생각 그만하고 조금 밝은 생각하고 더 즐겁게 살 생각을 해야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공감이 가는 거예요. 

오히려 팬데믹이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서 공연이 취소되고 사람들이 죽고 즐거움을 더 못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약자의 입장에 있는 분들이 더 괴로운 상황이 되고, 이렇게 되면서 오히려 '아무리 소수라도 어두운 곳을 계속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한테 나는 계속 편지를 쓰는 게 맞다'는 생각이, 인생에 몇 번 없었던 강한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내가 보내고 있는 류의 이런 시간을 분명히 누군가도 보내고 있다는 확신이 오히려 더 커져서 나는 편지를 꼭 마무리하겠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뒷부분에 진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좀 들어가 있어요.

황정은 : 저 그거 느꼈어요.

오지은 : 보통 앞에 실어서 사람을 끌어야 될 수도 있는데 꼭 끝까지 읽은 사람들에게만 '자, 여기 마음 드러냅니다' 이런 느낌으로...(웃음)

황정은 : 아, 그런 이유로 맨 끝에 실려 있었군요. 

오지은 : 왜냐하면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그걸 오해 없이 받아들여줄 거란 확신이 있어서.

황정은 :  모든 글 작업은 결국은 수신인을 향한 글쓰기이기는 합니다. 작가가 쓰는 와중에 그걸 인식을 하든 안 하든 간에, 결국은 수신인을 향한 작업이에요. 그런데 편지글이라는 건 그 수신인이 조금 더 전면에 드러나 있는 글쓰기잖아요. 이 형식 덕분에 작가님이 글을 쓰는 동안에 느낀 장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오지은 : 장점이랑 단점이 양면으로 붙어 있어요. 수신인이 있어서 좋았던 얘기를 먼저 하자면, 마음껏 눅눅해질 수 있었다는 것.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공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게 에세이인 경우에는 어투가 짐짓 읽고 있는 사람이 없는 듯, 마치 누군가가 쳐다보고 있는 데 독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저는 있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저도 에세이를 쓸 때 그런 걸 느끼고는 했는데, 그게 결국은 나더라고요.

오지은 : 맞아요. 그래서 (이 책에서) '당신'이라고 하는 사람을 되게 구체적으로 프롤로그에 상정을 해요. 

황정은 : 줄곧 호명을 하시지 않습니까? 

오지은 : 네. 그런데 사실은 그 '당신'이 누구인지 저는 모르고, 몰라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주 정확하되 절대 고정되지 않는 과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제가 공연을 하거나 북토크를 했을 때 오시는 분들이 종종 제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제 이야기를 듣거나 제 음악을 듣고 가실 때가 있어요. 굉장히 머뭇머뭇하시다가 편지를 주고 조금 말을 하려다가 울컥해서 펑펑 우시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시간에 되게 많은 무게가 있는 거죠. 그 무게를 저는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계속 그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 사람을 '위한'이 아닌 제 나름의 음악과 글을 만드니까, 그걸 그 사람이 계속 이용할 수 있는. 그분이 자기 자리에서 태연한 듯한 시간을 보내다가 어쩔 수 없이 허물어질 때 항상 허물어져 있는 제가 있으니까 잠깐 만났다가 가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어떤 음악이나 책을 읽으면서 '아, 이 사람 나 같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처럼 저의 뭔가를 보고 어떤 사람이 '아, 이 사람 나 같다'라고 생각할 것이라는 신뢰가, 코로나도 그렇고 그 전에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비극 같은 거를 겪으면서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아요. 먼지가 뭉치는 것처럼. 먼지가 뭉치면 눈에 확실히 보이는 파괴력이 생기잖아요. 저는 마음의 먼지 같은 것만 모으는 인간인데 '여기 먼지가 모여 있고, 나는 먼지가 분명히 존재하고, 여기에 대해서 난 얘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계속 먼지에 대해서 생각했던 걸 음악으로든 책으로든 만들어 두면,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간편하게 꺼내서 '그래, 이런 먼지였어!'에 도달한 다음에 빨리 잊고 주무실 수 있다면, 그게 세상과 저의 등가 교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지은

글을 쓰고 음악을 하는 사람. 2007년 1집 앨범 <지은>을 발매, 이후 2집 <지은>, 3집 <3>을 냈다. 2010년 책 『홋카이도 보통 열차』를 냈고 이후 『익숙한 새벽 세시』,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그리고 『마음이 하는 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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