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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이 빚어낸 시대의 사랑 이야기 『염부』

『염부』 박이선 소설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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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선 소설가의 장편 소설 『염부』는 "근현대사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녹여, 한 줄기로 유장하게 꿰어냈다"는 평으로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23.03.23)


박이선 소설가의 장편 소설 『염부』는 "근현대사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녹여, 한 줄기로 유장하게 꿰어냈다"는 평으로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대적 배경과 개인 서사에 담긴 고난과 애달픔을 세심하고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으로, 작은 땅에 깃들어 있는 거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소설 『염부』는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인 만큼 소회가 더욱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전통 소금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우리 소금의 안타까움과 고된 일에 종사하는 염부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언젠가 꼭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해결되지 않더군요. 원고지 200장 정도를 쓰다 덮고, 다시 쓰다 또 덮기를 몇 차례 반복했어요.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머릿속 한편으로 글쓰기를 조용히 미뤄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아놓은 자료를 토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염부』는 염부의 아들인 염길과 일본인 유지의 딸 아케미의 사랑 이야기라는 외형을 입고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사회의 혼란,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하는 장편 소설입니다.

작가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제 소개를 드리려니 조금 쑥스러운데요. 저는 소방관입니다. 늘 현장에서 화마와 싸우고 있지요. 사실 독자들께 직업으로 인한 선입관을 심어주게 될까 봐 부담감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먼저 묻지 않으면 굳이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치열한 경계에 위치해 있는 직업인만큼,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깨달은 바를 토대로 소설을 쓸 수 있으니 좋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글쓰기로 먹고살겠다고 결심한 소설가는 많지 않을 거예요. 익히 알려진 유명 작가들을 살펴보아도, 다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직업을 갖고 계신 경우가 많았지요. 그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삶의 현장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담금질하여 좋은 소설을 써냈습니다. 그 과정이 창작을 위해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가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소설을 쓴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구급차를 타고 가다 보면, 어르신들께서 그동안 자신이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 주시거든요.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처음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중고교 문예대회에서 몇 차례 입상한 경험 정도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계시겠지요. 따로 결심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서른쯤 되었을 때입니다. 직장에서 뜻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 월간 잡지를 창간하고, 그때 처음 단편 소설을 썼습니다. 쓰다 보니 재밌어서 신춘문예에 투고하기도 했어요. 첫 작품은 본심까지 올라갔어요. 결국 떨어지고 말았지만요. 아마 그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썼더라면 등단이 조금 빨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런데 아이들 키우며 살다 보니 문학은 저 멀리로 사라지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온라인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소설을 한번 써보마" 선언하고 그 사이트에 원고지 1,800매 정도의 소설을 연재하게 됐습니다. 장난기 가득한 소설이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해주자 신이 나서 '나도 장편소설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람 일은 참 묘한 것 같아요.

"근현대사를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녹여냈다"는 심사평이 인상 깊습니다. 마치 실재했던 것처럼 에피소드가 생생한데, 어떻게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인물들을 구상하게 되셨나요?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에는 다뤄야 할 이야깃거리가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얼개를 짜기에 앞서, 여러 차례 고민하다가 염부의 아들과 일본인 유지의 딸을 주인공으로 정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또 해당 지역에 무슨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당시의 신문 자료들을 찾아서 참고했지요.

그 시대는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식민 지배가 한 세대 이상 계속되니 자칫하면 민족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차츰 민족성을 자각해 나가는 청년과 그를 사랑하는 일본인. 두 사람이 속해 있는 민족과 계급이 다르다 보니, 그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시선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었어요. 인물들을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그 시대를 더 생생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그중 가장 마음이 갔던 인물이 있다면요?

답하기 쉽지 않지만, 저는 염길의 동생인 대길에게 마음이 갑니다. 잘난 형 때문에 아버지에게 구박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소금을 구워내고, 결국 고단한 세월이 다 지나도록 염부 일을 끝까지 지켜낸 유일한 인물이니까요. 주변을 돌아보면 사실이 그렇지요. 잘난 자식들은 대부분 떠나고 그렇지 않은 자식이 부모 곁에 끝까지 남아 수발을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결국 혼자 남은 대길이 변함없이 끓여낸 소금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결정체로 작용하게 됩니다.

구슬땀처럼 반짝이는 소금이 생각나는 책이었습니다. 작가님께 '소금'이란 무엇일까요?

아버지 석대가 둘째 아들 대길에게 해주었던 말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소금은 정성이여. 염부가 일을 게을리하믄 맛과 색이 변해분께 한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잉. 검단선사 이후 여그서 나는 소금은 늘 모릿등 고운 모래맨키로 부드럽고 색과 맛이 일품이제. 우리 염부들이 배운 그대로만 하믄 절대 소금은 변하지 않을 것인께 허튼 생각 말고 맘속에 똑똑히 새겨야 써."

제게 소금은 언제나 똑같이 짠 맛이에요. 변함없는 맛과 성질로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보존시켜주고 간을 맞추는 소금. 저도 소금과 같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누구에게나 분명히 있겠지요.

험난한 시대를 거쳐 온 소설 속 인물들에게, 혹은 우리 주변의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휴대폰으로 즉각적으로 메시지를 나누느라 부정적인 감정이 실시간으로 오가는 요즘 세상보다는, 과거의 사랑이 더 절절하고 순수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주인공 염길과 아케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염길, 당신의 아케미는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사랑을 그리며 딸을 키워냈습니다. 아케미, 당신의 염길은 불행하고 굴곡진 삶을 사는 동안에도 당신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청년들에게 순수한 마음과 인내가 깃든 사랑을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사랑만큼은 소금처럼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이선

2012년 제7회 대한민국디지털작가상을 수상하고, 201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하구(河口)」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장편 소설 『염부』로 제2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역사와 시대상을 반영한 여러 작품을 출간하며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염부
염부
박이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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