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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핀현준 "너는 전문가 해, 나는 딴따라 할게"

『세상의 모든 것이 춤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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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죽어서 신 앞에 가서 살아온 인생을 평가 받을 때, 가장 죄악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너답게 살지 않은 것'이래요.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누군가를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2023.02.20)


대한민국 팝핑 댄스의 1세대로 스트리트 댄스 대중화에 앞장선 팝핀현준. 그가 '춤과 삶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세상의 모든 것이 춤이 될 때』를 펴냈다. 남현준(본명)이 춤을 만나 팝핀현준이 된 과정, 춤을 추며 맞닥뜨렸던 벽과 그것을 뛰어넘은 마음, 그러면서 확고해진 댄서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준다.

그 이야기의 끝에서 팝핀현준은 '그냥 우리답게 삽시다'라고 썼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다운 게 무엇인지, 고민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춤꾼으로 살면서 한 번도 그 질문을 놓지 않았고, 춤을 추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 팝핀현준은 말한다. "나답게 살고, 내 세계를 만들어 가면 '내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건 고유한 거예요. 그래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그 신념으로 오늘도 춤을 춘다. 자신만의 몸짓으로 대중에게 말을 건다.



나답게 사는 것,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에필로그에 '이 이야기는 제가 아끼는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같아요.'라고 쓰셨습니다. 뒤이어 '당신으로 사세요.'라는 문장이 나오는데요. 이 책에서 가장 하고 싶은 한 마디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나답게 사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하더라고요. 우리가 죽어서 신 앞에 가서 살아온 인생을 평가 받을 때, 가장 죄악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너답게 살지 않은 것'이래요. 저는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한테 '누군가를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게 스트레스거든요. 마이클 잭슨 같이 춤추고 스티브 잡스 같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고 일론 머스크 같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예요. 제가 독자들한테 이야기하는 건 딱 하나 '여러분, 남을 닮으려고 하지 마세요'라는 거예요. 이미 당신은 존재 자체로 충분히 중요한 사람이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독특한 존재거든요. 그러니까 그 자체를 보여주라는 거예요. 그게 값어치가 될 거예요. 저는 그게 당신의 브랜드라고 생각해요.

'팝핀현준도 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데요. 팝핀현준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해냈다는 의미일까요?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팝핀현준? 춤추는 애잖아'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여러분 주변에 춤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씩은 있을 텐데, 그 친구들을 보면 완벽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춤추는 것만 잘하고, 그래서 많은 걸 갖고 있지 않아요. 저도 그런 평범한 친구들이랑 똑같거든요. 그냥 어릴 때부터 춤이 좋아서 췄어요. 제가 여러분 앞에서 루트라든가 벡터라든가 그런 어려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냥 '여러분, 음악이 나오면 이렇게 춤추면 돼요' 하고 춤을 보여주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도 해냈어요. 저는 중학교밖에 못 나왔고, 나중에 검정고시 보고 대학을 갔지만, 어쨌든 그 시절에 학생의 본분을 못 지켰어요.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기도 했고. 그렇게 조금 안 좋았던 환경에서도 해냈는데, 저보다 훨씬 더 뛰어난 여러분도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책에서 '춤의 시류, 흐름'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요. 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계속 노력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좋아하는 걸 넘어서 사랑하면 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제가 봤을 때는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일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많아요. 그냥 그렇게 움직이는 게 좋아서,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걸 보면서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 일 때문에 화가 나거나 나를 증오하게 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 일을 사랑하면 집착이 생겨요.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왜 안 돼?' 싶기도 하고요. 내가 이제 이 분야에서 최고인 줄 알았는데 새로운 게 나타나고, 그런데 그게 너무 매력 있으면, 그것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또 해보는 거죠. 처음에는 금방금방 돼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몸이 못 따라가고, 그럴 때 엄청 우울해지죠.

그러면 어떻게 하세요? 

이제 늙었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걸 해내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내요. 그게 예술가가 연구하는 거예요. 지금 나는 20대의 근육량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그러면 저 친구들이 안 갖고 있는 게 뭘까, 지금 저 친구들이 갈망하는 게 뭘까, 저만큼의 테크닉을 대신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찾는 거예요. 그러다 발견하게 있으면 열심히 하고, 그러면서 계속 '내 것'을 만들어가는 거죠. 새로운 트렌드에 발 맞춰서 가보려고 노력을 하는 건데, 그 중에 첫 번째가 몸무게를 20년 전과 똑같이 유지하는 거예요. 몸의 쉐이프가 변함없어야 늘 한결 같죠. 그리고 몸이 힘들면 생각이 게을러져요. 오늘은 좀 쉴까? 이렇게 되는 거죠. 그걸 차단하는 거예요.

춤추는 사람에게 '나이 드는 일'은 위기로 여겨지기 쉬운데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요즘 친구들에게는 처음 보는 낯선 것'이 되니까요.

맞아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 때 입었던 미니스커트나 나팔바지, 도끼빗, 장발 같은 것들이 다시 트렌드로 돌아오면서 사람들이 그 옛날의 감성을 좋아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춤도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패턴이라는 게 있고 돌고 돌아요. 그런데 그것이 '내 것'일 때, 지금의 친구들한테도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음식도 '오리지널 테이스트'라는 게 있으면 사람들이 그 맛을 계속 찾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 것'이 있으면 지금의 트렌드를 찾는 친구들에게도 새로움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팝핀현준은 '대중과 소통하는 댄서'가 아닐까 싶어요. 한편에서는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 같은데, 어땠나요? 

90년대에는 각기춤, 꺾기춤이라고 했죠. 아무도 '팝핑'이라는 걸 몰랐어요. 심지어 저도 몰랐고, 1998년에 일본에 춤 배우러 갔을 때 알게 됐어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 팝핑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팝핑의 가장 정점에 이야기할 수 있는 스타일 중에 '부갈루 스타일'이라는 게 있어요. 발레처럼 동작들의 이름을 만들어낸 건데요. 그 동작과 그 느낌에 맞춰서 그 옷을 입고 그 스타일대로 춤을 춰야 부갈루 스타일이고 정통이라는 거예요. 

제가 스무 살 때 한창 테크노 음악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 음악에 맞춰서 춤추고 싶은데 자꾸 60년대 펑크 음악에 춤을 추라고 하는 거예요. 느린 음악에 맞춰서 추니까 지루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싫다고 했어요. 정통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이야기한 거죠. 그리고 부갈루 스타일은 옷도 댄디하게 입어야 되거든요. 베이지 바지에 허쉬파피 구두 신고 남방 위에 브이넥 티셔츠 입고. 그게 정통인데, 저는 찢어진 청바지 입고 춤추고 싶은 거예요. 웃통 벗고 추고도 싶고. 그런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저는 그렇게 (정통을 따라서) 안 했어요. 그리고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 했죠. 대중들과 소통하고 더 친해질 수 있는 방식으로. 대중들이 원하면 동요에도 춤을 추고 만화 주제가에도 춤을 추고, 그런 식으로 저를 알려왔어요. 그렇지 않고 정통을 따른 친구들은 대중과 점점 멀어졌지만,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었죠. 전 저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거예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아니, 잘못됐다는 건 아닌데... 네가 하는 게 틀린 건 아닌데... 그래, 다 다른 거지' 하면서 배척할 수밖에 없는 거죠. 본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정의랑 제가 너무 많이 부딪히니까요. 저는 '예술에는 틀이 없다, 틀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정통을 지키지 말라는 게 아니고요. 만약에 사람들이 부갈루 스타일의 워크아웃이라는 말을 어려워하면 "로보트 춤이에요, 앞으로 걸어 나가세요'라고 말하면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전문 용어를 써서 어렵게 이야기하려고 해요. 전문가니까. 그래서 저는 '그럼 너는 전문가 해, 나는 딴따라 할게' 이렇게 한 거죠.



춤 이야기, 한 번은 진지하게 하고 싶었어요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춰서 소통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대중과 함께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라 자위가 될 수 있어요. 예술의 범위가 너무 넓고 너무 자유롭기 때문에 예술적 표현에 가치를 두려면 반드시 그 예술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돼요. 팝핑, 비보이, 브레이크 댄스는 클래식 문화가 아니에요. 대중적인 문화거든요. 사람들과 만나서 보여지고 가끔은 소모되고 없어져야 되는데, 고루하게 '그건 틀렸어'라고 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중과 함께 있을 때 예술적 가치가 더 크게 보여질 수 있고, 또 값어치가 생성될 수 있고,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생겨나거든요. 피카소는 죽었지만 그림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고 마음의 위안을 얻잖아요. 대중성이라는 건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대중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 결정체라고 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대중을 상대로 예술 활동을 하다 보면 '내 것'을 지키기 힘들어지지 않나요? 많은 요구들을 받게 되잖아요?

맞아요. "이건 대중들이 싫어해, 어려워, 쉽게 쉽게 해"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래서 두 가지를 다 지키려면 두 배로 노력을 해야 돼요. 저도 "그건 어렵다, 싫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난 이렇게 하고 싶은데?' 생각했고 '그러면 이 공연은 언더에서 해야겠다'하고 언더에 가기도 했어요. 언더와 오버로 이야기하는 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제가 만들어본 작품을 저지쇼 같은 데에서 보여줘 보고, 거기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건 대중들도 좋아해요. 

그리고 이런 게 있어요. 어릴 때는 선뜻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도전이 젊다는 에너지로 만들어질 때가 있었어요. 해봤는데 잘 안 되면 어린 패기에 '대중들이 뭘 알아? 됐어, 다른 거 해' 하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잘 안 되면 지쳐요. 회의감이 들고 위축되더라고요. 그렇게 안 되려면 연습을 더 많이 하고 검증을 많이 받아야 돼요. 그 검증은 언더에서 받을 수도 있고요. 저는 지금도 엄마 앞에서 해봐요.(웃음) 그렇게 해야 '내 것'이 만들어지는데, 그런 면에서 제 와이프를 가장 존경합니다.(웃음)

책에도 그 마음이 잘 담겼더라고요. '아내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웃음)

일단 인성이 기가 막히죠! 저는 화나면 사람들한테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는데, 와이프는 안 해요. 와이프가 했던 가장 심한 욕이 '재수 없어'였을 거예요. 그만큼 인성이 좋고요. 그리고 우리 엄마한테 하는 거 보면, 요즘 시대에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 며느리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결혼할 때 어머니를 모셔야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당연한 이야기를 왜 그렇게 어렵게 하냐'고 그러더라고요. '어머니가 한 분밖에 안 계시고 우리 어머니인데, 우리 말고 누가 모시냐'고요. 이 사람은 내가 죽어서도 업어줘야겠구나, 그런 마음이었어요. 지금도 똑같고요.

박애리 님이 쓴 글도 세 편 실려 있어요. 동료 예술가로서 남편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뭉클했습니다. 아내이자 예술가로서 박애리 님은 어떤가요? 

국악인으로서 요만큼도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연예인처럼 활동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 춘향대전에 나가서 판소리로 대통령상을 받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쉬운 일도 아니고, 심지어 예전에 받은 대통령상이 있거든요.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대통령상 받은 게 있는데 그건 민요로 받은 거야, 적어도 내가 판소리꾼이면 판소리로 받아야지"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공연이랑 예능 스케줄도 있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했더니  "그거 다 할 거야, 걱정하지 마" 그래요. 그러더니 할 일 다 하면서 대통령상을 받았어요. 제가 황당하더라니까요.(웃음) 그런데 또 완창을 한대요. "자기만족이기는 한데, 그래도 소리꾼이라면 완창 정도는 한번 해줘야지"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제일 긴 소리를 6시간 반 동안 해서 완창을 끝냈어요. 작년에 한 번 더 했고요. 어쨌든 박애리 씨는 기가 막힙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니까 제가 게을러질 수가 없어요.

딸 남예술 양은 '쑥대머리를 부르며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아이'로 자랐다고요.(웃음) 부모로서 두 분이 아이를 보면서 '음악을 하게 될까? 춤을 추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될 것 같아요. 

저도 굉장히 기대가 되고요. 이 아이가 과연 뭘 할까 궁금해요. 그런데 미술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대요. 미래에 대해서 쓰라고 하면 항상 '저는 화가가 돼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쓰거나 아니면 만화를 그린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 친구는 그림을 좋아하는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노래하고 아빠가 춤추는데 둘 중에 하나만 해도 사람들이 비교할 거 아니에요. '엄마가 박애리인데 노래를 그거밖에 못 해?' 이럴 수도 있는 거고 '아빠가 팝핀현준인데 춤을 그렇게 추면 되겠어?' 이런 식으로 비교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아이랑 경쟁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랑 어머니를 항상 이겨야 되고 항상 부모가 커트라인이 돼야 한다면 너무 싫잖아요. 끔찍할 것 같아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죠. 10년 동안 강의 제안을 거절하셨다면서요? 

네, 책에 썼듯이 김윤정 안무가의 이야기를 듣고 이 일이 나한테 꼭 필요한가, 나한테 어울리는 일인가, 내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런 걸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10년 동안 안 하다가, 이제는 어떤 걸 가르치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아이들이 '예술'이라는 재능을 가지고 자본주의적으로 다가가는 것에 대해서 겁을 내더라고요. 예술가랑 자본주의 사이에는 벽이 있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가난 안에서 예술의 결정체가 나온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가난하면 좋은 붓을 쓸 수도 없고 좋은 붓을 못 쓰면 그만큼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작업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예술가는 가난해야 된다는 건 옛날 이야기죠. 제가 봤을 때는 그렇게 배고프라는 뜻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늘 허기지는 거 있잖아요, 그런 배고픔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겠죠. 그런 열정과 꿈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가르치는) 친구들한테 해주고 있고요. 그리고 자본주의적으로 다가갈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경제지를 읽어라, 사회면을 꼭 봐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야 거기에 발맞춰 갈 수 있는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다" 늘 그런 이야기를 해요.

스트리트 댄스의 이론과 역사에 대해서도 쓰셨어요.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런 것도 있고요. 일반 분들에게 춤의 역사를 이야기할 기회가 없더라고요. 어려워하기도 하시고요. 제가 방송국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었는데, PD분들이 "대중들은 그런 거 싫어해, 역사 이야기하면 채널 돌아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명색이 '팝핀현준'이고 오랫동안 스트리트 댄스를 췄는데, 스트리트 댄스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장르가 있는지 이야기는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춤 이야기를 한 번은 진지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에도 실었죠.



완성은 없다, 계속 다듬는 것일 뿐

2021년에 '팝핑'의 명칭을 둘러싼 해프닝이 있었죠. '팝핑을 팝핀이라고 써도 되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는데, 이때 갑자기 소환되셨어요.

네, 가족들이랑 식사하고 있었는데 이메일이 온 거예요. '팝핀현준 님, 팝핑인가요? 팝핀인가요?' 그래서 '팝핀도 맞고 팝핑도 맞죠'라고 보냈어요. 그게 다예요. 그런데 식사 다하고 집에 왔더니 난리가 났더라고요. 팝핑하는 친구들이 연락이 왔어요. "장르를 이야기할 때는 팝핑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이야, 너랑 나랑 2주 전에 유튜브 찍을 때 우리가 계속 팝핀이라고 말했고 자막에도 그렇게 썼잖아. 그래도 아무 말 안 했잖아" 그랬죠. 그랬더니 가만히 있더라고요. 그러더니 '형, 그게 아니라 지금 이것 때문에 난리가 났어"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럼 뭘 해줘야 되냐고 물어봤더니 팝핑이 맞다는 한 마디만 해주면 된대요. 영상을 찍어 달래요. 그래서 영상을 찍고 마지막에 "이게(Popping) 고유 대명사이기 때문에 팝핑이라고 해야 됩니다. 그런데 제 이름도 팝핀현준인데요 뭐, 이게 문제가 됩니까?"라고 했어요.

불필요한 논쟁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때 현대백화점 팝업 스토어에서 진행하려던 공연이 취소됐잖아요. 그 공연을 앞두고 좋아하던 댄서들이 있었어요. 저한테 와서 그러더라고요. 공연비 받아서 핸드폰 요금 내야 되는데, (공연 취소돼서) 진짜 짜증난다고요. 코로나 시기에 가뭄에 콩 나듯 있는 행사가 없어진 거예요. 그게 안타깝더라고요.

댄스 씬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잖아요.

'팝핑/팝핀 논란'은 스트리트 댄스 씬의 역사를 10년 후퇴시킨 거예요. 그냥 신경 안 쓰고 자기 길을 갔으면 엠넷이라는 방송국은 스트리트 댄스를 위해서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거고, 거기에 그 친구들이 출연하게 되면 "아무도 이 이야기를 안 했어? 나라도 목소리를 내볼까?" 하고 하나씩 이야기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뒤에 숨어서 "저건 잘못된 거야" 하면서 사이버불링을 하고, 사과하지 않고, 저는 굉장히 비겁하고 오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뭐, 그게 그들의 선택이고 저는 제 선택을 한 거예요. 그 친구들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당시에 솔직하게 발언하신 이유는 뭔가요? 말을 아낄 수도 있었는데요. 

저는 억울했어요. 사람들이 "팝핑현준으로 개명하셔야 될 것 같아요"라고 하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내가 개명을 왜 해?' 하고 찾아봤던 거고요. 저는 사이버불링 자체를 혐오해요. 아니, 그렇게 싫었으면 모니카한테 전화하면 되는데... 그리고 모니카가 뭘 잘못했어요? "Popping인데 g를 드랍시켜서 Poppin'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지 "팝핀(Poppin')으로 이야기해야 된다"라고 말한 것도 아니에요. 틀린 말을 한 게 없어요.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춤으로 갈 수 있는 곳, 그 끝까지 갈 것입니다'예요. 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이가 칠십이 되어도 지금같이 춤추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게 저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외국에 가면 백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연주를 하거나 노래를 하거나 연기를 하는 시니어 예술가들이 참 많은데, 한국에는 그런 예술가가 없는 것 같아요. 적어도 한 명쯤은 그런 사람이 나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람들이 "팝핀현준이 이제 일흔이 됐다고? 그런데 아직도 춤을 추네? 대단하다, 대단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춤추는 아이들한테 누가 "너 그거 해서 뭐 하려고 그래?" 하고 물을 때, 저를 가리키면서 "저렇게 되려고"라고 대답할지도 모르잖아요. "언제까지 춤출 수 있는데?"라고 물어볼 때 "저렇게 오래 할 수 있는데?"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역할 모델이 될 거 아니에요. 제가 생각할 때 선배는 후배에게 등대 같은 사람이 돼야 하는 것 같아요. 길이 없을 때 "여기에 육지가 있어"라고 보여주면서 "그런데 여기까지 오는 길은 네가 만들어야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돼야죠.

최근 스트리트 댄스에 대한 인지도와 관심이 높아졌죠? 변화를 체감하세요? 

엄청 체감하죠.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저는 거기에서 수혜를 조금 받았어요. 항상 결과물이 있었어요. 물론 제가 노력도 했지만요. 그런데 '팝핑/팝핀 논란'에서 말했던 친구들은 그런 결과물을 많이 못 받았을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마음의 상처들이 있잖아요. 상대적 박탈감이 있는 거예요. 논란이 생겼을 때 제가 안타까웠던 게, 그리고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그거였어요. 솔직히 제가 나가서 그렇게 이야기했을 때 그 친구들(문제를 제기했던 댄서들)은 정말 괴로웠을 거예요. 저도 괴롭죠. 동생들을 잃어버린 거니까. 내 씬을 잃어버린 거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저 형은 다 가졌으니까 저렇게 이야기하나 보다, 우리 안 볼 거라는 거지?' 이렇게밖에 생각이 안 될 거 아니에요. 저는 거기에서 선택을 해야 했거든요. 그 친구들의 입장에 서서 눈감아 주고 그냥 감싸고 갈 수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안 하고 '아니지, 그건 너희가 잘못한 거지'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친구들 입장에서는 '저 형은 우리한테 잔인하게, 왜 저렇게 이야기하지?'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를 되게 미워했겠죠.

독자들에게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이 책이 여러분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책의 뒤표지에 쓰인 것처럼 '완성이라는 것은 없고, 계속해서 다듬는 것일 뿐'이거든요. 목적을 가지는 건 좋지만 그것의 노예가 돼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고 우울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미술을 하면서 터득한 게 하나 있는데요. 그림을 그려서 완성이 되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1년이 지나서 보면 부족한 게 보여요. 그래서 계속 다듬어요. 춤도 그래요. 공연하고 나서 '이 무대는 진짜 찢었다, 상 받을 만했네' 생각해도 지금 보면 '왜 저렇게 했지?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는데?' 하고 부족한 점이 보여요. 결과물이 좋다고 해서 그게 전부 맞는 건 아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결과물이 나쁘다고 해서 다 틀린 건 아니에요. 우리는 항상 진행형이니까, 긍정의 힘으로 밝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팝핀현준

1979년 1월 30일 출생. 본명은 남현준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에게 사사한 춤사위로 대중들에게 팝핑 춤을 선보이게 되어 우리에겐 '팝핀현준'으로 더 익숙하다. 열두 살 때 춤의 매력에 빠진 이후로 30여 년 넘게 춤에 몰두해 살아왔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학업을 끝냈고, 남들보다 일찍 세상 공부를 시작했다. 급격히 기운 가세로 일찍이 거리의 삶을 살았지만 뚜렷한 목표 의식과 남다른 도전 정신으로 인생의 빈 곳을 화려하게 채워나갔다.




세상의 모든 것이 춤이 될 때
세상의 모든 것이 춤이 될 때
팝핀현준 저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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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춤이 될 때

<팝핀현준> 저18,000원(10% + 5%)

“완성이라는 것은 없다, 계속해서 다듬는 것일 뿐!” 장르와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진정한 예술인 팝핀현준 그의 무대는 언제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스트리트댄스’라는 장르는 익숙하다. 미디어에서는 댄서들이 각 크루의 자존심을 걸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적으로 춤을 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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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끝나지 않는 오월을 향한 간절한 노래

[2024 노벨문학상 수상]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 간의 광주, 그리고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철저한 노력으로 담아낸 역작.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 당시 고통받았지만,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이면서 그 시대를 증언한다.

고통 속에서도 타오르는, 어떤 사랑에 대하여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23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이자 가장 최근작. 말해지지 않는 지난 시간들이 수십 년을 건너 한 외딴집에서 되살아난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지극한 사랑”이 불꽃처럼 뜨겁게 피어오른다. 작가의 바람처럼 이 작품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전세계가 주목한 한강의 대표작

[2024 노벨문학상 수상]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이자 한강 소설가의 대표작. 보이지 않는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섬세한 문장과 파격적인 내용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무가 되고자 한 여성의 이야기.

더럽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소설가의 아름답고 고요한 문체가 돋보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 그 사이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흰’이라는 한 글자에서 시작한 소설은 모든 애도의 시간을 문장들로 표현해냈다. 한강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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